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화
제14장 불합리(不合理)(2)
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조서인이 그 사실을 깨달은 건 다섯 살 때였다.
평생을 텅 빈 집 안에서 수련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꼬마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항상 외롭고 고독했으나 자신이 특이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진짜 무(武)의 명문가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
양가창.
무림 세계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모두가 양씨 가문의 창술이 놀랍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점창파의 관일창이 양가창에 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무림맹주의 수신호위인 가면철왕이 무림에서 인정한 유일한 창술이라고도 했다.
조서인은 그런 소문만 듣다가 처음으로 양씨 가문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양가 창법의 본가(本家)는 거대했고, 입구에서부터 안채까지 흐르는 공기엔 바짝 날이 서 있었다. 회백색 대리석으로 잘 다듬어진 연무장은 반짝반짝 빛났다. 수십 명의 문하생들이 절도 있게 기합을 내지르며 똑같은 동작을 수백 번 반복했다.
합! 합!
내지르는 기합성이 천둥소리처럼 천지를 쩌렁쩌렁 울렸다.
조서인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조가 창법이 양가창 따위보다 몇 배나 위대하다고 들어왔으나 이제 보니 정말 조가 창법이 위대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쯤 그는 양가창의 후계자를 직접 만나게 되었다.
“나 수련하기 싫어―!”
뽀얀 젖살을 그대로 간직한 귀여운 인상의 아이였다. 나이는 조서인과 비슷한 대여섯 살쯤으로 보였고, 질 좋은 빨간 비단 무복에 머리카락을 만두처럼 동그랗게 말아서 묶고 있었다.
“어……?”
조서인은 제 나이다운 치기 어린 목소리, 고생이라곤 모르는 듯한 얼굴에 놀란 것이 아니다.
조서인은 ‘그 외의 것’에 놀랐다.
“허헛! 또 그런 말씀을 하시는군요, 도련님. 이것 참. 이 늙은이가 가르치는 방식이 재미가 없었나 봅니다. 잘 보십쇼, 도련님. 이것이 천하제일 창. 양가창의 기본 모태가 되는 양가팔법입니다. 저희 양가 무문의 모든 무인들이 수련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요.”
인자한 목소리로 말한 백발의 노인은 그 말과 함께 창을 들어 척하니 앞으로 겨누었는데, 꼿꼿이 세운 허리와 빈틈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기수식에서 범상치 않은 위압감이 뿜어졌다.
그가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사방팔방으로 창을 찌르니 그때마다 창끝이 뱀의 혀처럼 쉭쉭거리는 소리를 냈다.
“우와…….”
조서인은 움직이는 창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양가팔법의 완벽한 시연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조서인은 창의 움직임에 반하여 멍하니 입을 벌렸고, 양가창의 후계자는 볼을 부루퉁하게 부풀리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싫어. 안 해. 힘들어. 그거 하면 손바닥이 아파.”
“으음, 하지만, 도련님. 훗날 양가창을 이어받으시려면 이런 기초무공은 숨 쉬듯이 해낼 수 있도록 수련을 하셔야 합니다. 본디 무공이란 하루하루 모래알처럼 쌓아 가는 수련이 기본으로…….”
“몰라아아―! 하기 싫어! 난 놀고 싶어!”
떼를 쓰는 도련님을 보며 백발의 노인은 난처한 듯 웃고 있을 뿐이다.
조서인은 마음속에 떠오른 강렬한 의문들을 지울 수 없었다.
어째서 때리지 않아?
어떻게 하면 이렇게 버릇없이 굴 수 있어?
가문을 위해 힘들어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없어?
저렇게 완벽한 무공시연을 왜 쳐다보지도 않아?
이렇게나 축복받은 환경을, 왜 모르지?
의문. 의문. 의문.
양가창 후계자의 나태한 태도보단 오히려 자신의 환경과 판이하게 다른 주변의 대우가 조서인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조씨 가문은 어땠던가. 수련을 하라고 닦달하고 혼만 낼 뿐, 제대로 된 지도도 없이 무공서에 쓰여 있는 문구를 읽고 또 읽어야 했다. 술병이 나서 몸이 아픈 아버지 때문에 조가 창법을 실제로 보지도 못한 채 말로 듣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수련해 왔다.
헌데 이 아이는 조서인이 간절히 필요로 하던 걸 숨 쉬듯이 자연스레 제공받고, 그리고 그걸 귀찮아한다.
그 사실은 아직 어린 조서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야! 너!”
“……어?”
“새로 온 하인이지? 나 물 한 잔만 가져다줘. 나 목말라.”
조서인은 또 하나의 감정을 배웠다.
부끄러움.
자존심을 긁힌다는 기분.
양씨 가문의 도련님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조서인은 당황해서 눈을 끔뻑이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허름한 마(麻) 재질의 무복. 그리고 대충 얼기설기 엮은 짚신.
조서인은 도련님의 반짝반짝 빛나는 비단무복과 자신의 옷을 비교해 본 후 그제야 깨달았다.
아, 저 아이의 기준에선 이렇게 입은 아이는 하인이구나, 라고.
“어…….”
조서인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난처해하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났다.
“그건 안 될 일이다. 이 아이는 하인이 아니라 우리 양가의 손님이기 때문이지.”
조서인이 뒤를 돌아보니, 멋지게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사내가 조서인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
부루퉁하게 서 있던 양씨 가문의 도련님이 경악하여 소리를 질렀다.
“아, 아버님!”
“네 이놈, 양려위. 한 번만 더 수련에 게으름을 피운다면 내가 친히 혼낼 줄 알거라!”
중년 사내가 호통을 치자 양려위라 불린 소년이 어깨를 움츠리며 잔뜩 겁에 질렸다.
“노사. 내가 내 아들이라도 특별 대우하지 말고 가르치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허허, 그것이……. 평소엔 이러시지 않는데.”
“하려던 것의 세 배의 강도로 훈련을 시키세요. 제가 직접 지켜보겠습니다.”
중년사내는 노인에게 지시해 수련을 재개시킨 뒤, 조서인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철이 없지? 내 아들이지만 너의 반만큼이라도 성격이 진중했으면 좋겠구나. 귀여운 녀석이긴 한데, 참으로 안타까워.”
“네?”
조서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너의 아버지는 지금 안채에서 술을 한잔하고 계시다. 그 틈에 너를 잠깐 보러 왔는데……, 착한 아이로구나. 네가 서인이지?”
중년 사내는 마치 태양이 불을 뿜듯 강렬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항상 자세가 곧고 양다리는 안정적으로 땅을 딛고 있구나. 게다가 양팔이 길고 손가락이 길며 벌써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긴 걸 보니 너의 성실함을 알겠다. 또한 조금 전 양가팔법을 보는 눈은 진중하고 동작의 전체를 바라보고 있었어. 네가 마음에 품은 근심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 외엔 참으로 괜찮은 재능이다.”
조서인은 생전처음 들어 보는 진중한 칭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은 양선호. 양가의 가주다. 무공 수련이란 길이 안 보이는 밤길을 걷는 것과 같지. 도움이 필요하다면……. 아니, 아니지. 네 마음이 내킨다면 언제든 이곳에 놀러오너라.”
조서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는 양진호.
얼굴 전체로 번지는 사내다운 미소를 보자, 조서인은 자신의 가슴이 꾹 하고 뭔가에 짓눌리듯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은 그렇게 세상을 알게 된 것이다.
양려위는 이렇게 멋진 아버지를 가졌다니.
역시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거라고.
***
“풍수지탄(風樹之嘆). 부모는 자식이 효를 다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조서인은 텅 비어 버린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며 멍하니 고사성어를 중얼거렸다.
“효를 다해야지. 그래. 나는 틀리지 않아.”
목소리가 떨리는 이유는 날이 갈수록 날씨가 점점 추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아버지, 조봉명은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전낭 속에 있던 지원금을 받자마자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숨기지도 않은 채 떠나갔다.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까지 하는 걸 보니 그래도 조금이나마 무산학관에 들어온 걸 인정해 주는 듯하여 뿌듯한 마음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텅 빈 전낭을 보니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바뀌었다.
“이제 이번 달은 어떻게 하지……?”
무산학관이 지원금을 준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기본적인 숙식과 상질의 교육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교육 중에 필요한 의복, 서책, 수련에 필요한 자잘한 물품들.
그 밖에도 학관에서 살아가다 보면 자잘하게 돈을 사용할 일은 무수히 많았다.
헌데 그 지원금을 모조리 아버지께 드렸으니 조서인의 학관 생활은 막막하게 되어 버렸다.
“방법이 없네…….”
조서인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수련장으로 돌아갔다.
깊은 울분을 수련으로 털어내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을까. 터덜터덜 걷던 조서인은 구석의 담벼락 위에서 그런 그를 지그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끝까지 알지 못했다.
***
“잊지 않았지? 내일부터는 두 명씩 짝지어서 대련을 시작할 거야. 모두들 대련용 각반을 준비하렴.”
다음 날 수업에 참석한 조서인은 기초 검술 수업의 홍 사부가 하는 말을 듣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수업에 준비물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바로 오늘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폭우 속에 번개가 친 것처럼 머릿속이 아찔했다.
‘준비……? 설마 사야 하는 거야?’
불안해진 조서인이 양옆을 살펴보니, 다행히 홍 사부의 말에 당황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열을 맞춰 서 있던 아이들 중 몇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사부! 질문이 있어요. 그 대련용 각반이라는 거 꼭 학관에서 사야 하나요? 밖에서 구할 수 없어요?”
“음, 그렇구나. 너희는 아직 본 적이 없구나?”
홍 사부는 윤기 있는 분홍빛 입술로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학관 내에서 쓰는 각반은 약간 특이한 구석이 있어. 아마 밖에서 평범하게 사용하는 보호구랑은 다를 거야. 이건 수업 때 쓰는 용도니까. 학관 내에 있는 상점에서 한 번쯤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해. 가격이 저렴하니까 가까운 데서 사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집에서 제작하거나 밖에서 사 오고 싶다면 그러도록 해.”
홍 사부는 훈련에 지장만 없다면 준비물이야 어디서 준비해 오든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기초 팔법의 수련을 더욱 열심히 하도록 하자. 일 초식부터 팔 초식까지. 좌상단부터 준비!”
홍 사부의 지시에 조서인을 포함한 학관 관도들이 모두 목검을 좌상단으로 들어 올렸다. 모두가 내일부터 있을 대련 수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두 눈을 반짝거렸다.
조서인은 외딴 섬에 갇힌 것 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주변이 온통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데, 그가 서 있는 곳만 먹구름이 낀 것 같았다. 정말로 이 많은 학생들 중에 각반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건 조서인 한 사람뿐이란 말인가?
하긴, 학관에서 나온 장려금을 아버지에게 뺏기는 사람은 아마 무산학관 전체에서 조서인 하나밖에 없을 것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니 심장 한구석에 쇳덩이가 들어간 것처럼 가슴이 묵직하고 답답했다.
‘준비물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각반? 직접 만들어야 할까? 각반 재료가 뭘까? 동물 가죽? 그럼 사냥부터…….’
조서인의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얽혔다.
무공이라는 건 본래 집중력이 가장 중요한데, 온갖 잡생각이 얽혔으니 무공 수련이 잘될 리가 없다. 동작이 어려워질수록 틀리기를 여러 번.
“거기! 조서인! 검 끝에 집중 안 하지!”
“죄, 죄송합니다!”
결국 조서인은 홍 사부에게 경고를 세 번이나 듣고 나쁜 의미로 눈도장을 찍고 나서야 수업을 끝낼 수 있었다.
“난 뭐하는 걸까……?”
짙은 회의감에 깊은 한숨을 내쉴 때였다.
고개를 푹 숙인 조서인의 곁으로 한 소년이 다가왔다.
“서인!”
“어……?”
조서인은 고개를 들었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목소리, 태양처럼 환한 미소가 보였다.
상대가 누군지는 한눈에 알았다.
지금의 조서인에게 있어 가장 만나기 껄끄러운 상대.
눈앞에는 장소호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