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17화
제26장 신흉도올(新凶檮杌) (13)
성인 남성의 몸통만 한 돌덩이를 가볍게 들어 올린 대미미가 오른쪽 어깨를 크게 뒤로 젖혔다가 튕기듯이 앞으로 내뻗었다.
산촌 벽지의 시골 마을 아이들도 할 수 있는 단순한 돌팔매질이다.
대미미가 들고 있는 것이 작은 돌멩이가 아니라 커다란 바윗덩이라는 것만 다를 뿐.
쒜에에엑―!
잔상이 남을 만큼 빠르게 날아간 돌덩이는 마치 포탄과도 같았다.
도올은 흠칫하며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명치 바로 아래에서 손을 모아 날아오는 돌을 받아 들었다.
쿠웅!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이치로 힘을 분산시키는 것은 도올이 잘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굽혀지는 허리.
그가 딛고 있던 발밑이 움푹 꺼지면서 돌로 된 바닥에 금이 갔다.
도올의 온몸이 망치로 후려친 범종처럼 떨렸다. 돌덩이에 실린 힘이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막강했다.
대미미의 투석을 받아 낸 양손을 시작으로 팔꿈치, 어깨, 몸통, 다리로 이어지는 거대한 힘의 흐름이 도올의 온몸을 관통하면서 충격을 안긴 것이다.
푸확!
도올이 힘을 줘서 애써 지혈해 두었던 가슴의 자상이 단박에 벌어지면서 피를 뿜어냈다.
거구의 몸으로부터 붉은색 핏물이 잘 익은 자두를 쥐어짜듯 뿜어지는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강렬했다.
“크……으……!”
도올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이 점점 강해지기만 했다.
이마와 목에서 핏줄이 불룩 튀어나와 피부 밖으로 도드라졌다.
도올이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안 그래도 거적때기나 다름없었던 옷 사이로 승모근과 흉근이 극단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콰드득!
대미미가 집어 던진 돌덩이가 몇 개의 조각으로 쪼개지며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크핫!”
도올은 괴성을 내지르며 양손에 남은 돌덩이 파편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자신이 몸을 부딪쳤던 주춧돌을 손으로 부순 뒤 그 파편들을 한 손으로 집어 던졌다.
후우웅―.
대미미는 당황하지 않았다.
터엉!
어깨에 걸쳐 둔 붉은색 장포를 휘날리며 바닥에 깔려 있는 커다란 화강암 석판을 발끝으로 걷어찼다.
두께만 한 뼘이 넘는 육중한 석판이 나무판자처럼 뒤집어졌다.
석판이 그녀의 몸 앞을 가리는 순간, 도올이 던진 돌멩이들이 그 석판에 부딪치고 비스듬히 미끄러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파바바박!
폭죽을 터뜨리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팽가의 맹호도객들이 황급히 칼을 휘둘러 파편들을 쳐 냈다.
턱.
대미미는 넘어지려는 석판을 양손바닥으로 버티듯이 붙잡았다. 무게중심을 앞으로 내밀고 양 다리에 힘을 줬다. 앞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가속도가 붙었다.
쿵. 쿵. 쿵. 쿵.
단 네 걸음 만에 벽처럼 세워진 석판이 도올을 밀어붙였다. 도올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작고 섬뜩한 두 눈이 짐승의 광기를 흘렸다. 호시탐탐 끼어들 틈을 노리고 있는 소호를 견제하는 눈빛이었다.
쾅!
커다란 주먹이 두꺼운 석판을 부수며 그 중심을 관통했다.
쩍― 하고 갈라진 석판이 위아래 두 쪽으로 나눠진다.
대미미는 석판에서 손을 놓고 도올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옆으로 살짝 밀었다.
무산학관에서 매일 반복했던 태극권의 한 수였다.
커다란 흑갈색 주먹이 대미미의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몸을 낮춘 그녀는, 상하 두 개로 쪼개진 석판을 한 손에 하나씩 자연스럽게 붙잡았다.
성인 남성만 한 석판 두 개를 한 손에 하나씩 들었지만 그녀가 들고 있으니 어떠한 위화감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전부(戰斧: 전쟁용 도끼)처럼 그것들을 휘둘렀다.
일타일격.
동작이 가볍기 그지없어 타격도 순식간에 끝났다.
퍽!
빠각!
콰드득!
한 번 후려칠 때마다 쪼개지고 깎이는 돌덩이가 단 한 호흡 만에 열 번이 넘게 도올의 전신을 골고루 후려쳤다.
천하의 도올이 양손 양팔로 안면을 감싼 채 방어에 전념했다.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주변의 모두가 숨을 죽일 수밖에 없는 초인들의 싸움이다.
“대단하다……!”
“저게 사람인가……?”
사람들이 감탄하여 수군거렸다.
도올은 처음엔 평소처럼 공격을 무시하고 받아치려 했으나, 석판에 한 번 얻어맞으니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나 사라져 버렸다.
구 척 장신 거구가 일격에 몸이 붕 떠서 날아갈 뻔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도올은 몸을 낮췄고, 대미미가 휘두르던 석판이 다 쪼개져서 손바닥만 한 크기밖에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괴성을 지르며 그녀를 붙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대미미는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양손을 휩싸는 기운.
기이할 정도로 청명한 기운이 담긴 혈룡조(血龍爪)로 정면으로 도올과 양손을 맞잡고 씨름했다.
드드드드―.
쿠구궁!
두 사람이 손깍지를 낀 채 잔뜩 흥분한 수소들처럼 정면으로 힘을 부딪쳤다.
손과 손이 맞부딪친 곳에서 위험한 소리가 들리고, 그들이 발로 딛고 서 있는 돌다리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금이 가고 휘청거렸다.
“이얍!”
작게 기합성을 내지른 대미미가 자신의 힘을 더욱 끌어 올릴 수 있는 대력만천세 신공을 끌어올렸다.
대미미의 양팔에서 솜털이 곤두섰다.
은은하게 뿜어지는 기파.
그녀의 육체에 존재하는 모든 혈도에서 힘이 솟구쳐 오른다.
우득.
“……!”
도올의 호신기는 여전히 견고했지만, 순수한 힘에서는 대미미를 압도할 수 없었다.
호각세.
도올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듯 대미미를 바라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천생 신력을 타고나 힘으로는 져 본 적이 없는 도올이다.
사흉의 힘을 얻고, 집혼기의 힘을 끌어 쓸 수 있게 되면서는 힘으로 진다는 게 무엇인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남쪽 전선에서 왜구들과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덩치가 크고 허리에 이상한 동아줄만 매고 있는 힘 센 놈들도 많았지만 도올은 단 한 번도 그들의 허리를 꺾어 버리는 데 실패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눈앞에 불가해한 존재가 있다.
집혼기도 없고, 신수나 사흉의 힘도 없으면서 감히 사흉의 짐승, 도올의 힘을 버텨 내는 건방진 계집이었다.
“계집……!”
도올은 다시 사흉의 힘을 끌어 올렸다. 명치 부근과 두 눈이 붉은색으로 빛났다.
고오오오―.
공기가 압축되고, 도올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열기가 뿜어졌다.
대미미의 미간이 좁아졌다.
도올이 붉은색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하자 이번엔 그녀가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도올이 한 발을 더 앞으로 내디디며 이마로 박치기를 날렸다.
뻐어억!
전투적으로 웃으며 뜨거운 콧김을 뿜는 도올은 그야말로 한 마리의 황소 같았다.
명예도 상식도 없다.
그저 궁극적인 호승심으로 머리부터 밀어붙여서 어떻게든 힘으로 이기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꿈틀거리는 전완근과 한껏 부풀어 오른 등 근육이 마치 산처럼 거대해 보였다.
“후우.”
대미미는 웃었다.
천지가 진동하는 괴력의 대결 속에서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본인조차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해방감에 휩싸여 있었다.
도올의 앞에 서 있는 대미미는 어떠한가?
그녀는 여성치고는 큰 체격을 지녔지만 그래도 괴물의 범주까진 가지 않은 사람이다.
도올과 비교하면 너무나 작아 보여 어린아이처럼 보일 정도다.
거기에 박치기.
사람들은 그녀의 안면이 부서진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곧 그건 기우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대미미는 이마와 이마를 맞댄 채 도올의 힘을 버텨 내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힘을 해방한 게 얼마만이던가.
무산학관 십걸들이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어야만 가능했던 일이 단 한 사람의 대적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다.
“으으.”
대미미는 신음을 흘렸지만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눈.
새카맣고 또렷한, 그 맑은 눈빛에서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곧은 용기가 가득했다.
대미미의 분전은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켰다.
놀랍고 경이롭다.
하늘이 내린 기적 같은 소녀가 천재지변을 사람의 형상으로 빚어 놓은 듯한 거구의 괴한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러한 마음은 대미미의 하얀 이마를 타고 한 줄기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면서 절정에 도달했다.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거력(巨力)을 지닌 선녀(仙女)님! 힘내라!”
“할 수 있다! 저놈이 밀리고 있어!”
“거력선녀님! 힘내!”
다리 주변에서 숨죽이던 민초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사람들의 응원 덕분일까.
대미미는 더더욱 물러서지 않고 힘을 끌어 올렸지만, 체격의 차이 때문에 그녀의 몸이 점점 바닥으로 짓뭉개지는 듯했다.
예쁜 꽃무늬 비단 당혜가 발가락 모양으로 늘어나면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렸다.
그녀가 딛고 있는 돌바닥에 거미줄처럼 금이 간다.
그래도 지지 않는다.
대미미는 있는 힘껏 상대방을 밀어붙였고, 도올의 발이 땅에서 살짝 떨어졌다가 다시 붙었다.
“흡!”
도올은 놀란 모양이었다.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갑자기 눈빛이 변해서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
그는 한 손을 뒤로 빼 대미미의 손을 뿌리쳤다. 옆으로 손을 뻗어 다리의 석재 손잡이를 움켜잡더니 단박에 부러뜨려 그걸로 대미미의 머리를 후려쳤다.
쾅!
대미미의 몸이 휘청 옆으로 흔들렸다.
그녀는 오른쪽 팔을 들어 공격을 막았지만, 터져 버린 석조 파편이 그녀의 얼굴로 튀어서 눈을 뜨기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도올은 쿵― 하고 다시 한 번 발을 굴렀다.
마치 사육사의 명을 따르는 짐승들처럼 발밑의 흙이 일제히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커다란 뱀이 모두의 발밑에서 꿈틀거리며 균형을 무너뜨리는 듯했다.
바닥의 석판이 뒤집힐 듯 요동치니 대미미도 버티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다리 주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맹호도객들도 양손을 허우적거리며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넓은 주마강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요동쳤다.
쒜에엑―.
모두가 혼란스러운 그 순간 비조처럼 날아오른 한 사람이 도올을 향해 쏘아졌다.
새하얀 비단 무복을 입은 청년이다.
장소호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몸놀림으로 뛰쳐나가 도올의 목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흥!”
도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시 한 번 발을 굴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눈치였다. 대미미와 힘을 겨루면서도 소호를 계속 신경 쓰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우르릉―.
우레 소리가 터져 나왔다. 튼튼했던 다리가 휘청거리면서 사방으로 파편을 흘려냈다.
도올의 두 눈에서 붉은빛이 짙어졌다.
벌어진 석판 사이에서 솟구친 흙덩이가 커다란 빨판처럼 움직여 소호의 발밑으로 달라붙었다.
아무런 생명도 없는 흙덩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사람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마치 무덤에서 기어 나온 망자 같지 않은가.
심지어 소호의 바지자락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흙덩이가 길게 늘어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기괴하다.
소호는 창룡 같은 기합성을 내질렀다.
“챠핫!”
무산학관의 천무공자.
체 시험 수석으로 입학했으며, 그 후로도 학관에 준비된 수많은 기관진식으로 단련된 소호다.
발밑의 함정에 당황하지 않고 왼쪽 발끝으로 오른쪽 발등을 밟고 그 반탄력으로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다.
운룡대구식(雲龍大九式).
곤륜의 비전 무공 중 하나인 용형보가 펼쳐진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던 칼이 이번엔 방향을 바꿔 아래에서 위로 칼날이 솟구쳤다.
평소처럼 그냥 몸으로 막는다?
아니다.
지금의 도올은 그럴 수 없었다.
호신기가 뚫리고 소호의 황금기에 가슴이 갈라진 경험을 한 도올은 소호의 칼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황급히 양손을 다 사용해서 칼날을 붙잡으려 들었다.
소호의 두 눈이 그 순간 번쩍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