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5화
제18장 무산 철공주 (15)
“어딜!”
양종대는 소호로부터 단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소호의 움직임에 맞춰 도첨(刀尖)이 이동했다.
그뿐인가.
소호와 정호의 사이로 몸을 움직여 모든 경로를 차단했다.
“아저씨. 만만치 않으시네요.”
소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접시 하나를 발끝으로 툭 하고 차올렸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접시를 잡아 곧바로 양종대를 향해 내던졌다.
“음?”
가소롭다는 듯이 칼로 접시를 쳐 내려던 양종대가 의아한 듯 눈썹을 찌푸리며 칼끝을 내렸다.
접시는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양종대의 머리를 훌쩍 넘어 위로 날아간 것이다.
“주해야! 토끼 사냥!”
소호가 외친 말을 알아들은 것은 장내에 단 두 명뿐이었다.
그중 한 사람.
섭주해의 두 눈에서 귀광이 번뜩였다.
소맷자락에 감춰져 있던 단검이 마치 뱀처럼 빠끔히 머리를 내밀었다.
주해가 손가락 두 개를 모은 검결지로 허공을 가리켰다.
치솟는 검광.
새파랗게 빛나는 단검이 일직선으로 나아가 허공에 뜬 접시를 관통했다.
쩡!
“비도술……!”
양종대는 눈살을 찌푸리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접시의 파편은 칼날처럼 날카롭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접시가 깨지면서 생기는 작은 부스러기다.
예쁘게 반짝거리지만, 몸에 달라붙으면 상처를 만드니 작은 암기나 다름없다.
만약 지금 같은 시점에 눈에라도 들어간다면 커다란 실책을 범하게 될 터였다.
양종대는 넓은 소맷자락으로 머리 위를 가린 채 칼날을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휘둘러 떨어지는 파편들 중에 큰 것만을 쳐 냈다.
자그마한 가루들이 머리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양종대는 소호와, 비도술을 날린 섭주해를 노려보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베겠다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는 도첨의 기세가 살벌했다.
“뭐냐……?”
그러다가 소호의 얼굴을 본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소호는 빙긋 웃고 있었다.
싸움 경험이 많은 그는 소호가 아직 뭔가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지금!”
소호는 양손이 바닥에 붙기라도 한 것처럼 낮은 자세로 돌진했다.
양종대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소호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양종대의 낯빛이 변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고민하던 양종대가 마음을 정한 듯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칼을 들어 올리는 자세에서 살기가 가득 느껴졌다.
호도팔법의 일격.
도신을 타고 불꽃같은 기운이 날카롭게 뿜어졌다.
“걸렸어요.”
소호가 방긋 웃는 것과 동시에 머리 위에서 바람이 갈라지는 듯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쒸이이익―.
“……!”
소호는 위로 뛰어올랐다.
본래대로라면 칼에 베일 경로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소호는 알 수 있었다.
곧 검귀(劍鬼)의 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마치 천벌처럼.
푸욱.
“큭.”
허공에서 일직선으로 내리꽂힌 단검이 양종대의 왼쪽 어깨에 파고들었다.
섭주해의 검결지가 어느새 바닥을 향해 있었다.
살가죽이 꿰뚫리는 소리.
양종대의 입에서 울컥 새어 나온 신음.
두 가지 소음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내리치던 칼끝이 왼쪽으로 휘청거리고, 그 틈을 파고들며 소호의 몸이 허공에서 반회전했다.
몸이 빙글 돌아갔다.
다리 끝에 한껏 실린 힘이, 원앙각 일퇴로 양종대의 턱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뻑!
양종대로서는 검으로 내리치려던 자신의 힘을 턱으로 고스란히 받은 셈이 되고 말았다.
양종대는 고개를 흔들며 휘청거리다가 왼쪽 무릎을 바닥에 꿇으며 주저앉았다.
소호는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칼을 공수탈백인(空手奪白刃)의 수법으로 손목을 비틀며 빼앗았다.
뒤에서 달려온 대미미가 양종대의 양 팔목을 등 뒤에서 붙잡았다.
흰자위밖에 없었던 양종대의 눈이 천천히 다시 초점을 되찾았다.
“흡……!”
그가 화들짝 놀라면서 완전히 정신을 되찾았을 때, 소호의 칼은 이미 양종대의 목 아래에 겨눠져 있었다.
스릉―.
“하!”
양종대는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꿈틀거리려다가 어깨 너머로 대미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포기한 채 양팔에서 힘을 뺐다.
“너희…… 무산학관인가, 거기. 정파 아니던가?”
소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맞아요. 그런데요?”
“이런 짓…… 기습에 협공에……. 정파 놈들이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거냐.”
양종대는 분노하면서도 허탈해 보였다.
소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배시시 웃었다.
“진구 삼촌이 그랬어요. 불리할 때는 일단 수단을 가리지 말고 싸우라고. 지고 나면 정의는 소용없다고 그러더라고요.”
“파핫!”
양종대는 창백한 안색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진구 삼촌이 뭐하는 놈인지 내가 알게 뭐냐……. 어이가 없군. 네놈들은 정파도 아니…… 큭?”
양종대의 어깨에 박혀 있던 단검이 스스로 뽑혀져 나와 섭주해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울컥 뿜어지는 핏물.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양종대는 이를 악물고 단검이 날아가는 방향을 노려보았다.
섭주해는 묵묵히 자신의 품에서 꺼낸 천으로 단검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어검술……!”
“태산박의 부두목은, 말을 좀 더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린놈의 새끼가…… 큭.”
고통이 심한 걸까. 양종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뿜어지던 핏물도 기세가 약해졌다.
“미미야. 괜찮아.”
“응.”
대미미가 오른쪽 손목을 놓아주었다.
양종대는 자유로워진 한쪽 팔로 왼쪽 어깨의 상처를 눌러 뿜어지는 피를 틀어막았다.
양종대가 이를 악물면서 고통을 참아 냈다.
“너희는 뭐냐……! 대체 뭐냔 말이야.”
“그냥 아이들이에요. 평범한 화전촌 마을의 아이들.”
소호는 대충 대답해 주면서 주변의 전황을 살폈다.
긴 나무 막대를 휘두르며 싸우는 조서인, 각각 한 명의 산적을 붙잡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홍원과 장광.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미미를 중심에 둔 채 주변을 둘러싸고 철벽같은 기세로 공격을 막아 내는 십걸들.
싸움은 점점 더 격해지고 있었다.
태산박의 산적들은 사나웠지만, 무산학관에서 매일같이 수련하는 십걸들의 수비도 상상이상으로 단단했다.
산적들은 방패와 철퇴를 휘둘렀고, 십걸들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권법으로 상대를 밀어냈다.
싸움은 교착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한 사람.
살수 출신인 화인지가 태산박의 두목, 정호의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가는 것을 소호는 찾아냈다.
“앗……!”
소호가 경호성을 내는 것과 동시에 화인지가 바람처럼 달려들었다.
모두의 신경이 다른 곳에 쏠려 있는 사이.
화인지는 단검으로 운기조식 중인 정호의 등을 꿰뚫으려 했다.
“안 돼……!”
하지만 소호의 입에서 나온 건 응원이 아니라 정반대의 말이었다.
정면에 있던 소호는 보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길게 숨을 내뱉은 정호가 눈을 번쩍 뜨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 빛나던 세 개의 고리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가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짓는 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찰나에 불과했다.
정호가 자신의 앞에 놓인 칼을 재빨리 붙잡았다.
튕기듯이 일어나 내딛는 발걸음.
자연스레 몸을 회전시키며 칼을 내리긋는 동작이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푸화악―.
“컥……!”
단검으로 찌르려던 화인지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허름한 무복이 찢어지며, 쩍 갈라진 가슴으로 피를 내뿜었다.
“인지!”
저 멀리, 산적 두 명을 상대하느라 묶여 있던 홍원과 장광이 절규했다.
화인지는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뒤로 무너졌다.
뿜어진 피를 정면에서 뒤집어쓴 자.
태산박의 두목, 정호가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며 소리쳤다.
“부두모옥―!”
젊은 호랑이의 포효에 과격한 광기가 담겼다.
“이게 무슨 꼴이냐. 다 망쳤잖아! 혈수라를 잡으려던 놈들이 지금 나와 있으면 어떡하냐고!”
소호의 칼에 목이 겨눠져 있던 부두목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괘, 괜찮다, 두목. 아직 괜찮아. 두목이 이놈들 다 베어 버리고, 혈수라가 오면……!”
“그러니까 틀렸다고.”
정호의 칼끝이 대미미를 향했다.
막강한 살기가 단 한 사람을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칼이 가리키는 끝에 선 소녀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엿차.”
소호가 아지랑이 같은 움직임으로 대미미와 정호의 사이를 막아섰다.
단호한 표정으로, 절대로 못 보낸다는 심정을 담아 정호를 마주 노려보았다.
“흥.”
정호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 친 뒤 칼끝을 옆으로 돌렸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곳.
어스름한 불빛만 들어오는 창문을 향해 칼을 겨눴다.
“그러니까. 늦었단 말이다, 부두목.”
정호의 그 말을 모두가 이해한 것은, 그 뒤로 숫자로 열 정도를 세었을 때였다.
막강한 기파.
거대한 존재감이 창문을 통해 맹수처럼 뛰어 들어왔다.
콰직.
커다란 손이 붙잡은 창틀이 부서지면서 벽면 전체에 커다랗게 금이 갔다.
“이노옴―!”
창문을 통해 나타난 자.
혈수라 연사독이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