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65화 (194/686)

3권 15화

제12장 미끼(4)

‘텅’ 하고 창날과 창대가 낭창거리며 휘었다. 과도한 힘을 받은 손목이 시큰거리며 아파온다. 조서인은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어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창으로 사람을 찔렀는데 오히려 창대가 휘다니!

심지어 황보정이 가슴 근육을 한번 꿈틀거리자 팽팽하게 휘어졌던 창날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으악?”

자세가 무너진 조서인을 황보정이 붙잡아 주었다.

“자, 이렇게.”

황보정은 조서인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조서인의 두 눈에 감사의 뜻이 담겼다. 모두가 집중해서 바라보는 황보정의 가슴팍엔 생채기 하나 없었다.

“오오!”

아이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잘했다, 조서인. 이제 들어가 봐.”

“……아, 네.”

“봤나? 이것이야말로 외공 수련의 장점이다. 너희 모두가 갖고 있는 육신을 한계까지 발달시켜 주지.”

황보정은 착각하지 말라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외공을 익힌다고 해도 네 피부와 몸은 쇠보다 단단해질 수 없다. 애초에 인간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어. 칼로 내려쳐도 안 베인다는 금강불괴? 그야말로 전설일 뿐이다. 강시? 편법이자 마공이다. 지나치게 독한 약으로 인성까지 말살 되니 죽는 것과 다름없어. 잘 들어라! 외공은 그런 목적으로 단련하는 게 아니야. 끊임없는 도전이자, 하루에 모래알을 하나 쌓는 듯한 인고의 과정인 것이다.”

황보정은 나직하게 웃었다.

“무공 수련은 힘들다. 가끔은 내가 왜 이 길을 택했나 고민이 되지. 하지만…… 재밌다. 습관적으로 모래알을 쌓다 보면 어느 순간 멋진 모래성이 쌓여 있지. 이러한 기분을 너희는 이해할 수 있느냐?”

신입생들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황보정에게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황보정은 소리를 지른 것도 그들을 윽박지른 것도 아니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신입생들보다 훨씬 앞선 인생의 선배이자, 평생 동안 한 가지에 몰두해 경지에 오른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보이지 않는 그 자신감이 모두를 압도했다.

“심지어 똑같이 모래성을 쌓는 사람들끼리 자기 모래성이 얼마나 큰 지 대회도 연다. 어때? 흥미가 생기나?”

황보정은 무뚝뚝하면서도 호탕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위에 금이 간 것처럼 미세하게 웃더니, 이내 다시 교관의 모습으로 돌아와 설명을 시작했다.

“방금 전에 창을 막은 건 천근갑(千斤閘)이라는 무공이다. 소림칠십이 절예 중에 하나지. 원래는 이런 무공이 아니다. 내가 방어용으로 응용했을 뿐이야. 천근갑의 요점은 본래 공격이다. 요점은 힘의 집중!”

신입생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힘의 집중……’이라고 중얼거리며 따라했다.

“나는 온몸의 힘을 단 한곳으로 집중시켰고, 그 힘을 이용해 창에 실린 힘을 분산시킨 거다. 창날을 막았다고 해서 내 몸이 강철처럼 단단한 게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그래, 강(强)보다는 유(柳)에 가깝다. 너희에게 필요한 건 유연성이야. 알겠나? 유연한 근육은 비단결처럼 낭창거리면서 동시에 강철처럼 단단하다.”

황보정은 처음에 주먹질을 했던 바위에 양손의 검지 손가락을 동시에 대었다.

“왼쪽에 집중했다가.”

어깨. 팔꿈치. 상완근. 팔목. 손가락.

황보정의 왼팔 근육이 살아 있는 것처럼 한 방향으로 꿈틀거렸다. 놀랍게도 그의 왼손 검지 손가락이 바위 겉면을 반 치 가량 점점 파고들었다.

“……오른쪽으로.”

손가락 끝에서 어깨로, 그리고 오른쪽 어깨에서 손가락으로 다시 힘의 방향이 바뀐다.

왼팔에서 오른팔로 힘이 이동하는 모습은 커다란 뱀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 힘이 집중되자 이번엔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바위를 파고든다.

신입생 아이들은 놀라운 광경에 숨도 쉬지 못하고 지켜봤다.

“잘 봤나?”

“…….”

“왜 대답이 없어?”

아이들이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황보정의 무공은 그만큼 강렬했다.

“이 기술이 천근갑이다. 초식은 별로 대단하지 않지만 천근갑의 원리는 모든 상승무공의 요결을 관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난 너희에게 우선 이것을 가르칠 생각이다.”

모두가 기대감과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긴장하고 있는 사이, 한 소년이 손을 들어 올렸다.

분홍빛 비단 무복에 날카로운 눈매. 청룡방의 원형주였다.

“하나 교관님은 황보세가의 사람 아닙니까? 소림의 무공을 가르쳐도 괜찮습니까?”

“괜찮다.”

“예?”

황보정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너무 당당해서 원형주가 당황할 정도였다.

“난 소림의 속가제자일 뿐, 소림은 그렇게 속이 좁은 곳이 아니다. 실제로 무산학관은 소림칠십이절예 중에 절반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무당에서도 면장과 태극권을 내놓았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희들이 걱정할 필요 없다.”

“정말로…… 소림과 무당의 무공을 배우는 겁니까?”

“그래.”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쉽사리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황보정은 농담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소림이 어떤 곳이던가.

대자대비로운 부처님으로 대변되는 사찰이지만, 무공을 함부로 사용할 시엔 근맥을 끊어 버린다는 단호한 무파가 아니던가.

게다가 소림무공을 익힌 자는 무림행에 제약이 있기도 했다. 무림인들이 다들 소림사로 가지 않는 것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무공을 내놓았다고? 거기에 무당파까지?’

‘정말로? 순순히?’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이곳 아이들의 특성상 무공에 대해 알 건 다 아는 아이들이다.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야 어느 정도 있었지만 동시에 기회라고 여기는 아이들도 많았다.

‘역시 무산학관에 들어오길 잘했어.’

‘다 배워 가서 가문의 무공으로 삼아야지.’

그때, 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와 모두의 생각을 환기시켰다.

“천근갑을 배우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말투에서부터 순수하고 거침이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쪽으로 쏠린다.

소호.

체 시험의 수석은 언제나 눈에 띄는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시작 자세는 이렇게 하면 된다. 다들 마보(馬步) 자세를 취해라.”

무릎을 직각으로 굽힌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황보정.

신입생 아이들은 허둥지둥 마보를 취했다.

황보정이 그 자세에서 오른발을 쭉 뒤로 빼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을 왼발의 발끝에 가져갔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돌처럼 굳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으음.”

아무리 어려도 체 시험 합격자들이다. 안정적이지 못한 자세라도 거기까지 못 버티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황보정은 거기서 허리를 뒤로 뒤틀었다.

“어어?”

힘이 세고 골격이 큰 아이들부터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부엉이처럼 목과 허리를 뒤로 훽 돌려 버리는데, 아이들 중 절반은 따라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황보정은 왼쪽 어깨가 빠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왼팔을 늘어뜨린 채 오른쪽 허리에 붙였다.

“그어어!”

“으으으…….”

곳곳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상태에서 천천히, 오른쪽 손끝의 힘을 왼쪽 손끝으로 넘긴다고 생각해 봐. 온몸의 힘을 한쪽으로 몰았다가, 정반대로 밀어 보는 거다.”

황보정은 오른쪽 손과 왼쪽 손을 정반대로 쭉 뻗은 채 그렇게 말했다.

손끝에서 시작된 꿈틀거림이 어깨를 넘어 반대쪽 손까지 연결된다.

“으어어어.”

“으악!”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는 아이들이 부지기수.

오직 몇 명의 아이들만이 살아남은 전장에서, 엄격한 교육관인 황보정의 외침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다시! 이번엔 왼손부터! 계속!”

아이들의 비명과 한숨은 절로 늘어났다.

***

“우선 소개할게. 난 연홍(蓮紅). 무산학관의 검술 교관이야.”

교관인 연홍은 누가 보더라도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나이는 이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얼굴이 하얗고 입술이 붉었다. 가슴은 봉긋한데 허리는 가늘고 둔부는 둥글었다. 호리병 같은 몸매였다.

무복에 안 어울리는 새하얀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분홍빛 꽃문양이 금사(金絲)로 장식되어서 매우 화려한 옷차림이었다.

미모와 옷차림, 둘 다 여러모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미미가 좋아할 것 같은 옷이네.’

그 순간 소호가 대미미의 취향을 떠올린 건 잘못된 게 아닐 것이다.

마침 연홍이 소호를 힐끗 쳐다보며 방긋 웃었다.

“네가 제일 멀쩡하네?”

“네? 으음, 네.”

소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호처럼 멀쩡히 서 있는 건 단 세 명뿐이었다. 백호방의 은위군. 청룡방의 원형주. 그리고 이름 모를 덩치가 큰 소년 한 명이다.

나머지 스무 명 가량의 아이들은 모두 다리를 후들거리며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황보정의 극악한 강제 수련의 결과였다.

“으으…….”

“아우, 죽겠다.”

곳곳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지옥을 겪고도, 또 다음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는 게 아이들의 고단한 하루를 예상케 했다.

“이상하네. 그 외곬수가 웬일로 생존자를 남겼을까? 역근경은 처음 겪어 보는 사람은 버티기 힘들 텐데?”

연홍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의구심 섞인 시선이 소호와 나머지 세 명을 번갈아 응시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게 역근경이었어?”

“어쩐지!”

“역근경은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만들어서 엄청 힘들다던데!”

“으으, 괜히 아픈 게 아니었어.”

아이들은 힘들어 하면서도 납득하였다.

“그게 역근경이었구나……!”

소호도 감탄한 건 마찬가지였다.

수련을 하는 내내, 은자촌 파계승 할아버지가 가끔 가르쳐주던 체조와 동작이 비슷하단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묘하게 빠지거나 더해진 동작들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인 흐름은 비슷했었다.

“얘들아, 힘내렴. 내 수업은 너희들이 힘들어 하면 진행이 안 된단다.”

연홍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신입생들을 응원한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매년 이래 왔기 때문에 익숙하긴 한데……… 휴우, 그래도 아쉽네. 황보정 그 사람은 정말 답답하다니까? 이렇게 아이들이 지치면 다음 수업은 어떻게 하란 건지!”

연홍이 살짝 얼굴을 찌푸리자, 신입생들 중에 취향에 맞는 남자아이들이 함께 인상을 찌푸리며 벌떡벌떡 일어섰다.

“괘, 괜찮아요. 교관님!”

“할 수 있어요!”

연홍은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어머, 그래? 정말 괜찮겠어?”

“그럼요!”

아이들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도 씩씩하게 일어섰다.

연홍은 기특하다고 칭찬해 준 뒤 아직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괜찮니?”

걱정하는 목소리가 압박이 될 때도 있는 법이다.

남아 있던 다섯 명 가량의 아이들 중 네 명이 안간힘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명.

얼핏 남자아이로 볼 법한, 짧은 머리의 중성적인 소녀였다.

“저는 너무 무리했나 봐요. 수업 방해하면 안 되니까 옆으로 빠져서 조금만 쉴게요.”

“으응, 그러렴.”

연홍과 소녀가 허공에서 눈빛이 교차했다.

소녀의 당돌한 말투에 놀란 것은 소호의 곁에 있던 조서인이었다. 조서인이 놀란 눈으로 소녀를 응시했다.

소녀는 조서인이 학관에 들어 올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주작방의 문주희였던 것이다.

문주희는 그런 조서인에게 한쪽 눈을 깜빡이며 빙긋 웃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게.”

연홍은 옆에 쌓아 놓은 무언가를 덮고 있던 천을 벗겼다.

“……!”

아이들의 눈이 좁아졌다.

천 아래에는 딱 봐도 단단해 보이는 재질의 목검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다들 하나씩 받아.”

연홍은 일어선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목검을 직접 건네주었다. 문주희를 제외한 모두가 목검을 하나씩 받고 나니, 연홍의 분위기가 변했다.

“초식은 중요하다. 왜 중요하냐면, 사람은 너무나 약하기 때문이야.”

날카로운 눈빛, 살벌한 기세.

연홍은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로 웃고 있었지만, 아이들 사이엔 마치 한겨울이 된 듯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쉬익.

“히익?”

연홍의 손에서 번개처럼 뻗어 나간 목검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소년 한 명의 목덜미를 스쳤다. 소년은 어깨를 움츠리며 신음을 흘렸다.

연홍의 목검은 빨랐다. 움직일 때는 보이지도 않고, 다 끝나고 나면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사람은 목이 꿰뚫려도 죽고.”

쉬익.

연홍의 목검은, 이번엔 다른 소년의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 민감한 부분의 바로 아래를 스쳐지나갔다.

“그어억!”

소년이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희한한 소리를 내뱉으며 주저앉았다.

“하체를 당해도 죽어.”

연홍이 방긋 웃는다.

분명히 아름다운 웃음인데, 소년들은 조금 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특히 공격당한 소년은 이미 죽은 듯이 보였다.

“이렇기 때문에 초식이 중요한 거야. 해서 앞으로 내가…… 철저히 가르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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