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7화
제19장 균자난청(菌子難淸) (1)
청소라는 것은 생각보다 심오한 일이다.
얼핏 간단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듯이 보이지만 작업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가 천지 차이로 벌어진다. 그뿐인가? 먼지를 쓸고 묵은 때를 닦아 내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자기 수양의 한 갈래 같으며,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대상의 깨끗해진 모습은 반로환동(返老還童)하여 노인이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모습을 보는 듯한 뿌듯한 감회를 느끼게 한다.
“……라고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셨었어.”
“진짜? 청소가 반로환동이라고 하셨어?”
“응!”
소호는 아버지가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사흘에 한 번씩 처마 밑의 작은 먼지까지 다 털어내야 했던 과거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조서인이 살짝 의심하는 듯 보여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역시 객잔의 아들……!”
“히힛, 전에도 그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가까이에서 보니 너는 참, 첫인상과 다른 친구야, 소호야.”
소호와 조서인은 서로 시선이 마주 치자 웃음을 터뜨렸다.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 와중임에도 친구와 함께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 넓은 곳을 어떻게 다 청소하지? 진짜 우리끼리 여길 다 청소할 수 있을까……?”
“하긴, 조금 넓긴 해.”
“조금이 아냐, 조금이. 이만하면 예전의 우리 집보다도 크다고.”
조서인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소호는 눈앞에 펼쳐진 그들의 ‘벌칙’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본래는 깨끗하고 윤기가 흘렀을 나무 재질의 주방이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뭔가가 잔뜩 튀고 묻어서 얼룩진 벽, 누렇다 못해 시커멓게 때가 찌든 바닥.
주방을 옮길 때 급하게 움직였는지 부서진 나무 상자나 깨진 집기류도 꽤나 많이 널브러져 있었다.
물이끼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축축한 동굴 안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서인아, 여기가 서(西)편 주방이지?”
“으응. 그렇다고 듣긴 했는데…….”
“신기해. 동(東)편 주방으로 옮긴 지 일이 년밖에 안 됐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벌칙을 줄 때 철표 교관님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어.”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이렇게나 폐허가 될 수 있는 거야……?”
생각 이상으로 지저분한 광경에 당황한 탓일까.
소호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게 사람뿐이 아님을 잠시 잊고 있었다.
타다닥―.
소호는 귀가 좋은 편이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건만.
솔잎으로 돌바닥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니 본능적으로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새카맣고 번들거리는 벌레 한마리가 주방 구석 벽면에 붙어 은신하고 있는 모습이 눈동자에 박혀 들었다.
가시가 달린 가느다란 다리가 세 쌍. 역삼각형의 조그마한 머리는 끊임없이 주둥이를 여닫는다.
길고 가느다란 더듬이가 인사를 하듯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턱, 하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소호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소호는 알 수 있었다.
그놈과 시선이 마주쳤고, 그놈은 소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대치 상황을 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옆에서 날아온 가죽신 하나가 쩍! 하는 소리를 내며 벌레를 정면으로 때렸다.
“응? 왜 그래? 소호야?”
토끼뜀을 뛰듯 한 발로 깡충깡충 뛰어간 조서인이 손가락 세 개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벌레를 집어 들었다.
찌그러진 더듬이와 구겨진 다리가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조서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한 번 쓱 바라보더니.
콰직―.
“……!”
양손을 마주쳐서 뭉개 버렸다.
“왜 그래, 소호야?”
조서인은 굳어 있는 소호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벌레를 무서워해?”
“서인이 너, 대단해…….”
“내가?”
조서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대로 태연한 얼굴로 창밖으로 벌레를 던져 버리고는 먼지를 털 듯 손을 툭툭 털었다.
“와아…….”
소호는 단언컨대 살면서 이렇게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오늘처럼 큰 차이를 느껴 본 적은 없었어…….”
“응? 너희 마을에도 벌레는 있었잖아? 어릴 땐 다 벌레 잡으면서 놀고 그러는 거 아냐?”
“벌레랑도 잘 놀았지.”
“그치? 그런데?”
소호는 이를 악물고 부르르 떨었다.
“애벌레도 잡을 줄 알고, 잠자리 잡으면서 놀기도 했고, 메뚜기도 구워 먹어 봤고……. 근데, 걔만큼은 안 돼…….”
“바퀴벌레?”
“이상하게 싫어. 본능적으로 그냥 싫어.”
소호가 이 세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싫어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핫! 신기하네. 소호, 네가 싫어하는 것도 있구나?”
“쳐다도 보기 싫어.”
“신기하다. 우리 마을에서는 열이 나고 아프면 바퀴벌레랑 마늘을 같이 먹었는데.”
“……!”
소호는 예전에 철추에 얻어맞았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느꼈다.
“뭘…… 먹는다고?”
“응? 바퀴벌레랑 마늘.”
“…….”
“그거 먹으면 아프던 몸이 귀신같이 싹 다 나았던…… 어? 왜 그래, 소호야? 잠깐만, 왜 한 발짝씩 멀어지는 거야?”
“응? 내가?”
“지금도 도망치잖아!”
“아냐. 무슨 소릴 하는 거니? 서인아, 난 도망치지 않아.”
“멀어지고 있는데?”
소호는 조서인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곰곰이 낙양에서 자신들이 돌아왔을 때를 떠올려보았다.
“너희들 대단하구나.”
야간 시간 동안 무산학관의 문지기로 일 하는 길수는 몰래 빠져나갔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선 감탄하며 칭찬까지 해 주었다.
“예전에도 낙양까지 왔다 갔다 한 학생은 있었지. 그런데 신입생이 산적들이랑 싸우고, 그것도 이겨서 돌아온 건 흔치 않은 일인데…….”
문지기 길수에게 사정을 밝힌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상을 비롯한 십걸들도 함께 있기 때문에 정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뿐더러, 연사독의 지시로 함께 동행한 홍원이 무산학관에 학생들의 도움에 대한 감사를 표하겠다며 부득불 정문을 고집한 것이다.
“그렇지요? 어린 협객들이 얼마나 유능하던지. 저희 탐화루가 그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감사를 표해야 마땅할 일이지요.”
“허허, 우리 무산학관의 학생들이 뛰어나긴 하지요.”
“그러니 책임자를 불러 주세요. 제가 감사와 사죄의 의사를 밝혀야만 합니다.”
“알겠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길수는 대문의 옆에 놓인 빨간색과 검은색의 손바닥만 한 종(鐘) 중에 빨간색 종을 들어 흔들었다.
딸랑― 딸랑―.
영롱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니 수석교관인 철표와 검술 사범인 연홍 교관이 바람처럼 달려 나왔다.
그들은 소호와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사태를 짐작한 듯 눈살을 팍 찌푸렸다.
“너희는 정말…….”
연홍이 한쪽 손을 자신의 뺨에 갖다 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시국이 얼마나 어수선한데……. 황보정 사부는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고 폐관 수련을 한다지, 관장님은 어디서 교관을 한 명 구했다지. 소림사는……. 아무튼, 그런데 너희는 무단으로 이탈까지……!”
연홍 교관은 싸늘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아이들은 다들 기가 죽어서 고개만 푹 숙여 버렸다.
“죄송해요, 연홍 사부.”
“도대체 왜 몰래 나갔던 거니? 그것부터 들어 보자. 너희도 너희야. 전상! 너희들은 현무방에서도 애타게 찾고 있어. 순찰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데리고 나갔는데 갑자기 뛰쳐나가서 다들 얼마나 난리였는지 아니?”
“죄송합니다…….”
호걸 같은 인상의 전상도 연홍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 같았다. 어깨를 움츠린 채 한마디도 변명하지 못했다.
“자자, 교관님 잠시 진정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은 누구죠?”
“저는 하오문 낙양지부에서 공진표 지부장님을 모시는 홍원이라고 합니다.”
“하오문?”
연홍이 철표를 힐끗 바라보았다.
철표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홍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 이 소협들 덕분에 저희 하오문이 위기를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학관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이……?”
“예. 여기, 저희 하오문의 무상께서 보내신 서찰입니다.”
“무상이라면 그…… 혈룡조를 쓰시는?”
“예. 그분이십니다.”
무상이라는 말에 철표와 연홍 모두가 반응을 보였다.
혈수라 연사독이란 이름은 수많은 기인 이사들이 있는 무림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강자 중에 한 명이었다. 열손가락 안에 든다고는 못해도, 적어도 스무 손가락에는 꼽히는 이름이었다. 연홍이 주의 깊게 서찰을 읽고, 후에 철표 교관에게 공손하게 넘겨주었다.
철표 교관은 서찰을 쭉 읽은 뒤 처음으로 대미미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그랬나.”
철표 교관은 서찰을 품 안에 넣고, 홍원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무산학관의 수석 교관 철표요.”
“철표 교관님이셨군요. 홍원입니다. 만재(萬才)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허명이오.”
만재를 타고 났으나 탁월한 일재(一才)는 없다.
무림 강호에서 철표를 일컫는 말이었다.
철표가 살짝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에, 홍원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서찰로 보셨다시피 조만간 무상께서 찾아와 제대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간략하게 인사만 전하고, 다음번에 제대로 찾아와 약속을 잡는 게 어떠실런지요?”
“그렇게 하는 게 좋겠소. 무상께 우린 언제든 방문을 환영하겠다고 전해 주시겠소?”
“꼭 전하겠습니다.”
서로 격식을 갖춘 대화를 나눈 뒤, 홍원은 살짝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더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소협들은 영웅의 일을 해냈습니다. 너무 혼내지 말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학관에서 결정할 문제요.”
“예. 물론입죠. 그저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홍원은 씩 웃으면서 물러났다.
그는 소호와 대미미 쪽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마차를 타고 다시 낙양으로 돌아갔다. 철표가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그럼, 너희의 변명을 들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