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5화
제14장 불합리(不合理)(5)
주작방 방장 곽도엽은 늙은 병아리 같은 추레한 외모에 왜소한 체구를 가진 소년이었다. 사람이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첫인상의 상당한 부분이 외모에서 결정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곽도엽은 특별했다.
분명히 못난 외모인데, 그게 그를 우스워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이한 위압감을 주었다.
속을 꿰뚫어 보듯 날카로운 눈빛 때문일까. 아니면 차가우면서 영리해 보이는 표정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곽도엽이란 인물은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내기를 하겠다고 했다며?”
비스듬히 앉은 채로 자신의 손톱을 가다듬는 곽도엽은 이쪽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연 사부의 ‘기초 검술’ 수업에 필요한 각반을 걸고 내기를 한다라……. 뭐, 좋아. 그럼 품목은 각반이라 치고. 승부는 어떻게 낼 거냐?”
조서인은 자신이 대답해야 하는 건지 고민했으나, 뒤쪽에 묵묵히 서 있던 철웅이 앞으로 나서자 안심했다.
“뭐긴 뭐야. 무산학관에서 승부를 뭐로 내겠어. 당연히 하나밖에 없지.”
“하나뿐이라?”
“무(武). 다른 게 있어?”
“하여간 변함이 없어. 뭐, 그렇겠지. 그게 너희 백호방다운 거니까.”
“말이 묘한데. 그건 칭찬이냐?”
“아니.”
곽도엽은 마치 얼음에 실금이 가듯 입매를 미묘하게 비틀었다.
“하지만 욕도 아냐.”
“거 아주 영광이네.”
“너스레를 떨다니. 오늘은 백호방의 수치(修痴:수련 바보)가 기분이 좋구나. 신기한 일인걸?”
곽도엽이 손톱을 튕기던 걸 멈추고 철웅을 지그시 쳐다봤다.
“수련에 미친 바보. 너도 내기에 참가할 건가?”
“아니. 무산제전도 아니고. 이런 건 새로 온 신입들이 하는 게 좋지 않겠냐.”
“동의한다.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되면 이 내기가 너희한테 불리할 텐데?”
“불리해?”
철웅은 절대로 십 대처럼 안 보이는 두툼한 팔뚝의 전완근을 꿈틀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면에서?”
“인원수 말이야. 신입생들만의 내기라고 하더라도 너희 백호방은 기껏해야 대여섯 명이지만, 우리 주작방은 그렇지가 않아. 너희가 지면 수십 명 분의 각반을 사서 제공해야 할 텐데. 자신은 있어? 게다가 우리 주작방의 물건 고르는 안목은 높다고? 값도 비쌀 텐데?”
“비싼 걸 고를 건가?”
“보자, 우리 기숙사 쪽이 보유한 대장간에서 제작한다면 값을 싸게 한다고 해도 적어도 은자로…….”
“난 또 뭐라고. 그거라면 문제없어. 신경 안 써도 된다. 금귀(金鬼)야.”
철웅이 파리를 쫓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그는 온몸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의심스러웠는지 곽도엽이 눈을 가늘게 뜨며 철웅을 노려보았다.
“이해가 안 되는데. 가난한 백호방에 그 정도로 금전적 여유가 있었던가?”
“어이, 가난하다니? 우리도 주머니가 두둑하다고.”
“지금 주작방 앞에서 돈 자랑을 하는 건가?”
철웅은 번쩍번쩍 빛나는 곽도엽의 방을 이곳저곳 둘러본 뒤 헛기침을 했다.
“크흠, 뭐, 어쨌든. 우리가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간단해.”
철웅은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양손으로 소호와 조서인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너네가 뭘 하든 우리가 이길 거니까.”
철웅이 씩 웃었다.
사내아이다운 자신감을 가득 담아서.
듣고 있던 신입생으로서는 간이 철렁 내려앉을 자신감이었다. 물론, 소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고 있었지만.
“대답할 가치도 못 느끼겠군. 좋아. 하지만 우린 신성한 내기를 하는 중이다. 미리 말해 놓겠는데, 만약 너희가 지고, 그걸 지불할 능력이 안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금액만큼 다른 걸 받을 거야.”
“걱정도 많네.”
“잊지 마. 나 곽도엽이야.”
무심한 듯, 나지막하게 말하는 곽도엽의 목소리는 십 대답지 않은 위압감이 담겨 있었다.
“알아, 알아. 무산학관 제일의 금귀님. 받아 낼 돈이 있으면 단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으시지요.”
철웅이 한껏 놀려도 곽도엽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맞아. 그리고, 너희가 내기를 제안했으니 경기 내용은 우리가 정하겠어.”
“말해 봐.”
“경기는 삼 판 이 선승. 무공은 신입생이 교육받은 것들만 사용. 장소는, 무산제전 수련장. 조건은 여기까지.”
“흐음?”
즉석으로 생각해 낸 것일까? 아니면 미리 준비한 것일까?
곽도엽은 조건을 줄줄 읊어 댔다. 철웅은 몇 번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다가 물었다.
“다른 건 알겠는데. 장소가 왜 하필 거기야?”
“몇 달 지나면 무산제전이 있을 테니까. 이참에 우리 병아리들한테도 수련장에서 미리 연습을 시켜 놓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후배 양성이라. 그런가. 우리도 벌써 그럴 학년이 되었네.”
철웅은 감상에 젖은 것처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받아들이는 건가?”
“좋아.”
“그럼 날짜와 시간은 우리 쪽에서 다시 알려 주도록 하지.”
곽도엽은 손톱을 탁탁, 튀기면서 처음 그들이 방 안에 들어왔을 때처럼 다시 비스듬히 몸을 돌려 앉았다. 대화는 끝이었다. 모두가 돌아가려는데 소호가 잊었던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멈춰 섰다.
“그런데 주작방 방장님.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탁, 튕기던 손가락이 불현듯 멈추었다.
곽도엽은 묘한 기운이 일렁이는 눈으로 소호를 지그시 응시했다.
“물어봐.”
“몸을 다친 것 같은데. 의원에 가 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
곽도엽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고, 옆에 있던 철웅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다쳤다고? 다람쥐처럼 몸을 사리는 저놈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곽도엽을 위아래로 몇 번이나 훑어보는 철웅은 못 믿는 눈치였다.
조서인도 마찬가지였다. 허둥지둥 몇 번이나 곽도엽과 소호를 번갈아 쳐다보지만, 조서인도 소호가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한 호흡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냉랭한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낸 건 곽도엽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데요. 음……, 동작이 어색해서?”
소호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조서인은 저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소호는 또래의 다른 친구들에게 무공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 저런 반응을 보인다.
“동작이 어색하다고? 그럴 리가!”
“아뇨. 우리랑 이야기 시작할 때랑,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손톱을 다듬으려고 의자에서 몸을 돌릴 때. 허리랑 오른쪽 다리 움직임이 이상했어요.”
“뭐가 어떻게 이상했다는 거지……?”
“그 부분만 반응이 느렸어요. 한……, 반 호흡 정도? 아닌가? 반의 반 호흡 정도? 몸의 다른 부위가 움직이고 나서야 허리랑 오른쪽 다리의 근육이 따라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랄까…….”
소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근육의 움직임이 둔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런 ‘느낌?’”
곽도엽이 눈을 가늘게 떴다.
“겨우 느낌만으로 너는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가?”
“하지만 삼촌들은 제 느낌은 잘 맞는다고 했어요. 제가 사람 몸을 잘 봐서. 그런 건 빨리 알아채거든요.”
“네 삼촌들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흥, 아니다. 변명할 필요 없지. 난 다치지 않았어.”
“으음, 그래요?”
“그래. 그러니 이상한 소리는 그만했으면 좋겠군.”
곽도엽의 눈빛은 차가웠다. 소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알겠어요. 제가 틀렸나 보네요. 그런데 ‘만약에’ 다쳤다면. 잘 안 낫는 상처 같으니까 회복에 전념하세요. 불당에 가는 것도 좋겠네요.”
“……불당이라니.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신입생 체 시험 우승자가 왜 백호방 같은 곳에 갔나 했더니, 이제야 이유를 알겠어. 철웅처럼 이상한 구석이 있는 놈이지 않냐.”
곽도엽은 큰 소리로 코웃음 친 뒤 나가라며 손을 내저었다.
백호방의 아이들은 쫓겨나듯 주작방의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들어올 때는 손님이었지만 나갈 때는 불청객이었다. 문주희와는 주작방 입구에서 헤어졌다.
백호방 삼 인방은 한동안 말없이 묵묵히 걸었다.
“야, 소호야.”
기숙사의 문을 나오자마자 철웅이 소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예?”
“그 밉살스런 놈이 다친 거, 낫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소호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환하게 웃었다.
“제 말을 믿어 주네요?”
“당연하지. 그 여우 같은 놈이 그렇게 놀란 얼굴을 하는 건 나는 무산학관에 들어오고 처음 봤어. 그런데 틀릴 리가 없지.”
철웅은 확신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소호의 말을 믿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정말로 주작방 방장님이 다친 게 맞다고……? 소호 너는 그걸 어떻게 안 거야?”
“뭐랄까. 으음……, 그냥?”
그 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소호를 보며 조서인은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이 아이는 항상 그를 놀라게 만든다. 그리고 다음번엔 반드시 그 이상을 보여 준다.
소호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말이지. 나는 움직이는 걸 보면 그게 무엇이든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이해하려고 하거든? 근육이라든가 뼈의 움직임이라든가. 그런데 그렇게 보니까 허리랑 오른쪽 다리가 이상해 보였어. 문제는 내가 저런 느낌의 상처를 이미 한 번 봤었다는 건데……. 뭔가 익숙한…….”
소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아니겠지. 아무튼, 내 생각이 맞다면 저건 심살(心殺)이 담긴 공격에 당한 거야. 쉽게 안 나아.”
“심살……?”
생소한 용어에 조서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옆에서 철웅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심살? 심검의 경지에 이른 이가 공격에 담는다는 심살기(心殺氣)를 말하는 거냐! 풀에 닿으면 풀을 죽이고, 사람의 몸에 닿으면 몸이 까맣게 죽어 버린다는 그 심살기?”
“네, 맞아요. 덕력이 높은 고승이 있는 불당이나, 의선급의 의원을 만나야 치유될 것 같은데……. 저분이 그 이야기를 들을지 모르겠네요.”
철웅은 멍한 눈빛으로 “놀랍네. 놀라워.”라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심살기라니. 저 밉상 녀석은 어디서 그런 심검의 고수와 다퉜단 말이냐. 아니, 그 전에 믿기지가 않는다. 그걸 알아보는 너란 애도.”
“으음, 저는 한 번 본 적이 있어서…….”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철웅이 단련된 손바닥으로 스스로의 이마를 탁! 하고 쳤다.
“나 참, 심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무슨 저잣거리 상인처럼 가볍게 말하지 말라고. 그런 건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냐.”
“그런가요? 마을에 몇 명 계셨었는데…….”
“뭐어…? 나 참, 아무튼 그래서? 누가 그 심검과 싸워서 상처를 입었는데?”
“예전에 막내 삼촌이 한 번…….”
“어엉?”
당황하는 철웅을 보며 옆에 있던 조서인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또 나오고 말았다.
도박꾼이자 달변가. 명언을 숨 쉬듯이 내뱉고 거기에 심검의 고수와 싸움까지 한, 소호의 ‘막내 삼촌.’
“그때 삼촌도 상처가 안 나아서 한참 동안 끙끙거렸었거든요. 장난 아니었어요. 모의 대련하다가 난 상처인데, 팔뚝이 패였다고, 회복이 안 되고 계속 아프다고 밤새 징징거려서.”
철웅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나도 들어 본 것 같다. 심검의 고수에게 상처를 입으면 혼백(魂魄)까지 다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더라고?”
“맞아요.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흐음, 그래서? 그 삼촌은 어떻게 됐냐?”
“히힛, 나중에는 다 나았죠.”
소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방법으로 회복했는데? 법당의 고승? 신의에 가까운 의원?”
“둘 다 썼어요. 다행히 마을에 다 있어서.”
철웅은 이제 신기해하지도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중에 마을에 대해 자세히 말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저 주작방의 금귀 놈은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녀석이지만, 왠지 이번엔 네 말을 들을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건 말이지.”
철웅은 한 번 씩 웃은 뒤, 투박한 눈매로 뒤쪽에 있는 주작방 기숙사를 흘낏 노려보았다.
“저 녀석, 너를 알고 있었잖아. 마지막에 체 시험 수석 합격자라는 것까지도.”
조서인이 “아!” 하고 소리를 내어 감탄했다.
철웅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뒤, 이번엔 소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저놈이나 이놈이나. ……불합리한 녀석들이야.”
소호는 그런 그를 보며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