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5화
제17장 부자유친(父子有親)(5)
철우는 씩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소호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반응을 기대하는 철우와 할 말이 없는 소호의 싸움이었다.
“어…… 그게…….”
소호의 시선이 허공을 유영했다.
“아. 그때도 객잔 주인이셨구나.”
“뭐라고?”
철우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흥분한 그는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서 옆에 내려놓았다. 밤송이 같은 수염에 퉁방울처럼 큰 눈을 더욱 치켜뜨며 화내는 모습이 영락없이 장익덕 같았다.
“대체 왜!”
“네? 왜냐고요? 그렇게 물으시면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 젠장. 그건 그렇겠지. 네 아버지는 사람들 모아서 화전촌 같은 거 만든 거 아니었냐? 그 생고생을 해 놓고 질리지도 않았나? 사람 구경도 하기 힘든 화전촌에서 객잔을 왜 해?”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소호는 자신이 그에 대해 별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버지는 손님도 별로 없는데 왜 굳이 객잔을 하신 것일까?
“나 참, 그래서? 객잔에 손님은 많이 와?”
“그냥 아는 분들이 가끔 오세요. 아버지 아는 분들이나, 마을 할아버지들 보러 온 손님들이 오곤 해요.”
“파하핫! 그래. 그렇겠지. 화전촌 객잔에 지인들 말고 손님이 올 리가 있나.”
철우는 “생각보다 고지식한 녀석이라니까…….”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호는 철우의 모습이 무산학관 학관장으로 있을 때와는 전혀 딴판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의 높낮이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이쪽이 원래 모습이겠지?’
신기한 일이었다.
사람에게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는 사실이 소호를 흥미롭게 했다.
“뭐 아무튼, 내가 네 아버지를 만난 건 처음으로 객잔을 차렸을 때야. 풍운객잔이라는 이름의 낡은 객잔이었는데, 원래 장사할 줄 모르는 사기꾼 놈이 갖고 있다가 네 아버지에게 팔았었지.”
“어? 아버지가 원래 있던 객잔을 사셨어요? 처음부터 지은 게 아니고?”
“그래. 그것도 온통 화려하고 휘황찬란하던 항주 금선로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고 허름한 객잔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그런 객잔이 어떻게 오랫동안 살아남은 거지?”
철우는 두툼한 손바닥으로 자신의 꺼칠꺼칠한 수염을 몇 번 쓰다듬었다.
“아무튼, 그 객잔을 네 아버지가 얼마를 주고 샀는지 아냐?”
“모르겠어요. 얼마를 주셨어요?”
“파하핫! 금괴 두 개. 금괴 두 개를 주고 산 거야.”
철우는 박장대소를 하며 웃다가 소호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반응이 없으니 슬그머니 웃음을 멈췄다.
“안 웃기냐?”
“어? 농담하신 거였어요?”
“아니, 그건…… 아니, 아니다. 금괴 두 개라는 게 이상하지 않아?”
“이상한 거예요? 저는 그냥 객잔 가격이 금괴 두 개 정도인가 보다 했어요.”
“……그 가격이면 비싸고 화려한 객잔도 살 수 있었어.”
“그랬구나. 그래도 아버지가 인연을 느낀 뭔가가 있었겠죠? 돈보다는 사람과 인연을 중시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철우는 퉁방울 같은 눈을 더욱 크게 뜨더니, 다시 한 번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피는 무섭군. 그 침모의 피가 섞였는데도 이 정도란 말인가.”
“네?”
“아니지. 학관의 문제인가? 세상 물정에 대해 가르치는 과목을 넣어야 하나…….”
소호는 자신이 방금 무산학관 교육 과정에 변화를 일으켰다는 걸 모른 채 고개만 갸웃거렸다.
“크흠, 말이 옆으로 샜군. 아무튼, 낡아서 다 쓰러져 가는 객잔을 말도 안 되게 비싸게 주고 산 걸 알게 된 뒤로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어. 게다가 네 아버지랑 나의 첫 만남이 꽤나 강렬했거든.”
“아버지랑 처음에 어떻게 만나셨어요?”
“내가 한 대 때렸지.”
소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요?”
“파하핫! 물론이지.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으냐?”
“그건 아닌데……. 아니, 어떻게 때리셨어요? 아버지는 절대 안 맞을 텐데! 저는 옷자락 잡는 것도 힘들었는데! 엄청 잘 피하고 막고 그러지 않아요?”
“그냥 얼굴에 정타로 맞았어. 기린의 얼굴이 옆으로 휙 돌아갔지”
철우가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가락으로 왼쪽 볼을 가리키면서 장기린이 제대로 맞았음을 보여 주었다.
“우와아―.”
소호는 선망의 눈빛으로 철우를 응시했다. 학관장과 대화한다는 긴장감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젠 동네에 아버지랑 친한 삼촌과 대화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대단해! 다시 봤어요, 학관장님.”
“파하핫! 그렇지. 다시 봐야지!”
철우는 그 커다란 손으로 소호의 어깨를 팡팡 두드려 댔다.
“너도 알지? 운찬이라는 놈 말이야. 요리 잘하는 숙수.”
“아! 운찬삼촌! 당연히 알죠. 마을에서 같이 살았는걸요?”
“아직도 그러고 있나. 그 녀석. 그 운찬이란 놈이 원래 내가 정체를 숨기고 지내던 청월루에서 같이 일했던 놈이야. 그놈이 청월루 대숙수랑 싸우고 빠져나가려다 잡혔는데, 거기서 네 아버지랑 딱 만난 거야.”
“우와!”
소호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을 밖에 나와서 처음으로 듣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운찬 삼촌과의 첫 만남 이야기라니. 이 어찌 재미없을 수가 있겠는가. 소호는 자기가 그때로 돌아가 모험을 하는 듯한 기분으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요? 학관장님이랑 운찬 삼촌이랑 아버지가 셋이 딱 마주쳤네요. 그리고요?”
“파하핫! 진정해라. 이 녀석아. 생각보다 오래된 이야기야. 정말 옛날 이야기 같구만. 그래.”
웃음 지으며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는 철우의 눈가에서 그리움이 스쳐 지나갔다.
“파락호인 척하면서 살았는데, 의외로 그때가 재밌었단 말이지……. 돈이든 명예든 진짜 아무것도 없었는데. 신기한 일이야.”
“…….”
“크흠! 알았다, 병아리 같은 녀석아. 다시 이야기할 테니 네 엄마 닮은 눈으로 그만 쳐다봐.”
소호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찬이 놈이 그냥 싸우고 나간 게 아니라 청월루 주방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 버렸어. 야채를 던지고 기름이 터지고, 그릇이 날아다니고…… 난리도 아니었지. 그 바람에 대숙수라는 놈은 피 흘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 옆에서 내 밑에 있는 파락호 놈들이 형님 혼 좀 내주시라면서 조르지, 그때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아냐?”
“운찬 삼촌 대단하네. 그렇게 성격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놈이 곧 죽어도 할 말은 하는 놈이었어. 뭐, 요즘은 안 봤으니. 어려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요즘도 다른 삼촌들한테 직설적으로 말하다가 종종 싸우거든요.”
“파하핫! 그럴 만하지. 그럴 만해.”
“운찬 삼촌 혼자 싸운 거예요?”
“그래. 근데 그게 싫지는 않았어. 솔직히 청월루에서 대숙수 그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근데 또 그렇다고 해서 명색이 청월루를 지키는 놈이, 주방을 뒤집어엎은 놈한테 아무런 벌도 안 줄 수는 없잖냐?”
“운찬 삼촌 큰일 났다.”
“그래. 큰일 났지. 내가 한 대 때려 주려는데 그때 딱 네 아버지가 나타난 거야.”
“오오!”
“나타나서 내 주먹을 막더니,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운찬이 놈한테 그러더라고. ‘너, 요리 잘 하냐?’라고. 대단했지. 그때 그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 그때 들린 목소리, 그때 불던 바람, 그때 나던 냄새까지 지금도 눈만 감으면 다 떠올릴 수 있다.”
“……!”
장기린과 강운찬의 첫 만남 때에, 장기린과 철우도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젊은 장기린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든 것들이 지금보다 젊었던 철우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게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뭐랄까. 신기해요. 좀 부끄러운 대사인 것 같기도 하고. 간질간질하긴 한데, 멋있네요.”
“파하핫! 간질간질하다니. 정확한 표현이다. 근데 그때는 나도 조금 있으니 오기가 생기더라고. 내 주먹을 막아?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개뼈다귀 같은 게? 그래서 내 주먹을 한 대 맞으면 없었던 일로 해 준다고 했지. 그러니까 네 아버지가 자기가 운찬이 놈 대신에 맞겠다고 하더라고.”
소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면철왕 철우의 일격이다.
아니, 명성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저 덩치에 근육질 몸이 전력을 다해서 때리겠다는데 그걸 그냥 맨몸으로 맞아 주겠다니. 보통 배포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잘됐다 싶었지. 파하핫!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어렸어. 지금 생각해 보면 숨어 있으면서 화가 좀 쌓였던 것 같아. 아무튼 이놈, 쓴맛 좀 봐라, 하고 작정하고 내공까지 써서 전력으로 쳤거든? 거의 뭐, 종치는 소리가 났어. 주변에서 비명 지르고, 난리 나고. 근데 와― 안 쓰러지대? 멀쩡히 선 채로 입에서 흐르는 피만 슥 닦더니 그러는 거야.”
“뭐라고?”
“제법, 주먹질 좀 하는군.”
“우와아!”
철우가 짐짓 멋있는 표정을 지으며 장기린을 따라하는 모습을 보며 소호는 환호했다.
부끄러우면서 멋지다.
소호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에 소리쳤다.
“멋지다!”
“파하핫! 그래.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놈, 대단한 놈이구나 싶더라고. 그래서 나도 질 수 없다 싶어서 눈에 힘을 주면서 노려보다가 말했지.”
철우는 신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로 돌아간 듯 방만한 자세로 팔짱을 낀 채 정면을 노려보다가, 마치 눈앞에 젊은 장기린이 있는 듯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뭐냐.”
“우와아.”
“그랬더니 건방지게 ‘서로 이름을 알 사이는 아닌 것 같소만.’ 그러는 거야. 나 참, 기가 찰 노릇이지. 안 그러냐?”
“히힛!”
“나중에 생각해 보면 네 아버지는 이름이 기린이라 말하기 쑥스러워서 그랬을 거야, 분명해. 그래서 나도 그랬지. 내 이름은 아나? 철우다. 기억해 둬라.”
철우는 부하들에게 보내 줘라, 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이야기한 뒤 자기가 말하고도 웃긴 듯 큰 소리로 웃었다.
“파하하핫!”
“히히힛!”
소호도 웃음이 터졌다.
이름이 기린이라 쑥스러워서 그랬을 거라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게 진짜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더 우스웠다.
두 사람은 큰 소리로 웃었다. 문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한참 동안 더 웃었을 것이다.
“듣자듣자 하니, 너는 부끄럽지도 않은 건가?”
소호와 철우가 웃던 얼굴 그대로 제자리에서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