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18화
제22장 무룡지몽(武龍之夢) (5)
“그렇구나. 주작방에서도 신입생이 나왔구나!”
소호는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무룡전에 신입생이 지원해서 나가는 건 흔한 일이 아니라고 들었다.
혼자만 출전하는 것 같아서 걱정되었는데, 똑같은 처지가 한 명이 더 있다니 마음이 든든했다.
“어…… 음, 그렇게도 생각이 되는군요…….”
섭주해의 시선이 잠시 허공을 헤매다가 돌아왔다.
“어쨌거나, 그보다 중요한건 무룡전에 출전한 신입생을 작년의 우승자와 붙여 두었다는 거예요.”
“그래? 그게 이상한 거야?”
소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이죠. 작년 우승자가 쉽게 올라가게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신입생들을 무룡전에서 금방 떨어뜨리기 위해서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아! 그런 의미였구나.”
소호는 섭주해가 책사의 눈빛으로 교관들과 각 기숙사의 방장들을 노려본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대진표라는 게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기가 쉽거든요.”
“그래? 수를 쓴 걸까?”
“네. 저는 확신해요. 참가자가 꽤 많은 걸로 아는데요. 전년도 우승자와 신입생이 첫 번째 경기로 붙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섭주해는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정찰일까? 주작방에서 노린 거라면 의도는 뭐지?”
“그런데 주해야.”
“예?”
“저번에 보니까 명로도 강해 보이긴 했어. 보법이 뛰어나고 특이한 몽둥이를 자기 손처럼 능숙하게 다루고. 숨겨 둔 무공도 있는 것 같던데? 생각보다 재밌는 싸움이 되지 않을까?”
소호의 말에 조서인이 격한 태도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음……. 맞아! 명로는 강해. 지난번에 싸울 때 엄청 고생했었어!”
“……그렇죠. 명로라는 저 소년도 강하죠. 마치 숨겨진 배경이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제 걱정은 다른 거예요.”
섭주해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사실 유준 선배가 누구와 붙든 저는 상관 없어요. 그저 저 모습을 보니 소호 형도 영향을 받을 것 같거든요.”
“나?”
“네. 소호 형도 신입생 참가자잖아요.”
섭주해는 고개를 돌리다가 저 멀리, 주작방 구역에서 황금 보료를 깔고 앉아 있는 주작방의 방장 곽도엽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소호와 섭주해를 지그시 응시하다가 코웃음 치며 고개를 돌렸다.
“황금 보료라니.”
자기애가 너무 강해도 우스운 법.
섭주해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소호 형도……. 처음부터 작년의 우승자, 아니면 그와 비슷한 최고 학년의 강자와 붙일 것 같아요.”
“어어……. 작년 준우승이 누구더라? 이태산 선배? 아니면 태성천 선배?”
“네. 태성천 선배는 무룡전에 안 나왔던 걸로 알고 있고. 이태산 선배가 준우승이었죠.”
조서인은 사색이 되고 섭주해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이들은 모두 소호를 아낀다.
무리해서 무룡전에 출전했으나, 이왕 출전했으니 소호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아이들이었다.
“히힛.”
소호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런 친구, 형제가 있으니 소호는 힘을 더 낼 수 있었다.
“괜찮아, 얘들아. 어차피 언젠가는 싸울 사람들이잖아? 미리 싸우게 되더라도 상관없어.”
“그래도…….”
“어차피 다 이겨야 우승을 할 수 있는 거잖아? 좀 더 노력해 보지 뭐.”
노리는 것은 우승.
어차피 유준을 이기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할 터.
섭주해와 조서인은 조금 놀라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수긍하며 강한 눈빛으로 소호를 응원해 주었다.
“그래요. 소호 형은 할 수 있을 거예요.”
“맞아. 소호야. 나도……! 나도 내년에는 꼭 도전할게.”
소호는 섭주해와 조서인에게 배시시 웃어 주었다. 대미미는 소호의 소매를 꾹 잡아당기며 따라 웃었다.
때앵―.
종이 울렸다.
유준과 명로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
철표 교관에게 호명당한 명로가 단상 위로 올라왔을 때 유준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호.
햇살처럼 밝은 소년이 자신의 친구들과 모여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에 유준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선배. 어딜 보시는 겁니까?”
서로를 향해 짧게 포권을 취하는 사이, 명로는 사나운 얼굴로 유준을 노려보았다.
“저 정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방심하시면 큰 코 다치실 텐데요.”
“그래?”
명로가 사나운 불이라면, 유준은 미동도 하지 않는 거암이다.
유준이 별반 감정 없는 모습으로 대답하자 명로의 두 눈에서 더욱 강한 감정의 불꽃이 타올랐다.
“돈 때문에 나오긴 했습니다만 별로 의욕이 없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마주치니 최선을 다하고 싶어지네요.”
명로는 몽둥이를 강하게 움켜쥐고, 내딛는 발에 힘을 잔뜩 실었다.
쿵.
발소리가 울린다.
유준은 그제야 다시 시선을 돌려 명로를 봐주었다.
“미안하게 됐네.”
“예? 왜죠?”
“평소라면 충분히 겨룰 시간을 줄 텐데. 오늘은 무조건 전력을 다해야만 해.”
유준은 들고 있던 지팡이에서 검을 뽑아냈다.
드러나는 은빛 광채.
시리도록 푸른 검 날에 유준의 살기가 담긴다.
“……!”
명로의 눈빛이 흔들렸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유준의 검 끝을 보자, 그가 평소와는 뭔가가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유준이 들고 있는 검 주위로 무형기가 꿈틀거리며 명로의 예민한 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무형기는 그 어떤 암기보다 위험해 보인다.
명로는 마른침을 삼켰다.
“준비.”
철표 교관이 두 사람을 정렬시킨 뒤, 뒤쪽에 놓인 커다란 종 앞으로 다가갔다.
“와아아아―!”
지켜보던 소년, 소녀들의 입에서 기대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이백 명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한 점으로 모여드는 그 순간.
땡―.
종소리가 울렸다.
명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마치 술에 취한 듯한 움직임.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쓰러질 듯하더니, 어느새 유준이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까지 도달했다.
“하압!”
명로는 결의에 찬 얼굴이었다.
후우웅―.
조서인을 괴롭게 만들었던 몽둥이의 움직임은 여전했다.
못 본 사이에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전보다 강해진 실력, 상대의 무기를 제압하는 감각도 여전히 뛰어났다.
쩌엉―!
까드드득―.
유준의 검과 한 번 부딪치자마자, 명로는 기묘한 움직임으로 몽둥이를 계속 검과 얽으려 했다.
쇠만큼이나 단단한 몽둥이의 옆면이 검 날과 부딪치며 귀를 아프게 만들 정도의 거센 소음을 냈다.
느릿하게 회전하는 몽둥이.
한쪽에 조각된 개의 이빨이 유준의 검을 꽉 깨물어 고정시키려 들었다.
까앙!
“흠.”
유준은 검 날을 절반 비트는 것만으로 명로의 몽둥이를 비껴 냈다.
유준은 옆으로 몸을 반회전시켰다.
중심축이 옆으로 움직이고, 서로의 몸이 각자 반대 방향으로 스쳐 지나간다.
“후우.”
작게 내쉬는 한숨은 유준의 반격의 신호탄이었다.
쿵.
가볍게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유준의 살기가 폭발했다.
화아아악―.
마치 수천, 수만 개의 바늘에 찔린 듯 치명적이고 저릿저릿한 감각이 명로를 덮쳤다.
위협적이고 농후한 살기가 명로의 숨을 헐떡이게 만들었다.
마치 거대한 뱀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눈앞에서 입을 쩍 벌리는 것처럼.
그를 향해 덮쳐 오는 유준의 기세에 살기가 가득했다.
명로는 시궁쥐처럼 뻣뻣하게 굳은 채 다급하게 입을 뻐끔거렸다. 숨이 쉬어지질 않아 생기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 어…….”
그는 압도되어 있었다.
명로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가, 내력을 이용해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찔거리는 손끝.
마침내 몽둥이가 다시 움직여 정면을 가로막았다.
스륵―.
그때 날카로운 칼날에 천이 찢기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유준의 검 끝이 왼쪽에서부터 넘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움직임이었다.
그저 넘실거릴 뿐 대단치 않은 공격이었는데, 검 끝이 명로의 몽둥이와 닿기 직전에 극적으로 변하였다.
휘리릭―.
“……!”
명로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번엔 살기에 압도되어서가 아니다.
유준의 검술이 천변만화하며 수많은 가능성으로 그를 옥죄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단을 막으면 하단으로 향할 것이고, 하단으로 향하면 중단을 노릴 것이다.
허초를 섞어 중단을 공격하게 만들려고 하면, 허초의 존재를 비웃듯 좌상단과 우상단을 동시에 노릴 것처럼 검 끝이 무한한 변화를 품고 있었다.
키잉―.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감각 속에서 명로는 몰릴 대로 몰려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결국 결심을 했다. 한 가지의 가능성을 믿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타구봉법.
구파일방 중 개방에만 전해지는 무공을 펼쳐 냈다.
취팔선보에 이은 신묘한 봉술이 강대한 힘을 품고 천지사방을 점해 명로의 전면을 차단했다.
“뭣……?”
그런데 명로의 시야에서 유준의 검이 사라졌다.
후우웅―.
명로가 큰맘 먹고 휘두른 타구봉법이 허공을 때린 셈이다.
허탈해진 명로의 목덜미에 서늘한 감촉이 닿았다.
유준은 어느새 움직였는지 명로의 등 뒤에서 그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저릿저릿한 느낌.
살기로 가득 찬 검 날이 명로의 목덜미에 옅은 상처를 남겼다.
“후우.”
명로는 봉 끝을 내렸다.
변명의 여지도 없는 패배였기 때문이다.
철표가 올라와 유준의 승리를 선언하자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검을 갈무리했다.
유준에게 있어서는 승리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 보였다.
돌아서서 나가려던 유준의 등 뒤로 명로가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 살기, 대체…… 얼마나 죽인 겁니까?”
유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겨 단상 아래로 내려갔을 뿐이다.
***
“세상에.”
주변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대련이 시작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모든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
불패검이라 불리는 유준이 엄청난 살기를 뿜으며 명로를 몰아친 것과, 명로가 신공절학으로 보이는 봉법을 사용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준의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한 채 순식간에 패배하는 모습은 지켜보던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명로도 예상외로 강했는데. 근데 불패검이 저 정도로 강했었나……?”
“살기를 뿜으니 무시무시한데?”
“보고 있으니 섬뜩하네.”
주변 학생들은 목소리에서 불쾌감을 숨기지 못했다.
유준이 가진 힘은 살기가 가득한 강함이었다. 인정하기 싫을 수밖에 없었다.
“소호 형.”
“소호야…….”
섭주해와 조서인. 그리고 말없이 응원하는 대미미의 시선을 받으며 소호는 묵묵히 서 있었다.
소호는 유준과 처음으로 대련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그랬었다.
처음엔 소호가 이기고 있었지만, 유준이 살기를 뿜어내니 패배하지 않았던가.
“하나도 안 변했네.”
소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강자와의 싸움은 즐겁기 때문이다.
그때를 맞춘 듯, 철표가 다음 경기의 주인공들을 호명했다.
“장소호! 그리고, 태성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