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23화
제18장 무산 철공주 (8)
“응?”
소호는 귀를 쫑긋거리면서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탐화루로 가는 길은 낙양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가야만 했다.
주변엔 노점상들이 여러 가지 맛있는 꼬치나 볶음밥[炒飯]을 팔고 있어서 사람들이 많았다.
앞뒤, 양옆에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그들은 열기를 띄면서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했고, 소호와 아이들, 그리고 홍원을 비롯한 삼인방은 그들에게 그저 생판 모르는 남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소호는 누가 목 뒤를 가느다란 실로 간지럽히는 것처럼 자꾸만 뒤쪽이 신경 쓰였다.
“이상하네…….”
“소호 형, 무슨 일 있나요?”
“아냐, 주해야. 그냥,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요?”
섭주해는 태연한 얼굴로 힐끔 뒤를 쳐다봤다.
“적의도 느껴지나요?”
“그건 아닌……데!”
휙―.
소호가 재빨리 우측 후방을 향해 몸을 돌렸다.
술래잡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몰려서 돌아다니는 공간, 한 사람의 그림자가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으음, 약간 통통했어.”
“응? 무슨 일이야!”
옆에서 가만히 있던 조서인이 덩달아 깜짝 놀랐는지 소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목을 쭉 빼고 여기저길 살펴봤다.
둥지에 있는 아기 새 같은 친구였다.
“아냐. 뭐, 괜찮겠지?”
소호는 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적의는 없었기에 일단은 관심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홍원이 좌측의 골목으로 들어가는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선선한 밤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향긋한 분첩 냄새, 이 층 누각에 길게 걸려 있는 홍등의 행렬은 시선이 닿는 곳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은은한 홍등의 빛이 골목길 전체에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어디선가 술을 쏟은 듯 특유의 달큼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 느낌, 그 냄새, 그 분위기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구석이 있었다.
소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화장이 진한 여성들이 거리에 많았다. 남성들은 다들 술에 취해 있었다. 다들 기분이 좋은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곁에 있는 누군가와 큰 소리로 웃어 대곤 했다.
“와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소호는 물론이고 대미미, 섭주해, 조서인이 모두 압도되어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홍원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이라도 마음이 바뀌었다면 돌아가도 좋은데?”
장광이 뒤에서 “커험!” 하고 불편한 헛기침을 해 댔지만 홍원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대미미에게로만 향해 있었다.
“홍등이 이뻐요. 신기해요! 안쪽도 보고 싶어요!”
“……그런가.”
홍원은 난감한 듯 웃으면서 골목길 제일 앞쪽의 가장 큰 건물로 다가갔다.
“이곳이 탐화루입니다. 미미 소저. 우리 문(門)에서 제일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이지요. 돈을 많이 벌거든요.”
“와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홍원은 탐화루의 문지기랑 잘 아는 듯 보였다.
탐화루의 입구를 지키던 거구의 사내 두 사람이 홍원을 알아보곤 다급하게 달려나왔다.
“뭔가 신기하다. 그치?”
“맞아, 오라버니. 여기가 할아버지가 관리하는 곳이라니.”
대미미는 원래 분홍색과 붉은색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건물 앞의 홍등이 마음에 든 듯 소녀는 홍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뭐라고!”
그런데 뭔가 잘못된 것일까?
스스로 화화공자라고 소개할 만큼 늘 싱글싱글 웃던 홍원이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문지기에게 몇 가지를 더 물어본 뒤, 빠른 걸음으로 아이들에게로 돌아왔다.
“미미 소저, 미안합니다. 오늘 구경은 힘들 것 같군요. 탐화루에 안 좋은 손님이 찾아왔다네요.”
“안 좋은 손님이요?”
“네. 제가 다음번엔 꼭 제대로 구경시켜 드리지요. 일단은 지부로 돌아가셔서 무상과 함께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홍원의 기색이 심상치 않으니 뒤쪽에 물러나 있던 장광과 화인지도 다급하게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안 좋은 손님이라니?”
홍원은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막았다.
“손님들을 모시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 실수했어.”
“아, 글쎄, 무슨 일이냐니까!”
성질 급한 장광이 버럭 소리친다.
홍원은 엄중한 눈빛으로 장광을 노려봤다.
“장난칠 때가 아니다. 장광.”
“……!”
“소림이 코앞에 있거늘. 그놈들이 이렇게까지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다. 우리가 착각했어.”
장광도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딘데?”
“태산.”
장광도 얼굴이 굳어졌다.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아이들.
그사이, 소호가 주변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저기, 아저씨들.”
“무슨 일이지요, 공자? 지금은 대화를 나누기보단…….”
“포위된 것 같아요. 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
홍원의 두 눈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불신이다.
하지만 곧이어 곁에 있던 화인지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품 안에서 손바닥만 한 단검 두 개를 꺼내 들었다.
“당했다……!”
삼인방 중에 가장 감이 좋은 화인지마저 그러니 안 믿고 버틸 수가 없는 일이다.
홍원은 깜짝 놀라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고, 골목 끝에서 짐승 가죽을 옷처럼 둘러 입고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오는 사내들을 발견했다.
사내들은 그들 일행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험상궂은 얼굴, 뭔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다가오는 사내들에게서 백전을 연마한 경험이 느껴졌다.
“퇴로는……!”
곧바로 도주를 생각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주변의 샛길을 보았지만 그곳에서도 짐승가죽이 보였다.
홍원은 감탄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낙양 땅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지리는 또 어떻게 이렇게 잘 익혔단 말인가.
“세상에.”
또 하나 놀라운 점이 있다.
홍원은 경의와 경외를 가득 담아 소호를 바라봤다.
“공자는 대체……?”
살수 출신의 화인지는 그 누구보다 적의에 민감한 사내였다.
그런데 그런 화인지보다도 먼저 포위된 것을 알아차린 꼬마아이. 그걸 보고도 놀랍지 않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준비들 해.”
“큭.”
스릉―.
홍원이 허리춤의 요대에서 낭창한 연검을 반쯤 뽑아 들고, 장광은 재빨리 두 주먹에 쇠징이 박힌 수투를 착용했다.
세 사람은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품(品)자 형태로 주변을 둘러쌌다.
어느새 급변한 분위기.
짐승 가죽을 입은 사내들 십여명이 벽처럼 그들을 둘러쌌다.
“그만두지 그래?”
뭔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다가온 자. 주변의 모두가 그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당신은……!”
홍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건장한 체격에 눈 옆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두껍게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나이는 불혹을 넘기고도 남아 보였다. 잿빛의 늑대 가죽을 두르고 있었는데 주변의 다른 자들에 비해 모피가 고급스럽게 빛나 보였다.
머리는 대머리. 턱과 구레나룻, 코밑을 모두 덥수룩하게 덮은 수염도 회색이다.
특히 허리춤에 삼 척짜리 도(刀)를 차고 있었는데 손잡이에 늑대의 머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당신은……!”
하오문은 정보를 취합하고 그걸로 먹고사는 집단이다.
이렇게나 특징이 뚜렷한데 알아보지 못한다면 하오문 간부로서 자격이 없었다.
“태산삼걸(泰山三傑)의 회랑(灰狼), 양종대……!”
홍원은 절망감을 가득 담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회색 늑대, 양종대.
태산박의 이인자.
산동(山東)에서는 태산박의 회색 늑대가 나타났다고 하면 지방 현령도 봇짐을 싸고 도망치게 만들 만큼 무서운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수염을 매만지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눈에 알아보는 건가? 역시 하오문 놈들. 정보가 빨라.”
“낙양 한복판에서 그런 몰골이라니. 못 알아보기가 더 어렵지 않겠소?”
“그런가? 안 그래도 낙양에선 사내놈들이 계집마냥 번쩍거리는 비단만 입고 있어서 거슬리긴 하던데.”
양종대가 주변을 노려보자, 비단 옷을 입고 기루에 놀러왔던 사내들이 화들짝 놀라며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쳤다.
“하오문의 화화공자야. 식견은 좋은 것 같은데……. 너는 버릇은 없구나. 어르신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다니, 죽고 싶은 게냐?”
양종대가 씹고 있던 것을 바닥에 내뱉었다.
홍원은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몸통이 사라진 뱀의 머리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 머리가 자신의 것 같아 홍원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르신이라니. 제가 알기로 태산박의 부두목은 아직 젊다고 들었소.”
“파하핫! 그건 그렇지. 아직 한창 때라 자부한다. 그렇지만 무림강호는 강자존이 아니겠느냐. 강한 자가 어른 대우를 받아야지.”
주변의 태산박 사내들이 한 걸음 다가오고, 삼인방은 화들짝 놀라며 곧 이어질 전투를 대비했다.
그런데 양종대가 손을 들어 올려 그들을 말렸다.
“그만둬라. 우리야 여기서 네놈들 다 죽이고 떠나 버리면 그뿐이지만, 너희는 여기서 계속 장사해야 할 것 아니냐?”
“……무슨 뜻이오?”
“이야기나 하자는 거지. 두목님이 부르신다.”
홍원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두목님이라면 젊은 호랑이, 정호로군. 녹림마왕의 후계자. 문제는 대미미 소저다. 아이들만이라도 보내야……!’
그는 활로를 찾은 것만 같았다.
“협상을 하시겠다는 거군.”
“인질극이 될지, 협상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무시한 말을 한 양종대는 고개만 까딱거리면서 탐화루를 가리켰다.
“무기 집어넣어라. 아니면 여기서 개 패듯이 패고 질질 끌고 들어갈까?”
“…….”
홍원은 장광과 화인지를 힐끔 쳐다봤다.
두 사람의 목 뒤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아이들은…….”
“안 돼.”
양종대가 늑대처럼 송곳니를 내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좋은 인질을 왜 내버리나? 다 같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