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94화 (223/686)

4권 19화

제16장 무공의 이유(3)

“어어…….”

조서인은 굳어 버렸다.

엄청난 존재감.

눈앞에 산중대호가 서서 샛노란 눈으로 노려보는 듯한 위압감이 온몸을 짜르르 떨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니.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공포에 눈이 멀어 버린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했다. 식은땀이 뒷골에서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후우, 후우.”

황급히 소호와 백설지가 함께 만들어 준 내공연단술을 이용해 호흡했다.

짧게 몰아치는 들숨, 날숨. 이어지는 긴 날숨에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는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사내에게서 뿜어지던 존재감이 사라졌다. 툭, 하고 샛노란 경장을 입은 여인이 사내의 옆구리를 찌른 탓이다. 사내가 스스로 위압감을 갈무리한 것처럼 보였다.

“어, 음, 제 창술을 보신다고요?”

조서인은 어눌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 기수식에 이어서, 한 수. 찌르기 하나면 된다.”

“어어…… 그게…….”

“싫은가?”

“아,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사내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래서 조서인은 이 사람이 진짜로 자신의 창술을 보고 싶은 건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기연이군, 기연이야.”

가면철왕 철우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조서인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병아리 녀석아. 나중에 평생 후회할 일 하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 온 힘을 다해 성실하게 임해라.”

“병아리라니……? 어…… 네? 학관장님?”

“하긴, 너는 성실함 빼면 시체인 녀석이라지. 철표한테 듣기는 했다.”

가면철왕이 파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조서인은 사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 그럼 일단 자세만이라도…….”

조서인이 우물쭈물하며 빈손으로 자세를 잡아 보려 하니, 사내가 손바닥을 들어 올려 멈추게 만들었다. 그는 꼿꼿한 자세로 서서 의원 내부를 쭉 둘러보더니,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싸리비를 들고 와 조서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걸로 해라.”

“아, 네.”

조서인은 얼떨결에 싸리비를 받아들고 자룡구대식의 기본자세를 취했다.

‘내가 지금 싸리비를 들고 뭐하고 있는 거야?’

내면의 외침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으나 그걸 그대로 말로 내뱉을 만큼 조서인은 심성이 강인하지 못했다.

자세를 낮추고 숨을 가다듬는다.

차분하게 반개(半開)한 눈. 시선의 끝은 싸리비 손잡이, 아니, 그의 손에 들린 창끝에 집중했다.

어느새 최대한 집중한 조서인에게 그 밖의 것들은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창끝이 서서히 올라가고, 마침내 양손을 자연스레 늘어뜨린 사내와 눈이 마주친다.

그가 눈빛으로 말하는 듯했다.

―들어와라.

극도의 집중 끝에 마침내 창이 나아갈 길을 찾아냈다.

파앙!

창이 나아가고, 소리는 그 다음에 따라왔다.

딱히 뭔가를 생각하고 한 행동이 아니라 무심(無心)한 상태에서 내뻗은 공격이었다. 명로와의 대결에서 얻은 깨달음까지 모두 포함된, 아마도 조서인 인생 최고의 일격.

지이잉―.

“……!”

하지만 창끝이 고작 손가락 세 개에 잡혀 있으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법.”

짧은 한 마디의 칭찬이 조서인의 심금을 울렸다.

칭찬받았는가.

아니다, 이건 자존심이 상해야 할 일이었다.

조서인은 이를 악물었다. 소년의 치기일지도 모른다. 허나 상대가 비록 가면철왕 이상의 거물이라고 해도, 이렇게나 수준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내공을 일으켰다.

어깨 부근 천돌(天突)혈에서 손목의 내관(內關)혈까지.

한동안 양팔을 쓰지 못해도 좋았다. 혈도에 남은 모든 내공을 토해 내는 무공, 탄금공이 전력으로 발휘되었다.

투두둑―.

내공이 폭발하듯 흘러나오고, 근육이 꿈틀대며 공격하려던 그 순간, 상대방에게 붙잡힌 창이 한쪽 방향으로 휙― 돌아갔다.

“헉.”

조서인은 외마디 비명을 내뱉었다.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사내가 조서인의 어깨와 손목을 양손으로 잡는 순간 탄금공이 중단되고 들끓던 내공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던 것이다.

“재미있는 방식이지만, 다듬어지지 않았다.”

조서인은 멍하니 굳어 버렸다.

눈앞의 사내를 만난 뒤로 두 번째로 충격을 받았다.

사용하려던 무공을 강제로 진정시키고 없었던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기술이라니.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기사(奇事)였던 것이다.

“볼수록 흥미롭군. 네가 익힌 창술, 그리고 마지막의 그 무공. 누가 만든 거지?”

“그게…….”

조서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가문의 무공이긴 한데, 실전된 부분도 있고 부족한 면이 있어서…… 여기 계신 백설지 선배님과 제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이 다듬어서 완성해 주었어요.”

“……그 친구, 혹시 밝고 명랑한 성격인가?”

“네? 아, 네.”

“세상 물절을 몰라 대범하고, 그런 주제에 호기심은 많아서 여기저기에 끼어들지 않던가? 화탄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사용할 만큼 뭔가를 이룰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가?”

“……”

“아닌가?”

“조, 좋은 친구예요. 나쁘게 말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가. 실언을 했군.”

사내가 나직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왠지 기뻐 보인다고 조서인은 생각했다.

“조서인.”

사내의 눈이 조서인을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하루하루,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육체를 조금씩 만들어서 짜 맞춰 갔다.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은 드물지. 너에게 묻고 싶다. 너는 어째서 그렇게까지 무공을 익히나?”

“네?”

“네가 무공을 익히는 이유가 무엇이지?”

조서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공을 왜 익히냐니.

마치 물고기에게 왜 물에서 사냐고 묻는 것처럼, 조서인에게 있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무공은…… 제가 태어난 가문의 숙원이었고…….”

“그리고?”

“강해지고 싶어서…….”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이유는 누구든 갖고 있지만, 다들 너처럼 수련하지는 않지.”

“그런……가요?”

“한 번쯤은 생각해 봐라.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것도 중요해.”

“내가 원하는 것…….”

“소탈하지만 승부욕이 있고, 유순한 듯하나 끈기가 있다. 좋은 재질이다. 그래서 관심이 갔다.”

조서인으로서는 당황스러울 만큼 호의적인 평가였다. 사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조서인으로부터 싸리비를 넘겨받았다.

“잘 봐라. 시간이 없으니 한 번만 보여 주겠다.”

사내가 손잡이의 끝부분으로 조서인을 겨누었다. 조서인은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단지 그에게 겨눠지고 있을 뿐인데도 온몸의 신체가 활동을 멈춘 것만 같았다.

“창이란 것은 십팔반병기 중에 사거리가 가장 긴 편이다. 말하자면 거리를 제압하는 무기다. ‘무’라는 글자는 창으로 싸움을 멈춘다는 의미라지? 네게 필요한 건, 네 창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강한 무기라는 걸 믿는 것이다.”

“아……!”

“믿어라. 그리고 제압해라. 지금 당장 힘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내일은 힘을 길러 제압한다. 혈도가 단전이라면 혈도를 성장시켜라. 한 치, 아니 반 치만 빨라져도 승부는 달라진다. 매일의 단련이 중요한 이유다.”

둥그렇게, 창끝이 천천히 회전하는 모습이 눈에 아프게 박혀 들었다.

사람은 호흡을 하는 동물이라 창끝이 떨릴 만도 하건만, 마치 명필이 쓴 서체처럼 움직임에 헛됨이 조금도 없었다.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듯 조서인은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창끝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정지.

무심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창끝이 다가오고, 그 순간 훅 하고, 조서인의 정, 기, 신 전체가 사내의 창끝으로 빨려들어 갔다. 조서인의 시야가 밤하늘 별빛조차 없는 어둠에 빠진 듯 거칠게 명멸했다.

‘죽음.’

죽음을 떠올린다.

십이 세의 나이, 아직 치기 어린 나이건만 그 순간 주마등을 본 것처럼 살아온 인생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조서인은 그 순간 생각했다.

이것이 죽음이다.

방금 자신은 분명히 죽음을 맞이했다.

두근― 두근―.

명멸했던 시야가 돌아오고,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하나하나 되살아난 육체가 살아 있음을 전해 주었다. 따스한 온기, 온몸을 데우는 혈액의 소중함이 손끝까지 서서히 전해졌다. 마침내 잊고 있던 숨을 내쉬자 몸에 쌓인 탁기가 흘러나갔다.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조서인은 황급히 손으로 가슴을 붙잡았다.

“하아, 하아…….”

뭔가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저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어느새 사내는 싸리비를 한쪽에 내려놓고 맨손으로 서 있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나지막한 웃음을 흘린 뒤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떠나가는 사내.

조서인은 그 뒷모습에서 익숙한 친구의 모습을 겹쳐서 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르침을 주고 풀기 힘든 숙제를 남긴 채 훌쩍 떠나가 버린다. 사내가 창을 잡고, 앞으로 내미는 모습이 머릿속에 각인된 듯 선명하게 떠올랐다.

노란색 경장을 입은 여인이 백설지에게 다가가 뭔가를 이야기하다가 떠나갔다.

가면철왕이 심유한 눈빛으로 조서인과 백설지를 응시한 뒤 웃음을 터뜨리며 떠나갔다. 심검이니, 인연이니, 왜 그랬냐느니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리지만 조서인은 그걸 알아들을 정신이 없었다.

조서인은 그들 세 사람이 떠나간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침내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니 도대체가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옆을 보니 백설지도 충격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모양.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었다.

정상적인 건 곽공 의원뿐이다. 그는 작은 주머니쥐처럼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소호. 이게 무슨 일이니.”

어째서일까. 조서인은 절친한 친우가 간절히 보고 싶었다.

***

웬만한 마을만큼이나 커다란 무산학관 안에는 학생들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상점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문방사구와 서책을 파는 서점에서부터, 무기나 암기, 갑주를 파는 대장간, 거기에 음식을 파는 객잔과 돈을 맡기고 찾는 전장까지 있다. 손님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무산학관의 규모는 거대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관들과 학관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일꾼들, 그리고 학관을 출입하는 여러 인물들이 모두 모여 상점가를 이용하고 있으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고 북적이는 느낌이다.

소호는 오랜만에 은자촌에서처럼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 무심했어. 학관 내에는 재밌는 곳이 많은 것 같아. 저것 봐! 길가에서 당과도 팔아!”

함께 온 섭주해와 대미미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맛있겠다! 하나 사 먹자, 오라버니.”

“그럴까? 그런데 잠깐만 한 군데만 가 보고 사 먹자. 미미야, 잠깐만 기다려 줘.”

소호는 상점들을 살펴보았다.

“풍운전장? 우리 객잔 이름이랑 똑같네?”

소호는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옆에 있는 객잔 쪽으로 다가갔다. 거기서 야채를 나르고 있는 사내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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