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166화 (295/686)

7권 16화

제22장 무룡지몽(武龍之夢) (3)

“하하핫, 큰형님답네, 큰형님다워. 하긴 맞는 말이야. 큰형님의 무공과 전쟁터는 뗄 수가 없겠지!”

진구는 배를 잡고 웃었다. 진심으로 웃겨서 참을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 음…….”

솔직히 그 정도로 웃을 거라 생각하진 못했던 소호는 당황했다.

“하하핫, 어쩐지. 이제야 다 이해가 되네. 그래서 마을 영감님들이 막판에 너한테 뭐라도 하나 더 가르치려고 그렇게 난리였구나? 제대로 사부님이 돼 보겠다고?”

“어? 그랬나? 난 그냥 할아버지들이랑 놀았던 거 아니었어?”

“그게 아냐. 꼬맹아.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요. 게다가 그 영감님들. 마을 밖에 조금만 나가도 다들 한가락 하는 엄청난 사람들이라고. 밖에서 제자를 받겠다고 하면 지원자가 저어― 멀리 지평선까지 줄을 설걸?”

“으음…….”

소호는 진구가 자신을 놀리는 건지, 아니면 그냥 좀 과장을 해서 표현하는 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 말해 봐.”

“일연적룡무는 딱히 초식에 국한된 게 아니라고 하셨어.”

“흐음, 심득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

“그런 것 같아. 나중에 배우고 싶으면 그때 가서 배우면 되니 지금은 하고 싶은 걸 하래.”

“그랬구나. 그렇다면 내가 더 할 말은 없다.”

진구는 자리에 털썩 앉아서 소호에게 앞자리를 권했다.

소호는 얌전히 진구의 앞에 마주 앉았다.

“자! 도(刀)에 대해 알아보자.”

“……어? 갑자기?”

“도를 골랐다면 도에 대해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인마.”

“어, 응. 그건 그렇지. 그렇긴 한데…….”

“무기를 일단 잡아 보는 건 좋아. 직접 써 봐야 알게 되는 것도 있거든. 감각적으로 익숙해지는 건 중요해. 왜, 옛날 영웅록 같은 거 보면 검에 익숙해지려고 잘 때도 검을 잡고 자고, 밥 먹을 때도 검으로 떠먹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잖아.”

“어어……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소호는 당황했다.

검을 잡고 잤다는 이야기는 읽은 적이 있는 듯한데, 검으로 밥을 떠먹었단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검으로 밥을 떠먹을 정도로?”

“인마,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그렇게까지 무기를 가까이해서 얻는 게 뭐야? 그 무기에 대해 알게 되는 거잖아? 길이는 얼마고, 폭은 얼마고, 무게는 얼마인지. 그리고 잡고 휘두를 때 감각은 어떤지. 그런 거 말이야.”

진구의 말은 틀린 점이 없었다.

그 누구보다 즉흥적이지만, 의외로 계산적이고 냉철한 남자.

그게 바로 진구였다.

“그러니까. 네가 이왕 도를 선택했으면 그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그러고 수련을 시작하자는 거야. 알겠니?”

“으응.”

“크흠! 자, 그럼 잘 들어 봐.”

소호가 들고 있는 박도를 가리키는 진구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도는 종류가 많아. 사실 날이 붙어 있으면 거의 다 도라고 해도 되지. 가장 유명한 건 안모도(雁毛刀). 거위 털 칼이라고 불리는 종류인데, 이건 칼날이 직선형이야. 칼끝에 부딪치는 부분만 살짝 휘어져 있어. 검처럼 찌를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쪼개고 베는 능력은 그대로 유지했지. 투박하지만 실용적이야.”

진구는 능숙하게 막힘없이 설명해 주었다.

소호는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구의 설명을 들으니 안모도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다음은 유엽도(柳葉刀). 이건 사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어. 명나라 들어서면서 유행한 건데, 아마 몽고 놈들이 휘어진 만도를 자주 쓰니까 영향을 받은 것 같아.”

“어? 그래? 아까 텐챠이도 그렇다더니……. 몽고가 도를 많이 썼어?”

“많이 썼지. 말 위에서 곡예도 부릴 수 있는 놈들이 쓰기에 척 봐도 안모도보다 편하잖냐? 달리는 힘을 살려서 목을 날리기도 쉽고.”

진구가 손가락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 입으로 “켁.” 하고 소리를 냈다.

“흐음, 그렇구나.”

“자, 계속해서. 유엽도는 이름부터 ‘버들잎 칼’인 만큼 날 전체가 부드럽게 휘어져 있어. 사실 무기를 고를 때 ‘베는 힘’에 대해 파괴력을 논하자면 가장 중요한 건 칼날의 곡선이야. 그 곡선의 각도가 제일 영향을 많이 주거든.”

“어? 그래?”

“당연하지. 생각해 봐. 똑같은 칼이라도 칼날이 직선인 놈이랑, 둥그렇게 휘어진 놈이랑 어떤 게 더 상대를 잘 베겠냐?”

소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본능적으로는 ‘왠지 그럴 것 같다’라고 느낀 적은 있었다.

그 점을 진구가 명확하게 짚어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아아! 이렇게! 당기면서! 휙! 하면 동그랄수록 더 잘 베이겠다!”

“그렇지, 그렇지. 역시 내 조카야. 금방 이해하네.”

진구는 씩 웃으면서 손가락을 꼿꼿이 세운 손칼로 바닥을 탕탕 두드렸다.

“봐봐, 당겨서 베든, 밀어서 베든. 무언가를 베려고 하면 손목이랑 팔이 원을 그려야 해. 그런데 칼이 직선이기만 하면 몸의 힘이 덜 실려요. 칼날이 곡선이어야 어떤 각도에서든 강하게 베이지.”

“와아……! 그렇네. 맞아, 맞아.”

“곡선이 완만한지 급격한지에 따라 벨 때의 감촉이랑 파괴력이 완전 달라지는 거야.”

진구는 소호가 들고 있는 박도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안모도나 유엽도와의 칼날 각도 차이를 비교할 수 있게 직접 보여 주었다.

“그 밖에도 편도(片刀)라는 게 있는데, 이건 이름에서부터 쪼개는 칼이라고 쓰여 있지? 방패를 든 애들이 편도를 많이 써. 다른 칼보다 칼날이 많이 휘어져 있어서 상대를 베기에는 좋아. 박도랑 비교하면 이만큼이나 더 휘어져 있어.”

진구는 손가락으로 거의 동그라미를 그릴 것처럼 둥그런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알다시피 대도(大刀)라는 것도 있지. 운장대도 할 때의 그 대도.”

“아! 알겠어. 관운장의 청룡언월도 같은 것 말이지?”

“그래, 그거야. 그것도 칼이라고 하긴 해. 엄밀히 따지면 대형이 쓰던 진청룡도 대도에 가깝긴 하겠다. 칼날이 붙어 있으니까.”

“근데 삼촌. 박도에서 손잡이가 길면 대도가 되는 거잖아?”

“그렇지. 뭐, 엄밀히 따지면 칼날도 조금 달라지지만 거의 같으니 의미가 없고.”

진구는 유창한 설명을 끝내고 짝― 소리가 나게 박수를 한 번 쳤다.

“자, 그래서 우리 소호는 어떤 도를 쓸 거냐?”

“난 여전히 이 박도가 좋은 것 같아.”

“그래? 투박하지만 쓸모 있는 게 좋은 거구나.”

“근데 삼촌.”

“엉?”

“삼촌 되게 많이 아네? 난 삼촌이 창이 최고라고 해서 창밖에 모르는 줄 알았어. 누가 보면 도에도 관심이 많아서 직접 써 본 줄 알겠다. 그치?”

소호는 장난스럽게 배시시 웃었다.

진구는 헛웃음을 지었다.

소호가 의뭉스럽게 말하는 건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창을 고르지 않았다고 서운해했던 사실을 지적한다는 걸 그가 왜 모르겠는가.

“이놈, 이놈!”

진구는 기특하면서 괘씸한 마음을 담아 소호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으아아―! 삼촌이 또 나 괴롭힌다!”

“인마, 자꾸 놀리려고 들지? 그냥, 아주, 나이 들면서 점점 건방져 가지고.”

“히힛, 삼촌이 웃기잖…… 으악!”

“그래. 나도 그랬다. 여러 가지 무기가 재밌더라고. 너랑 똑같았어. 그래서 전장에서 이것저것 연구했었지. 적룡창을 얻기 전까지는 손에 집히는 대로 잡고 싸웠어.”

“오오? 그래?”

“전장에서 싸우다 보면 내 맘대로 상황이 흘러갈 것 같지? 아냐. 진짜 의외의 일이 매번 생겨. 싸우다가 창을 놓치면 어쩌겠냐? 아무거나 잡히는 걸로 싸워야지. 그치?”

진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느긋하게 십팔반병기를 둘러보다가 소호가 들고 있는 박도와 가장 비슷한 대도를 집어 들고 자세를 잡았다.

창을 잡았을 때와는 달랐다.

살짝 하체를 굽힌 채 상체도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발이 가벼워 보이는 자세였다.

지잉―.

날도 제대로 서 있지 않은 투박한 대도였으나 진구의 손에 들리니 상대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처럼 위협적으로 보였다.

씩 웃는 진구.

그의 칼끝이 소호를 겨누었다.

“헤에.”

소호의 눈이 반짝였다.

곧바로 튕기듯이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순식간에 역근경 진기가 임독양맥을 타고 흘러 전신에 활력을 주었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마음.

소호의 손에 들린 박도가 도첨을 정면으로 향해 진구를 겨누었다.

진구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호야.”

“응.”

“무기를 골랐다면, 앞으로 다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수련해. 이건 중요한 거야. 목표가 있으면 사람은 성장하거든.”

진구는 가벼운 말투로 말하고 있었으나, 눈빛에선 살기마저 느껴졌다.

“무룡전에 나간다고 했지? 그럼 이기고 와야지. 나이든 뭐든 상관없어. 강한 놈이 살아남는 거야.”

진구는 싸움 직전에만 보여 주는 웃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웃고는 있지만 사납고 싸늘한, 살짝 광기마저 보이는 즐거워 보이는 얼굴.

“자, 여기서 질문. 나는 어떻게 무공을 배웠을까?”

“……어?”

“돈이나 벌려고 들어간 군대에서 최고의 사내들을 만났고, 함께 싸웠어.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지. 근데 지금도 떠올리기 싫은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그게 뭘까? 소호야.”

진구는 “하하하.”라며 어색한 목소리로 웃었다.

“대형이랑 둘째 형님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나를 데리고 매일같이 대련을 하면서 날 바닥에 굴리셨거든.”

“어……?”

진구의 입에 미소가 걸린 건 아무래도 기특함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 어떤 때보다 만족스러워 보이는 진구의 얼굴을 대체 어떤 명시(名詩)가 표현할 수 있을까.

소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큰일 났네.”

소호는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항상 대련은 즐거운 것이었는데……. 이렇게 도망치고 싶은 건 처음이었다.

“잠깐만 삼촌. 대충 알겠는데. 근데 나한테 복수하는 건 치사하지 않아?”

“복수라니. 큰일 날 소리.”

진구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은혜를 갚는 거지.”

“으아아!”

“무룡전까지는 죽었다고 생각해, 소호야.”

진구가 달려들고, 소호는 본능적으로 그에 맞서 싸우며 대련이 시작되었다.

소호와 진구의 대련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칼날과 칼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대장장이의 망치질처럼 수련장 내부를 끊임없이 두드렸다.

소호가 자신의 성명병기를 정한 날.

무룡전을 위한 준비는 차차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

오늘은 유준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어찌나 기대되던지. 평소에 세 시진씩은 꼬박꼬박 자던 습관을 어기고 두 시진 만에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났을 정도였다.

유준은 오늘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둔, 평소보다 더욱 깨끗한 백의를 갖춰 입었다.

잘 마른 옷자락에서 나는 햇살의 냄새가 기분이 좋았다.

그는 맹인의 지팡이로 땅을 짚었다. 길게 자란 머리를 단정하게 묶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산학관 전체가 떠들썩한 걸 보니 오늘이 축제의 날이 맞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했다.

그토록 마음의 준비를 하며 이 날을 준비해 왔는데, 막상 축제의 날이 되자 당장이라도 다시 무산학관에 입학하던 그날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야.”

유준은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무산학관에서의, 내 마지막 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