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254화 (383/686)

11권 4화

제27장 신수소호(神獸小虎) (4)

“저기, 어디서 오신 분이라고 전하면 될지……?”

하인들은 쭈뼛거리면서 조심스레 되물었다.

“철사자를 벤 자라고 전해 주세요.”

“예?”

하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에 깜짝 놀라면서 몸을 떤 것은 옆에 있던 만총뿐이다.

“철사자……?”

“그렇게만 말해주시면 돼요.”

부드럽게 웃는 청년에게서는 그 이상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될 것 같은 단호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인 한 명이 우물쭈물하면서 안쪽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이상한 괴성과 함께 목장원 전체가 소란스러워지더니 사색이 된 하인이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왔다.

“저, 저기, 목 대인께서 안으로 들어오시랍니다.”

청년은 그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만총은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청년의 뒤를 따라갔다.

마부를 가장한 형태로 여기에 오게 된 건 당황스럽지만, 지금은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도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목장원은 대문을 지나 내실에 들어가는 데까지만 해도 꽤나 넓은 정원을 지나가야만 했다.

짧은 보폭으로 백 보 거리.

앞서가는 하인들과 조금 거리가 떨어졌을 때, 청년이 만총에게 말했다.

“사실 나는 요즘 고민이 좀 있었어요.”

“예?”

“화두(話頭)는 사람의 목숨을 얼마나 귀하게 여겨야 하냐는 거였죠.”

“……?”

“원래 동물은 서로 죽이고는 해요. 자연은 냉혹하죠.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칠 인물을 살려 둬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오히려 세상을 위해서는 죽여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애초에 죽음이란 뭘까요? 죽이는 자가 죽는 자의 목숨을 뺏는 만큼 강해진다면? 죽은 자의 혼백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면? 그 정도 책임감이 있다면 사람을 죽여도 되는 걸까요?”

청년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내게 왜…… 그런 걸 묻는 것이오?”

만총은 어느 순간, 마부의 모습이 아닌 야조탑의 특급 살수 청조로서 청년을 마주하고 있었다.

청년의 눈빛은 너무나 순수했다.

그 강함.

무서울 정도로 이질적인 힘.

그런 힘을 지녔음에도, 청년에게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사람은 왜 죽는지 궁금해하는 순수함이 있었다.

“당신이 살수(殺手)니까요. 살수란 돈을 받고 사람의 목숨을 뺏는 자. 그러니 사람을 죽일 때 죽음에 대한 생각 정도는 해 본 적이 있죠?”

만총은 청년이 그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받은 정도의 감흥밖에 없었다.

그보다는, 만총은 의외로 자신이 담담하게 답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죽음이란…… 해방이오.”

만총은 청년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평범한 박도를 바라봤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원한을 만들 만한 자만 골라서 죽였소. 백도의 인물이든, 흑도의 인물이든. 청렴결백한 걸로 소문난 관리든, 악명 높은 도박꾼이든 간에 누구든……. 살다 보면 보이지 않는 비밀은 있는 법이지. 그리고 그런 비밀에서 이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한 원한이 생기는 것이오. 결국 거액을 들여서라도 죽여 달라는 의뢰가 날아올 만큼 잘못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지.”

긴 이야기였지만 청년은 단번에 이해한 듯 보였다.

“즉, 죽일 만한 사람을 죽였다?”

“그리도 말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걸 판별하는 것은 내가 아니오. 난 그저 의뢰인이 가진 돈의 액수에 따라서 ‘죽이고 싶다는 의지’를 실행하는 검일 뿐. 결국은 의뢰인의 능력이라고 해야겠지.”

“흐음.”

청년은 불만스러워 보였다.

“그 말은 좀 비겁하게 들리는데요. 내 책임은 없다는 거잖아요?”

“그런가? 하지만 그게 사실이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많은 의뢰 중에 의뢰인을 선택함으로써 조금…… 아주 조금, 내 마음을 얹을 뿐이오.”

“마음을 얹는다?”

“연장자로서 내 경험을 말하자면……. 지금껏 만난 본 의뢰 대상들은 항상 행복하지 않았소. 하남 제일의 거상이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자든. 그들은 항상 불행했소.”

생각해 보면 재밌는 이야기였다.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 어째서 불행할까.

만총은 이러한 이야기를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만난 청년에게는 할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순수한 눈빛을 가진 청년의 알 수 없는 능력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늘 뭔가에 쫓기고 살았소. 거대한 흐름에 탑승해서 어쩔 수 없이 고삐를 쥐고 있을 뿐, 다들 사나운 황소의 등에 올라탄 어린아이 같았지. 늘 작은 것에도 걱정하고 예민한 상태로……. 앞날이 어찌될지 두려워했소.”

“다들 그랬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그랬소. 이상하게 가진 것이 많을수록 겁이 많더군. 죽을 때가 다가오면 나도 모르던 자신의 악행을 줄줄이 고백한다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고통해서 해방시켜 준 것이오. 죽지 못해 사는 것 같던 그 죄 많은 겁쟁이들을.”

만총은 품 안의 단검을 꺼낼까 하다가 포기했다.

눈앞의 청년이 박도를 뽑아 들면 어차피 죽는다.

그는 무인이 아니다.

살수다.

생존과 죽음.

둘 중에 어느 쪽이 확률이 높은지 계산해 보고, 이길 수 있다면 칼을 들고 질 것 같다면 포기하는 것이 살수였다.

그는 모든 것을 청년의 의지에 맡겼다.

“이제 어쩔 것이오? 나를 죽이시겠소?”

만총은 가슴이 베여도 끝까지 의연히 죽겠노라 다짐하며 곧 닥쳐올 고통에 대비했다.

그런데 그에게 향한 것은 청년의 의아한 듯한 눈빛뿐이었다.

“내가요? 왜요?”

“……왜냐니?”

“아저씨는 날 죽이려고 안 했잖아요.”

청년은 빙긋 웃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햇살 같은, 구김살 없는 미소였다.

“아까 제가 요즘 고민이 많다고 했죠?”

“분명 그렇게 말했소.”

“최근에 난 나만의 기준을 세웠어요. 나를 죽이려고 하는 자. 그리고 세상에 해를 끼치는 자는 망설이지 말고 죽이자.”

청년은 자신의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얘가 가끔 이상한 말을 해서 유혹하지만……. 난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거거든요. 다만 칼로 베기 전에 이름은 물어봐 주고 기억하기로 했어요. 그의 인생을 내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거니까요. 아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청년은 나직하게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마음을 조금 얹을 뿐. 다 순리대로 흘러가는 거죠.”

“아…….”

“아저씨는 내 기준에 둘 다 들어오지 않네요. 그러니까 베지 않을래요.”

손을 휘휘 내저은 뒤 안으로 걸어가는 청년의 뒷모습이 태산만큼이나 커 보인다.

만총은 할 말을 잃고 제자리에 굳어져서 서 있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 기이한 것을 목격한 것 같은.

거대한 자연재해가 자신만 피해서 옆으로 스쳐 지나간 것 같은 허탈하고 기묘한 감정이 만총을 덮쳐왔다.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 내가 순순히 당할 줄 알고!”

청년이 내실(內室)로 들어서자마자 안쪽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 같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총도 알고 있는 목소리라서 그는 홀린 듯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 걸음 가기도 전에 그는 목장원의 내실이 완전한 사지(死地)로 변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십 명의 무인이 내실을 포위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복색에 몸에 흉터가 잔뜩 새겨진 강자들.

지붕 위에서 복면을 쓰고 있는 살수들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거친 싸움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낭인들로 보였다.

검, 도, 창, 활과 허리에 찬 단도와 암기들까지.

수많은 병기들이 내실에 들어선 한 청년을 겨누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재밌네요.”

청년은 수많은 적들을 눈앞에 두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만총은 어째선지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청년은 긴장하거나 겁먹는 것이 안 어울리는 사내였다.

그는 코앞에 겨눠진 검을 무시한 채 주변을 둘러보면서 즐겁게 웃기까지 했다.

“이놈! 실성이라도 한 건가? 이 모습을 보고 웃어? 네놈이 철사자를 벤 자가 맞느냐!”

“맞아요.”

청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 초식.”

“뭐?”

“삼 초식 만에 가슴을 갈랐어요. 그리 특별할 것은 없더라고요.”

청년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그 어디에도 자만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분위기가 없었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낭인들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알고는 있었으나, 더욱 위험한 청년이라는 것을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이, 이 쳐 죽일! 그런 짓거리를 하고……! 천하의 거상인 나, 목인규를 건드려 놓고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반드시 네놈을 죽일 테다!”

목인규는 절규했다.

“천금을 들여서 모은 무인들이 네놈을 찢어 죽일 것이야!”

목인규는 이성을 잃고 소리치고 있었다.

만총이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진 듯 보였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안휘성에 구축한 모든 상점들을 잃고, 흑시군에게 버림받을 위기에 몰린 그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죽여 버려!”

목인규의 절규와 함께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낭인과 살수들이 일제히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만총은 그 모습을 보며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목인규는 궁지에 몰려 이성을 잃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자리를 허투루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그를 강서 최고의 부자로 만든 철저한 준비성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주변을 포위한 사람들 중에는 만총이 알아볼 만한 자들도 많았다.

무(武)의 성지(聖地), 하남에서 생사결(生死結)로 싸울 때 최고를 다툰다는 벽력검.

호북에서 세가지 무기를 귀신같이 잘 쓴다고 해서 삼절(三絶)이라고 불리는 낭왕 기철.

거기에 지붕 위에서 월(月)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복면을 쓰고 있는 살수들은 대륙 제일을 논하는 최고의 살문인 일야회(日夜會)의 특급 살수들이다.

하나하나가 강적이었다.

만총으로서는 저 중의 단 한 명만 마주하더라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한 강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그 자체로 천라지망이나 다름없다.

만총이 저곳에 갇혔다면 자결하는 것밖에 답이 없을 만큼 치명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상황을 맞은 청년의 대응은 평온하게 칼을 빼들 뿐이었다.

수십의 고수들을 상대로 혈혈단신.

피슈슉―.

화살이 날아가고, 벽력검의 검격이 우레 소리를 내며 청년에게로 떨어졌다.

위기의 순간, 홀로 선 청년의 몸에서 팔파일방의 절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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