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22화
제20장 선자불래(善子不來) (3)
학관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학관장과 교관들 같은 무공의 스승들부터, 이 커다란 학관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많은 인부들과 하인들까지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학관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호가 학관에 온 지도 어느덧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무산학관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동안 소호는 학관 안의 사람들을 먼저 한 번씩 찾아가 인사하고 대화를 나눠 보았다.
은자촌에서 지낼 때의 습관이다.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기에, 한 마을에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소호는 학관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영웅객잔에서 일하는 왕씨 아저씨는 이제 너무 자주 봐서 익숙할 정도고, 동쪽 식당에서 일하는 손씨 아줌마나 학관의 문지기인 공씨 아저씨도 얼굴을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다.
“공 아저씨는 오늘도 바쁘시네.”
소호는 아침 식사 후에 식당에서 손씨 아줌마가 몰래 내준 사과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면서 무산학관의 정문을 응시했다.
최근 들어 학관의 분위기는 변하고 있었다.
이유가 뭔지는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바깥사람들한테 무산학관이 크게 유명해졌다고 했다.
‘왕 태감이 소림에서 뭔가 말을 했다고 하긴 하던데……. 뭐라고 했기에 사람이 많아진 걸까?’
소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입관을 희망하는 소년, 소녀들이 크게 늘었다. 지나가다가 보면 시위라도 하듯이 문 앞에 일렬로 앉아서 잠도 자고 밥도 먹으면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니, 그야말로 입관의 열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렇네. 오늘도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아, 오라버니.”
“어제보다 더 늘어난 것 같아. 그런데 저렇게 기다리면 시험 치게 해 주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 얘들아?”
섭주해가 언제나 그랬듯 소호의 궁금증에 가장 먼저 답을 주었다.
“아뇨. 안 그래도 교관님들이 논의 중이라고는 합니다만……. 그렇게 사람이 올 때마다 들여보내 줘서야 형평성에 맞지 않겠죠. 일 년에 한 번 시험을 치르는 방식이 유지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시험 때는 사람들 엄청 많겠다. 그치?”
“네. 그렇겠네요. 저희가 들어올 때도 적지는 않았었는데……. 다음에는 더욱 많겠어요.”
소호는 오늘도 잔뜩 몰려든 사람들에게 양손을 이리저리 내저으며 필사적으로 설명하고, 잘 달래서 돌려보내려고 뛰어다니는 공씨 아저씨를 가만히 지켜봤다.
공씨 아저씨는 입관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매번 달래서 돌려보내는 것도 힘들다고 소호의 얼굴을 볼 때마다 하소연을 하곤 했었는데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정말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힘드시겠네…….”
“그렇네요, 소호 형.”
“그러고 보면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이 쳐다보는 것 같았어.”
“요즘은 무산학관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눈에 띄는 이 요대 탓도 있고요.”
섭주해는 소호와 섭주해, 대미미, 조서인이 모두 똑같이 차고 있는 검은색 요대를 가리켰다.
요대는 철로 만들어진 재질이지만 속이 비어 있어서 꽤나 가볍고 활동하기가 편했다.
고급스러운 격자무늬가 철편마다 새겨져 있었고, 요대의 중심에는 무산(武山)이라는 글자가 잘 새겨져 있어서 누구나 철 요대를 차고 있으면 무산학관의 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흘 전쯤에 갑자기 학관의 학생들을 전부 모아 놓고 나눠 준 요대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대를 나눠 주던 연홍 사부는 학관의 높으신 분의 지시라면서 어딜 가든 무산학관에 다니는 동안은 요대를 꼭 차고 다니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이 요대를 차고 있으면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도 하고……. 다가와서 무산학관 사람인지 물어보기도 하더라고.”
“맞아요. 소호 형, 요즘은 특히나 관심을 받는 것 같습니다.”
소호는 자신의 허리춤에도 묶여 있는 철 요대를 바라봤다. 옆에서 조서인도 자신의 철 요대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고 있었다.
“소호. 이 요대 굉장히 유용해. 안에 금창약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 알고 있어?”
“어? 그래? 공간이 있는 건 알았는데, 그게 금창약 넣는 공간이었어?”
“응. 잘 봐봐, 이쪽의 둥그런 공간은 금창약, 이쪽의 네모난 공간은 암기나……. 다른 걸 넣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 같아.”
“와아, 그러네.”
소호는 신기해하며 요대 이곳저곳을 찔러 보았다.
좌측과 우측의 숨겨진 공간이 딸깍거리면서 나타났다가 뚜껑을 닫으니 다시 감춰졌다.
설계자가 누군지 몰라도 나중에 무림 강호에 나가서도 쓸 수 있도록 실용성을 많이 고려한 듯 보였다.
“소호 형, 이제 수업 시간이에요.”
“아, 맞다! 황보 사부의 외공 수업이지!”
“윽.”
요대를 만지작거리던 조서인의 얼굴이 갑작스레 딱딱하게 굳었다.
“히힛, 서인이는 여전히 황보 사부의 수업을 싫어하네. 그러지 마, 서인. 황보 사부는 서인이를 예뻐하잖아?”
“그 예뻐하는 것이…… 큰 부담이야, 소호.”
“맞아. 황보 사부의 관심은 ‘함께 수련하자’이니까. 그걸 끝까지 버텨 낼 인재에게 주목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어?”
딱딱하게 굳은 조서인을 보며 소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오라버니. 황보 사부는 폐관 수련하신다고 하셨어.”
“맞다. 그랬었어! 대련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셨었나?”
“응. 맞아.”
“그걸 기억하다니 대단해, 미미야.”
대미미는 소호의 칭찬이 기쁜 듯이 그저 배시시 웃었다.
“새로운 교관님은 어떤 분일까?”
소호는 궁금증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외공 교관님이니까 키도 크고 덩치도 크겠지? 황보정 교관님도 그렇고, 상급생들 가르치는 철거사 중걸 사부도 그렇고. 다들 덩치가 큰 분들 뿐이잖아?”
“으음, 그건 가면철왕 철우 학관장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긴 하는데……. 하긴, 외공이 뛰어난 분일수록 육신이 거구인 경우가 많기는 하죠.”
“맞아. 다들 커. 생각해 봐. 대석 삼촌도 엄청엄청 덩치가 컸잖아.”
“그랬죠.”
“대석 삼촌?”
옆에 있던 조서인이 의문을 표했다.
“미미 아버님이셔. 나한테는 삼촌.”
“소호 형의 아버님과 의형제 지간이셔요.”
소호와 섭주해의 설명을 듣자 조서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대미미를 바라봤다.
대미미는 그저 한결같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우리 아빠. 덩치가 크셔.”
“어어, 그렇구나.”
조서인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미 아버님도…… 힘이 세셔?”
“응.”
소호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즉각 대답했다.
“내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힘이 세셔.”
“……그래. 그렇겠지.”
조서인은 대미미를 다시 흘깃 쳐다보면서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히힛,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소호는 아이들과 함께 교육장으로 출발했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공씨 아저씨는 여전히 방문객들을 처리하느라 바빠 보였다. 소호는 나중에 다시 한 번 와 봐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
기초 외공 수업을 들으러 온 올해의 신입생들은 교육장에 도착하자마자 잔뜩 긴장하며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교육장의 한편엔 놀랍게도 학관장인 가면철왕 철우와 수석교관인 철표가 진지한 얼굴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보통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업을 듣던 아이들이었으나 학관장 앞에서도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수업에 들어오자마자 깜짝 놀라며 철우와 철표를 향해 포권을 취하고 교육장의 중심에 삼삼오오 모여 기다리는 행태가 반복되었다.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 모였나?”
먼저 침묵을 깨고 나선 것은 철표 교관이었다.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 차가운 눈빛으로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의 숫자를 가만히 헤아리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 왔군. 그럼 새로 온 교관을 소개해야겠지.”
철표는 잠시 밖으로 나가 다른 한 사내와 함께 들어왔다.
아이들의 시선이 대번에 한쪽으로 쏠렸다.
철표의 옆에 서 있는 사내는 얼굴만 봐도 꽤나 젊어 보였다.
옷은 평범한 회색 무복을 입고 진한 갈색의 장포를 걸쳤다. 겉으로 봐서는 기껏해야 이립(而立:삼십 세)이나 되었을까.
햇볕에 잘 그을린 것 같은 갈색의 피부에 표범처럼 탄탄한 육체를 지닌 젊은 청년이었다.
눈썹은 숯으로 칠해 놓은 것처럼 진했고 눈빛은 순수하게 반짝였다. 코와 턱에 어설프게 나 있는 수염만 아니라면 좀 더 어리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짙은 인상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철표의 곁에 선 채 단상 위로 올라섰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 어딘가 장난기가 느껴지는 눈빛에선 긴장한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
“아!”
“으음.”
다들 새로 온 교관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 사이, 유일하게 교관을 보며 깜짝 놀라고 반가워하는 사람이 세 명 있었다.
소호, 대미미, 섭주해다.
은자촌 출신의 세 사람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새로운 교관을 보며 반가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소호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새로 나타난 교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일출 시간의 하늘처럼 안색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당장이라도 앞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섭주해가 황급히 소호의 소매를 붙잡아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로 뛰쳐나갔을 지도 몰랐다.
‘삼촌!’
소호는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새로 온 교관은 옆을 지나쳐가면서 눈이 마주쳤을 때 반갑다는 듯이 살짝 미소까지 지었다.
은자촌에 있었을 때와 달리 옷도 잘 차려 입고 외모도 깔끔하게 가다듬긴 했지만……. 삼촌 들 중에 가장 친했던 삼촌을 몰라볼 리가 없지 않은가.
“이번에 새로 너희를 가르치게 될 ‘외공 교관’이다. 직접 인사하겠소?”
철표의 소개를 이어받은 새로운 교관은 웃는 얼굴로, 나이에 맞지 않은 천진난만함을 유지한 채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반가워, 꼬마들. 내 이름은 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