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23화
제20장 선자불래(善子不來) (4)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무산학관 학생들의 지위는 낮지 않다. 시험을 거쳐 학생들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는 평등하지만……. 사실, 최소한 지방 무관(武官) 자리라도 거친 명문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산학관은 ‘황실’에서 무공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학관이었다.
황실에서 주최를 한 만큼 무산학관을 나오면 무관으로서 성공한다는 게 대부분 부모들의 생각이었으며,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미래의 명 제국 무관들인 것이다.
“분위기가 묘한데. 혹시 꼬마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나쁜 거야?”
진구는 눈치가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척을 하는 건지. 아이들의 속도 모른 채 장난스레 웃고만 있었다.
“그래. 뭐, 좋아. 지금이야 애 취급 받는 게 싫을 수도 있지. 너네 나중에 후회한다? 나중엔 어린애처럼 예쁨 받고 싶어도 못 받아요. 그나저나 철…… 아니, 학관장님. 계속 계실 거예요?”
아이들의 시선도 진구를 따라 옆으로 홱 돌아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철우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게.”
“거기 계신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어요. 존재감도 엄청난데.”
“……”
“애들이 안 보는 척하면서 계속 학관장님만 신경 쓰고 있다구요. 지금도 봐요. 저 친구는 눈으로는 저를 보고 있지만, 학관장님을 신경 쓰느라 귀를 쫑긋거리고 있잖아요.”
진구가 뒤쪽에 있는 어떤 소녀를 가리키자, 소녀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귀를 가렸다.
진구는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동물 같은 친구네. 넌 이름이 뭐니?”
지목받은 소녀는 긴 머리를 하나로 길게 땋은 현무방의 소녀였다.
눈이 작고 얼굴이 까무잡잡했다. 탄탄한 체구라 몸이 날렵해 보이는 소녀였다.
소녀는 당황하다가, 주변 아이들의 시선을 받자 표정을 관리하며 엄숙하게 말했다.
“춘화. 춘화입니다.”
“그래? 춘화구나. 따뜻한 이름이네. 반가워, 춘화야.”
“아, 예.”
춘화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으나 쑥스러웠는지 양 볼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진구는 철우에게 다시 눈치를 줬지만, 그는 철탑 같은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조금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진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난 사실 누굴 가르치는 게 익숙지 않아. 맨날 배우기만 했지 누굴 가르칠 생각은 잘 안 해 봤거든. 보통 신입 교육은 둘째 형이나 셋째 형이 했으니……. 나야 뭐, 그냥 따라다녔지.”
진구는 급격히 자신감 없는 얼굴로 변하더니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이들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아이들 대부분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소년, 소녀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진구를 응시하며 자기들끼리 정보를 교환했다.
“진구? 이름이 진구래.”
“개 같은 이름이네. 어릴 때 기르던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 그런 이름이었는데.”
“진구라는 이름 들어 본 적 있어? 혹시 무림 강호에선 유명한가?”
“아냐, 내가 십대고수는 물론이고 백대 고수, 각 지역의 호걸들도 다 외우고 있는데 그런 이름은 없어.”
“그럼 대체 어디서 온 누구야?”
아이들은 자신들끼리의 인맥과 지식을 총동원해 진구의 출신을 알아내 보려 했으나, 당연하게도 쓸 만한 정보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크흠!”
그때 무산학관의 수석교관인 철표가 무표정한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진구 교관은…… 너희가 지난번에 봤던 그 ‘풍운노사’의 동생이다.”
“……!”
아이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풍운노사라면 그때 그……? 가면을 쓰고 나타나서 장소호랑 대련했던 그분?”
“엄청난 분이었잖아. 백대 고수 중에서도 수위에 거론되는 황보정 사부를 일방적으로 짓눌렀다고.”
“알아, 알아. 그 일 때문에 황보 사부가 폐관 수련에 들어가셨잖아. 그랬구나. 그래서 사부 자리가 비니까 동생을 보냈구나.”
“이제 앞뒤가 맞네. 그런데 그분도 사실 은거 기인이잖아. 풍운노사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었어.”
“그래. 그럼 저 진구 교관도 은거 기인인가 보다.”
아이들은 여전히 의심스럽게 진구를 보면서 수군거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풍운노사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보다는 훨씬 호의적인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철표 교관은 거기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풍운노사가 그랬다. 진구 교관은…… 동생이자, 제자에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목숨을 건 사투의 경험도 그 누구보다 많으니 너희에게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철표.”
학관장이 그만하라는 듯 신호를 주자, 철표는 묵묵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분위기는 반전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특별한 수업을 할 것 같은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얼굴로 진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풍운……노사? 아! 아아…… 풍운……”
그런데 정작 진구는 풍운노사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뭔가를 깨달은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고는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하핫, 형님도 참, 그런 말 안하셔도 되는데.”
진구는 빙긋 웃더니, 학생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응시했다.
웃을 땐 천진난만해 보였는데, 입을 꾹 다물자 분위기가 의외로 진지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깊은 눈빛이 아이들을 진지하게 마주했다.
소호는 진구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가 그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음 소년에게로 시선을 넘기는 모습을 보며 진구의 의중을 눈치챘다.
‘아는 척하지 말라는 거구나!’
소호는 이 일장 활극에 참여하지 않고 한발 떨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모습이 생각보다 재밌기도 했다.
“철표 교관님께서 도와주신 건 감사하지만, 풍운노사와 나는 다른 사람이야. 교관이 어떤 지는 너희 스스로 판단해야 하지 않겠냐?”
진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잘 들어. 너희는 인생을 수동적으로 살면 안 돼. 저어―기 높으신 분이 있다고 해서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다간 기회를 놓친다? 인생은 한 방이야. 성공하는 것도 한 방. 죽는 것도 한 방.”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씩 웃는 진구의 모습은 영락없이 십 대 소년 같았다.
아이들은 어이없어 했으나 그래도 웃는 아이들이 한두 명 존재했다.
특히, 소호 옆의 한 아이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인생은 한 방…… 잠깐, 어디서 들어 본 이야기인데…….”
조서인은 가만히 생각을 거듭하다가, 깜짝 놀라 단상 위의 진구를 응시했다.
그리고 살짝 뒤로 돌아 소호와 눈이 마주쳤다. 조서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소호야! 소호야!”
“응?”
“저분, 그분이랑 이름이 똑같아.”
소호가 빙긋 웃으니 조서인은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혼란스러워하던 눈빛이 차분해지고, 조서인은 비밀을 공유하는 소년들 특유의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조서인은 소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사고뭉치 도박꾼에 명언을 줄줄이 내뱉는 현자. 소호 네가 늘 말하던 그 ‘막내 삼촌.’ 맞지?”
소호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는구나?”
조서인은 맹한 것 같으면서도 지금처럼 날카로운 면이 있었다.
“맞아.”
“세상에! 말로만 듣던 그분을 직접 보다니.”
조서인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한 번 화들짝 놀랐다.
“잠깐만, 지, 진구 님이 좀 전에 분명 풍운노사의 동생이라고……!”
“쉿!”
소호는 조용히 해 달라는 뜻으로 입 위에 손가락을 세웠다.
조서인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눈빛으로 온갖 감정을 쏟아냈다.
한편, 그사이 오십 명의 신입생들을 한 번씩 쭉 둘러본 진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쁘지 않네. 간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너무 온실 속의 화초다, 얘들아.”
소년, 소녀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자, 여기서 질문? 나한테 질문하고 싶은 사람?”
아이들 중의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번쩍 손을 들었다.
분홍색 비단 옷의 소년.
파강장군 원회를 배출했던 명문 북경 원가의 후손이 차가운 얼굴로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진구 교관님, 질문이 있습니다.”
“좋아. 분홍색 비단 무복이 잘 어울리는 매끈한 친구. 넌 누구지?”
“매, 매끈……? 크흠! 저는 북경 원가의 장손. 이름은 형주라고 합니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는 모습에선 명가의 후예다운 기품이 감돌았다.
“앞쪽의 소개는 필요 없었던 것 같은데……. 잠깐만. 북경 원가?”
진구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미간을 팍 찌푸렸다.
“혹시 거기 원회라는 개…… 아니, 장군이 한 분 계시지 않니?”
“아시는군요! 교관님은 관에 계셨었나요? 예. 그분이 저희 아버님이십니다. 북로전쟁 때 파강장군을 역임하셨고, 그때 공을 세우셔서 지금도 군부에 계십니다. 차기 대장군으로 거론되고 계시지요.”
원형주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원회의 업적을 더 읊어 주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거리기까지 했다.
주변에 있던 같은 청룡방의 아이들마저 반 발짝 옆으로 떨어지며 거리를 벌렸다.
진구는 코웃음 쳤다.
“몰라.”
“예?”
“북로에서 보급을 관리한답시고 맨날 군량도 안 주고, 흑룡강도 몇 번 안 넘었으면서 군공은 싹쓸이한 그런 사람은 모른다고.”
“어……?”
당황하면서 굳어진 원형주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진구는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북경 원가의 형주는 나한테 궁금한 게 뭐지?”
“어…… 그게……. 어, 교관님은 어떻게 저희를 가르치실까 궁금해서…….”
“그거라면 간단하지.”
진구는 당당히 팔짱을 끼고 서서 오십여 명의 아이들을 쭉 둘러봤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시리도록 차갑다.
“오십 대 일. 적당하네.”
묘한 위압감을 담아, 진구는 전장에서의 악동이던 과거의 기세를 되살렸다.
“다 덤벼, 꼬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