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151화 (280/686)

7권 1화

제21장 군자유어의(君子喩於義) (1)

청성은 구파일방의 일익이다.

이는 특별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아는 것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한데 구태의연해 보이는 이 말에 사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중원이라 할 수 없는 변방, 그것도 아미파와 사천 당문에 비하면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청성이 구파일방에 들어가 있는 것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다.

청성은 정말로 강할까?

무림 강호의 정도 문파들 중에는 강한 문파들도 많은데, 그들이 정말로 청성보다 약해서 구파일방에 들지 못하는 것일까?

정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였다.

청성의 역사는 깊었다.

도교의 시조 중 한 명인 장도릉(張道陵)이 그 유명한 ‘오두미도’의 교리를 창시하고 사람들에게 가르친 곳이 바로 청성산이었다. 이후 도교를 따르는 수많은 도인들과 기인이사들이 모여들어 지금의 청성파라는 거파를 형성했다.

인근의 도교를 믿는 수많은 민초들이 도교의 명산이라며 추앙했고, 매일같이 청성의 도관에 들러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곤 했다. 민심이 함께하니 관아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아무리 힘이 센 무파가 있다고 한들 청성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였다.

무공은 어떠한가?

청성파를 모르는 자는 있어도, 칠십이파검과 청운적하검을 모르는 자는 거의 없을 정도다.

실제로 검가의 명문을 다투는 무당, 화산, 종남과 검을 겨룰 때면 청성도 그에 지지 않을 만큼 심오한 무공을 선보이곤 했었다.

허나, 문제는 결정적인 고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일대 제자인 청 자 돌림 항렬에서 이름을 떨칠 만한 고수가 나와야 했는데, 대제자인 청벽과 둘째인 청광의 이름이 그나마 청성이검이라며 조금 알려졌을 뿐, 그 외엔 이렇다 할 무인이 없었다.

민심과 무공이 둘 다 함께하지 않으면 구파에 들어갈 수가 없다. 대단한 고수가 없어도 청성파가 구파의 일익일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까닭일지니.

청성파가 구파에 들어가 있다는 건 그런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쿵. 쿵. 쿵.

검게 칠한 초립 아래 살기 가득한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검은색 무복에 검은색 비구와 가벼운 가죽 갑주를 찬 무인들이 있었다. 허리춤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를 검은색 천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고, 등에는 한 팔 길이의 소궁(小弓)과 화살통도 매고 있었다.

그 수는 오백 명.

똑같은 복식과 무장을 착용한 채 똑같은 속도로 방패를 두드리는 모습은 일경 장관이면서도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사천 성도, 청성파의 산문 앞에서 방패를 두드렸다.

상청궁과 노군각 등 수십 개의 도관들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당장 튀어나오라며 소리를 지르는 셈이다.

당연히 도를 수행하던 도인들이 놀라서 뛰쳐나왔고, 인근의 주민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었다.

청성파는 난리가 났다.

일대 제자와 이대 제자를 합쳐 총 이백여 명가량의 무인들이 상청궁 앞에 집결했다.

적하 진인은 얼마 전의 일 때문에 병환에 쓰러진 상황.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것은 대사형인 청벽과 청성의 장로들뿐이다.

항상 차분하고 기품을 지키던 대사형 청벽이 분을 참지 못하는 얼굴로 소리쳤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어찌하여 청성에 칼을 들이미는가!”

쿵. 쿵. 쿵.

“대답도 하지 않다니, 도대체 무슨 속셈이오?”

검은색 무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들고 있던 검으로 방패만 두드릴 뿐이었다.

살벌한 분위기.

오고 가는 시선 속에서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스릉―.

참다못한 청성파의 이대 제자들이 검을 반쯤 뽑아 든 순간, 청벽이 다급하게 외쳤다.

“기다려!”

대사형의 말에 애써 눌러 참고는 있지만, 이미 화약고에 불이 붙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청벽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검은색 무인들을 노려봤다.

“책임자는 아무도 없는가!”

쿵.

그때 무인들의 방패 소리가 멎었다.

철컥, 철컥.

왕이 행차할 때처럼 무인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는 데 단 두 발자국이면 됐다.

그 한 동작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고된 수련을 했는지, 얼마나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연습을 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인들 사이로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을 보며 청벽의 안색이 더욱 침중해졌다.

“재밌네. 청성은 이 정도인가? 그런데 기대보다 너무 숫자가 적어. 좀 더 숫자가 많아야 하는데 말이야.”

기껏해야 이십 대나 되었을까.

머리카락을 부스스하게 대충 묶어 지저분한 인상의 사내였다.

눈은 작고 턱 선은 가늘다.

여러모로 소인배 같은 인상이었으나 눈에서 번뜩이는 살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

반면에 그 옆의 사내는 말이 없었다.

구 척 장신으로 보이는 거구였는데, 검은 천으로 얼굴까지 꽁꽁 싸매고 있어 강시를 보는 듯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예의 바른 사람이네. 무공도 꽤 센 것 같고. 당신이 청벽이야?”

“그렇소만.”

“청성파에서 청성이검이 그나마 유명하다던데, 그나마도 한 명뿐이네. 그래서야 안 되지. 혹시 청광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

“……다시 묻겠소. 당신들은 누구요?”

“우리?”

비틀린 웃음을 짓는 이십 대 청년.

사흉의 짐승이자 황실의 숨겨진 칼인 도철이 위풍당당하게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

“……!”

청벽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황실에서 오시었소?”

“그래. 너희가 황실의 대신들을 습격했더라고. 극악무도하고 오만방자한 흉수들에게 국법의 지엄함을 보이라는…… 황태자 전하의 명이시다.”

청벽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그게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소.”

“몰라? 정말로?”

“그렇소. 우리는 모르는 일이오.”

“그럼 설명해 줄게. 아는 이야기인가 들어 봐.”

도철은 박수를 팡팡 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얼마 전에 양사기라는…… 저 위의 높으신 분이 주최한 회합이 있었어. 그런데 그 자리에 세 명의 흉수가 쳐들어온 거야. 기가 막히지? 겁도 없이 나라의 높으신 분들을 덮치다니. 그런데 고작 세 명밖에 안 되면서도 쳐들어온 흉수들이 의외로 검술이 너무 뛰어난 거야. 자리를 지키던 호위병들을 파죽지세로 베어 버리면서 회의장까지 쳐들어왔어. 그 와중에 양 재상이 아끼던 호위무장까지 죽임을 당했지. 그때 그들이 쓰던 검술이…… 청운적하검이야.”

“믿을 수 없소. 우린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소.”

“그래. 그렇게 말하겠지. 그러니까 들어 보란 말이야. 그래서 이대로 황실의 고위 관료들과 황태자의 스승이신 왕 태감이 죽는 건가! 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화살이 푝! 하고 날아왔네?”

도철은 맨손으로 화살을 쏘는 시늉을 한 뒤, 손가락으로 자신의 어깨를 쿡 찔렀다.

“흉수들은 어깨에 화살을 맞았어. 그 뒤로는 뭐, 오래 버티긴 했지만 그래도 검을 제대로 못 쓰는데 상대가 될 리 있나. 온몸이 검에 찔리고, 창날이 배를 갈라서 내장이 튀어나왔어. 아우, 그때 지르는 비명 소리가 지금도 생생해.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시끄럽더라고. 검술 실력에 비해 배포가 작다고나 할까.”

“…….”

“어라, 말이 없네? 왜 그럴까?”

“모르는 일이라 그렇소. 안타까운 일이오.”

“그렇지? 난 또 같은 사형제라서 안타까워서 그런 줄 알았지.”

도철이 빙긋 웃는다.

청벽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왕 태감이 청성파라면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다면서 흉수들의 얼굴을 확인했는데 안타깝게도…… 청광은 아니더라고.”

“아…….”

청벽의 눈썹이 움찔 흔들렸다.

도철은 소리 내어 웃더니 성큼성큼 청벽에게로 다가왔다.

청벽은 검을 붙잡고 있던 손을 움찔거렸지만 섣불리 먼저 움직이진 않았다.

팔만 뻗으면 닿을 곳에 도철이 서 있었다.

살기로 가득한 작은 눈에 희열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청벽을 유심히 보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툭 던지듯이 내뱉었다.

“지금 안심했지?”

뱀이 혀를 날름거리듯,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투였다.

청벽의 눈동자가 떨렸다.

“당연한 일이오. 청광이 흉수가 아니었으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뜻이지 않소?”

“아니아니, 그게 아니지. 청광과 일대 제자 열 명이 그날, 소림사 근처의 객잔에서 청성파와 길을 달리했잖아? 그중에 셋이 죽었으니, 이제 일곱 명. 아니, 청광까지 여덞 명이 남은 거지? 그치?”

“……!”

청벽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들은 모든 것을 알고 왔다.

어두운 야밤에 은밀하게 움직였건만, 어찌 그리 정확히 모든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이게 황실, 동창의 힘인가.’

나라에서 운용하는 정보 집단의 힘에 새삼 전율하며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청광은 이제 없소. 숭산에 갔을 때 내 손으로 파문했으니.”

노쇠한 목소리, 허리를 굽히고 초췌한 안색의 노인이 안쪽에서 나타났다.

청벽은 당황하며 외쳤다.

“장문인! 어찌하여 나오셨습니까. 어서 들어가십시오.”

“괜찮다. 청성의 안위가 풍전등화인데 어찌 장문인이 자리에 누워 있겠는가.”

적하 진인은 청성 무인들의 예를 받으며 앞으로 나와 도철을 응시했다.

“청광과 열 명의 제자들은 청성과 연관이 없소. 그러니 앞으로 그들로 인해 우릴 찾지 마시오.”

“허어?”

도철은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감, 들어가 있었으면 살았을 텐데. 안타깝네.”

“뭐라?”

“아니지. 살려 줘선 안 되겠지? 당신들은 ‘본보기’니까.”

도철이 살기를 번뜩였다.

적하 진인은 확실히, 청벽과는 달랐다.

그는 곧바로 제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검을 들어라! 사문을 지켜라! 우리는 ‘공격하는 자’들을 막아야 한다!”

적하 진인의 외침에 청성파의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래. 차라리 진작 그랬어야지. ……흑시부대!”

검은 무복의 무인들.

흑시부대의 대원들은 일제히 이 열로 나눠 서더니 앞에 선 자가 등에 매고 있던 소궁을 꺼내 정면을 겨눴다.

뒤 열에 있는 자들은 몸을 반쯤 비튼 자세로 검을 겨누며, 왼손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천주머니를 하나 들었다.

앞 열과 뒤 열.

각각 이백오십 명의 무인들이 활과 검으로 청성을 겨누었다.

충천하는 살기에, 청성파의 무인들이 긴장하며 몸을 낮췄다.

“사실 청성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이건 시작이거든. 우리는 전 중원을 다 돌아야 해.”

도철은 파안대소를 하더니, 품에서 복면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

“흑시부대. 던져!”

둘째 열에 서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주머니를 집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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