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20화
제22장 무룡지몽(武龍之夢) (7)
‘좌상단. 세 치 두 푼.’
소호는 기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쏜살같이 날아드는 검을 보면서 그 검이 어디로 향할지, 얼마나 강한 힘으로 다가와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멈출지가 두 눈에 선명히 보이는 듯했다.
만약 손이 하나 더 있다거나 그런 종류의 감각이었다면 적응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광경 중에 그저 새로운 정보를 알 수 있을 뿐이니. 그 감각이 새롭고 신묘하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새롭게 보였다.
상대방의 호흡, 상대방이 사용하는 근육, 주변에 존재하는 진기의 흐름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합해져서 머릿속에서 자꾸만 종합적인 결론을 제시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소호는 상대방이 어디를 어떻게 공격하는지를 일 촌, 일 푼 단위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의도해서 계산하는 건 아니었다.
사과 하나와 배 하나가 같이 있으면 두 개라는 걸 알게 되듯.
그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검 끝의 거리가 떠올랐다.
‘진구 삼촌이랑 대련할 때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었는데……. 진짜네. 다 보여. 재밌다. 피하기가 쉬워졌어!’
소호는 좌상단으로 날아드는 검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 냈다.
예상 그대로였다.
세 치 두 푼.
태성천의 공격은 소호의 몸을 세 치 두 푼만큼 찌를 수 있는 공격이었다.
즉, 이론적으로는 소호는 세 치 두 푼만큼만 몸을 움직이면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쉬이익―.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혹시 몰라 겁이 나서 다섯 치 만큼 뒤로 몸을 빼긴 했지만, 태성천의 검은 정확하게 세 치 두 푼만큼의 거리만 더 찔러 들어왔다가 돌아나갔다.
“히힛.”
소호는 입가의 미소가 짙어졌다.
‘다시 한 번 좌상단. 세 치 한 푼. 아! 허초다. 삼 연속 찌르기네. 세 치 반.’
소호는 아지랑이 같은 움직임으로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냈다.
머릿속으로는 바로 어제까지 저녁마다 이어지던 진구와의 대련을 떠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잘 피하기 시작하자, 진구는 소호에게 뭔가가 있다고 느꼈는지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어깨와 다리에 심하게 멍이 든 것도 그러한 이유.
절대로 봐주는 건 없는 삼촌이기 때문에 매번 대련 때마다 목숨을 거는 듯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그 끝에 얻어 낸 능력이었다.
소호는 이게 뭔지 몰랐지만, 자신이 노력해서 따낸 과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걸 원(院:담장)이라고 부르자. 거리는 일 장(丈) 정도……. 으음, 그쯤 되나? 아무튼 그 담장 안쪽에서 내 시야에 닿으면 움직임이 보이니까.’
“이 자식……!”
두 번째 초식마저 실패하자 태성천은 소호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낀 듯했다.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소호를 응시하더니, 이내 분노에 휩싸여 강한 기세를 뿜어냈다.
“계속해서 낭창낭창……. 하루 종일 피하기만 할 거냐!”
태성천이 안정적인 발놀림으로 몸을 한 바퀴 회전했다.
구궁(九宮)의 묘리를 담은 보법 끝에 손을 떨쳐 내니, 태성천의 검이 두 개로 분열하듯 잔상을 만들어 냈다.
눈으로만 봐서는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기 힘들 만큼 잘 단련된 환검(幻劍)이었다.
‘좌상단 세 치……. 허초. 실제론 우측 중단, 몸통으로 세 치 반.’
지금까지의 공격 중의 가장 빠른 공격이었다. 소호의 얼굴에 장난기가 떠올랐다.
‘한번 해볼까?’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검에 현혹되지 않고, 소호는 좌측으로 한 걸음을 옮기면서 몸을 반회전 했다.
“흡……!”
소호는 잔뜩 긴장한 채로 네 치만큼만 피해 보았다.
공격이 세 치 반을 들어올 것 같았으니 이건 모험이었다.
예상대로라면 고작 반 치의 틈만 남는다. 만약 소호의 계산이 틀렸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패배를 하는 것으로 대련이 끝날 테니까.
쉬이익―.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성천은 감탄이 나올 만큼 멋들어진 자세로 검을 찔렀다.
순속의 검은 소호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소호가 입고 있던 무복의 허리끈이 허공에서 폭발하듯 터지며 실 가닥이 낱낱이 흩어졌다.
검은 피했으나 그에 실린 경력이 허리끈을 때린 탓이다.
“으아아?”
소호는 당황하며 옷깃을 여미고, 터지지 않은 부분만을 사용해 다시 허리를 조였다.
배시시 웃는 얼굴에 쑥스러움이 담겼다.
“오오오!”
“아앗……!”
얼마나 공방이 아슬아슬했는지 주변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소호가 얻어맞았으면 했던 자들의 아쉬움과 소호를 편들던 자들의 안도의 한숨이었다.
“너…….”
한 편, 세 번째 초식을 전개했던 태성천은 진심으로 놀란 듯 보였다.
부릅뜬 눈으로 한참 동안 멈춰 서서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더니, 가늘게 눈을 뜨고 의심스럽게 소호를 노려봤다.
태성천은 정교한 검술을 익힌 무인이기에, 검술을 한 치 앞에서 피해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훌쩍 뛰어 무작정 멀리 도망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늘 상대방의 틈을 노리면서 모든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간다면?
그건 달인의 경지다.
검술에 있어서 일가를 이룬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신기인 것이다.
“너는 검사가 아니다. 그러니 보일 리가 없어.”
태성천은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소호는 태성천을 향해 진심을 담아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걸로 삼 초식은 끝이에요. 그런데 검술이 되게 정확하시네요. 어떻게 공격하고 싶은 위치에서 한 푼만큼도 차이가 안 날 수가 있지?”
“정확하다고……?”
“무당파의 검술인가요? 뭔가 예전에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소호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되물었으나 태성천은 얼굴만 심각해졌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장소호.”
잠시의 침묵 후에 태성천은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전력을 다하겠다.”
“즐겁네요.”
소호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선배의 검보다, 제 박도가 세 치 정도 길어요.”
소호는 자신이 들고 있는 박도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검 날만큼이나 손잡이도 긴 게 박도였다.
손잡이의 끝부분을 잡으면 태성천의 청강검보다 세 치 정도는 길어진다.
“무기의 길이 따위. 무공의 높낮이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지.”
“그런가요?”
소호는 납득이 가질 않았다.
“저랑 친한 삼촌이 싸움에서 무기의 길이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거든요.”
“검은 만병지왕.”
태성천은 그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검 끝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키잉―.
깨끗한 청강검 위로 푸른색 검기가 연기처럼 일렁거리다가 단단하게 굳어졌다.
“오오!”
“검기다!”
“과연 태성천……! 열다섯에 벌써 뚜렷한 검기라니!”
관전하던 학생들의 감탄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태성천의 검기는 단단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태성천은 구궁의 묘리를 담은 보법으로 소호를 향해 먼저 공격해 들어왔다.
앞으로 내딛는 축발.
정면으로 뻗는 검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다.
“어?”
소호는 눈을 의심했다.
태성천의 검은 소호에게 닿지 않는 위치였다.
뒤로 세 치가 모자라달까.
가만히 서 있어도 검에 닿지 않으니 일순 당황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서서 무슨 의도일까 의심스러워하고 있으니, 태성천은 소호의 반응을 보고는 검을 위로 홱 들어 올렸다.
푸른 검기에 휘감긴 청강검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러고는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참격.
마치 두 명이 검을 휘두르듯 전혀 다른 느낌의 공격이었다.
무당비전 양의검.
무산학관에 전달된 무당산의 비기가 태성천에게 이어진 것이다.
검기가 불꽃처럼 치솟더니, 마침내 소호가 있는 곳까지 닿았다.
‘세치 반.’
소호는 몸을 비스듬히 돌려서 공격을 피해 냈다.
쩌억―.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검기는 단단한 돌바닥을 가르면서 깊은 흔적을 남겼다.
거기서 태성천은 갑자기 허공으로 뛰어올라 몸을 한 바퀴 회전했다.
파라라락―.
넓은 옷자락이 펄럭이며 시야를 가린다.
그 순간.
키잉―.
수풀 속에서 뛰쳐나오는 독사처럼, 넓은 소맷자락에 구멍을 내면서 뾰족한 검첨이 튀어나왔다.
소호는 황급히 고개를 젖혀 피해 냈다.
검 끝이 아슬아슬하게 소호의 목덜미를 스치면서 천을 길게 찢어 버렸다.
‘검기는 한 치만큼 더 길구나.’
태성천의 눈빛이 번뜩였다.
“눈으로 보고 있었군!”
치솟는 기세.
약점을 잡았다는 듯이 태성천은 정신없이 몰아쳤다.
때로는 정교한 찌르기로, 때로는 패기 넘치는 참격으로 공격이 연이어진다.
소호는 묵묵히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삼십 초 정도의 합이 이어졌다.
그리고 태성천의 참격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순간.
소호의 손에 들려있던 박도가, 허공에 아름다운 반월을 그린다.
촤아악―.
“……!”
깨끗한 호선을 그린 두개의 무기가 종이 한 장 차이의 간격을 두고 스쳐 지나갔다.
똑같은 수직 참격이었으나 두 사람의 모습은 극명하게 갈렸다.
검을 내려 그은 자세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지는 태성천.
정갈했던 옷차림이 흐트러지며 우측 쇄골부터 허벅지까지 수직으로 옷이 잘려 나갔다.
허리띠가 터져 나가고, 드러난 상체 위로 일정한 깊이의 미세한 붉은 선이 낙인처럼 새겨졌다.
연무장 전체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그에 반해 반대쪽의 소호는 생채기 하나 없이 웃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말했죠?”
소호는 환하게 웃었다.
“제 박도가 세 치 더 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