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231화 (360/686)

10권 6화

제26장 신흉도올(新凶檮杌) (2)

대산은 거구의 사내였다.

키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의 두 배 가까이 넓은 어깨와 바위처럼 단단한 몸을 지녔다.

머리는 반들반들한 광이 날 정도의 대머리였는데, 반대로 코와 입은 물론이고 턱과 뺨을 가리지 않고 온통 덥수룩하게 돋아난 수염이 그에게 두목으로서의 위엄을 주고 있었다.

“방문객?”

대산은 처음으로 붉은색 서찰로부터 시선을 떼고 의심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은 약속이 없었는데 누가 온단 말이냐?”

“그게…….”

대산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에게 소식을 전하러 온 사내는 진광이었다.

그는 보통의 키에 해골을 연상시킬 만큼 몸이 마른 사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눈에서 섬뜩한 살기를 뿜어낼 줄 아는 사내였다.

맨손으론 북경의 웬만한 낭인 열 명과 싸워도 안 지고, 손바닥만 한 단검이라도 하나 쥐어 주면 서른 명의 목도 따올 수 있었다.

그만큼 실력이 있기에 대산파에서도 입지로 순위를 겨루자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네가 말을 얼버무리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군. 작년에 흑시군이 요상한 건물을 지을 때 이후로 처음 본다.”

“설명이 어려워서…….”

“적이냐?”

대산은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항상 탁자 옆에 비스듬히 세워 두는 굵은 쇠몽둥이도 움켜쥐었다.

“일단 만나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예. 하오문의 소개장을 들고 왔는데, 강한 자들입니다.”

“……그래?”

대산은 복잡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오문이라니. 기루(妓樓) 쪽 일인가? 아니면 마방(馬房) 쪽? 이놈들, 한동안 조용했는데 다시 북경 쪽을 노린다고? 혹시 소문을 들은 건가? 그래서야 안 돼.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하오문까지 오면…….”

대산은 아랫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진광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대산은 늘 그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덩치에 안 맞게 소심하고 걱정이 많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대산파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북경 인근의 암흑가를 지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일단 만나야겠군. 음, 만나야겠어. 손님은 몇 명이지?”

“열한 명입니다.”

“열한 명이라……. 적지는 않군. 지금 어디에 있지?”

“일 층에서 차를 한 잔씩 내주었습니다.”

“이 층의 넓은 방으로 불러라. 활 쓰는 애들 깔아 두고, 투견장이랑 투계장 지키는 애들 싹 다 불러 모아서 일 층에 둬.”

“도박장 애들까지 말입니까?”

“그래. 대비를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지. 하오문은 우습게 보면 안 되는 놈들이야. 혈수라 때를 잊지 말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대산은 그 후로도 끊임없이 중얼거리면서 만전을 기했고, 마침내 모든 게 준비되었을 때 이 층에 있는 ‘손님방’으로 내려갔다.

방문객을 만난 대산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알아챘다.

만전의 만전을 기한다고 했건만, 진광이라는 무뚝뚝한 놈에게 손님의 성별을 물어본다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하오문의 소개장을 들고 왔대서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방심했다.

이들은 하오문이 아니었다.

절대로.

“그대는…… 누구요?”

대산은 평생을 암흑가에서 살아왔다. 여자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상대가 여인이라고 해서 어떻게 대할지 모르거나, 당황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인도 여인 나름이다.

키가 육 척이 넘는 큰 체구에 커다란 꽃문양이 들어간 붉은색 비단 장포를 어깨 위로 걸치고 당당하게 서 있는 여인은 단언컨대 그의 인생에서 처음 보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심지어 함께 온 나머지 열 명의 손님들도 특이했다.

사내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커서 단 한 명도 작은 사람이 없었다. 키가 크고 흉통도 크다. 하나같이 대산보다 크거나 거의 비슷할 정도다. 곰이 사람의 옷을 억지로 껴입은 듯한 모습으로 그들은 묵직한 위압감을 만들어 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 열 명의 사내들이 여인에게 보여 주는 한결같은 태도였다.

그들은 여인을 중심에 둔 채 둥그렇게 반원을 그리듯 둘러싸서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여인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나머지 열 명의 사내들이 그런 그녀를 보호하듯 일제히 반 발자국 더 움직여 그녀로부터의 간격을 유지했던 것이다.

황실 호위대인 금군을 보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저는 무산(武山)에서 온…… 철공주라고 해요.”

대산은 그녀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어리다는 것에 놀랐고, 눈빛이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철공주? 별호인가? 아니면 지위? 어쨌거나 잘 어울리는군. 그런데 왜 부끄러워하지?’

강인한 철(鐵)의 공주라.

지금 보이는 모습을 너무나 잘 묘사한 별호였다. 여인의 볼이 살짝 붉어진 것은 아마 쑥스러워서가 아니라 대화의 흥분 때문일 것이다.

“대산이오. 이미 알고 왔겠지만.”

그들은 서로 포권을 취하지 않은 채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요대를 보니 전부 다 무산학관 출신들인 것 같은데, 이 머나먼 북경 땅 뒷골목엔 어쩐 일로 왔소?”

“협력을 청하러 왔어요.”

“협력?”

대산은 양옆을 힐끗 바라봤다.

그곳엔 대산파의 인물들이 있었다.

숫자는 삼십.

온갖 귀계와 암살이 판을 치는 북경 암흑가에서 나이 서른이 넘도록 살아남은 닳디닳은 정예들이다.

그뿐인가? 양쪽 벽면에 드문드문 뚫려 있는 창문 밑에는 활 좀 쏜다는 사내들 열 명이 몰래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안하군. 무산학관 출신들이라 그런가.’

대산은 그래도 두목다운 얼굴로 자리를 권했다.

값비싼 자단목 탁자는 열 명이 둘러앉아도 충분할 만큼 크고 두툼했다.

“좋소. 일단 이야기를 해 봅시다. 철공주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협력을 원하는 것이오? 미리 말씀드리지만 우린 복잡한 일은 잘 못한다오.”

“전혀 복잡하지 않아요.”

철공주는 대산이 권하는 자리에 앉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간단해요. 대산파가 가진 모든 이권과 건물, 그리고 사람들을 전면적으로 빌려주세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대산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이 모두에게 들렸다.

“뭐라고 하셨소?”

대산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최후의 인내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의 뜬금없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대산파가 가진 모든 이권과 건물, 그리고 사람들을 전면적으로 빌려주세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이 반복되었다.

철공주는 태연하게 서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열 명의 건장한 사내들도 그녀의 말에 동요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정면만 바라보고 서있을 뿐이다.

대산에게 그건 너무나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약관이나 되었을까 말까 한 여인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소저……. 지금 소저가 하는 말은, 우리 대산파를 통째로 넘기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요. 그 뜻을 알고 말하는 것이오?”

“네.”

철공주는 담담했다.

대산은 속에서 울컥 분노가 치미는 것과 동시에 등 뒤에서 한 줄기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것들은 도대체 뭐야?’

철공주처럼 차분한 경우는 둘 중의 하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무림 초출 철부지라 대산파를 그저 동네의 평범한 파락호들 방파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정말로 대단한 존재라서 대산파를 눈 아래로 보거나.

‘어느 쪽이란 말인가. 철공주는 진짜 거물인가? 아니면 철부지인가?’

하오문의 소개장과 저들이 차고 있는 무산학관 철 요대가 그의 판단을 방해했다.

대산은 자신의 감을 믿고 화를 내기 전에 조금 더 참아 보기로 했다.

“소저, 무산학관의 명성이 높고 지닌바 무공이 아무리 고강해도 보이지 않는 칼은 막을 수 없다오. 소저가 말하는 걸 예! 하고 넘겨줄 것 같았으면 우리 대산파가 어떻게 삼대나 이어질 수 있었겠소.”

“흐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도 ‘감히’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고, 북경과 하북의 고귀하신 관리님들도 우리 대산파에 부탁을 할 때는 예의를 지킨다오. 소저가 가져온 하오문의 소개장. 그 하오문조차 우리의 구역 안에서는 우리를 존중하지.”

대산의 목소리에 힘이 점점 강하게 실렸다.

주변에 있던 대산파의 사내들이 각각 품 안에 한 손을 집어넣었다.

품 안에 있는 것은 단검일까, 암기일까.

어느 쪽이든 꺼내는 순간 싸움이 시작되리라.

“음…….”

대산은 철공주에게서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눈길, 그녀의 숨소리조차 포착하기 위해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니까…….”

철공주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웬만한 남자보다도 커다란 체구, 사위를 압도하는 복장을 하고 있는데도 숨길 수 없는 매력이 물씬 흘러나왔다.

“받아들이기 싫다는 거죠?”

쿵.

대산은 그 순간 알아챘다.

철공주라는 여인이 진심으로 대산파를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녀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그녀를 지키는 열 명의 사내들이 표정이 돌변하였다.

차갑게 굳은 얼굴, 송충이 같은 눈썹 아래 강렬한 기운이 번뜩였다.

암흑가에서 잔뼈가 굵은 대산은 그들의 속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모독감.

그들이 모시는 하늘 위의 존재가 업신여겨졌을 때 사내들이 뿜어내는 불꽃같은 열정을 생생하게 느꼈다.

“잠깐!”

그때 나서서 상황을 반전시킨 것만으로도 대산은 대산파를 이끄는 두목으로서 자격이 충분했다.

“철공주, 싫다는 것이 아니오. 이쪽 세계에는 이쪽 세계의 철칙과 체면이 있소. 그만큼이나 큰 걸 원한다면 좀 더 설명해 주는 게 강호의 도리 아니겠소?”

과하게 굽히지는 않되, 그 정도면 먼저 숙이고 들어간 거나 다름없는 태도였다.

“두목……?”

“도대체 왜……?”

진광을 포함한 대산파 간부들이 의아한 목소리를 내며 수군거렸다.

대산은 그들의 반응 따위 신경 쓰지 못했다. 등 뒤가 축축해질 정도로 긴장한 채 철공주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철공주는 그제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좋은 저의 친우가 이런 말을 했어요. 북경을 중심으로 하북 대부분의 암흑가를 평정한 대산파는 무림 거대 방파에 밀리지 않을 만큼의 자금과 영향력을 지녔으나, 흑시군과 사흉이 거점을 만들면서 위기를 겪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객잔, 기루, 마방부터 시작해서 도박판에 이르기까지. 가만히 두어도 일 년 안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날 테니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살길이다.”

“……!”

대산은 철공주의 ‘친우’라는 자의 지독할 만큼 정확한 통찰력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품 안을 만지작거렸다.

그 안에, 그가 얼마 전에 ‘흑시군’으로부터 받은 붉은색 서찰이 들어 있었다.

“무슨 소리야?”

“우리 대산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작자구만?”

부하들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방방 뛰고 있지만, 두목인 대산의 입장에서는 속마음이 까발려진 것처럼 부끄러울 정도다.

“다 좋소. 다 옳다고 칩시다. 그래도 우리가 정말로 위험하다면…… 구파일방. 혹은 하북팽가에 도움을 청해도 되는 거 아니겠소?”

“그건 안 돼요.”

철공주는 단호했다.

“그들은 가문이나 문파의 이름값이 너무 고귀해서 대산파와 드잡이질을 하려하지 않아요.”

“…….”

“하지만 우린 다르죠.”

철공주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친구가 그랬어요. 아무리 필요악이라고는 하나, 죄를 저지르며 살았으니 상대가 자존심을 세운다면 힘을 쓰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했어요.”

철공주는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자단목 탁자의 끝부분을 붙잡았다.

먼지라도 있었던 건가? 라고 대산이 생각하는 순간, 그의 눈을 의심하는 일이 벌어졌다.

콰드득―.

“……!”

그녀가 잡은 손 모양으로 목재가 움푹 패는 것과 동시에 어림잡아 이백 근은 나갈 것 같은 자단목 탁자가 장난감처럼 위로 떠올랐다.

“어? 어어?”

철공주는 길가의 나뭇가지를 옆으로 치우듯이 자단목 탁자를 창문 쪽으로 집어 던졌다.

콰드드득!

“끄아아악!”

창가 쪽에 서 있던 대산파 사내들 다섯 명과 함께 자단목 탁자는 창문을 뚫고 건물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대산이 철공주에게 멱살을 잡힌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멱살을 잡히자마자 바닥에 처박히는 대산.

그는 그의 멱살을 붙잡은 철공주와 함께 바닥을 뚫고 일 층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억!”

등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에 혼절할 것 같던 것도 잠시.

일 층에서 대기하던 투견장과 투계장의 낭인들에게 둘러싸인 상태로, 그의 멱살을 붙잡은 철공주는 대산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대산파는 이제부터 철공주가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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