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4화
제23장 천무공자(天武公子) (4)
만약 그 물건을 던져 공격했더라면 소호나 조서인이 반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걸 수레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발밑으로 던졌다.
펑―.
“어?”
소호를 포함한 모두가 멍하니 굳어 버렸다.
처음엔 그저 연막탄인 줄 알았다.
자그마한 폭음과 함께 터져 나온 백색 가루가 기껏해야 성인 남성의 종아리까지 올 정도의 양밖에 안 되었으니, 그게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런데 ‘실패가 아닌가?’라고 생각한 순간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파바바박―.
“……!”
백색 가루가 닿은 부분이 폭발하듯 불타면서 불꽃을 튀기고, 그 튀겨진 불꽃에서 또다시 불꽃이 피어오르며 순식간에 사방으로 흰색 연기를 뿜어낸 것이다.
마치 불꽃놀이 같았다.
단, 불타고 있는 것은 폭죽이 아니라 광소를 터뜨리는 한 사람이었다.
“하하하핫! 내 이름은 자홍(資洪)! 화산파의 살아남은 이대 제자이니라! 왕진에게 전해라! 백검(白劍)이…… 백검이 너를…… 심판할 것이다아아아―!”
자홍이라는 자의 마지막 말은 거의 비명을 지르는 것에 가까웠다.
소호는 무서운 꿈을 꾸고 잠에서 깬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집념의 끝을 본 기분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몸으로 사방에 연기를 뿜어내며 노려보는 자홍의 눈빛은 광기라는 말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모두가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늘 향이……?”
“독연이다! 뒤로 물러나!”
호위대장은 소호와 서인을 손바닥으로 밀며 물러서게 만들었다.
연기에서는 묘한 마늘향 같은 악취가 났다. 매캐한 느낌이 들면서 콧속이 따끔거렸다.
지켜보던 호위병들도 황급히 물러나 손이나 천으로 얼굴 앞을 가렸다.
“저런 무시무시한 화기가 있단 말인가……!”
호위대장의 얼굴은 경악과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와중에 수레 안은 아비규환이었다.
멍하니 앉아 있던 복면인들이 창살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으아아아―!”
“백린(白燐)이다!”
“살려 줘! 나는 상승 무공을 익히고 싶었을 뿐인데……! 도대체 왜……!”
“숨이…… 숨이……!”
고작 숨 몇 번 들이마실 시간 만에 모든 일은 끝나 있었다.
중앙에서 시작된 불은 창살까지 포함한 수레 전체로 번져 모든 것을 활활 태웠다.
복면인들은 창살을 붙잡은 채로 축 늘어졌다. 연기에 질식되어 콜록거리는 동안 백린이 그들을 덮쳤다.
번쩍. 번쩍.
몇 번 불꽃이 튀기는가 싶더니 걷잡을 수 없는 큰 불이 되어 버렸다.
소호는 그 잔혹한 광경에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피와 불꽃, 그리고 비명 소리.
광기에 휩싸여서 웃던 자홍이라는 남자.
그는 도대체 어떠한 신념을 갖고 있기에, 수십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스스로의 목숨도 불태운 것일까?
‘머리가……!’
소호는 갑자기 머릿속이 지끈거리면서 가슴이 두근거려서 가슴을 붙잡고 비틀거렸다.
“아…….”
소호가 휘청거리자 옆에서 서인이 당황하며 부축해 주었다.
“왜, 왜 그래! 충격받았어? 괜찮아. 마음을 가라앉혀! 저기, 어, 그, 그러니까…… 눈을 돌리면 돼!”
정작 본인도 충격을 받아 울상이면서 조서인은 소호를 안심시키려는 듯 좋은 말들을 해 주었다.
소호는 철 요대를 붙잡고 몇 번 심호흡을 하였다.
이상했다.
광소를 터뜨리던 자홍의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 남아 있는 듯했다.
“고마워, 서인아. 이제 괜찮아. 잠깐 기분이 이상하더라.”
소호는 고개를 몇 번 흔든 뒤 다시 맑아진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은 어느새 한 풀 꺾여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아비규환 같았던 수레 안.
그 중심에 새카맣게 탄 뼈가 꼿꼿이 서 있었다. 자홍이 서 있었던 자리였다.
“백검이 너를…… 심판할 것이다아아아―!”
광기 어린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했다.
한때 자홍이라 불리는 인간의 집념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 주는 듯했다.
“불을 꺼라! 그 이상한 화기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고!”
호위대장의 지휘 아래 호위병들이 다 같이 달려들어 남은 불을 끄고 시신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백린이라 불리던 화기가 있을지 모르니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걷는 걸음걸이, 시신을 치우는 손길도 조심스러웠다.
“못 볼꼴을 보고 말았군. 그나저나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호위대장은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그는 뒤쪽을 힐끔 쳐다봤다.
이 자리에서 가장 어린 소녀, 서유림도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서 하염없이 잿더미만 바라보고 있었다.
“서인아, 잠시만.”
소호는 조서인을 데리고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서인아. 우리 임무가 뭐였지?”
“어? 어어. 그게…….”
조서인은 서유림을 위로해 줘야 하나 고민하는 듯 보였다. 더듬더듬 대답하면서도 계속해서 마음이 쓰이는지 안타까운 표정으로 서유림을 힐끔거렸다.
“서가장의 딸을 호위하는 것. 그리고…… 만약 누군가 습격한다면 습격자를 잡아와서 정체를 밝혀내는 것.”
“맞아. 그랬지? 후우, 난 솔직히 그냥 호위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소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인아, 그럼 우리 큰일 난 것 같아.”
“큰일 났다고? 어어…… 왜?”
“습격자들이 저렇게 다 타 버렸잖아? 그럼 우린 실패한 거 아냐?”
조서인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는 지금 서유림을 위로할지 말지 고민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네!”
“그치?”
“잠깐, 그렇네. 어떻게 하지? 진짜로 큰일 났는데?”
조서인은 사색이 된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서인아. 작년에 설지 선배가 임무에 실패한 것도 이런 일 때문이지 않았어?”
“맞아. 뭔가 지키는 임무를 하다가 상대방을 죽여 버렸다고 했어. 첫 실전이라서 손속이 과하게 나갔다고 하더라.”
“그래서 졸업을 못하고 일 년 더 남게 되었잖아?”
“맞아. 아니, 잠깐. 그럼 우리도 일 년 더 남아야 한다고?”
조서인은 문득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안 돼! 팔파세대랑 같이 졸업시험을 볼 수는 없어! 안 그래도 구파세대라 무시한다는데, 구파세대가 시험도 통과 못해서 학관에 남아 있다고 하면 얼마나 무시당하겠어?”
“어? 그게 무슨……. 아아! 아까 수레에서 들었던 그 이야기구나? 저 꼬마 아가씨가 이야기했던?”
“안 돼, 안 돼.”
“뭐, 어때.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재밌을 것 같네. 우리 학관에 일 년 더 남아 볼까? 낙일창 조서인 선배님?”
소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서인과 어깨동무를 했다.
서인은 주변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크게 떠들 수는 없어서 그 대신 심각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천무공자님. 미미랑 주해랑 다들 학관에서 나가 버리면 우리 둘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
“하핫, 그건 그렇지.”
“게다가 천무공자님을 후배들이 그렇게 존경한다잖아? 시험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줘서야 되겠어?”
“에이.”
소호는 자신의 번쩍거리는 흰색 비단 장포를 살짝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이런 건 다 겉모습이야. 주해가 이런 식으로 입어야 명성이 생긴대서 입고는 있지만. 솔직히 불편하거든.”
“역시 주해는 머리가 좋아. 쟤 이야기 들어 보면 확실히 효과는 있었잖아?”
“공자님은 무슨. 이놈의 흰색 옷 때문에 밥 먹을 때마다 얼마나 신경 써야 하는데.”
소호는 주변에선 그 고충을 아무도 모른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좋아하는 탄탄면도 못 먹어요.”
“하핫.”
조서인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웃네.”
소호가 씩 웃으니, 조서인은 멋쩍어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고마워, 친구.”
“별말씀을.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볼까?”
소호는 뒷짐을 진 채 주변을 빙빙 돌며 생각을 거듭했다.
“아까 저 사람이 자기는 화산의 이대 제자였다고, 왕 태감이 백검의 심판을 받을 거라고 했잖아?”
“맞아. 그랬어.”
“화산파가 왕 태감이랑 흑시부대에 원한을 가지는 거야 유명한 일이고. 백검? 백검이 뭘까? 무인의 별호?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흰색 신검(神劍) 같은 게 있나?”
“백검? 그런 별호가 있었나……?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느낌상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조서인이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흑시와 백검. 뭔가 정반대인 것 같잖아. 어떤 조직의 이름 아닐까?”
“어? 그러네. 맞아.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서인아. 조직이라고 생각하니까 아까 그 말이 딱 맞아.”
“그치? 맞는 것 같지?”
“촉이 있네! 대단해!”
소호는 납득했고, 조서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떤 조직이든…… 무섭다. 소호야. 아까 그 사람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비밀을 지키려고 한 거잖아? 그것도 수십 명이랑 같이 죽으면서. 어딘지 몰라도 마교(魔敎) 같은 곳 아냐?”
“그럴지도 모르겠네.”
“아까 그 화기도…… 생전 처음 보는 거였어. 우리 학관에서도 그런 건 가르쳐 주지 않았잖아?”
“암기(暗器) 수업?”
“응. 난 기억이 안 나. 너는?”
소호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수업에서 배운 것들 중에는 없어. 폭연탄이 생긴 건 비슷한데 전혀 다르고, 화자는 기름을 넣어 뒀다가 태우는 거고.”
“교관님들이 안 가르쳐 준 건 아닐까? 문파의 비기라든가. 그럴 수도 있잖아?”
“아냐, 만천화우도 가르쳐 주시는 사천당가 교관님들이 일부러 안 가르쳐 주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암기를 쓰는 법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배운 사람도 있고, 안 배운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암기에 대한 대처법은 자다가도 깨서 줄줄 외울 수 있을 만큼 익혀야만 무산학관의 관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외운 수백 종의 암기들과 백린이라 불리던 그 화기는 전혀 달랐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술법이 아니냐고 의심할 만큼 위력적이지 않던가.
형태도 폭발하는 모습도, 피해의 규모도 그들이 알던 암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혹시 세외에서 온 것 아닐까? 중원이 아니라 밖에서 온 거면 이해가 되잖아?”
“서역? 아니면 몽골? 아! 동방 쪽도 화포가 뛰어나다던데.”
“글쎄……. 어디든, 만약 그렇다면 생각을 다시 해야겠는데?”
“맞아. 화산 무공을 썼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잖아? 화산파가 아닐 수도 있고, 이름도 가짜일 수도 있고.”
“어렵네…….”
소호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화산파는 맞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소호야?”
“눈빛. 자기 문파에 자부심이 있으면서 증오가 가득하던 그 눈빛은 거짓말 같지가 않았어.”
“으음, 그렇긴 한데. 너무 주관적인 것 같아.”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답은 나오질 않았다. 조서인은 불안해했다.
“어쩌지? 이대로 하오문에 이야기하면 될까? 뭔가 불안하지 않아? 진위 확인도 안 된 이야기를 해 봤자 임무는 실패해 버리는 거 아냐?”
“응, 조사는 더 해야겠다. 사실 학관에서는 우리의 대응 방법을 보려는 거잖아?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겠지? 아아, 단서가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 때, 시신을 정리하던 호위대장이 두 사람을 불렀다.
“혹시 이런 거 본 적이 있나? 내가 보기엔 처음 보는 형태랑 문양인데.”
“아……!”
소호와 조서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호위대장은 자홍이 내던졌던 화기의 껍데기를 찾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