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2화
제21장 군자유어의(君子喩於義) (2)
주먹만 한 주머니 이백오십 개가 각각 비슷한 궤도를 그리며 청성파의 무인들에게로 날아갔다.
“암기?”
청벽은 황급히 소매로 입을 가리며 외쳤다.
“조심해! 독분(毒粉)일지도 모른다!”
청벽의 판단은 정확했으나 문제는 상대가 생각보다 더 무자비하다는 점이었다.
청성의 제자들이 뭔가 행동으로 반응하기도 전에, 전열에서 소궁을 들고 있던 흑시부대 대원들이 일제히 검은색 화살을 쏘았다.
피슈슉―.
“……!”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뱀의 그것처럼 섬뜩했다.
대경실색한 청성 제자들은 제각각 몸을 낮추며 검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두렵지는 않았다.
그들은 명문 정파의 무공을 익힌 대(大) 청성의 제자들이 아니던가.
화살 따윈 날아오면 그간 배워 온 무공을 살려 검으로 쳐 내면 그뿐일 터.
헌데 빠르게 날아온 화살은 그들을 향하지 않았다.
뛰어올라야 닿을 만한 높이.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 먼저 던져진 주머니를 맞추며 일제히 폭발시켰다.
퍼퍼펑―.
뿌연 구름이 장내를 뒤덮었다. 특히 바로 아래쪽에 있던 청성 제자들은 주머니에서 뿜어진 가루들을 직격으로 맞아 얼굴이 하얗게 덮여 버렸다.
“쿨럭, 쿨럭!”
“이게 큭, 무슨……!”
사방에서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파일방 정도 되면 거친 무림 강호를 헤쳐 나가기 위해 온갖 것들을 대비하는 수련을 한다.
그중에는 산공독에 대비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흑시 부대처럼 군대로서 싸우는 방식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청성 제자들은 피부는 물론이고 머리카락과 옷에 온통 들러붙는 새하얀 가루에 크게 당황했다.
심지어 가루를 뒤집어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호흡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산공독……!”
“산공독이야! 쿨럭, 내공이……!”
가루를 많이 들이마신 제자들부터 차례대로 비명을 질러 댔다.
“내력이 흩어진다……!”
“으아아!”
공포감에 휩싸인 청년들은 한시라도 빨리 가루를 털어내고자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두드렸는데, 그렇게 하니 오히려 가루가 더욱 날려 피해자를 늘린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했다.
“이럴 수가……!”
값비싼 산공독을 물 쓰듯이 뿌려 버리다니, 과연 황실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청벽 역시도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대청성의 제자들이 이렇게나 오합지졸이었단 말인가.
아무리 무공을 수련하고 심공을 단련해도, 이런 꼴이라면 동네 잡부와 별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이대론 안 된다.’
아군은 오합지졸, 적군은 무자비한 군대.
청벽은 인근의 일대 제자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강호 경험이 있는 제자들은 그래도 잘 갈린 칼처럼 살기를 세우며 언제 공격을 가할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정해라! 명경지수의 마음을 유지해라. 더 이상 가루를 들이마시지 마! 검을 들어! 건곤신공을 끌어 올려!”
경험이 부족한 이대 제자들은 청벽의 충고도 듣지 못했다.
청벽은 일대 제자들과 함께 다급하게 정면으로 뛰쳐나갔다.
피잉―.
그사이 흑시부대는 냉철하게 다시 한 번 화살로 공격을 가했다.
이번엔 허공을 향해서가 아니었다.
정면.
청성의 제자들을 노리는 화살이 번개처럼 쏘아졌다.
피슈슉―.
“어림없다!”
청벽은 청풍검법(淸風劍法)을 휘두르고 풍뢰장을 사용하여 다급하게 화살을 쳐 냈다.
일대 제자들도 마찬가지.
각자가 익힌 자신 있는 청성의 무공으로 화살을 가로막았다.
허나 문제는 역시 이대 제자들이었다.
혼란에 빠진 이대 제자들은 막아 볼 생각도 못한 채 날아오는 화살에 몸이 꿰뚫려 버렸다.
“으아악!”
“어깨! 다, 다리가……!”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청벽은 아랫입술을 앙다물었다.
“암기에 화살, 이런 식으로 싸우다니……!”
청벽은 신경질적으로 목덜미와 어깨에 묻어 있던 산공독 가루를 털어냈다.
“이건 무인의 싸움이 아니다. 황실은 무림 문파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청벽과 일대 제자 삼십여 명이 분기탱천하여 흑시부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청성비전 세류표가 펼쳐지며가벼운 몸놀림으로 거리를 좁혔다.
휘두르는 검은 청풍검, 좌수로 쳐 내는 장법은 은밀하고 강력한 최심장이다.
강맹한 공격이 쏟아지려는 찰나, 후열에 있던 흑시부대 대원들이 방패를 쑥 내밀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따앙―.
“합격술……?”
방패에 튕겨나온 검이 웅웅걸리며 떨리는 소리를 냈다.
이인일조.
방패와 검을 든 한 명과, 활을 든 한 명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며 청벽을 막아 내고 있었다.
청벽은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방패와 방패의 틈 사이로 시커먼 화살이 수풀 속의 뱀처럼 튀어 오른 것이다.
피슉―.
살짝 찢어진 왼쪽 볼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놈들!”
청벽은 두 눈을 활활 불태우며 들고 있던 검에 힘을 더했다.
푸르른 구름처럼 신묘한 검술, 그 안에 피를 안개처럼 흩뿌리게 만드는 섬뜩한 살기.
청벽의 손에서 펼쳐진 청운적하검은 튼튼한 쇠 방패 사이를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 흑시부대원 한 명의 어깨를 꿰뚫었다.
아니, 꿰뚫는 것 같았으나 흑시부대원이 몸을 비틀자 어깨에 걸쳐 있던 갑주가 그의 검을 대신 받아 주었다.
쩡, 하고 검이 옆으로 튕겨져 나왔다.
도리어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면서 청벽은 홀로 중얼거렸다.
‘갑옷이 걸리적거린다.’
그리 대단치도 않은 가죽 갑주가 싸울 때는 이리도 거슬리는 장애물이 될 줄이야.
청벽은 전력을 다해야 함을 깨달았다.
‘고작 대원 두 명을 뚫기가 이리도 힘들다니. 무서운 자들이다.’
철방패와 가죽 갑옷, 그리고 전투에 맞는 각종 도구들이 무공의 차이를 상쇄하고 있었다.
청성파의 대사형이자, 청성이검의 이름값이 무색했다.
“흐읍!”
청벽은 검기지경(劍氣之境)에 오른 자신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 올렸다.
산공독의 영향일까.
평소보다 흐르는 진기의 양이 이 할 정도 부족했지만 검기를 만드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우웅―.
검명과 함께 푸르른 검 날에서 섬뜩한 예기가 치솟았다.
산뜻한 바람이어야 할 청풍검(淸風劍)에 진득한 살기가 담기니 혈풍의 시작이다.
방패를 들고 있던 흑시부대원 한 명의 손목 비구가 쩍, 하니 갈라지며 핏물이 솟구쳤다.
휘리릭―.
보보마다 세류표, 휘두르는 검술은 청풍검과 청운적하검의 진수를 담고 있었다.
신들린 듯한 검술에 가까이 다가오려던 흑시부대원들은 거북이처럼 방패만 내민 채 목을 움츠렸다.
그렇게 방어만 하는데도 가죽 갑옷이 갈라지며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헌데 그렇게 상처를 입고도 흑시부대의 무인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철벽 같은 모습.
절대 뚫리지 않을 것 같은 압박감은 여전했다.
‘부순다.’
청벽은 좌수에 힘을 실어 십성의 최심장으로 방패를 옆에서 때려 버렸다.
쩡, 하고 깊은 울림과 함께 방패 내부로 침투경이 들어갔다.
흑시부대의 부대원이 안색이 창백해지며 양손으로 다급하게 방패를 붙드는 모습이 보였다.
쉬익―.
흑시부대의 동료가 쏘아낸 화살은 고개만 살짝 옆으로 꺾어 피해 냈다.
청벽의 눈이 번뜩였다.
방패를 놓친 흑시부대의 목덜미에 이제 검을 찔러 넣기만 하면 될 터.
우웅―.
손끝에 모이는 기운. 검명을 울리며 청벽이 검을 찌르려는 순간.
‘그’가 나타났다.
화아악―.
“……!”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둘둘 감은 거구의 사내.
눈조차 보이지 않는 괴물 같은 자가 커다랗고 새하얀 손으로 청벽의 검 끝을 꽉 붙잡고 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다가오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대체 언제 이만큼이나 가까이 다가왔단 말인가.
청벽은 그가 내뿜는 압도적인 기운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무슨……?”
청벽은 검을 뒤로 빼내려고 했으나 마치 단단한 쇠모루에 끼워진 것처럼 꿈쩍도 안 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쩌저적―.
“……!”
청벽의 눈동자가 정처없이 흔들렸다.
그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다가 화들짝 놀라 검을 손에서 놓고 뒤로 물러났다.
청벽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을 붙잡고 있던 자신의 손바닥이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빨갛게 피부가 일어나 있었다.
뜨거워서 데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
너무나 차가워서 손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극음(極陰)진기……?’
새하얀 손에 붙잡힌 부분부터 살얼음이 끼다가 마침내 청벽의 검은 완전히 하얗게 얼어붙어 버렸다.
기묘한 사내는 그제야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고개를 갸웃하는 듯한 모습.
느릿한 동작에서 기묘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흑시, 는…… 귀한 인재. 겨우 얻었다. 잃는 것은, 불가.”
단어만 더듬더듬 말하는 듯 어눌한 말투.
기묘한 사내는 막 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느긋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청벽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기묘한 사내는 마치 주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존재 같았다.
시선과 관심이 그에게로 쏠리고 나니 다른 곳을 쳐다볼 수도 없다.
시선을 잠깐이라도 다른 데로 돌리면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청벽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기묘한 사내는 느릿하게 다가오고, 청벽은 조금씩 물러나며 극도의 경계 태세를 취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청벽은 어느 순간 주변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거구의 사내로부터 느껴지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검은색 방패에 둘러싸인 채 홀로 서 있었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산혈해.
이백여 명 청성 제자들이 모조리 죽어 있었다.
“……!”
심마가 이런 것일까.
청벽은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커헉…….”
그 순간 그의 귀에 익숙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청벽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고,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바로 몸을 날렸다.
그곳에 있었다.
적하 진인.
대청성파의 장문인이었던, 그의 사부님.
“청…….”
적하 진인은 유언조차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살기 어린 눈매의 청년이 철조로 그의 가슴을 꿰뚫어 버린 탓이었다.
적하 진인의 얼굴에서 빠른 속도로 혈색이 사라졌다.
창백해진 안색, 아래로 내리깐 눈에는 초점이 없다. 청성파를 이끌던 거인은 죽음의 늪에 빠져 버린 것이다.
“사부니이임―!”
청벽은 절규했다.
청벽이 가까이 다가가자, 도철은 순순히 비켜서서 적하진인의 시신을 건네주었다.
청벽은 피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가.
청벽의 정신은 점점 깊은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
“민초.”
“아아, 저 사람들? 놔둬. 우린 황실 사람들이야. 죄 없는 자를 죽여선 안 되지.”
“어땠지?”
“아아, 청성파?”
도철은 가슴 언저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보다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확실히 무림인은 달라.”
“그런가.”
“하핫. 기대돼. 엄청 기대된다고! 얘네 흑시부대도 마음에 들고. 아참, 부상자는?”
“다섯.”
“괜찮네. 너희 좀 더 조심해. 황실의 재산이 다쳐서야 되겠어?”
흑시부대는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숙이며 절대 복종의 모습을 보였다.
도철은 흑시부대의 완전한 지배자였다.
“저자, 는?”
“청벽?”
도철은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궁기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네 거잖아. 가져.”
“그러지.”
“어차피 목은 잘라서 효시해야 해. 황실의 위엄을 보여야 하니까.”
궁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다음은?”
“운남은 칠성 뭐시기 때문에 문파가 없고…… 아미파로 갈까? 사천 당문으로 갈까? 고민되네.”
도철은 즐거운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