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1화
제27장 신수소호(神獸小虎) (1)
염상(鹽商) 목인규(木靭葵)는 포기를 모르는 사내였다. 원하는 건 반드시 내 손에 쥐어야 직성이 풀리고, 장애물이 있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성취하고야마는 집념도 있었다.
질길 인(靭:부드러우면서도 끊어지지 않다.)에 해바라기 규(葵:해바라기, 푸성귀, 접시꽃)라는 이름 탓일까.
그는 늘 태양 같은 재보(財寶)만을 쫓으면서 끈질기게 살아왔다.
지천명(知天命)보다는 이순(耳順)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그러한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장애물도 있었고, 위험도 있었지만 그걸 다 이겨 냈기에 지금은 강서 제일 부자라고 평가 받는 염상이 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빈털터리에서 일 성(成)을 지배하는 염상이 된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허나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부르는 법.
그는 강서 제일 염상에 만족하지 않고 바로 옆의 안휘로 진출했다.
안휘성은 남궁세가라는 유서 깊은 명가가 이권을 독점하고 있는 땅이었지만, 그는 명문 세가 따위에 겁먹지 않았다.
강서에는 명문 세가가 없었던가?
해상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유명한 문파와 세가가 많았지만 결국 그의 돈과 힘 앞에서는 굴복했다. 지금 그에게는 남궁세가에게는 없는 것이 있었다.
든든한 뒷배.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그게 ‘나쁜 일’이라도 뭐든 해 줄 수 있는 실행력.
민초들의 인망?
그런 건 다 소용없다.
쓸모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힘이 되어 주진 않는다.
함께 나쁜 짓을 했다는 ‘유대감’이야말로 높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목인규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얻어 낸 뒷배도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남궁세가에게도 싸움을 걸 수 있었다. 지금은 바야흐로 황사(皇師) 왕진과 그가 지닌 흑시군이라는 힘의 시대가 아니던가.
목인규는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매일 다짐하곤 했다. 염상으로 얻어 낸 자금과 힘으로 언젠가 대륙 제일의 상왕(商王)이라는 이름을 얻고 말리라. 그는 지금이 바로 자기 인생의 황금기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최근에 나를 노리는 자들이 있는데, 그게 누군지를 모르겠네.”
목인규는 오늘 처음 만난 평범한 인상의 사내를 향해 자신의 약점이라 할 만한 부분을 털어놓았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 밑은 며칠이나 잠을 못 잔 탓에 퀭하니 어두워져 있었다.
본래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남에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점이 생기면 돈을 써서 해결책을 알아내고, 사람을 고용해 해결하면 된다.
아무리 큰일이 있어도 겉으로는 어떠한 약점도 없는 패기만만하고 완벽한 야심가를 연기하는 것이야말로 목인규의 성격이었다.
“정보가 필요하면 사람을 잘못 찾아왔소. 하오문이나 개방으로 가시는 게 어떻겠소?”
평범한 인상의 사내, 야조탑의 특급 살수 청조(靑鳥) 만총은 싫은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본인의 일에 자부심이 있군. 좋아. 아주 좋은 일일세.”
“알면 그에 걸맞은 일을 맡겨 주는 게 어떻겠소?”
“자네는 크게 착각하고 있군. 야조탑주가 자네를 이곳에 보내면서 뭐라고 하던가?”
만총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탑주께서는 이걸 단순한 의뢰가 아니라 야조탑이라는 문파의 협력으로 처리하라고 하셨소.”
“그렇지. 그랬겠지.”
목인규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꽤나 풍채가 좋은 덩치 위로 턱살이 살짝 접혔다가 드러나길 반복했다.
“이건 단순한 일이 아니니까. 거기에 같은 분을 모시는 입장에서 문파끼리 협력해야 하지 않겠나?”
“……같은 분을 모셔? 문파끼리?”
만총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오랫동안 가만히 곱씹었다.
“나는 지금껏 많은 적들을 만났네. 강서성의 뒷 상권을 재패한 건 단순히 운 때문이 아니지. 야조탑과 인연을 맺은 것도 그 때쯤이야. 적들이 많았거든. 야조탑은 나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네. 또한 나는 그에 대해 금은보화로 화답해 주었지.”
목인규는 살업을 쌓아 상계를 재패한 자.
본색을 드러낸 그에게서는 어두침침하고 우중충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온갖 수라장을 넘어온 역전의 장수가 바로 날세.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그중에서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야조탑주가 북경 최고의 살수인 자네를 이곳으로 보내 준 건 자네를 무시해서가 아닐세. 오히려 위험하다는 내 의견을 그만큼 존중했기에 자네를 보낸 거야.”
만총은 그제야 이런 작은 일에 자신이 불려나왔다는 불쾌감을 억누르고 목인규의 말을 들을 자세가 되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오.”
“얼마 전에 기이한 일이 있었네. 소금을 보관하던 창고에 불이 났지.”
“소금 창고에 불이?”
“그래. 본래라면 그날 창고를 지키던 자들을 벌하고 넘어갈 일이지만 그렇게 넘기기엔 피해가 컸어. 강서성에서 한 달은 만들어야 할 소금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걸세.”
본래 염상에게 소금이란 금과도 같은 가치를 지녔을 터.
강서성 전체에서 생산되는 소금의 한 달치라니.
그야말로 창고 안에 황금을 탑처럼 쌓아 뒀었는데 그걸 날려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불에 타서 없어진 건 사고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오?”
“난 소금이 탔다고 말한 적은 없네. 통째로 사라졌다고 말했지.”
“뭐요?”
만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럼 그걸 누가 훔쳐갔다는 말이오?”
“건장한 사내 백 명을 투입시켜도 한 시진이 넘게 옮겨야 비로소 다 옮길 수 있을까 말까 한 양일세.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 벌어졌지.”
“범인은 잡았소?”
“아니.”
거기서부터 목인규의 목소리에 분노가 깃들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암! 이해할 수 없고말고. 요괴가 도술을 부린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도 내게는 나를 따라 주는 수하들이 좀 있네. 그들은 이런 일의 범인을 찾아내고 추적하는 것에 능하지.”
“오룡방(五龍房)을 말하는 것이군.”
암흑가 쪽의 뒷세계에서는 유명한 이름이었다.
강서성 출신의 파락호들.
황해의 거친 물살을 닮은 다섯 명의 사나운 용들이 염상 목인규를 돕고 있다는 건 꽤나 많이 알려진 이야기였다.
뒷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들이라면 어떻게든 범인을 추적해 냈을 것이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원인을 찾아냈을 자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안 됐네. 오룡 중에 세 명이 죽었지. 그것도 한 사람을 상대로 한 것 같았어. 일격에 세 명의 가슴이 베였다네. 세 놈의 시신을 나란히 눕혀 두니 상처의 모양이 수평으로 일정했어.”
만총의 눈빛이 심유해졌다.
“강호인이로군. 그것도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절정의 고수.”
만총은 자신이 차고 있던 검을 손으로 매만지며 상상해 보았다.
아무리 파락호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뒷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이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익힌 그들만의 기술 몇 개는 분명 가지고 있을 터.
그런 자들의 가슴을 한꺼번에 일격으로 갈라 버린다?
쉽지는 않지만 그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시의적절한 시점만 노린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세 명이 당했군. 나머지 둘은 어떻게 되었소?”
“이틀 후에 그들도 죽었네.”
“똑같이 죽었소?”
“그래. 가슴이 갈라져서 죽었다네. 똑같은 무공으로.”
목인규의 목소리는 시리도록 차가웠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소? 가만히 있지는 않으셨겠지.”
“물론일세. 나는 오룡방 수준으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사람을 고용했네. 낭인이었지. 은원보 백 개를 썼다네.”
만총의 얼굴이 굳어졌다.
은원보 백 개는 상상도 못했던 숫자였다.
요즘 들어 원보는 원나라의 것이라는 이유로 잘 안 쓰는 추세지만, 그래도 말안장 모양의 은원보 하나라면 은자로 오십 개의 값어치는 된다.
참고로 은자 한 개면 보통 농민 가족의 한 달치 쌀값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은원보가 백 개?
그러면 은자로는 오천 개다.
특급 살수를 사더라도 다섯 명은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인 것이다.
“그 정도 금액을 쓰다니. 도대체 누구를 고용한 것이오?”
만총의 목소리가 조금 떨려나왔다.
“철사자(鐵獅子).”
“철사자? 철사자 백오상 말이오? 낭왕(狼王) 중의 한 명인?”
“그렇네. 그가 직접 와서 내 의뢰를 받아 주었지.”
“결과는? 아니, 날 불렀으니 물을 것도 없지……. 믿기지가 않는군. 정말이오? 그도 죽었소?”
“죽었네. 오룡들과 똑같이. 다만 이번에는 수직으로 갈라졌다네. 머리끝부터 사타구니 가운데까지. 정확하게 절반을 갈라놓았더군.”
본인도 청조라고 불리는 야조탑의 특급 살수인 만총이 일순간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철사자 백오상은 오룡방의 오룡 따위와 비할 바가 아니다.
산서에서 무적이란 소리를 듣는 고수.
산서낭왕이라고 하면 바로 철사자를 뜻한다.
비록 명문 무파 출신은 아니지만, 평생을 강호를 떠돌며 쌓아 올린 이름값은 구파일방 장문인에 필적하는 자였다.
그런 자를 죽인다?
그것도 머리끝부터 사타구니까지를 일격에 반으로 베어서?
“믿기지가 않는군…….”
처음에 이 일을 우습게 보고 있던 마음은 싹 날아간 지 오래였다.
이제는 돈을 받고 검을 파는 사람으로서, 이 일이 그의 최후의 업무가 될 수도 있겠다고 직감했다.
그는 냉철하게 자신의 승률을 가늠해 보았다.
산서 낭왕.
철사자 같은 자를 죽이는 것.
‘불가능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모든 조건을 갖추고, 살수로서 암습을 가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천운까지 따라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야조탑 최고의 살수라 자부하는 만총이라 해도, 이 일만큼은 의뢰자에게 필살(必殺)을 약속할 수가 없었다.
“당신의 뒷배에 말하면 되는 것 아니오? 그 사람이라면 웃으면서 처리해 줄 텐데?”
“도 대인 말이군.”
목인규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분은 분명 대단하지만……. 이건 그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은 아닐세. 도 대인과 흑시군은 남궁세가를 상대해 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지.”
“으음.”
“그리고 진정 무서운 일은 철사자가 죽은 뒤에 벌어졌다네. 내가 가진 사업들이……. 누군가에게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지.”
“사업들이?”
“염방, 마방, 기루, 다루, 객잔……. 철사자와 오룡이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발 같던 사업들이 잘려 나가기 시작하더군. 그것도 동시에, 한꺼번에 말이야!”
“노렸군.”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네. 이런 일은 도 대인이 알아선 안 돼. 안휘 땅을 위해 지금껏 해 온 모든 일들이 무너질 것이야. 나에 대한 신뢰가 망가지면 나는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겠지.”
목인규는 광기마저 보이는 분노를 품고 있었다.
“이 일은 누군가가 철저히 계획해서 실행한 일일세. 나는 확신하네. 게다가 그들은 이쪽 업계를 잘 알고 있어. 원래 잘 모르는 자들이 건드리면 온갖 잡음들이 들려오지. 자신이 있으니 단번에 빼앗았겠지.”
실제로 온갖 사업체들이 조금도 잡음을 일으키지 않은 채 하나둘씩 넘어가는 광경은 목인규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내가 그를 죽이길 바라오?”
“아니, 그러면 소원이 없겠다만, 지금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 테지. 상대가 정확히 누군지 알아오게. 그러면 은원보 백 개를 주도록 하지.”
또다시 은자 오천 냥에 달하는 금액을 약속하고 있음에도 목인규의 말투에는 변함이 없었다.
염상이 얼마나 돈이 많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목인규는 모든 사업들을 빼앗겨 가는 와중에도 자금을 사용하는 것에 여유가 있었다.
“상대가 누군지만 밝혀내도 그 은원보 백 개를 주겠단 말이오?”
“그렇다네. 만약 죽일 수 있다면 은원보 백 개를 더 주도록 하지.”
잠시 고민하던 만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줄 단서는 있소?”
“염상.”
목인규의 눈에서 귀기가 번뜩였다.
“이 미친놈들이 내게서 빼앗은 소금을 새로 만든 염상에서 팔고 있다고 하더군. 우선 거기부터 시작하면 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