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12화
제23장 천무공자(天武公子) (12)
상식이라는 것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행동.
누구나 납득 가능한 행동이 바로 상식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복면인들은 달랐다.
동시에 자신의 얼굴을 후려치고, 입속에 숨겨 뒀던 암기를 꺼내 들면서도 눈빛에서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부심, 용기, 강인한 신념이 느껴졌다.
저들이 입에서 뱉어 낸 암기가 모두 백린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비상식적인가.
그런 위험한 걸 다루면서 저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니.
과도한 신념은 위험하다.
소호의 마음속에서 그런 확신이 크게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크큭.”
섬뜩하게 웃던 권우량이 오뢰인 장타를 날렸다. 뇌전 같은 불꽃이 다시 한번 소호를 위협했다.
후웅―.
소호는 고개를 젖혀 피한 뒤 권우량의 가슴팍을 잡아 도리어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휘청거리며 딸려 오는 권우량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박도의 손잡이 부분으로 권우량의 오른쪽 바깥 무릎을 후려쳤다.
“끄흑.”
퍽― 소리와 함께 권우량의 몸이 휘청거렸다.
번개같이 내리친 박도가 이번엔 권우량의 목을 겨누었다.
“도대체 뭘 위해 이러는 거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소호의 질문에 대답해 주는 이는 없었다.
그사이 권우량의 광기는 극에 달했다.
“뭐 하고 있나! 모두 던져라! 백검의 힘을 보여 줘라!”
권우량은 소호와 한데 붙어 있음에도 암기를 던지라고 명했다.
만약 저게 백린이라면 같이 죽자는 말일 터.
쉬이익―.
“무슨?”
소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스무 개의 화기가 허공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소호가 권우량과 함께 있는데도 복면인들은 망설이지 않고 화기를 던진 것이다.
두근― 두근―.
소호는 심장이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절반의 화기는 바닥으로, 나머지 절반의 화기는 머리 위로 날아오는 모습이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천천히 보였다.
소호는 감각이 너무 예민하고 정확한 것도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신법을 전개했을 때 그가 갈 수 있는 거리와, 지금 날아오는 화기가 폭발해서 터져 나올 연기의 양이 상상되면서 모든 계산이 머릿속에서 끝나 버렸다.
누가 그랬던가.
용기는 무지에서 나온다고.
마치 실수로 유리잔을 쳐서 떨어뜨렸을 때, 그걸 받을 수 있을지 받지 못해서 잔이 깨질지 곧바로 알아채는 것과 같다.
소호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백검회의 복면인들이 화기를 너무 절묘하게 투척했다.
대신에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만한 방법이었다.
소호는 생각하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아지랑이처럼 흔들거리는 움직임.
단 두 번의 발동작으로 살수계의 전설이었던 일야회주 묵신의 신법이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
소호는 순식간에 적절한 위치에 도달했다.
파라락―.
소호는 박도를 허공에 집어 던지는 것과 동시에 복면인들이 바닥으로 던진 열 개의 암기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다행히 소호가 입고 있는 비단 장포는 멋을 중요시한 덕분에 소맷자락이 길고 넓었다.
소호는 마치 바닥의 물을 퍼내듯 움직였다. 양다리를 벌리고, 바닥에 가슴이 닿을 듯 몸을 낮췄던 소호가 한 마리의 용처럼 양손을 회전시켰다.
고오오오―.
역근경의 강인한 내공이 전신에서 뿜어지고 소호의 두 눈에서는 정광 어린 금빛이 신인(神人)처럼 번뜩였다.
무공의 기초인 육신과 내공은 소림의 것이지만, 그가 이미 익히고 보아 온 무공은 천하를 굽어본다.
소호의 손끝에선 무당파 태극권의 정수가 펼쳐졌다.
허공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공이 생겨난 것 같았다.
주변에서 공기와 함께 빨려 든 모든 기운들이 소호의 손안에서 구름처럼 두둥실 떠올라 자연스럽게 뭉쳐졌다.
모든 힘의 방향은 위로.
소호는 손끝과 소맷자락을 이용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마치 물을 퍼내듯 위로 건져 냈다. 날아온 화기들을 바닥에 닿기 직전에 건져 올려 머리 위로 날려 보냈다.
차르륵―.
소호는 그와 동시에 허리에서 철 요대를 풀어냈다.
불주연사(佛珠連射).
이제는 안다.
낭인이 사용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익혔던 무공이 본래는 소림의 것이었음을.
불주연사라는 무공은 본래 승려들이 목에 걸고 있던 커다란 염주들을 암기처럼 튕겨 내기 위해 사용하던 무공이었음을 소호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소호는 소림에서도 쓰지 않는 방식으로 불주연사를 응용했다.
그는 철 요대를 이용해 화기들의 힘을 거스르지 않고 허공으로 더욱 쳐올렸다.
회오리처럼 나선을 그리는 요대.
부드러우면서도 강맹한 경력에 휩쓸린 화기들이 허공으로 날아오던 화기들까지 모조리 휩쓸었다.
붙잡은 화기는 열여덟 개.
나머지 두 개는 던져진 경로가 너무 높아서 불주연사의 힘이 닿지 않았다.
바로 그때, 바닥에 쓰러진 거나 다름없었던 권우량이 발악하듯 벌떡 일어났다.
쉬이익―.
수풀 속의 독사가 머리를 내밀 듯, 독사출동의 한 수로 소호가 왼손에 들고 있던 화기를 향해 검을 내찔렀다.
“챠핫!”
“……!”
지금까지 소호가 보여 준 것만 해도 신위(神威)에 가깝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는 법.
소호는 화기 열여덟 개를 통제하느라 쉽게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길고 튼튼한 철창이 날아와 권우량의 손등을 관통했다.
피슉―.
“끄아악!”
권우량의 비명 소리가 침묵을 깼다.
티이잉―.
권우량의 손등에 구멍을 뚫어 버린 철창은 곧바로 다시 빠져나와 허공에서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서인!’
소호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상산 조자룡처럼 용맹하게 합류한 조서인이 능수능란한 창술로 허공에서 날아온 화기 두 개를 부드럽게 받아 낸 것이다.
조서인의 창술은 빠르면서 정교했고, 나비가 날갯짓을 하듯 동작이 가벼웠다.
조서인의 창날 위에 동그란 원통형의 화기 두 개가 고스란히 올라왔다.
“크아앗!”
권우량은 발악하듯 이번에는 조서인의 발목을 향해 다시 한번 검을 찔렀다.
손등에 구멍이 뚫렸음에도 공격을 가하는 그 모습에선 집요함을 넘어 광기가 엿보였다.
조서인은 한 발을 들면서 피해 냈으나, 창날 위에 올려 두었던 화기는 데구루루 구르고 말았다.
“으엇!”
조서인이 비명을 질렀다.
창날에서 굴러 떨어진 화기 두 개가 권우량의 얼굴 앞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펑―.
“크악!”
권우량이 비명을 지르고,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이미 화기의 위험성을 보았던 조서인과 소호는 기겁했다.
뿌연 연기가 생각보다 빠르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호와 조서인은 재빨리 모든 것을 멈추고 곧바로 뛰쳐나와 거리를 벌렸다.
“쿨럭! 쿨럭!”
그런데 권우량은 뿌옇게 피어오른 연기를 머리에 뒤집어썼음에도 불타오르지 않았다.
그저 시뻘게진 얼굴로 기침을 토해 내더니,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듯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을 뿐이다.
연기의 모양도 소호와 조서인이 전에 본 것과는 좀 달랐다.
반짝거리는 백색 연기가 아니라, 뿌옇고 탁한 가루 덩어리였다.
“백린이 아냐……?”
“독! 산공독이야.”
매캐한 향이 콧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 소호가 곧바로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고작 숨 한 번 들이켰을 뿐인데도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이걸 정면에서 통째로 들이마시다니.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죽여랏!”
주변에서 지켜보던 복면인들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일까.
그들은 암기 공격이 실패하자 뒤가 없는 사람들처럼 목숨을 도외시한 채 달려들었다.
소호와 조서인은 뿌옇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뒤로하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복면인들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겨누었다.
“우와, 무섭네.”
“눈이 다들 미쳐 있어.”
결전의 순간.
좌측 수풀 사이에서 반짝이는 반사광이 번뜩였다.
피슉―.
“……!”
작은 단검들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복면인들을 맞추기 시작했다.
소호와 조서인만을 경계하던 복면인들은 날아오는 암기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다.
“어린(魚鱗)……?”
소호는 작고 가벼우면서 반짝거리는 그 비도(飛刀)의 종류를 한눈에 알아챘다.
유선형 삼각형 모양에 재질은 청강.
얼핏 보면 화살촉으로나 써야 할 것처럼 작은 칼날이지만, 암기에 숙달된 무인이 손가락에 끼울 수 있는 특수한 수투(手套)와 함께 사용하면 화살보다도 더 빠르게 비도를 던질 수 있는 특별한 암기였다.
어린비도는 반짝거리는 불빛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에 이미 복면인들의 몸에 꽂혀 있을 만큼 속도가 빨랐다.
좌측 수풀 사이로 두 명의 남녀가 튀어나왔다.
두 사람은 약관의 나이로 보이는 젊은이들이었다.
특히 가장 앞서서 나오는 청년은 병자처럼 하얀 얼굴에 한기(寒氣)가 느껴질 만큼 차가운 눈빛을 한 냉랭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그는 짙은 청남색의 무복과 장포를 입고 있었고, 양손에 검은색 수투를 끼고 있었는데,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동시에 손을 한 번 휘둘렀다.
그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어린비도가 날아가 복면인의 복부와 어깨에 틀어박혔다.
일격일살.
손을 한 번 떨칠 때마다 한 사람이 쓰러지니, 복면인들의 사기는 순식간에 바닥을 기었다.
피슉― 피슉―.
“끄아악!”
“기습! 기습이다!”
어떻게든 소호와 조서인을 향해 달려들려던 마지막 복면인이 어깨와 복부에 비도를 맞고 쓰러지는 데까지는 불과 반각도 걸리지 않았다.
어린비도를 던져 대던 청년은 특유의 냉랭한 눈빛으로 소호를 힐끔 바라본 뒤 바닥에 모여 있는 열여덟 개의 화기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조서인을 쳐다보고, 쓰러져서 꿈틀거리는 권우량과 그 앞에서 실낱같은 연기를 여전히 내뿜고 있는 화기 두 개의 껍데기를 응시했다.
“쯧.”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차고는, 조서인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여전히 둔하군, 조서인. 철 요대가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