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2화
제18장 무산 철공주 (12)
“공격?”
대미미는 태산박 사내들의 숫자를 세어 보았다.
정확히 열다섯 명.
정호와 양종대를 빼더라도 열세 명이었다.
“이쪽은 여섯 명이니까……. 한 사람당 두 명씩은 맡아야 하는 걸?”
“히힛, 다 쓰러뜨리려면 그렇겠지?”
“응?”
대미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소호는 참신한 생각을 떠올리면 웃는 버릇이 있었다.
“그럼 다 쓰러뜨리는 게 아냐?”
“중요한 건 두목이 운기조식을 못하게 하는 거잖아?”
“응. 맞아.”
“예전에 섭우생 삼촌이 나한테 해 줬던 말이 있어. 숫자에서 밀릴 때는 상대가 가장 싫어하는 일만 하고 도망치래.”
“어?”
대미미는 옆에 서있는 섭주해를 바라봤다.
항상 안색이 창백하고 조용한 성품의 소년.
섭주해가 아버지의 이름을 듣고 반색하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쪽의 전력을 보존하면서, 상대편의 기동력을 묶고 목적을 방해한다는 거군요.”
섭주해가 탁월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미미와 조서인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니까 말야.”
소호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들의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주안상을 손으로 툭 쳤다.
정호가 음식을 짓밟으면서 뛰어다녔던 그 주안상이었다.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이 밥상, 쓸데없이 큰 데다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서 무거워 보이더라고. 이런 곳이 아니면 손님맞이할 때 못 쓸 것 같아. 문양이 많아서 닦는 것도 귀찮을 것 같고…….”
“역시 객잔의 아들……!”
조서인의 뜬금없는 감탄에 소호는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미미야, 알겠지?”
“응! 이제 알겠어.”
“정말?”
“응. 탁자가 필요 없다는 거지?”
대미미는 재빨리 다가가 오석 탁자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
양종대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빨리 공격해! 요괴가 공격한다!”
“우오옷!”
태산박 사내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으나, 이미 탁자를 붙잡고 있던 대미미의 행동이 한 박자 빨랐다.
“이얍!”
대미미는 오석 탁자를 번쩍 들어 올린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정호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던졌다.
후웅―.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오석 탁자가 허공을 날았다.
“막앗!”
양종대의 외침은 허무하게 흩어졌다.
온갖 요리들이 담겨 있던 접시들이 와장창 깨지면서 사방으로 비산하고, 정면에서 달려들던 사내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팔보채, 회과육, 녹두활어.
온갖 요리들이 사내들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빠아악―.
“으……아악―!”
두 명이 나동그라지고, 두 명이 몸으로 막았다.
그럼에도 기세가 그치지 않아 옆에 있던 사내들도 달려와 온몸으로 탁자를 막았다.
“으그그!”
사내들이 죽는 소리를 내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탁자는 너무나 컸다.
모두가 무공을 익혔음에도 다섯 명이 달라붙으니 그제야 탁자가 제자리에 멈춰선 것이다.
“믿을 수가 없군. 백 관은 넘어 보이는 탁자를…….!”
양종대의 목소리엔 불신이 가득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의 몸무게가 스무 관 언저리에 불과하거늘. 백 관이 넘어 보이는 석재 탁자를 가볍게 내던지는 소녀를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진짜 요괴인가……?’
양종대는 차라리 정호가 아무렇게나 내던진 요괴라는 말이 진실이길 바랬다.
이런 괴이한 힘을 지닌 소녀가 사실은 무인이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을 뿐이라면?
믿고 싶지 않다.
태산박과 적대하는 일대 여걸의 탄생이다.
“잠깐, 아직 방심하지 마라!”
그래도 막긴 막았나 싶어 마음을 놓으려는 그 순간, 멈췄던 탁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드드―.
“미, 민다. 반대쪽에서 요괴가 민다!”
“막아! 다 달라붙어!”
“으갸아아악!”
소년들을 덮친 네 명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명의 사내들이 모두 칼을 내던지고 탁자에 달라붙었다.
그럼에도 탁자는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양종대는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정호가 가부좌를 튼 채 크게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얼굴에선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지켜야 한다. 혈수라라도 나타나면 막을 수 있는 건 두목뿐이다. 그런데…… 대체 이걸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이냐?’
양종대는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는 돌 탁자가 점점 밀려오는 모습에서, 성벽이 점점 밀려오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벤다.’
눈을 번뜩이며 자세를 낮추는 양종대.
그가 멋들어진 자세로 칼을 뽑아 정면을 겨누었다.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손이 닿을 거리.
호도팔법 팔 성에 이른 그의 성취라면 오석 정도는 베어 낼 수 있었다.
끼이익―.
바닥이 삐꺽거리는 불안한 소음과 함께, 마침내 탁자의 진격이 멈춰 섰다.
“끄으응……!”
진격은 멈췄으나, 탁자에 달라붙어 용을 쓰고 있던 사내들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얼굴이 시뻘개진 채 혹여나 두목 쪽으로 탁자가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버텨 냈나?”
양종대가 칼끝을 내렸다.
잠시 기다려 봤으나 탁자가 움직이는 모습은 없었다.
‘그렇다면 공격이다.’
“이제 탁자를 밀……!”
바로 그 순간.
휘리릭―.
“……!”
성인 남자의 키보다도 높은 탁자 위를, 해맑게 웃는 한 소년이 독수리처럼 날아올랐다.
펄럭이는 옷자락.
평범해 보이는 무복 사이로, 연노랑빛 작은 주머니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띈다.
“이 무슨……!”
양종대가 놀란 것은 소년의 어려 보이는 외모도, 두려움을 모르는 듯 환하게 웃고 있는 표정도 아니었다.
무공.
탁자 위를 새처럼 훨훨 넘어가는 신법.
바닥에 내려서는 것과 동시에 탁자를 밀고 있던 태산박 사내의 허리에서 칼을 뽑아 드는 자연스러운 동작.
뽑아낸 칼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자연스럽게 다루면서, 곧바로 양종대 자신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눈썰미까지.
그 모든 것들이 물 흐르듯 이어지며 단 한 점의 군더더기도 없었다.
“하…….”
그리고 마침내, 호도팔법의 기수식을 취하고 있는 양종대의 앞에, 녹림마왕이 다시 살아나서 본다 해도 웃음을 터뜨릴 만큼 똑같은 기수식을 취하고 있는 소년이 서 있다.
“소름이 돋는군……!”
양종대는 마른침을 삼켰다.
기이한 것을 보는 듯 소년의 모습이 두려웠다.
“히힛, 아저씨는 내가 상대할 거예요.”
양종대는 생각했다.
장난스레 웃는 꼬마 소년의 얼굴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
“으음…….!”
더 이상 힘을 주는 것을 멈춘 대미미는 양손으로 탁자를 받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조서인과 공 지부장의 심복 삼인방이 공격해 온 태산박 사내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이야압!”
그중 누구보다 눈에 띄는 사람을 고르라면 단연 조서인이다.
어디서 찾아냈는지, 싸리비에서 뽑아낸 것 같은 빈약한 대나무 막대를 창처럼 휘두르고 있었는데, 놀라운 실력으로 태산박 사내 한 명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꼬마 자식이 촐랑촐랑……!”
태산박 사내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바늘로 찌르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소호가 조서인에게 부탁한 것은 ‘시간 끌기’였다.
조서인은 태산박 사내가 다가오려 하면 한 발 물러서며 창으로 찔렀고, 뒤로 물러나면 폭풍처럼 공격해 더욱 물러나게 만들며 거리를 유지했다.
무리해서 승부를 보거나 쓰러뜨리려 하지 말고 잘 막아 낼 것.
그게 소호가 조서인과 삼인방에게 부탁한 일이었던 것이다.
“한 명! 놓쳤다!”
그 때 삼인방 쪽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홍원이 뭔가에 걸려 넘어져 있었고, 장광과 화인지가 각각 한 명씩 상대를 맡아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들개 가죽 같은 걸 몸에 두른 사나운 인상의 남자였다.
그가 어깻죽지에 자상(刺傷)을 입은 채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광기 어린 눈빛, 사나운 칼날이 순식간에 대미미에게로 다가온다.
“요괴를 내가 벤다!”
쩍 벌린 입에서 침이 튀어 오른다.
대미미는 언제든 탁자에서 잠시 손을 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위험!”
그때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손바닥만 한 단검 하나가 날아와 남자가 들고 있던 칼날을 옆에서 후려쳤다.
따아앙―!
“뭣?”
단검의 움직임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칼날을 후려치자마자 허공에서 비스듬하게 반회전하더니, 이번엔 남자의 어깨를 푹, 하고 찌르려 들었다.
남자가 재빠른 손놀림으로 단검을 잡아챘다.
우우웅―.
단검이 분하다는 듯이 부르르 떨렸다.
“어검술……?”
남자가 놀라서 눈을 부릅뜨는 순간, 이번엔 그가 휘두르려던 칼이 빙글 회전해 주인의 목을 겨누었다.
“이게 무슨……!”
들개 같은 사내의 눈에 불신이 가득했다.
대미미는 반가운 마음에 옆을 돌아보았다.
창백한 인상의 소년.
섭주해가 봉인을 해방하고, 눈에서 푸른빛 귀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다행이다. 막았어, 미미야.”
“응, 고마워.”
대미미는 한쪽 손으로 미는 것에 집중한 채, 다른 한쪽 손을 재빨리 뻗어 들개 같은 사내의 허리띠를 붙잡았다.
“어?”
휙, 하고 당겼다가 전력으로 던졌다.
“끼어어어!”
기묘한 비명 소리와 함께 날아간 사내는, 장광과 화인지가 상대하던 태산박 남자들과 부딪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뻑, 하고 위험한 소리가 났다.
“오오오!”
“꺄아! 대단해!”
지켜보던 기녀들이 탄성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대미미는 잘 던져진 걸 확인한 후, 재빨리 다시 탁자에 양손을 붙였다.
멀찍이서 열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저! 누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처음에 대미미에게 까칠하게 굴었던 장광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대미미는 단호한 마음을 담아 답해 주었다.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