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165화 (294/686)

7권 15화

제22장 무룡지몽(武龍之夢) (2)

소호는 머리만 긁적이며 답을 하지 못했다.

“그게…….”

“응?”

“하나만 고르기가 어려워.”

진구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하나만이라니. 설마 다 갖고 싶은 거냐?”

소호는 십팔반병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각각 매력이 있는데 아깝지 않아?”

“아깝다고……?”

“편이든 곤이든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는 포기해야 하는 거잖아!”

“아니,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호를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도 참 특이한 애다.”

“으음, 봐봐, 삼촌. 다 재미있는 면이 있잖아. 검을 쓰다 보면 창을 쓰고 싶고, 창을 쓰다 보면 도를 쓰고 싶을 때도 있어. 왜 꼭 하나만 골라야 해? 모든 병기를 한꺼번에 쓸 수는 없을까?”

“당연히 없지. 그런 말은 처음 듣네. 왜? 십팔반병기를 전부 등에 메고 다닐라고?”

“…….”

“야야, 그 표정 어디서 많이 본 표정인데.”

소호는 재밌는 생각이 난 듯 배시시 웃을 뿐이다.

오랫동안 소호를 봐 온 진구는 알 수 있었다. 의뭉스러운 웃음을 짓는 게 딱 장난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소호야. 미리 말해 두겠는데. 이상한 물건 만들 생각하지 마. 내가 네 생각을 모르겠니. 너는 마을에서 맨날 광 영감님 찾아가서 희한한 거 만들어 달라고 하고 그러잖냐.”

진구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재무능이라는 말 못 들어 봤냐? 여러 방면으로 재능이 있지만 한 가지에 특출하진 못한 사람.”

“응. 들어 본 적은 있어.”

“여러 무기를 쓰는 게 당장은 즐거울지 모르지만……. 깊게 들어가면 힘들 거야. 한 가지 무기만 몸에 익히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길이거든.”

진구는 차근차근 설득을 하려다가 조금 짜증이 난 듯했다.

“아니, 애초에 큰형님은 창을 쓰시잖냐. 우리 적룡기마대도 둘째 형님 제외하고는 다 창을 쓰고. 그러니 너도 창을 쓰면 되는 거 아니냐!”

“으음……. 창도 좋긴 한데…….”

소호는 선뜻 수긍하지 못했다.

“창은 최고야. 만병의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진구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홀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삼촌, 만병지왕은 검 아니었어?”

“흥.”

진구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런 건 다 검 쓰는 놈들이 부풀려서 하는 말이야. 내가 전장에서 얼마나 다양한 병기를 상대해 봤는데?”

“그래? 삼촌은 온갖 병기들이랑 다 싸워 봤어?”

“싸워 봤지.”

진구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먼 거리를 제압한다는 건 큰 이점이야. 활도 좋고 유성추나 사슬낫도 좋지. 싸우기도 전에 먼저 한 대 때리고 시작하니까. 내가 죽기 전에 적을 먼저 쓰러뜨리고 싶다? 그럼 무조건 병기가 길수록 유리해.”

진구는 마치 눈앞에 검을 든 상대가 있는 것처럼 손날로 앞을 겨누며 살짝 자세를 잡았다.

창을 쭉 뻗은 듯한 자세.

그것만으로도 검이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으음.”

“아마 검이 좋다는 건 그런 걸 거야. 갖고 다니기 편하다는 거. 큰 무기를 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긴장하니까. 검을 들고 다니면……. 뭐, 검무(劍舞)를 출 때 쓴다든가, 아니면 제사용 검이라고 둘러댈 수도 있고.”

의외로 그렇게 검을 숨기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면서, 진구는 딱 부러지게 단언했다.

소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근데 그러면 운화 삼촌은? 운화 삼촌은 검을 쓰잖아? 전장에서 싸울 때 늘 불리했겠네?”

“어? 으음, 크흠! 그건…… 저기…….”

처음으로 진구의 말문이 막혔다.

“야, 인마. 둘째 형님은 이야기가 달라. 예외라고.”

“에이, 뭐야. 그런 게 어딨어. 창이 만병지왕이라는 거 다 지어낸 거지?”

“뭐야?”

진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야. 둘째 형님은 예외야. 그 사람은 대형처럼 특별한 사람이라니까? 막강한 강기를 재채기하듯이 뿜어내는 사람이라고.”

“으음…….”

“얼굴 보니 와 닿지가 않는구나?”

“하긴, 운화 삼촌이 강한 것 같긴 해.”

“당연하지. 옛날에 둘째 형님이 검을 들고 나가면 적들이 벌벌 떨었어.”

“음……. 그러니까…….”

소호는 지금까지 들은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무기가 길면 유리하긴 한데, 사람이 특별하면 다르다? 그럼 검이든 창이든 상관없네? 어차피 어떤 무기를 쓰든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니까?”

“으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만…….”

진구는 난감해하며 고민하다가 머릿속에서 번뜩인 생각으로 겨우겨우 변명을 짜냈다.

“소호야. 둘째 형님 무기는 장군검이잖냐. 그것도 쌍검.”

“응?”

“장군검은 길이가 엄청 길어. 일반 검보다 커. 그래서 창에 대적할 수 있는 거야.”

“길이가 길어서……? 창이랑도 싸울 수 있다고?”

“그래! 봐봐, 심지어 둘째 형님은 장군검을 두 개나 쓰잖냐. 두 개를 합치면 창만큼 길어요.”

장군검의 길이를 생각해 보라는 듯 진구가 양손을 넓게 펼쳤다.

씩 웃는 얼굴엔 평소보다 자신감이 부족했다.

“흐음.”

소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삼촌. 내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바보는 아냐.”

“……!”

“날 예전의 소호로 보면 곤란해, 삼촌.”

소호는 미간을 좁히며 최대한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아버지에게도 보여 줬던 ‘믿음직한 표정’이다.

진구는 충격을 받아 굳어 버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소호는 진지하게 자신의 ‘진짜 병기’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궁(弓), 노(弩), 창(槍), 도(刀), 검(劒). 그 밖에도 쭉 늘어서 있는 십팔반병기들이 제각각 소호를 유혹하고 있었다.

사실 창에 가장 먼저 눈이 가기는 했다.

창이라는 무기는 소호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자주 본 익숙한 무기였으니까.

그런데 왠지 창을 성명병기로 삼아 깊게 수련해 보겠다고 하기에는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검도 좋고, 곤도 좋고. 으음, 한 가지 골라서 깊게 수련해 보긴 해야 하는데…….’

소호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어째서 창에 마음이 내키질 않는 걸까?

절친한 친구인 조서인이 창을 쓰기 때문에?

아버지랑은 다른 걸 해 보고 싶어서?

아니, 그것과는 뭔가가 달랐다.

‘무룡전이 이제 코앞이야. 어떤 무기를 골라야 강해질 수 있을까?’

소호는 자신을 처음으로 패배시켰던 또래의 소년, 유준을 떠올렸다. 유준은 검 폭이 좁은 청강검을 기가 막히게 잘 사용하지 않던가?

‘눈이 안 보여도 자신에게 잘 맞기만 하면…… 아!’

소호는 원점으로 돌아가서 평소에 무공을 쓸 때 자신의 성향을 떠올려야 함을 느꼈다.

빠르고, 경쾌하고, 남들이 예상치 못하는 행동을 즐기는 싸움들.

언제 어디서든, 어떤 자세에서든 무기를 휘두를 수 있어야 할 자유로움.

“아……!”

그렇게 생각을 거듭할수록, 창이라는 무기는 소호와 어딘가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양손으로 쓰는 큰 병기는 안 된다.

한 손으로 쓸 수 있는 자유로운 무기여야 했다.

소호는 얼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낙양 시내, 태산박과의 싸움에서 사용해 봤던 박도의 감촉을 떠올렸다.

“그렇네. 그거야.”

깨달음은 언제나 갑작스레 찾아오는 법이다.

소호는 자신이 뭘 사용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십팔반병기들 중 한 곳으로 다가가 무기를 집어 들었다.

손에 착 감기는 느낌.

칼날이 조금만 더 길고, 손잡이는 조금 짧았으면 좋겠긴 하지만.

집어 들어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소호가 지금 가장 잡고 싶은 무기는 이거였다.

“이거야. 삼촌. 난 도(刀)가 좋아.”

소호가 양손으로 잡아 눈앞에 두고 바라보는 무기.

길이는 사척.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칼날에 양손으로 잡아도 될 것처럼 충분히 긴 손잡이를 지닌 박도(朴刀)였다.

파괴력과 효용성, 무공의 자유로움을 생각했을 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박도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소호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며 웃는 사이, 진구는 소호와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며 탄식했다.

“도라니……. 하필 또 그걸 잡냐.”

진구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소호야, 그걸 잡은 이유가 뭐니?”

“응? 그냥, 나랑 딱 잘 맞는다 싶어. 쓰기도 편하고, 자유롭고. 그러면서 파괴력도 있고.”

소호는 자세를 낮추면서 박도를 중단에서 살짝 아래로 당겨 보았다.

쉭―.

손목을 중심으로 작게 반원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는 박도.

자유로운 동작에 편안한 호흡이 실렸다. 마치 소호의 팔이 길게 늘어난 것만 같았다.

공기가 갈라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는 자연스레 뒤에 따라붙었다.

소호는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도를 잡아 온 사람처럼, 능숙한 자세로 서있었다.

“과연. 잘 어울리긴 하네.”

진구는 탄식하면서도 감탄했다.

“나 참,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네가 하필 도를 고르다니.”

소호는 진구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왜 도를 싫어해, 삼촌?”

“그런 게 있어. 과거의 인연이랄까, 악연이랄까. 네 아버지, 그러니까 대형의 숙적이었던 사람이 그런 도를 썼거든.”

“아…….”

소호는 어린 시절에 들었던 말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 텐챠이라는 사람 말이지?”

“알아?”

“어릴 때 들은 적이 있어. 근데 무슨 무기를 썼는지는 몰랐어.”

진구는 아련한 얼굴로 먼 곳을 응시했다.

그의 초점 없는 시선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온통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던 전장,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지만 한편으론 낭만이 있던 싸움터.

“푸른 하늘의 늑대, 텐챠이. 신응도라 불리는 만도를 기가 막히게 잘 썼어. 대형처럼 만부부당의 장수였고. 붉은 악귀와 푸른 늑대. 북방의 전장에선 그 두 사람이 숙적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와아.”

“어쨌거나, 네가 도를 고른다니 신기하다. 뭐, 요즘 군부에서도 검은 점점 사라지고 박도를 지급한다고 듣긴 했다만.”

진구는 심정이 복잡해 보였으나, 소호의 선택을 인정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소호야. 너의 아버지, 대형의 무공은 잇지 않을 거야?”

“으음…….”

“참고로 대형의 무공은 이런 학관에서 배우는 것과는 수준이 전혀 다른 것이야.”

진구는 마지막으로 잘 생각하라는 듯 진중한 눈빛으로 소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호는 난감해져서 얼굴을 긁적였다.

“전에 그에 대해 아버지랑 이야기해 본 적이 있었는데…….”

“어, 그랬어?”

“응. 그때 분명히…….”

마을을 떠나 학관으로 오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소호는 가만히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아버지, 장기린은 감자를 깎던 나무칼을 내려놓지도 않고 별것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던 것이다.

“전쟁터에서 십 년쯤 구를 거 아니면 내가 배우고 싶은 거 배우라던데?”

“엉?”

진구는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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