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1화
제14장 불합리(不合理)(1)
그날 흑석촌의 풍운전장 지부는 난리가 났다.
평소에 흑석촌의 촌장이 가도 잘 만나 주지 않던 지부장이 맨발로 입구까지 뛰쳐나왔으며, 사태가 파악된 뒤 한 식경 내에 지부의 모든 관계 부서 직원들이 달려들어 흑석촌으로부터 무산학관까지의 여행 경로와 여행 수단, 그리고 세세한 계획과 필요한 물품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주었다.
“뵈,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여기 이건 무산학관까지의 추천 경로 세 가지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그리고 뒤쪽을 보시면 각 경로의 장점과 들를 만한 명소, 유명한 객잔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어느 경로를 선택하시든 동그라미가 표시된 지점에 가시면 여정에 필요하신 물품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풍운전장의 흑석촌 지부장은 덥지도 않은 날씨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진휘연은 세 가지 경로에 대한 장단점을 상세히 기록한 서찰과 동그라미가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찍혀 있는 지도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일처리가 확실한 사람이네요, 지부장.”
“가, 가, 감사합브으니다.”
흑석촌 지부장은 혀를 씹어 말을 더듬으면서까지 감복해했다.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백 사람이 해낸다.
그것이 조직의 힘이다.
방금 전에는 풍운전장 흑석촌 지부가 가진 모든 연락 수단이 가동되었고, 전국에 있는 풍운회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이 서류가 작성되었다.
놀라울 정도의 조직력이 발휘된 건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진휘연.
풍운객잔, 풍운전장, 풍운표국, 풍운약방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집합체인 풍운회를 책임지고 있는 일대 회주가 바로 그녀인 것이다.
고작 십삼 년 만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녀는 상계에선 이미 주목의 대상이었다.
“회주님, 저기, 그, 송구합니다만, 이것은…….”
지부장이 각지에서 보내 온 업무 서류들을 조심스럽게 들고 왔지만 진휘연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일축했다.
“전 오늘부터 휴가예요.”
지부장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처리할 일이 있으면 당분간은 강 숙수한테 부탁하도록 해요.”
“강 숙수라면 그 객잔회의 대표이신……?”
“예. 강운찬 숙수요.”
“아, 예.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분께 전해 주세요. 삼 일만 대신해 달라고.”
진휘연의 한마디에 삼 일간의 일거리가 강운찬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진휘연은 장기린의 팔짱을 낀 채 마차에 올라탔고, 지부장은 경건하기까지 한 태도로 머리를 낮췄다.
“즐거운 여정 되십시오, 회주님!”
뒤쪽에 시립해 있던 수십 명의 풍운전장 직원들이 똑같이 복창하며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마치 여왕을 대하듯 극진한 대접이었다.
그들이 예를 표하는 대상은 진휘연이다.
천하의 장기린도 이곳에선 그저 진휘연의 남편으로서만 존재했다.
“능력 있는 여자로군, 휘연.”
“후후, 그렇죠?”
휘연은 허리에 척하니 손을 얹고 자신만만하게 웃음 지었다. 그녀는 개선장군처럼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외쳤다.
“자, 출발―!”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마차는 질풍처럼 달려 나갔다.
***
중원 무림에는 수많은 무공들이 존재한다. 그 수는 사람의 온갖 신체 부위만큼, 혹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무기와 관련된 무공이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그 수많은 무공들 중 대표적인 것이 권(拳), 검(檢), 도(刀), 창(槍)이며, 그 외의 봉(棒)이나 겸(鎌)과 같은 특이한 무기들도 있다.
무가(武家)로는 구도자적인 관점에서 온갖 무기를 사용하는 구파일방이 있고,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수련하는 속세의 무가들도 있다.
권각술이라면 구파일방의 소림, 무림세가의 황보세가가 유명했다.
검이라면 화산과 무당, 구양세가가 유명하며, 도(刀)라면 하북팽가와 아미파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헌데 그 수많은 무공들 중에서 무기의 종류를 창(槍)이라고 한정 지으면 놀랍게도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신기한 일이다.
창이라고 하면 가장 대중적인 무기 중 하나인데, 그 때문인지 오히려 관가나 군문 쪽에서 병사들에게 많이 가르칠 뿐 무림에선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그중에 창으로 유명한 두 곳이 있으니 그것이 조가와 양가였다.
조씨와 양씨.
조가창과 양가창.
명(明)의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둘 다 백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천재들이 나타나 무공을 완성하였고, 그 결과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세월은 야속했다. 세간의 평은 이랬다. 상산에서 시작된 조가창의 전설은 한여름의 얼음처럼 녹아서 사라져 버렸고, 이제 중원 무림엔 양가창만 남았다.
“하아…… 하아…….”
피융―.
조용한 연무장, 거친 숨소리가 연신 울려 퍼진 끝에 철창 한 자루가 날카롭게 허공을 찔렀다.
두꺼운 철창을 휘두른 것은 눈을 의심할 만큼 어린 소년이었다.
이제 겨우 십삼 세나 되었을까.
앳된 얼굴에 덜 성장해 통통한 팔을 보면 누구나 아직 어린 소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릴 법한 나이인데, 그런 소년이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혼자서 무공을 단련하고 있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소년의 두 눈은 놀라울 만큼 맑았다.
맑고, 굳건하다.
잡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동작에 소년이 가진 모든 것, 혈관 속에 흐르는 피 한 방울까지도 모두 쏟아붓는 듯 집중력이 대단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현실이 그 소년의 생각을 따라가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친 팔 근육은 경련을 일으키고, 무게를 지탱해 줄 하체는 나약하게 휘청거렸다.
조가창법의 마지막 후예, 조서인은 이를 악물었다.
양발을 나무뿌리처럼 땅에 단단히 박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창을 꽃밭의 나비처럼 표표히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굳은살이 배다 못해 쩍 갈라진 손바닥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이제 겨우 어린 티를 벗어나기 시작한 몸으로는 무거운 철창을 다루기 버거운 게 당연했으나, 정작 본인은 그걸 납득할 수 없었다.
‘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조서인은 계속해서 속으로 되뇌었다.
모두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잦은 음주로 술병에 걸려 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를 간호하다 지쳐서 떠나 버린 어머니를 떠올리면 게으른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서인은 기억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후에 하루라도 수련을 쉬어 본 기억이 없다.
하루?
아니. 반각이라도 무공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두렵기도 했다. 잠깐이라도 쉬어 버리는 순간,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차앗!”
조서인은 창대로 바닥을 찍고, 허공으로 떠올라 몸을 팽이처럼 한 바퀴 반 회전시켰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짧게 여러 번 내쉰다.
그 순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왔다.
지금껏 실패했던 경우와 달랐다. 등골이 찌릿하면서 팡, 하고 허공에서 공기가 터지는 소음이 들렸다.
“됐……!”
환호성도 잠시, 숨이 턱― 하고 막힌 조서인은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아으…….”
조서인은 이마를 누르며 울상을 지었다.
아픔은 둘째치고 서러운 감정이 몰려왔다.
나는 어째서 이리 나약한가.
왜 이렇게 재능이 없는 건가.
조서인은 덜덜 떨리는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며 문득 무산학관에 들어올 때 봤던 관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면철왕 철우.
불교의 사천왕상을 보는 듯한 강렬한 느낌은 누구든지 한 번만 보면 잊지 못할 것이다. 가면철왕의 팔은 조서인의 허벅지보다 굵었고, 그의 넓은 어깨는 소년 세 명을 나란히 늘어놓은 것보다 넓어 보였다.
영웅이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강인한 영웅이라면 응당 그런 몸을 지니고 있지 않겠는가.
또 한 명을 떠올렸다.
기본 무공 수업에서 천근갑을 가르쳤던 황보정 노사.
그의 완벽히 단련된 육체라면 지금 조서인이 해낼 수 없는 초식을 아무렇지 않게 구사해 내지 않을까?
“결국은 내가 약해서야…….”
조서인은 한탄했다.
잠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이를 악물고 다시 벌떡 일어나서 창을 들어 올렸다.
피융―.
한껏 몸을 낮췄다가, 창대를 위아래로 흔들며 상체를 꼿꼿이 세웠다.
‘나이가 어린 건 변명이 안 돼. 왜냐하면 걔……, 그 애도 어리잖아?’
한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 아이 역시도 무산학관에 와서 처음 보았다.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무엇이든 해내 버리는 아이.
역시나 세상은 넓다는 걸 걸 첫인상만으로 몸소 가르쳐 준 아이.
장소호.
‘아니, 그 애만큼은 못 되더라도…….’
열정으로 타오르던 조서인의 눈빛이 급격히 흐려졌다.
최근에 친해진 소녀가 했던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걔는 어떤 애야?’
“으악.”
좌상향으로 뻗어가던 창술이 휘청 흔들렸다.
본래대로라면 사뿐히 내리그어야 했던 조가창법 전반부 삼 초식이 균형을 잃는 바람에 바닥을 거칠게 내리찍었다.
지잉―.
“으윽.”
조서인은 울상을 지었다.
창으로 땅을 내리치는 바람에 팔이 통째로 저릿저릿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왜 그 순간 주작방의 문주희가 떠올랐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복잡 미묘한 감정과 함께 느껴지는 가슴의 통증은 대체 무엇일까?
‘가슴 근육은 아프지 않은데…?’
찌릿하면서도 간질거리는 그 느낌은, 십삼 세의 소년이 생전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이었다.
“조서인?”
“네?”
그때, 수련관을 관리하는 현무방 선배의 부름에 조서인은 당황하며 뒤돌아보았다.
“손님이 왔다.”
“네? 올 사람이 없는데……?”
의아해하는 조서인과 달리 그를 부른 현무방 선배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몰라? 외부 손님이야. 너의 가족이라던데.”
그 순간 조서인은 귀를 의심했다.
“그렇……습니까?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시다니 가 보도록 해. 왜 그래? 가족이 아닌 건가?”
“……아뇨, 가족이 맞을 거예요.”
“그래?”
현무방 선배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휘적휘적 떠나 버렸다.
조서인은 들고 있던 철창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다.
가족.
가족이라니.
땀이 식어서일까. 뒷덜미 언저리에 오한이 스쳤다. 조서인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존재는 오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지 말아 버릴까…….”
말을 내뱉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싫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조서인은 착잡한 심정으로 일어나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갔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지.”
수련관의 입구로 가자 주독(酒毒)으로 코끝이 벌겋게 달아오른 중년 남성이 허름한 마의(麻衣)를 입고 앉아 있었다. 퀭하니 들어가 항상 어딘가에 분노하고 있는 듯한 눈빛은 조서인이 집을 떠날 때와 비교해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봉명.
그의 성격은 놀랄 만큼 첫인상과 똑같다.
사납고, 자격지심이 심하며, 누구든 삐딱하게 보고, 누구에게든 싸움을 건다. 마치 냄새가 고약한 은행나무 열매처럼 누구도 가까이가기 싫어할 남자다.
‘아버지는 그대로구나.’
조서인은 지금 이후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할 수 있었다.
‘소리부터 지르겠지.’
아니나 다를까. 버럭 노성이 터져 나왔다.
“하나도 안 변했구나. 모자란 녀석!”
“……저는 열심히 수련하고 있어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입학 시험 성적이 최하위라는 것도 들었다. 못난 놈. 네가 우리 가문 망신을 제대로 시키고 있구나!”
툭, 툭.
조서인은 왼손을 등 뒤로 숨긴 채 엄지와 검지를 톡톡 부딪쳤다. 화가 날 때마다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이 사람은 항상 그렇다. 독선적으로 판단하고, 상대를 무시하며, 어긋난 자부심으로 아들을 깔아뭉갠다.
만난 지 열을 세기도 전에 이 자리를 떠나고 싶어졌다.
대체 부자지간에 이렇게나 성격이 안 맞을 수도 있는 것일까. 혹시 피가 이어지지 않은 사이가 아닐까라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무림 강호에서 최고라는 무산학관에 입학했잖아요? 조금은 제가 한 것도 인정을…….”
“그깟 입학이 뭐가 대수라고. 당연히 해야지! 우리 가문이 어떤 가문인데. 네 몸에 흐르는 피가 어떤 피인데!”
“아버지 요즘 같은 세상에 혈통은…….”
“입학은 당연한 거고, 최소한 세 손가락 안에는 들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게 상산 조씨 가문의 적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냔 말이야!”
듣지도 않고,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등수는 어디서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하긴, 딱 하나 능력 있는 분야가 이거였지.’
조서인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썩어도 준치랄까.
몰락한 명가일지라도 종친의 인맥을 조금만 더듬으면 고위층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보통 사람은 모를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쯧, 보나마나 재능도 없는데 무리해서 엉겨 붙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게 무과 시험을 쳐서 하급 무관이라도 되면 될 것을.”
“그건 제 길이 아니에요.”
“네깟 놈이 뭘 알아! 아직 약관의 나이도 되지 않은 게. 뭘 알아서 큰 소리를 치냔 말이야! 남자는 관직이야. 관직! 권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탕탕 탁자를 내리치며 고래고래 소리치니 입구에서 번을 서던 경비병이 힐끗 시선을 보냈다.
조서인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일단 진정하세요, 아버지. 어쨌든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드렸잖아요. 그리고 무산학관의 졸업생은 무관의 자리도 얻을 수 있다고 했어요.”
“흥. 그게 될지는 지켜봐야 아는 거지.”
끝까지 독설을 내뱉는 아버지를 보며 조서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아버지. 무슨 일로 오셨어요?”
“커험!”
조서인의 아버지는 불편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내가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네 녀석이 괘씸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래서 잘못을 바로잡고자 온 것이다.”
“네?”
도저히 이해가 안 된 조서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듣자하니, 무산학관에 입관하면 한 계절마다 수련에 쓰라고 지원금을 준다지? 헌데 널 낳아 준 애비이자 지금껏 네게 무공을 가르친 사람, 네 옷, 네가 먹는 음식을 다 준비한 게 누군데 입을 싹 닦느냔 말이야. 에잉, 내가 널 그리 가르쳤더냐?”
조서인은 숨이 턱 막히는 듯하여 가슴을 부여잡았다.
“설마……? 그 말씀은…….”
“그래. 그 지원금 좀 가져와 보거라.”
조서인의 아버지는 뻔뻔할 만큼 당당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