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1화
제25장 회혼비처(回魂秘處) (1)
“뭐요?”
동창 견검삼대(肩劍三隊) 대주 서달(西達)은 방금 들은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는 임무였다.
나라의 녹을 받고 일하면서 일감을 골라가며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대주의 자리에 오른 뒤에 처음으로 내려온 단독 임무를 그는 도저히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의 중추, 동창.
그중에서도 전방에서 실제로 검을 휘두르는 견검대의 대주 정도 되면 수하들을 잘 부리기만하면 되는 관리 임무만 내려오는 게 보통이다.
조금 큰 임무쯤 되면 다섯 명의 대원을, 그보다 더 큰 임무가 되면 스물다섯 명, 다섯 개 조의 대원들을 데리고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단독 임무를?
그것도 대주 혼자만 움직이도록 은밀하게 밀지(密旨)로 내려왔다?
서달의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런 경우는 딱 하나뿐이었다.
모 아니면 도.
승진이냐. 좌천이냐.
목숨을 걸 만큼 위험천만하고 비밀스러운 일이라는 소리였다.
살얼음판을 건너는 것과 다름없다. 절로 예민해진다 해도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을 터.
그런데 방금 들은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볼수록 이상했다. 임무의 시작점부터 일이 꼬여 버린 느낌이었다.
서달은 숨을 가다듬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 다시 한 번 되물었다.
“미안한데,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소?”
“아니, 방금 전에 다 들었잖소? 왜 두 번 읽게 만드는 것이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오.”
“커험! 나 참, 쓸데없이…….”
자금성에서 출납을 기록하는 내관은 젊으면서도 쓸데없이 자존심이 센 사람이었다.
이런 자들이 골치 아프다.
동창 내에서 높으신 분들을 모시는 환관들이 동창 조직원들보다 위라고 생각하는 족속들 말이다.
지금 앞에 있는 젊은 내관도 처음에는 고압적으로 굴다가, 서달이 눈빛을 번뜩이자 그제야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정통 팔 년 추분(秋分), 하남 삼산현 출신 장소호에게 은룡패를 하사함. 이는 법천입도인명성경소문헌무지덕광효예황제(法天立道仁明誠敬昭文憲武至德廣孝睿皇帝)께서 내리신 교지에 의해 시행되며, 효공장황…….”
내용은 별거 없으면서도 쓸데없이 긴 시호가 내관의 입에서 줄줄이 흘러나왔다.
“장소호…… 장소호라니. 작은 호랑이 할 때 그 소호가 맞소?”
“맞소.”
“이런…….”
서달은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쉽지 않은 일일 거란 예감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다 됐소?”
“아아, 다 됐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소. 그는 은룡패를 받고 나서 어디로 갔소?”
“이 사람, 두 번이나 읽었건만 대체 뭘 들은 거요?”
“시호가 너무 어려워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질 않았소.”
“이래서 무관들은……. 커험! 하남 삼산현 출신 장소호는 은룡패를 받았고, 그것을 하북에서 사용하겠다고 하였소. 그는 관(官)에서 현령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될 것이오.”
“대체 누가 그걸 승인했소?”
“누구긴 누구요.”
젊은 내관은 서달의 어깨에 새겨진 세 개의 검 문양을 가리켰다.
“사례감 태감님의 직인이 들어간 서찰을 장소호라는 자가 직접 들고 왔소.”
“……그렇군.”
“더 물을 게 있소?”
“아니오. 하북, 하북이라……. 고맙소.”
서달은 젊은 내관에게 작은 주머니를 하나 내밀었고, 젊은 내관은 당연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하며 그걸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자금성을 빠져나오면서 서달은 끊임없이 생각했다.
젊은 내관은 은룡패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다.
현령에 준하는 대우?
그것도 물론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그래 봐야 관청에서 좋은 술과 잠자리를 대접받는 정도의 권한에 불과하다.
은룡패의 진정한 가치는 ‘출입 권한’에 있다.
동창이 각 지역에 만들어 둔 비처(秘處)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은룡패부터는 자유롭게 부과되는 것이다.
은룡패를 지닌 것은 왕 태감의 곁에 있는 ‘사흉(四凶)’을 제외하면 견검대, 배검대, 흑시군의 총대주들 세 명뿐이다.
거기에 이제 한 명이 늘었다.
천무공자, 장소호.
“천무공자. 천무공자라니. 서달아, 네 앞날이 캄캄하구나. 태감께선 어찌하여 그에게 은룡패를 주셨는가. 왜 하필 나는 그를 쫓아야 하는가!”
서달은 그가 받은 밀지를 품에서 꺼내 다시 한 번 펼쳐 보았다.
追新銀龍牌!
―새로운 은룡패를 쫓아라!
그 어디에도 천무공자가 상대라는 말은 없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천무공자의 이름값은 무산학관 만큼이나 쟁쟁하다.
모 아니면 도.
승진이냐 좌천이냐에서 좌천 쪽으로 저울추가 확 기울었다.
하북성 비처로 향하는 서달의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
“장 공자님께서는 천하의 귀인이셨습죠. 하늘이 내린 영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요.”
장가구 인근의 관청 지객당을 관리하는 하인 곽삼은 입에서 침이 튀도록 장소호에 대해 칭찬을 해 댔다.
명나라의 관문.
북경의 북쪽 문이라고도 불리는 장가구 인근은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이었다.
그런 조용한 동네에 천무공자처럼 외모가 눈에 띄는 자가 나타났으니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겠는가.
지객당의 하인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장소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범상치 않은 외모였다는 것이 크게 한몫을 했다.
“현령께서는 본인에게 얼굴도 안 비추고 갔다고 뭐라고 하셨지만……. 어디, 천하의 영웅께서 그리 한가한 분이던가요? 암요, 바쁜 분이 그럴 수도 있지요.”
“왜 그렇게 그를 좋아하지? 돈이라도 쥐어 줬나?”
“돈이라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요. 물론 통이 크신 장 공자님께서 안 주신 건 아닌데…… 쪼금, 아주 쪼금 제가 받기는 했는데…….”
곽삼이 대번에 주눅이 들어 어깨를 움츠렸다.
그래서야 대화가 안 될 테니 서달은 황급히 그를 달랬다.
“심부름값 좀 받은 걸로 추궁하지 않을 테니. 솔직히 말해라.”
“크흠! 예, 예. 물론입죠. 아무튼 돈이 문제가 아니고, 공자님께서 이곳에 오자마자 물어보셨습니다요. 이 동네는 살기 평안하냐고.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도 살기 힘든 점이 있냐고 말입죠.”
“살기 힘든 점이 있냐고 물었다고……? 천…… 크흠, 장 공자가?”
“예, 예, 그랬습죠. 그래서 다른 건 다 좋은데 도적 떼가 좀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그랬더니 세상에, 다음 날에 백 명이 넘는 도적놈들을 모조리 때려잡아서 관청에 넘겨주신 겁니다요.”
“백 명이나? 그걸 혼자서?”
“예, 예. 그렇습죠. 수레에 도적들을 실어 끌고 오는 모습부터 관청에 내려놓는 모습까지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영웅이십니다요.”
서달은 눈살을 찌푸렸다.
장소호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백 명과 홀로 싸운 용기가 가상하지만 그건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라면 ‘약간의 손해’만 각오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보다는 다른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리 도적 떼가 많은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군문(軍門)이 있는 장가구가 바로 코앞인데, 이런 곳까지 도적 떼가 출몰한단 말인가.
서달은 현령이 게으르다는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쪽 현령은 일을 안 하는군. 일 년에 한두 번만이라도 병사들을 보냈으면 도적 떼가 없었을 것을.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다니.’
서달은 아직 이곳의 현령을 만나 보지 못했음에도 벌써 그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들 너무 좋아서 춤을 추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요. 그동안 도적 떼 놈들이 얼마나 우릴 못살게 굴었는데……! 산 사람도 잡아가고, 죽은 사람 묘도 파헤치고. 아주 나쁜 놈들 중에서도 그런 상놈들이 없었지요!”
“그 정도였단 말인가……!”
“예, 예. 그랬습죠. 그런데 관청도 들어주지 않던 저희의 말을 장 공자께서 들어주시다니.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요?”
곽삼은 울기라도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근처에서 바닥을 쓸고 있던 하인들도 감격스러운지 괜스레 하늘만 보면서 눈꼬리를 훔친다.
‘이놈, 천무공자. 보통 놈이 아니구나.’
서달은 장소호가 소문으로 듣던 이야기와 인상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뛰어난 무공만 믿고 빈둥거리는 한량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하는 짓을 보니 전혀 다르다.
심부름값을 주면서 하인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귀찮음을 무릅쓴 채 아랫것들의 고충을 해결해 준다.
젊은 협사의 정의로움?
서달은 그런 풋내 나고 간지러운 감정을 믿지 않는다. 그보다는 민심을 장악해서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천무공자에 대한 의심만 들 뿐이다.
“장 공자는 그 후에 어디로 갔나?”
“북방으로 간다고 하셨지요. 그쪽에도 우리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민초들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요.”
“그런가. 고맙네.”
서달은 이번에도 작은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곽삼이라는 하인은 젊은 내관과는 달리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고마워하며 받았다.
“북방……. 북방이라.”
서달은 굳은 표정이 풀어지지 않았다.
그가 알기로 여기서부터 북방에 있는 동창의 비처는 단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
“장 공자님은 천상에서 내려온 영웅이십니다!”
“새하얀 비단 장포를 입은 멋들어진 공자님이셨지요. 한량처럼 방 안에서 밥만 드실 뿐 한 번도 안 나오시긴 했지만.”
“마을 처녀들한테 패악질을 부리던 패잔병들을 한 주먹에 쓰러뜨렸어요!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다니까요?”
“장 공자님? 헤실헤실 귀여운 얼굴로 차만 한 잔 마시고 떠났어요. 속없고 착해 보이던데?”
서달은 중간에 만나는 마을마다 장소호에 대해 엇갈리는 평가를 들으며 움직였다.
아직 가을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겨울이 된 것처럼 쌀쌀한 칼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마침내 북방의 마지막 비처에 도착했을 때, 서달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평가를 듣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분이었습니다.”
“은룡패를 꺼내면서 비키라고 소리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비처의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은 그때만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달은 똑같은 명 제국의 관인으로서 그런 추태가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그래서, 신분 확인도 안 하고 들여보냈단 말이냐?”
병사 두 사람은 어깨를 살짝 움츠리긴 했지만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절차대로 했습니다. 사례감 태감의 직인이 찍힌 서찰도 확인했고, 은룡패와 신분패를 다 확인하고 적어 두었습니다. 이렇게.”
병사들이 보여 주는 방명록에는 약간 날려 쓴 글씨로 장소호라는 이름이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옆에는 조그마한 글씨로 사례감 태감 왕진과 은룡패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행적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왜지?’
서달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방명록의 필적을 살폈다.
“그래서? 장 공자는 안에서 뭘 하고 갔지?”
“궁금하면 직접 들어가서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뭐?”
“그분은 지금 안에 계십니다. 반 시진쯤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