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81화 (210/686)

4권 6화

제15장 노력의 재능(才能)(1)

백호방이 주작방과 내기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학관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다. 수업을 하는 내내 백호방의 아이들에게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고, 식사 중에도 휴식 시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이 쏟아졌다. 심지어는 수업을 하는 사부들도 관심을 가졌다.

“지겨워 죽겠어! 내가 왜 나랑 상관도 없는 내기에 엮여서 귀찮은 질문들을 수십 번이나 들어야 해? 하나같이 백호방이 이길 수 있겠냐고 묻는다고! 난 여기 무산학관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

통통한 몸집에 눈꼬리가 한껏 위로 치켜 올라간 범상치 않은 인상의 소녀. 백호방 지(智) 시험 합격자 마희희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숨을 씩씩거렸다.

“그러지 마, 희희야. 그래도 난 다른 사람들이 응원도 많이 해 줘서 좋던걸?”

연분홍빛 무복이 아주 잘 어울리는 소녀가 마희희를 말렸다. 또래에 비해 덩치가 크지만 동그랗고 뽀얀 얼굴을 지닌 소녀. 이미 학관 내에 천하제일대력소녀(天下第一大力少女)로 소문이 나기 시작한 대미미였다.

“흥, 너야 그렇겠지!”

“나?”

“그래. 덩치가 산만 한 선배들이 너랑 관계된 일이면 뭐든지 떠받들고 칭찬해 주잖아! 사람들이 네가 무산학관 공주님이라더라.”

“아, 아냐. 그런 건.”

대미미는 공주님이란 말에 볼을 살짝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그냥 그 선배들은, 내가 뭘 먹고……어떤 무공을 수련하는지 궁금해하는 거야. 선배들의 무공이랑 관계가 있다면서.”

“귀찮을 정도로 쫓아다닌다며?”

“쫓아오진 않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 같아.”

“……그러다가 끝내 아무런 비법도 없다는 걸 깨닫고 무신(武神)처럼 숭배하기 시작하고 말이지.”

마희희는 뾰로통하게 말했고, 대미미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무신이라니. 아냐, 그런 거. 무신이라 불릴 만한 분들은 따로 있는 걸?”

“따로 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흥, 아니지. 아니지.”

소녀는 엄격한 눈빛으로 이 일행의 지도자 철웅을 노려보았다.

“흥, 아무튼, 다른 사람들의 달콤한 말에 휘둘리지 마. 원래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인간일수록 경계해야 하는 법이야. 조심하라고, 너.”

“알았어, 희희야. 조심할게.”

대미미는 배시시 웃고, 마희희는 흥, 하고 코웃음 치며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지만 어쨌거나 사이가 좋다.

둘 다 또래 여자아이들과는 좀 다른 탓인지 성격이 달라도 제법 친했다.

“소호 오라버니. 그치만 희희의 말도 맞아요. 사람들이 많이 물어봐요. 어떤 내기를 하는지, 이길 수는 있을지 궁금하다면서…….”

“그래? 그렇구나.”

소호는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다가 되물었다.

“미미는 어떻게 생각해?”

“저요?”

“응. 내기에서 이길 것 같아?”

“당연하죠.”

대미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왜?”

“오라버니가 하는 일이니까.”

한 점의 의심도 없는 대미미의 목소리. 그리고 조용히 옆에 있던 백면서생 같은 소년 섭주해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그들 세 사람은 바위처럼 단단한 신뢰 관계로 묶여 있는 듯 보였다.

그중에 어이없어 하며 입을 쩍 벌린 건 마희희뿐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럼 이겨야겠네!”

“네! 오라버니는 이길 거예요!”

“알았어! 이길게!”

소호가 오른쪽 주먹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활발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대미미는 박수를 치고, 섭주해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경극 같은 모양새다.

마희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너희는……. 도대체 어떤 관계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거야?”

중얼거리는 마희희의 물음에 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옆에 있던 섭주해가 잠시 마희희를 지그시 쳐다봤을 뿐이다.

“소호 형.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내기의 대상이 소호 형 한 명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경우라면……, 아마 주작방에서 노릴 건 거기 있는 그 친구일 거예요.”

섭주해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당황한 건 조서인이었다. 낯빛이 창백한 백면서생 소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나? 주작방에서 나를 노린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요?”

“으응.”

“방비가 약한 곳을 노리는 것은 전술의 기본 중의 기본. 지금 백호방의 신입생들 중에 방비가 가장 약한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조서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섭주해에게 악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생략한 말은 조서인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약한 사람.

백호방 전체에서.

아니, 백호방 신입생들 중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자.

조서인.

“…….”

분했다.

소년의 자존심을 이 이상 자극하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하지만 더더욱 분한 것은,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소호는……, 당연하고.’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호는 이미 논할 가치도 없다. 학관 최고의 천재. 하늘을 뚫을 것 같은 재능으로 이미 주목의 대상이니까. 그러니 자연스레 그 밖의 백호방에 합격한 다른 신입생에게로 눈이 갔다.

‘은위강. 이 친구는…….’

항상 이유는 모르겠지만 검은색 가죽 장갑을 손에 끼고 있는 소년.

차갑고 냉랭한 표정에 얼음 같은 분위기를 풀풀 흘리는 소년이다.

서로 별다른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지만, 이미 험악한 분위기로 한 번 부딪친 적이 있는 사이였다.

“뭘 보냐. 둔재.”

“…….”

거기에 더러운 입놀림.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억누른 조서인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렸다.

이 녀석 때문에 신입생 무공 시험에서 쓸데없이 얼마나 긴장을 했었던가를 떠올리면 도저히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지만, 그때의 교훈으로 이젠 되도록 상대하지 말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질 것 같지는 않지만…….’

하지만 기숙사에 온 날, 선배들과의 대련에서 백호방 방장인 봉천 선배로부터 구슬을 얻은 걸로 봐서 숨겨진 한 수가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남은 건 미미인가? 싸우고 싶지 않은 건 둘째치고…….’

조서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미미.

무산학과 입관식과 신입생 무공 시험에서 보여 준 그녀의 신위(神威)는 이미 학관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조서인은 잠시 그녀와 무공으로 겨루는 상상을 해 보았다.

막강한 힘을 견제하여 창만큼의 거리를 두고 싸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소녀와, 그 옆을 빙빙 돌면서 벌처럼 창으로 찌르는 조서인.

초반엔 좀 통할 것 같기도 한데, 왠지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어느 순간 창을 붙잡혀서 꼬리가 붙잡힌 쥐처럼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격이 다른 힘이란 이렇게 치사하구나.’

조서인은 잠시 부러운 맘을 가득 담아 대미미를 노려보았으나, 그녀의 순수한 눈망울과 배시시 웃는 웃음에 악한 감정이 날아가 버렸다.

그럼 남는 사람은 없다.

백호방의 신입생 중에 남는 인원은 모두 지(智) 시험 합격자였다.

“이럴 수가. 결국 꼴찌가 나라니.”

조서인이 새삼 깨달은 현실은 십 대 소년의 섬세한 마음에 그늘을 드리웠다.

“그렇다고 실제로 제일 약하다는 말은 아니지만요.”

“어? 으응?”

“어디까지나 외부의 시선이 그렇다는 거예요. 무공이란 상성이란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소호 형?”

“맞아! 서인이는 약하지 않아. 창술이 뛰어나.”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소호가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이야기야. 앞으로도 그렇다는 말은 아냐.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달라질 걸?”

조서인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야?”

“응!”

소호는 해맑게 웃으며 단언했다.

별다른 말이 아니지만 가슴에 와 닿는다.

조서인은 항상 느끼지만 소호에게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비가 온 뒤의 햇살처럼, 자연스럽게 주변을 밝게 만든다.

“그래서 말인데, 나랑 같이 특훈하자.”

“특훈……?”

“사별 삼 일이면 괄목상대(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라지? 원래 선비는 사흘만 못 봐도 눈을 크게 뜨고 놀랄 만큼 달라져 있어야 하는 거랬어. 어, 음. 어디서 나온 말이더라? 주해야. 삼국지였나?”

주해가 대답하기 전에 지금껏 옆에서 묵묵히 서 있었던 뻐드렁니의 소년, 윤지관이 먼저 대답했다.

“삼국지! 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 노숙과의 대화에서 여몽이 한 말!”

“오오!”

소호가 박수를 쳤다.

“대단하다, 지관아. 삼국지에 대해 잘 아네?”

“내가 역사를 좋아해서. 그 정도야 뭐.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지!”

소호는 가슴을 쭉 펴며 고관대작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윤지관을 향해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같이 특훈하면 분명히 더 강해질 거야. 난 서인이가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내가……? 정말, 가능할까?”

“물론이지!”

단언하는 소호는 진심으로 한 점의 의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서인은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겪어 온 일들 때문에 본인에게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옆에서는 은위강이 다 들으라는 듯이 코웃음을 치기까지 했다.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법이다. 쓸데없는 노력은 그만둬.”

“안 되는 놈? 서인이가?”

“그래.”

소호는 고개를 갸웃했고, 은위강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아무나 특훈한다고 강해질 것 같았으면 이 세상에 고수 아닌 사람이 없겠지. 쓸데없는 노력을 하지 말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돼.”

“그런가? 하지만 그럼 무산학관이 있는 이유가 뭐야?”

“뭐? 그거……랑은 다른 이야기다.”

“재능과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공부하고 노력하면 강해질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이런 학관이 있을 필요가 없잖아? 재능이 있는 사람은 멋대로 혼자 강해질 걸?”

“누구나라고?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응.”

“학관은 나름의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뽑힌 곳이다. 저 멀리 산골짜기에서 농사나 짓던 촌부의 자식 중에 아무나 데려온 아이나 명문 무가에서 태어난 아이가 재능이 같을 것 같아?”

“그래? 달라? 나도 농촌 출신인데?”

“……뭐라고?”

조서인의 뒤에 있던 대미미와 섭주해가 “나도.”, “나도 농촌 출신.”이라며 소호를 거들었다.

“재능의 차이는……, 모르겠어. 내 눈에는 위강이 너나, 서인이나 다 똑같아 보이는걸?”

“너……!”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달라지고 강해져.”

소호는 의외로 생각이 강직했다. 은위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굳어 버렸다.

“한 번 지켜봐 봐. 특훈하고 나면 오히려 서인이한테 위강이 네가 위험해질 거야. 어때? 너도 같이 수련을 해 볼래?”

“하?”

은위강은 짙은 눈썹이 일자로 붙은 듯이 보일 만큼 미간을 찌푸리더니, 애꿎은 조서인을 한 번 노려보고는 이내 몸을 휙 돌려 버렸다.

“어린애들 장난에 어울려 줄 생각 없다. 놀려면 너희끼리 놀아.”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하고 떠나가는 은위강의 뒷모습에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두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소호는 그런 은위강의 뒷모습을 지그시 응시하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위강이는 고양이처럼 까칠하네.”

“저기, 소호야. 나는…….”

“같이 할 거지? 하자! 같이 하면 달라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야!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랄 거라고!”

호탕하게 외치는 소호의 얼굴에선 새로운 일에 설레 하는 소년의 두근거림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조서인도 똑같은 십 대 소년이다.

설렘은 마치 전염병과 같다. 순식간에 조서인의 가슴으로 전염되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버렸다.

“해, 해 볼까?”

“그래! 좋아!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가자!”

“가자고? 어? 어디를? 특훈하러?”

“그래! 바로 가자!”

소호의 행동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조서인의 팔을 붙잡더니 순식간에 달리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소년, 소녀들이 멀어진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는 대미미와 섭주해를 남기고, 소호와 조서인은 기숙사 안쪽의 연무장을 향해 달려가 버렸다.

***

“저기, 소호야. 특훈이라는 건 좋은데…….”

조서인은 목소리가 떨리는 걸 주체하지 못했다.

가슴을 두근거리던 설렘은 이제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 버렸다.

기숙사의 가장 안쪽 방.

본래라면 그들이 함부로 찾아가기엔 껄끄러운 선배들의 구역이라 그런 걸까. 평범한 소년 신입생인 조서인은 긴장이 되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기분 탓인지 몰라도 두꺼운 방문 밖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방주인의 좋은 냄새가 나는 듯했다.

“꼬, 꼭 여기에 와야 해?”

“응!”

소호에게서는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있잖아. 서인아. 주해가 그러는데, 나한테 누군가를 가르치는 재능은 없대. 뭐든지 느낌대로 말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나 뭐래나……, 으음, 난 모르겠는데 말이지. 난 되게 설명을 잘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주해가 딱 잘라서 그렇게 말하더라고.”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해도 반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조서인이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소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리로 온 거야. 백호방의 내기니까 백호방의 선배들한테 도움받는 게 당연하잖아?”

“그, 그래도 말이야. 마음의 준비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누가? 서인이 네가? 그런 게 필요해?”

“으응.”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소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일단 물어보고 생각하자.”

소호는 조서인이 말릴 틈도 없이 방문을 두드렸다. 맑은 목소리로, 마치 옆집 소꿉친구에게 같이 놀 것을 권하듯이. 한없이 가볍게.

“설지 선배! 시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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