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185화 (314/686)

8권 10화

제23장 천무공자(天武公子) (10)

호광 진인의 거처는 누군가가 손을 댄 지 오래된 곳 같았다.

먼지가 쌓여 있거나 더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나무 벽면의 얼룩이라던가 끽끽 소리를 내는 바닥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다탁에는 누군가가 끓인 지 얼마 안 된 듯 따뜻한 찻주전자가 온기를 내뿜었다.

소호는 호광 진인이 직접 따라 주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깜짝 놀랐다.

향긋한 차향 끝에 은은히 입안을 감싸는 단맛이 차의 풍미를 높여 주었다.

“연단술을 익히다가 얻은 능력이지. 속세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찻잎을 우릴 수 있게 된다.”

호광 진인은 자신이 오래 전부터 연단술을 익혀 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나이를 물어보자 그저 광사로보다 많다고 할 뿐 답변은 해 주지 않았다.

“아이야. 너희는 무공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아느냐.”

“천축 달마 대사로부터 시작된 것 아니던가요?”

“소림에 한해서는 그게 맞다. 거기서 시작된 무공의 계파가 삼봉 진인으로 이어져 무당파를 만들었다고들 알고 있지.”

쪼르륵―.

찻물이 찻잔에 따라지는 소리가 마치 냇물처럼 맑았다.

“틀린 소리다. 다들 겉면만 보고 있어. 그렇다면 달마 대사는 어디에서 그 무공 연단법을 익혀서 전파하였는가? 천축? 그렇다면 천축이 무공의 총본산인 것인가? 삼봉 진인은? 그는 화룡진인의 밑에서 도(道)를 배우며 태극권을 창안했다는데 그것은 어찌된 일인가? 전국 각지에 있던 방사(方士)들과 진인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계시를 받고 스스로를 단련한 것인가?”

호광 진인의 말은 지금껏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무공에 대한 중론을 깨고 있었다.

소호와 조서인은 차를 마시는 것조차 잊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시작은 선술(仙術)이며 연단술(練丹術)이다. 인간이 기록을 남길 때쯤의 고대부터 이 땅을 다스리던 지배자들의 최후의 목적은 언제나 같았다. 양생(養生), 연년익수(延年益壽).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늘 수명을 늘려 사람에게 허용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싶어 했지.”

소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의 인물들을 떠올렸다. 하, 은, 주, 전국시대의 수많은 나라들과 최초의 통일 제국 진나라의 시황제.

“시황제의 불로불사를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그러하다. 연단술의 역사는 깊다. 그보다도 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왔지만 실제로 기록으로 남기 시작한 건 분명 그때부터지. 시황제의 불로초는 유명하지 않던가.”

호광 진인은 한쪽 벽면 책장에 꽂혀 있는 오래된 고서들을 가리켰다.

“한 무제(武帝)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아래에 당대의 유명한 방사들과 학자들이 모여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여기에 있는 내서(內書), 중서(中書), 외서(外書)가 그것이지. 그중 중서에는 신선사귀연금(神仙使鬼鍊金)과 추연(鄒衍)의 중도연명법(重道延命法)이 있다.”

소호의 눈이 빛났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쏟아졌지만 그중 중도연명법만큼은 귀에 쏙 들어왔다.

“호흡법인가요?”

“그렇다.”

호광 진인은 한나라 때 이미 호흡법에 대해 학술의 영역에서 연구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은 생명의 원질(原質)이며, 이는 황제들의 지원에 힘입어 약학과 결부되어 양생술(養生術)로 발전해 갔다. 그러던 중에 체계화된 것이 저쪽에 있는 갈홍의 포박자다.”

“포박자……?”

소호는 회남자의 옆에 꽂혀 있는 또 다른 책자를 바라보았다.

끈으로 묶여 있는 고풍스러운 책자였다.

“저 포박자(抱朴子)라는 책이 서진(西晉) 때 지어진 책이라면 믿겠느냐?”

“우와, 삼국시대쯤이네요?”

“신선방약(神仙方藥), 귀괴변화(鬼怪變化), 양생연년(養生延年), 양사각화(禳邪却禍)를 적은 내편은 도가의 가르침을 따르고, 인간의 득실, 세사의 장부를 적은 외편은 유가에 속한다. 여러모로 특이한 책이지. 허나 분명한 것은 저 때에 정식으로 체계화되었다는 것이다. 연단술에 관한 것은 그중 내편에 있지. 금단(金丹), 선약(仙藥), 황백(黃白) 편에 적혀 있다.”

호광 진인은 과연 진인의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차를 마시면서 가볍게 하는 이야기에서 오래된 학문의 역사들이 별거 아닌 것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체계화되면서 연단술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 홍(汞:수은)이나 비소 같은 것이 위험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어쩌면 시황제는 그 시절의 불로 단약들을 먹지 않았다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시황제가 수은을 먹었어요?”

“무지한 행동이었지. 지금도 연단술의 분파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만. 그건 분명히 독약이었다.”

“무섭네요. 사람은 역시 많이 알아야 해요.”

“무지는 수명을 앞당긴다.”

호광 진인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결국 연단술은 오랜 연구를 거듭한 끝에 외단(外丹)에서 내단(內丹)으로 바뀌어 갔다. 바깥에서 단약을 연성하여 섭취하는 것으로 양생을 노리는 게 아니라 호흡으로 수련을 하여 몸속에 단을 다져 내는 내단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때에 비로소 소호와 조서인이 탄성을 내뱉었다.

“몸속에 내단 연성! 그게 내공이라는 거죠?”

“그렇다. 수나라 때 성립해서, 당 말부터 송 대에 수행법으로 발전하였지. 특히 선종의 견성을 도입해 성명쌍수를 말했던 북송의 자양진인 장백단(紫陽眞人 張伯端)의 내단설은 일대 혁명이었다. 이곳의 이름을 백단장이라 지은 것은 자양 진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야.”

호광 진인은 찻잔을 내려놓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은 어디를 보는 것일까?

별빛처럼 강렬한 눈빛이 허공으로 쏟아졌다.

“당태종은 연년약(延年藥)에, 당헌종은 금단에, 당목종은 단약에 중독되어 죽었다. 당경종은 영약을 구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당무종은 단약에, 당선종은 장년약(長年藥)에 중독되어 죽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단약이 오히려 목숨을 빼앗고 있는데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려 한 나라의 황제가 계속해서 먹게 만들다니. 혹세무민하는 사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닐 터.”

소호는 등줄기가 섬뜩한 것을 느꼈다.

속세를 초월하여 해탈한 듯하던 호광 진인이 살기마저 섞어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었다.

“허나…… 돌고 돌아 태극이라. 그런 혹세무민하던 일파가 또한 위대한 일을 해내니. 그야말로 음양의 조화다. 도교의 외단술은 유황과 수은을 다루는 유홍파(硫汞派), 황금과 단사를 다루는 금사파(金砂派), 그리고 납과 수은을 다루는 연홍파(鉛汞派)로 나뉘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목숨을 대가로 온갖 금속과 독물, 은에서 금을 연성해 내는 비기들이 만들어졌지. 너희가 가져온 이 동그란 물건도 마찬가지다. 외단술에서 만들어 낸 재질이다. 그들은 온철(溫鐵)이라 부르지.”

호광 진인은 소호가 아까 건네주었던 화기의 껍데기를 들어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가 나직하게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자 단단했던 껍데기가 흐물흐물하게 물러졌다. 마치 바싹 말랐던 진흙에 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걸쭉하게 내려앉았다.

“……!”

그 모습이 너무나 놀라워 소호와 조서인은 숨 쉬는 것조차 잊고 바라봤다.

잠시 후, 호광 진인이 손을 비스듬하게 젖혀 바닥에 떨어뜨리니, 온철은 다시 원래의 동그랗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신묘했다.

소호가 머릿속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주술’ 같았다.

“본래는 진법(陳法)을 고정시키기 위해 만든 물질이다만, 열에 강하고 술법 이상의 강한 힘을 가하지 않는 한 부서지지 않으니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지. 제천대성의 여의봉을 만든다질 않나, 이제는 이런 화기를 만들어 내다니. 이러한 활용법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한다. 사람의 상상력이란 어찌 이리 난폭하고 파괴적인가.”

소호는 조서인을 힐끗 바라보았다.

조서인도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무공의 기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새 그들이 백단장에 찾아온 목적인 화기 껍데기의 본질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두 청년은 금세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 화기 껍데기는 온철이라는 걸로 만들었다는 거죠?”

“그렇다.”

“그럼 그걸 누가 만들 수 있나요? 온철을 만들 수 있는 건 누구죠?”

호광 진인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찻잔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찻잔 안의 누군가가 답을 내려 주길 기다리는 듯했다.

“그 질문은 틀렸다, 아이야.”

“네?”

“누구냐가 아니라 어디냐라고 물어야 한다. 그건 아무리 술법적으로 뛰어난 자라도 혼자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부유한 자본과 당대 최고에 가까운 야장, 그리고 실력이 뛰어난 술법사가 힘을 합쳐야만 온철을 만들 수 있지.”

“아……!”

“만드는 법을 묻는다면 연단술의 금사파나 연홍파를 말하겠지만, 실제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벽사, 주술의 모산파, 아니면 기문둔갑과 기관의 기갑문이 될 것이다.”

호광 진인은 그 말을 끝으로 찻잔을 비워 버렸다.

그는 찻잔을 다시 채우지 않았다.

“주어진 역할보다 많은 말을 하였구나. 이는 얼마 전에 다녀간 천살성의 아이 때문일 터. 그는 너희와 같은 철 요대를 차고 있었고, 양손은 하얀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온철에 대해 물었었지.”

“네……?”

“선자불래 래자불선이라. 지닌바 천운이 안타까워 잠시 만나 보았다. 그런데 너희와 운명이 겹치다니. 내가 해 줄 말은 다 하였다. 너희는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구나.”

소호와 조서인은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지 못한 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 요대. 하얀 장갑.

그 두 가지가 가리키는 게 대체 누구인가.

“설마…….”

아니길 바라면서도 한 사람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호광 진인은 그들이 마주쳤던 마당에서 배웅해 주었다.

“천강성(天罡星)과 천용성(天勇星). 너희 둘의 돌아가는 길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돛을 펼친 배처럼 풍파를 이겨 내고 뜻하는 곳에 도착하길 기원하겠다.”

소호와 조서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감사했습니다. 진인.”

“건강하세요.”

두 사람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호광 진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당황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건물을 향해 포권을 취한 뒤 백단장을 빠져나왔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더니 머리가 아파. 서인이 너는 어때?”

소호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근데 마지막 말이 자꾸 기억에 남네.”

“그렇지?”

소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유준 선배일까?”

“그럴지도 모르지? 철 요대는 무산학관 출신이라는 증거고, 하얀 천으로 가리는 건……. 내가 알기로는 항상 하얀 옷을 입고 깔끔하던 유준 선배만 떠오르는데.”

“한 명 더 있잖아.”

“누구?”

“은위군.”

“아!”

조서인은 잠시 탄성을 내뱉은 뒤 미간을 좁혔다.

“걔가 있었네. 하긴 걔도 맨날 손에 검은색 수투를 끼고 있긴 했지……. 그래, 걔라면 좋겠다.”

“걔라면 좋겠다고?”

“응, 그러면 조사해 보겠다고 쥐 잡듯이 잡을 수 있는데.”

조서인의 목소리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묻어났다.

“하핫, 아직도 서로 감정이 크구나? 언제부터였지? 그때 태극권하다가 서로 뒤엉켜서 싸운 뒤로?”

“그랬나? 아무튼 안 맞아, 나랑은.”

조서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호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생각해 보면 은위군도 그들처럼 습림관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조를 짜서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걔는 누구랑 조를 짰지?”

“……주작방의 여자애 한 명이랑 짰어.”

“하하핫!”

“웃지 마.”

“문주희?”

“…….”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네.”

“아냐, 그런 거.”

히히힝―.

소호는 조서인과 함께 말에 다시 올라타고 길을 서둘렀다.

해의 위치를 살펴보니 백단장에서 무려 두 시진이나 흘러간 뒤였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해가 떠 있는 동안 낙양 안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멈춰라!”

그런데 하나뿐인 길목에서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처음엔 그저 산적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니, 그들은 모두 검은색 복면을 하고, 질 좋은 무기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흘렀다.

심지어 그들 한가운데에 대장으로 보이는 인물은 복면에 하얀색 안료로 검의 문양을 새겨 놓고 있었다.

“아까 그 사람들이구나.”

소호는 백단장으로 들어갈 때 수풀 속에서 느꼈던 미세한 살기들을 떠올렸다.

백검 문양의 복면인이 손을 들어올렸다.

“장소호, 조서인?”

소호와 조서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어 줘야겠다.”

복면인이 손을 내리치자 검은색 복면인들이 각각 구궁의 묘를 살린 신법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소호와 조서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에서 뛰어내렸다.

특히 백색 비단 장포를 흩날리며 허리의 박도에 손을 얹은 장소호, 무산학관의 천무공자는 씩 웃으며 복면인들에게 되물었다.

“실수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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