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142화 (271/686)

6권 17화

제19장 균자난청(菌子難淸) (11)

부운화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황급히 장기린을 바라봤다.

“대형……?”

당황하는 부운화를 향해 장기린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겁이 없고 격정적이다. 거창한 목표가 있는데 부족한 능력을 예측 불허의 광기로 채운다. 그러면서 배포가 있으니……. 부하들에게는 매력적이면서 위험한 자야.”

“저도 동감합니다.”

“쭉 지켜보니, 운화 네가 왜 그리 걱정했는지를 알겠더군.”

“그러셨습니까?”

“네 말을 듣고 한 번은 그냥 넘어갔으니, 다음번에 ‘처리해야겠다’고 생각되면 운화, 네가 알아서 해.”

“명심하겠습니다, 대형.”

부운화는 다짐하듯 말했다.

그의 두 눈에 결연한 빛이 스친다.

“대형, 형수님. 제가 한 가지 더 이야기해 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운화는 용문석굴에 오는 길에 그의 심복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무산학관에 있는 아이들이 벌인 작은 일탈을 시작으로 태산박의 주요 인물들을 쓰러뜨려 버린 이야기에 관해서였다.

시작은 대미미가 연부인의 아버지인 혈수라 연사독을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이었으며, 무쌍귀의 정보를 찾던 태산박이 하오문을 핍박하자 은자촌 삼인방과 무산학관의 아이들이 힘을 합해 태산박을 막아 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말씀하셨던 그 아이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서인이 말인가?”

“예.”

장기린이 은은하게 미소 짓자 옆에서 휘연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누구요? 혹시 그때 무산학관에서 치료받고 있던 그 소년인가요?”

“어떻게 안 거지?”

장기린이 정말로 놀라 되묻자 휘연은 자랑스럽게 웃었다.

“내가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게 있던가요? 내가 아까 뭐라고 그랬지요?”

“앞으로 알아야 할 것이 많다고 했지…….”

“평생 걸려요, 평생.”

진휘연은 능청스럽게 배시시 웃었다.

“그 소년이 맘에 든 거죠?”

“그래. 왠지 정이 가는 아이야.”

“창술을 다듬어 준다고 했을 때부터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용하는 무기가 똑같이 창이라서 그런 건가요?”

“깊게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이유야 어찌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소호랑 친해 보이기도 했고.”

그때 부운화가 황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형수님. 대형이 그 소년의 창술을 다듬어 주었다고요?”

“네. 맞아요. 갑자기 나서서 ‘네 창술을 보자’고 하더니 창술 시연까지 해 주는 거 있죠? 이 사람이 그러는 건 처음 봤어요.”

휘연은 마치 장기린을 따라하듯 목소리를 굵게 내면서까지 설명해 주었다.

부운화는 탄성을 내뱉으며 장기린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장기린은 헛기침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소호의 친한 친구다. 성품도 성실하더군. 마음에 들어서 호의를 보였을 뿐이야.”

“검성에서 무쌍귀로 이어진 공전절후(空前絶後)의 무공입니다.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싶긴 하지만, 사제 관계는 심사숙고해서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래. 알았다.”

“분명히 말했습니다. 제자 문제는 결정하기 전에 저에게 꼭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대형.”

“알았다, 알았어. 나 참, 휘연이 한 명 더 있는 것 같군.”

“하핫, 조심하지 않으시면 바가지를 많이 긁을 겁니다, 대형.”

옆에서 휘연이 방금 뭐라고 했냐며 소매를 꼬집듯이 잡아당겼다.

장기린은 소리 내어 웃은 뒤에 말했다.

“태산박에는 자기보다 강한 자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결과를 내다니. 우리 아들도 이젠 다 큰 모양이야, 휘연.”

“그런가요? 제가 보기엔 아직 한참 어린아이인데…….”

“전에 우생이 나에게 해 준 말이 있어. 부모의 눈에는 항상 나를 닮아 못난 부분만 보이는 법이라더군. 어차피 나이가 육십이 되어도 부모님 눈에는 모자라 보일 테니, 학관이 믿을 만하다면 맡기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

“그런가요.”

휘연은 진지한 얼굴로 깊게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러고 보면 두 분께 물어볼 게 있어요.”

휘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왕진이라는 사람. 우리의 적인가요?”

장기린은 부운화를 한 번 쳐다보았다. 부운화는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맞아.”

“……대형.”

“괜찮다. 운화.”

장기린이 손을 들자 부운화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휘연의 눈빛은 진지했다.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풍운상회의 문제가 걸려 있었던 탓이다.

“위험한 존재지만, 적이라고 하기엔 적대감이 옅어. 경계해야 할 상대 정도야.”

“남궁 동생은요?”

“영약을 먹고 회복해서 이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더군. 안 그래도 돌아갈 땐 안휘에 들를 생각이야.”

“좋네요.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싶어요.”

“천천히 지내다가 가도록 하지.”

“좋아요.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쨌든 그자는 아군은 아닌 거네요?”

장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겠군.”

“그래요? 그럼 무산학관에 투자한 금액은 포기하도록 할까요?”

진휘연은 진지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산뜻한 말투지만 그 의미는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장기린은 일순 뭐라고 답해야 할지를 모르다가, 문득 자신이 객잔의 주인이던 시절을 떠올렸다.

투자, 이익, 순이익이라는 단어 세 개가 머릿속을 스쳤다.

“상회에서 무산학관에 투자한 금액이 얼마나 되기에?”

“꽤 돼요. 삼 할을 넘지는 않지만. 학관의 운영에 크게 영향을 줄 수는 있어요.”

“삼 할이라…….”

“처음에 투자했을 때는 여러모로 이익은 된다는 판단이었어요, 어때요. 뺄까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호수처럼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지극히 차갑고 냉철했다.

장기린은 휘연이 ‘상인’이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실감했다.

‘휘연의 말이 맞았군.’

알면 알수록 알아 갈 것이 많은 여인.

다 알려면 평생 걸릴 거란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대로 두도록 하지, 휘연.”

휘연의 본성이 상인이라면, 장기린의 본성은 투사(鬪士)이자 승부사(勝負士)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전장에서 만약 내가, 적이 될 수도 있는 장수의 보급선을 삼 할 정도 차지하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답은 금방 나왔다.

“강한 공격일수록 공격할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하지. 게다가 그 정도라면 가만히 두기만 해도 상대에겐 압박이 될 테니, 그냥 두는 게 좋겠어.”

“후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휘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선선히 동의하였다.

아무래도 그녀의 생각도 같았던 모양이었다.

“운화.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말씀하신대로라면……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장기린은 몸을 돌렸다.

그는 언제나 마음을 정하면 곧바로 움직여 왔다.

“돌아가자. 은자촌으로.”

***

미검 연홍 사부의 검술 수업이 끝난 후, 다 같이 모여 오늘도 주방 청소를 하러 출발하려던 소호는 뜻밖의 인물의 방문을 받았다.

결벽증적인 하얀색 옷을 입고 맹인이 쓰는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천천히 다가오는 소년이다.

“유준 선배.”

소호는 사람과 만나는 걸 싫어한 적이 없지만, 오늘만큼은 편치 않은 감정을 느꼈다.

서먹하면서 부끄럽고,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잘못한 것처럼 괜스레 우물쭈물하게 된다.

소호는 탁, 탁,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유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유준 선배를 싫어했었지. 남궁 삼촌을 다치게 했다니. 충격이지만……. 왜 그랬을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납득이 되질 않았다.

유준은 소호의 정면에서 멈춰 섰다.

“소호.”

유준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잠깐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

“또 그분을 소개해 주려고요?”

소호는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날이 서는 것을 듣고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아니, 오늘은 그분이 아냐. 학관에 있는…… 말하자면 작은 모임 같은 거야.”

“모임이요?”

“그래. 작년 무산제전의 백호방 무룡전(武龍戰) 우승자로서, 후배에게 소개시켜 줘야 할 곳이야.”

“어…….”

소호는 난감해졌다.

아직 서로의 껄끄러움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거절하기엔 너무나 공적인 업무인 것이다.

“다녀오세요, 소호 형.”

헌데 바로 그 순간,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병약한 인상의 소년이 소호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주해야.”

“소호 형이 무룡전의 기대주인 거잖아요. 좋은 일이에요. 어떤 모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든 명성을 떨치셔야죠?”

섭주해는 살짝 웃음기를 띈 얼굴로 말하고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는 듯 경고성을 내뱉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허리춤에 숨겨 둔 제식(祭式)용 단검이 튀어오를 듯 날 선 기운마저 느껴진다.

‘주해도 걱정하고 있구나.’

희한한 일이었다.

주해가 걱정해 주니 소호는 도리어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가슴 안쪽의 심지가 단단하고 굳건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어떠한 일에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듯한 자신감이 생겼다.

“알았어. 다녀올게. 미안해, 얘들아. 얼른 다녀와서 청소에 합류할게!”

소호는 모여 있던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유준을 따라 나섰다.

“중앙으로 가는 건가요?”

“맞아. 엄밀히 따지면 중앙광장에서 조금 북쪽이긴 하지만.”

유준은 맹인 지팡이를 짚으며 걸었다. 두 사람은 딱히 걷는 속도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를 유지했다.

반각가량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소호. 일단…… 전해 주고 싶은 소식이 있어.”

“어떤 소식이에요?”

“남궁…… 그 사람, 이제는 많이 회복해서 일어났다고 해.”

“……!”

유준은 미안함과 서먹함이 섞인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삼촌은 어린 시절부터 소호에게 장난을 많이 치던 어린애 같은 삼촌이었다.

그가 다쳤다는 것은 마음속의 큰 짐이었는데, 회복되었다니 기쁜 소식이 아닌가.

“오늘 아까 네가 말했던 ‘그분’을 만났어.”

턱.

소호의 발이 멈췄다.

그분을 만났다는 이야기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유준 선배. 솔직히 말해 줘요. 지금 그분 만나러 가는 거예요?”

“아냐. 그분은 바빠 보였어. 나만 만나고 되돌아가셨거든. 그보다 해 주고 싶은 말은…….”

유준은 잠시 침묵했다.

복잡한 감정을 추스른 뒤, 천천히 다시 걸음을 떼면서 이야기했다.

“아마, 올해를 끝으로 나는 무산학관에서 나가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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