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240화 (369/686)

10권 15화

제26장 신흉도올(新凶檮杌) (11)

장내의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진 채 그들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난 두 사람은 현실의 존재가 아닌 듯 보였던 탓이다.

석지관과 팽자겸, 그리고 다리 인근에서 기회를 엿보던 상회(商會)와 관리(官吏)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들은 뭐냐.”

도올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그는 본래 쉽게 흥분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더더욱 급격하게 흥분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눈빛이 붉어졌다. 꿈틀거리는 근육, 잔뜩 부풀어 오른 오른팔로 그는 쇠사슬을 다시 한 번 힘껏 잡아당겼다.

파아앙!

쇠사슬이 뻣뻣하게 당겨지는 순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심약한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아야만 했다.

공기가 터져 나가는 것이 실제로 피부에 직접 와 닿을 정도로 강한 압력이 느껴지고,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소리는 그다음에 들려왔다.

“윽!”

“이게 뭐야……!”

강한 바람과 함께 흙먼지가 휘날렸다.

“뭐냐, 너는……?”

도올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묵직한 정도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오히려 자신이 딸려 나갈 것 같은 느낌.

태산(泰山)을 상대로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끝없는 힘의 벽(壁)이 느껴졌다.

그녀가 어깨에 걸친 붉은색 장포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금사와 은사로 섬세하게 수놓아진 커다란 꽃 한 송이가 도올의 눈에 들어왔다.

여인은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아직 앳된 모습이 조금 남아 있는 얼굴에는 치기 어린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녀는 쇠사슬을 놓지 않은 채 허리를 뒤로 조금 뺐다.

촤르륵―.

쇠사슬을 통해 도올의 손에 전해지는 무게감이 점점 더 강해진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붉은색 비단 당혜가 땅바닥을 파고들었다.

콰직!

흙이 파이고, 주변의 땅들이 가뭄에 마른 논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쿠궁!

어른 손가락만 한 굵기의 쇠사슬이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 삐걱거렸다.

도올은 결국 양손으로 쇠사슬을 붙잡아야만 했다.

두 눈과 가슴 부근에서 붉은빛이 번뜩이더니 그가 발로 딛고 있던 땅바닥이 파도치듯 일렁거렸다.

“크아아아아―!”

끼기기긱―.

쇠사슬이 비명을 질렀다.

도올의 양손에 핏줄이 돋아나고 어깨 위의 승모근이 황소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제야 좀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신비로운 여인도 태만하지 못했다.

그녀는 미간을 좁힌 채 자세를 낮추고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냈다.

드드드드―.

튼튼한 쇠사슬을 타고 초인들의 힘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두 사람의 힘이 천하를 짓누르고 있었다. 땅바닥은 그들 두 사람의 힘을 버티지 못했다. 돌이 깨지고 흙이 튀어 올랐다.

도올은 울컥 치솟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이년……!”

양손으로 전력을 다해도 쇠사슬을 사이에 두고 느껴지는 힘은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도올은 속으로 조금 놀랐다.

이제껏 이런 자가 있었던가.

사흉의 짐승인 도올의 힘을 정면으로 받고도 밀리지 않는 초인(超人)이 지금껏 있었냐는 말이다.

으득!

힘으로는 백중지세.

심지어 사흉의 힘을 이끌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다.

도올은 승부욕에 휩싸여 모든 힘을 끌어 올렸다.

고오오오오―.

하늘이 떨리고 땅이 요동친다. 도올이 눈앞의 저 여인을 반드시 힘으로 무릎 꿇게 만들겠다며 속으로 다짐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는 목 뒤가 서늘해지는 느낌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파라락―.

새하얀 비단 무복을 입은 청년이 비조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도올은 귀찮다고 생각하며 쇠사슬에서 한 손을 떼어 그 청년을 손등으로 후려쳤다.

후우우웅―.

그는 이미 신수의 힘을 끌어 올린 상태였다.

권기(拳氣)를 넘어서는 막강한 힘으로 주먹을 휘두르자, 폭풍 같은 바람이 그 뒤를 따라왔다.

파라라락―.

까가강!

“……!”

마치 뱀이 나무를 타고 기어오르듯, 청년은 두꺼운 도올의 팔을 비스듬하게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스쳐 지나갔다.

그 와중에 휘두른 도격(刀擊)이 도올의 흑갈색 팔과 부딪쳐 쇳소리를 내며 튕겨졌다.

“과연, 팔은 정말로 도검불침에 가깝네요.”

쒜에엑―.

하얀 비단 옷을 입은 청년은 순식간에 도올의 품 안으로 들어와 이번엔 하체를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촤르륵―.

도올은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쇠사슬을 놓아 버렸다.

자존심 상하고 화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가 보기에 청년의 움직임은 심상치가 않았다.

양손으로 그를 붙잡기 위해 팔을 뻗자, 청년은 반발자국 뒤로 물러서는가 싶더니, 이내 한 발자국을 다시 앞으로 내딛으며 칼을 내리그었다.

번개 같은 참격!

파공음은 들리지 않았다.

단순한 내려베기이지만, 칼의 유려한 움직임이 군더더기 없는 절초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치 푸른 초원을 질주하는 늑대처럼, 풀숲 사이를 조용히 달려와 가장 치명적인 순간에 송곳니를 드러낸다.

까가가강!

촤악―.

도올의 눈빛이 흔들렸다.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상처가 났어!”

“도검불침이 아니다……?”

처음으로 도올의 몸에 상처가 새겨졌다.

오른쪽 발목 부근.

그가 왼손과 오른손으로 미처 다 막지 못한 틈에 생겨난 상처였다.

피부 거죽이 조금 갈라진 정도.

상처는 손가락 하나 정도의 길이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 그의 몸에 난 상처가 주는 의미는 그 크기와 상관없이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그 상처는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검불침은 완전하지 않다!

석지관과 팽가의 도객들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었으며, 거대한 짐승을 사냥하는 집단 전투의 서막이었다.

“이놈……!”

촤르륵―.

도올은 자신의 어깨를 칭칭 휘감은 쇠사슬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붉은색 비단 장포를 걸친 여인이 쇠사슬의 끝을 양손으로 강하게 틀어쥐고 있었다. 단단히 엮인 쇠사슬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깨를 옥죄어 왔다.

“그 원숭이 같은 움직임. 도철 같은 놈이군.”

도올은 기세를 더욱 끌어 올렸다.

분노가 커질수록 힘도 더욱 강해지는 듯했다. 어깨를 감싼 쇠사슬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팽팽해졌다.

그는 뜨거운 숨을 씨근거렸다.

청년이 내리친 도격은 너무나 훌륭해서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다.

남방 국경에서 수많은 왜구들이 외날도를 사용했지만 그중에는 이런 인물이 없었다.

콰득.

발목에 힘을 주자 근육이 조여지며 상처에서 피가 멎었다.

도올은 자신의 발목을 힐끗 바라본 뒤에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이름이 뭐지?”

지금껏 팽가의 사내들에게는 묻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그만큼 새하얀 비단 무복을 입은 청년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청년은 박도를 다시 칼집에 집어넣었다.

치솟는 호연지기라도 있는 것일까.

척― 하니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더니, 당당한 태도로 이름을 밝혔다.

“내 이름은 장소호. 무산학관의 친구들은 나를 천무공자라고 부릅니다.”

“허?”

도올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천무? 아직 솜털도 안 빠진 꼬마 주제에. 하늘이 내린 무(武)라니. 그딴 말을 하면서 부끄럽지도 않은 것이냐?”

청년, 장소호는 당당하게 되받아쳤다.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소. 별호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

“우습군, 어린아이다운 유치한 생각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학관에서의 내 별명이 아니라, 그쪽이 흑저요새에서 하고 있는 악행이오.”

“뭐라?”

“도올의 악행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오늘 이곳에서 그대를 쓰러뜨리겠소. 일대일로 싸워야겠으나 그대가 가진 힘이 너무 커서 그러지 못함을 사과하겠소.”

다시 박도를 뽑아 드는 그 모습에선 빈틈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올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다가 웃음이 점점 잦아들었다.

“흐흐흐……”

치솟는 기세.

뜨거웠던 숨이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른다.

그는 피를 끓여서 허공에 증기로 내뿜는 것 같은 찐득찐득하고 무시무시한 기파를 뿜어냈다.

“그래. 그럼 한번 쓰러뜨려 봐라.”

도올은 껄껄 웃더니 바닥에 발을 구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

소호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백설지와 만난 이후로 도올을 한시라도 빨리 쓰러뜨려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산파를 장악한 미미는 바로 그때 좋은 소식을 갖고 찾아와 주었다.

도올이 관청을 습격하고, 관청으로 향하는 세금을 빼앗는 등 기괴한 행위를 일삼는다는 정보였다.

“오만한 것인지. 생각이 짧은 것인지. 아니,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좋은 기회입니다. 이렇게나 일이 얽혀 버리면 조만간 큰일이 한 번 터지겠어요. 도올이 선을 넘을 겁니다. 과하게 앞으로 나설 때, 그때가 기회예요.”

섭주해의 예상을 들어맞았다.

도올은 좌도독의 동생이라는 자를 쫓아서 관청을 뒤집어 놓더니, 마침내 북경으로 향하는 다리 하나를 점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땅의 큰 다리는 모두 나라의 것이다.

그런 곳을 마음대로 무력으로 점거한다?

곧바로 관청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한대도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

“석지관은 흑저요새에 잡히면 안 됩니다. 일이 복잡해질 거예요.”

“인질로 삼을 테니까?”

“네. 왕진 태감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어 버려요. 그러면 일이 더 꼬입니다.”

소호는 그 말을 듣고 대미미와 함께 도올을 막으러 나온 것이다.

가까이에서 본 도올은 상상보다 더 덩치가 크고 사납게 생겨서 위압감을 내뿜었다.

특히 미미가 어깨에 감아 놓은 쇠사슬을 당장이라도 터뜨릴 듯이 몸을 부풀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내가 여기서 막는다.’

소호는 뒤쪽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듯 서 있는 팽자겸을 향해 외쳤다.

“연환패왕진으로 막아 주세요! 놓치지만 않으면 됩니다!”

팽자겸은 그 말에 깨닫는 무언가가 있었는지, 눈빛이 변해 수하들에게 다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주변을 둘러싸서 막아 버렸다.

소호는 박도를 뽑아 차분하게 정면을 겨누었다.

온다.

마치 달리는 마차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커다랗고 육중한 압박감이 소호의 시야를 한 가득 채웠다.

“크아아아!”

거무튀튀한 도검불침의 양팔이 소호를 노리고 다가왔다.

소호는 얼마 전에 만났던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승려의 참격을 떠올렸다.

그가 아는 모든 도객들 중 최고의 무공을 지닌 사람이 바로 그다.

자세를 낮춘 채 그를 따라서 움직이는 소호.

그 순간, 소호의 칼끝에서 황금빛 도기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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