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122화 (251/686)

5권 22화

제18장 무산 철공주 (7)

그런데 주변의 분위기가 살짝 달랐다.

장광과 화인지가 의욕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빛은 반짝거리고 입가에는 작게 미소까지 머금었다. 처음에 만났을 때 원망 섞인 눈빛으로 쏘아보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

소호는 속으로 의아해하면서 질문했다.

“루주님은요?”

“루주님도 바쁘셔서요. 낙양 구경은 저희가 시켜 드리지요. 이참에 소저께서 하오문의 구역도 한번 보시고요.”

홍원의 말은 이치에 타당했고, 그 무엇보다 대미미가 기대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하오문의 구역! 낙양 구경! 궁금해요. 보고 싶어요!”

“하핫, 소저는 아까와 딴판이군요. 지금이 더 좋습니다. 제가 성심성의껏 구경시켜 드리지요.”

홍원은 모두를 이끌고 의욕적으로 앞으로 나섰다.

해가 진 이후의 낙양은 생각보다 더욱 번화하고 화려한 곳이었다.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온갖 가게들이 화려하게 연등을 밝히고 있었다.

붉은색, 노란색, 흰색.

온갖 색들이 줄지어 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와아―!”

소호, 대미미, 섭주해는 은자촌에만 갇혀서 살았고, 조서인 또한 궁벽한 산골에서 창술만 연마했기에 제대로 된 대도시는 처음이었다.

소호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상기된 얼굴로 뭔가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오라버니, 오늘은 축제가 있는 날이야?”

“응? 글쎄? 잘 모르겠어, 미미야. 그치만 사람이 되게 많다.”

“맞아. 엄청 많아! 다들 밝은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어.”

환하게 웃는 소호와 대미미를 보며 홍원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아닙니다. 소저, 낙양은 늘 이래요.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닙니다. 축제가 열리거나 대시(大市)가 열릴 때는 더 굉장하지요.”

“우와……!”

홍원은 아이들이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뿌듯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신이 나서 낙양에서 가장 유명한 상점과 객잔들을 설명하고, 용문석굴에 대한 전설을 들려주었다.

그사이, 뒤쪽에 한발 빠져 있던 장광과 화인지가 서로 조용히 속삭였다.

“이거면 정말로 되겠나?”

“물론이지. 저 꼬마는 아직 순수한 아이야. 하오문이 사실 진짜로는 뭘 하는 곳인지 알게 되면…… 이곳이 싫어질 게 분명해.”

“으음…….”

“왜? 이제 와서 마음이 내키질 않는 건가?”

“아니. 나도 네 의견에 동의했다. 해 보도록 하지.”

화인지가 고개를 젓는 걸 확인한 뒤, 장광은 비뚤어진 눈빛으로 자신의 민머리를 손으로 벅벅 긁었다.

“난 세상물정 모르고 웃고 있는 저 꼬마가 싫다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이제 와서 나타난 주제에 귀여운 얼굴로 웃기만하면 끝인 줄 알아?”

“그렇긴 한데, 너는 왜 그렇게까지 걱정하는 거지?”

“공진표 지부장님이 밀려나기라도 하면 어떡해!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는 약속도 얼마 전에 겨우 받아 냈는데. 이러다 무상의 후계자 자리가 날아가면 어떻게 하냔 말이야.”

장광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순박하게 웃으면서 낙양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꼬마 숙녀를 바라봤다.

“……우리 공 지부장님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젠장, 거화신녀가 떠나고 십여 년간 지저분했던 그 뒤처리를 다 하고, 무상을 모시면서 그나마 하오문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누구였냔 말이야?”

“동감한다. 공 지부장님뿐이지.”

“그런데 이제 와서……. 거화신녀가 나타나서 백배사죄를 해도 될까 말까 한데, 딸내미만 하나 달랑 보내고. 게다가 그걸 또 무상은 이쁘다면서 어화둥둥……!”

장광은 이를 악물고 대미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보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상의 손녀를 내쫓거나 할 수도 없는 일이지…….”

“당연. 그런 짓을 하다간 네가 무상에게 맞아 죽을 것 같은데.”

“젠장, 그러니 하오문이 뭔지 솔직하게 보여 주자고. 거화신녀가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하오문에 환멸을 느끼게 해 주자는 거야.”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 일이긴 하군.”

화인지의 동의에 힘을 얻은 장광은 곧바로 홍원에게 소리쳤다.

“홍원! 여기가 우리 문(門)의 주력인 탐화루(探花樓)가 있는 곳이다! 여길 빼먹으면 안 되지!”

“뭐……?”

홍원은 당황한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화화공자라 자신을 칭했고 실제로 기루를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는 탐화루 같은 곳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기는 싫었다.

지금껏 하오문이라며 아이들에게 보여 준 곳도 객잔이나 마방 같은 건전한 장소뿐이었다.

“아니, 거기는…….”

“탐화루가 어딨어요?”

대미미가 해맑은 얼굴로 탐화루를 말하자 주변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묘한 시선이었다.

호기심도 있었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다.

“오라버니. 탐화루가 뭘까?”

“그러게? 찾을 탐(探)에 꽃 화(花)? 꽃을 찾는 곳?”

홍원은 더욱 당황하면서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니, 거기는 오늘 가기가 좀 힘들달까, 곤란하군요. 아마 소저는 오늘 거길 가도 구경하기가 힘들 거예요.”

“그래요?”

대미미가 살짝 아쉬워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장광이 외쳤다.

“아니지! 탐화루가 오늘은 분명히 문을 연다고. 내가 잘 알아!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시간 날 때 소저에게 보여 드려야지!”

“너…….”

홍원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흐음, 그래? 짱돌 님께서 탐화루를 잘 아신다?”

“그럼. 잘 알지.”

홍원과 장광의 시선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부딪쳤다.

‘무슨 생각이냐? 짱돌.’

‘닥치고 탐화루에나 데려가라, 이 화화공자 자식아.’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문 채 서로를 바라보며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무언의 대결을 펼쳤다.

그런 두 사람의 침묵을 끊은 건 지나가던 한 무리의 취객들이었다.

“야, 이 자식들아, 기분이다. 오늘은 가자! 탐화루로 가자고!”

“거기 애들이 그렇게 예쁘다면서?”

“아유, 선녀가 따로 없어, 선녀가. 일단 가자고. 어서 가.”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얼큰하게 취한 사내들이 탐화루를 언급하면서 우르르 몰려서 지나갔다.

홍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반대로 장광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들도 가는구만! 이래도 내가 틀렸다고 할 테냐, 홍원?”

“끄응.”

“정 내 말을 듣기 싫으면 소저에게 물어봐라.”

장광은 팔짱을 척, 하니 끼면서 당당하게 외쳤다.

장광은 성질머리가 급하고 단순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는 대미미가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홍원이 난감한 얼굴로 대미미를 바라봤다.

대미미는 순수하다.

그녀는 사람들이 왜 탐화루로 안 가려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라버니, 어떻게 하지? 가 볼까?”

“미미는 어떻게 하고 싶어?”

“난 가 보고 싶어!”

그저 호기심에만 휩싸인 채 대미미가 조심스레 물었다.

옆에는 소호, 섭주해, 조서인이 모두 있었지만, 아무리 또래보다 성숙한 아이들이라고 해도 그래봤자 열한 살, 열두 살의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섭주해만 조금 미심쩍은 시선으로 홍원과 장광을 번갈아 응시할 뿐,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호기심에 눈을 빛내기만 했다.

“그래? 그럼 가자!”

“응!”

대미미도 그제야 용기를 얻은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가 보고 싶어요! 안내해 주세요!”

“으음, 이것 참, 소저…….”

홍원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절대로…… 제가 보여 드리는 곳만 보시고 다른 곳은 보면 안 됩니다.”

“응! 알았어요!”

“한 가지만 더, 나중에 무상님께 오늘 가 본 곳을 이야기하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응! 그것도 알겠어요!”

대미미는 선뜻 대답했고, 홍원은 불안한 얼굴로 힐끔, 이 일의 원흉인 장광을 노려봤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장광.’

홍원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모두를 인도했다.

붉은색 연등, 사시사철 꽃잎이 흩날리는 그곳으로 말이다.

***

화려하게 장식된 방 안에 한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아무렇게나 뻗친 머리, 두 눈에선 짐승 같은 안광이 뿜어져 나온다.

입은 옷이라고는 허리에 감은 호랑이 가죽이 전부였다.

떡 벌어진 어깨에선 불룩 솟은 승모근이 꿈틀거렸고, 그가 양 주먹을 꽉 움켜쥐자 손등에서부터 시작된 힘줄이 팔꿈치까지 치솟는다.

그는 태산의 ‘젊은 호랑이’라고 불린다.

이름은 정호(定虎).

녹림마왕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진 뒤에 태산박의 우두머리라고 하면 이 청년, 정호를 의미했다.

정호의 눈앞에는 기름진 음식과 맛있는 술, 그리고 아름다운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그중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다.

그때 밖에서 한 사내가 뛰어 들어오면서 방 안의 분위기가 변했다.

“두목.”

“왔나.”

정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섰다.

수하를 노려보는 눈이 매섭다 못해 살기마저 흐른다. 수하는 포권을 취하며 인사한 뒤,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보고했다.

“그놈들이 왔습니다. 공진표의 수하들입니다. 웬 꼬마들을 몇 명 데리고 같이 왔는데……. 어찌할까요?”

공진표라는 이름이 나오자 춤을 추던 무희와, 자리에 앉아 술을 따르던 기녀들의 안색이 변했다.

여인들이 황급히 일어서려 하는 것을 정호가 손짓으로 말렸다.

“지금부터 밖으로 나가는 계집은 목을 벨 것이다.”

“……!”

여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범상치 않은 외모, 냉랭한 목소리에서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우린 물러설 곳이 없다. 소림이 답을 주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 찾을 수밖에.”

정호는 같이 자리에 착석해 있던 십여 명의 사내들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가라. 가서 모조리 잡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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