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255화 (384/686)

11권 5화

제27장 신수소호(神獸小虎) (5)

소림의 심법에 무당의 장타.

제운종(梯雲縱)에서 뻗어 나오는 여래천수장(如來千手掌).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가?

만총도 평생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무리 만류귀종이라지만, 무공에는 어울리는 계파(系派)라는 게 있는 법이고 결국에는 같은 문파에서 나온 무공을 전문적으로 익혀서 쓰게 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걸 어긴다면 그저 잡종이 된 무공일 뿐.

내공과 외공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저잣거리 약장수들이나 쓸 법한 삼류 무공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 눈앞에는 그의 상식을 파괴해 버리는 자가 분명히 존재했다.

놀라울 따름이다.

잡종 같은 무공은 오히려 각각의 단점을 덮어 주는 탁월한 무공이 되었다.

날아오는 검날을 제운종으로 부드럽게 피해 내고, 수십 개의 손이 뻗어 나오는 듯한 여래천수장에 벽력검의 턱이 돌아갔다.

양옆에서 찔러 오는 검들은 태극권으로 흘려내고, 가까이 다가온 자들에겐 아미파의 항마연환신퇴(降魔連環神腿)가 순식간에 수십 번의 각법으로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팔파일방의 정수.

마치 본인이 팔파일방 무공의 화신이라도 된 것처럼, 각 문파의 절공을 아무렇지도 않게 숨 쉬듯이 쏟아냈다.

쒜에에엑―!

이어지는 도격(刀擊) 일참(一斬)은 기묘하게도 흔치 않은 북방의 무공을 닮아 있다.

촤아아아악―!

“……!”

벽력검의 가슴이 일격에 갈라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습격자 전원의 전의(戰意)를 꺾는 효시와 같았다.

깨끗하고 화려한 백색의 비단 장포.

금사로 장식된 영웅건을 휘날리며, 청년은 신들린 사람처럼 무아지경으로 움직였다.

치리리링― 촤악!

푸화악!

보보(步步)마다 절공(絶功).

덤벼드는 낭인들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내는데, 마치 청년에게만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청년이 휘두르는 칼은 반드시 상대방의 몸에 격중해 큰 상처를 남긴다.

삼절 낭왕 기철의 곤법을 운룡대구식으로 피해 내고, 한쪽 손으로만 합장을 하는 반장의 예로 시작된 금강반약장(金剛般若掌)이 연쇄적으로 뻗어 나가며 덤벼드는 낭인들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터엉!

파바바바박!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이 깨지고 부서지며 파편을 이리저리 흩날렸다.

장쾌한 광경이 펼쳐졌다.

청년이 발을 뻗어 나아가는 만큼 주변을 둘러싼 포위망이 휘청거리며 제 모습을 잃어 간다.

수십만의 병력을 홀로 돌파한 상산 조자룡이 이러했을까.

단 한 사람의 질주에 다수의 무인들이 휩쓸리고 있었다.

“이놈! 거기 서라!”

차르르릉―.

뒤로 따라붙은 삼절낭왕 기철이 들고 있던 곤을 돌려서 뽑으니 중간이 사슬로 연결된 삼절곤으로 변했다.

삼절곤에 실린 굴강한 기운이 당장이라도 청년의 머리를 부술 듯이 휘둘러졌다.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도 사슬부분이 꺾이면서 몸을 타격한다는 점이 삼절곤의 무서운 점이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방패를 든 상대를 가장 쉽게 때리는 무기가 바로 편곤이나 삼절곤 아니던가.

쩌어엉!

쩌정! 까가가강!

“……!”

청년은 삼절곤의 끝부분만 칼로 쳐 내는 방법으로 기철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 냈다.

긴 거리를 제압한 삼절곤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렸다.

거기에 그걸 휘두르는 것은 삼절이라 불리는 낭왕 기철.

신묘하면서도 사슬의 묘리를 최대한 살린 움직임이 화려하게 펼쳐졌건만.

그 끝을 정확하게 칼끝으로 쳐 내는 건 보통 인간의 반사 신경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처음으로 일방적인 싸움이 아니라, 다섯 수가량 일진일퇴의 공방이 오고 갔다.

호시탐탐 청년의 요혈을 노리지만, 날카로운 박도는 삼절곤의 쇠사슬과 끝단을 일일이 쳐 내면서 절대로 허점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다섯 번의 초식을 서로 교환했다.

삼절곤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기철.

쿵!

그는 삼절곤을 단단한 대리석 바닥에 꽂아 넣고는, 마지막으로 등 뒤에 비스듬히 매고 있던 대도(大刀)를 뽑아 들었다.

후우우웅―.

손바닥 한 뼘만 한 넓은 칼날이 위협적으로 타원형을 그려 낸다.

청년은 한 발 물러서서 기철의 도법을 받아 주었다.

휘리릭!

깡!

쉬이익!

기철의 대도술은 강맹했다. 내딛는 발걸음, 대도의 칼날을 좌우로 회전시키면서 덤벼드는 모습이 맹호처럼 사납다.

연환파천도(連環派川刀)!

육중한 중량감과 날카로운 예기가 합쳐지자 스치기만 해도 손발이 날아갈 것 같은 위험천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심지어 대도에서는 청람빛의 강맹한 기(氣)가 강기지경(罡氣之境)에 가까울 정도로 위력적으로 뿜어졌다.

“흠.”

하지만 대도를 선택한 건 기철의 실수였다.

청년은 웃고 있었다.

마치 대도를 상대하는 것이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

그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더니, 갑자기 정면으로 달려들어 대도와 박도를 서로 맞부딪쳤다.

쩌어엉!

범종을 때린 것 같은 시끄러운 소음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칼 대 칼.

똑같은 공격이라면 무게가 무거운 쪽이 더 강한 것이 상식이건만.

삼절낭왕 기철의 대도는 단 일격에 박살 나며 반 토막으로 부러져 버렸다.

“참(斬)!”

은은한 황금색 휘광이 청년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한 자루의 박도는 경악하는 기철의 가슴에 너무나 쉽게 파고들었다.

푸화악!

치솟는 핏물.

청년은 기철이 멍하니 쓰러지는 모습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막강한 힘을 줄기줄기 뿜어냈다.

우우우웅―.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파가 이제는 눈에 보일 정도다.

청년은 그 기세를 그대로 간직한 채 그대로 나머지 낭인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이제는 습격자와 피격자가 바뀌어 있었다.

나름 지역에서 사납기로 이름 높던 낭인들이 이곳에선 범에게 쫓기는 양 떼에 불과했다.

황금색 기운이 두 눈에 서리는가 싶더니, 이제는 허공에 정권을 내지르자 열 걸음 밖에 서 있던 낭인이 뭔가에 얻어맞은 듯 날아갔다.

“백보신권……!”

“저게 사람인가……?”

장쾌하게 이어지던 싸움이 절정의 순간을 맞이한 것은, 그동안 지붕 위에서 지켜만 보던 살수들이 위아래에서 동시에 튀어나오며 암습을 가하는 순간이었다.

파라라락―.

“……!”

청년의 몸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다가 전혀 다른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사람의 감각을 속이는 신법.

시각을 속여 사람의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교묘한 움직임이었다.

문제는 그 신법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일야회에서 나온 살수들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더니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는 점이다.

청년이 항마연환신퇴를 차 내자 살수들은 반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얻어맞은 채 뒤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그들은 갑자기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손을 내젓고는 다시 지붕 위로 올라가서 조용히 추이를 관망하는 관객으로 변했다.

청년은 도망치는 살수들을 굳이 쫓지 않았다.

격화된 싸움.

수십 명의 사내들이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비단 장포 사이로, 청년이 허리에 차고 있는 철 요대가 빛난다.

만총은 철 요대가 상징하는 한 장소와, 눈앞의 청년이 보여 주는 경이로운 무공 실력을 보며 항간에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하나의 이름을 떠올렸다.

“무산학관…… 천무공자……!”

무공에 대한 재능으로는 드넓은 강호 무림에서도 감히 상대할 자가 없으며, 약관의 나이가 되기 전에 이미 차세대 무림 최강자가 될 수 있다면서 강호 무림에 명성을 떨친 인물.

“스으읍…….”

천무공자는 제자리에 서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모으는 듯한 모습이었다.

몸에서 흘러나오던 황금색 휘광이 사라지고, 어째선지 약간 불그스름한 기운이 눈빛에서 감도는 듯했다.

성큼.

한 걸음을 내딛는 천무공자의 모습은 처음 목장원에 등장했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절정에 다다른 수십 명의 무인들을 상대하고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는 괴물이다.

“흐, 흐억……!”

너무나 큰 충격에 멍하니 서있던 목인규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는 천무공자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허둥거리더니 결국 뒤로 넘어져 버렸다.

두툼한 턱살이 떨린다.

그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 이를 악물더니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집어 던졌다.

황금색의 동그란 구체는 흑시군에서 사용하는 폭침탄이다.

파라라락―.

퍼버벅!

천무공자는 소매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반선수 일격으로 날아오는 폭침탄을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지붕 위를 향해 폭발하는 폭침탄.

치명적인 극독이 발라진 암기들이 의미 없이 천장 대들보에 빼곡히 박혀 든다.

쿠웅!

천무공자가 거세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흐억!”

이번엔 등을 돌려 도망치려는 목인규의 발목을 걷어차고, 어느새 빼든 박도를 목에 들이대자 값비싼 비단 옷이 목덜미부분만 잘려서 나풀나풀 떨어졌다.

“이름이 뭐죠?”

“흐, 흐어……?”

“강서성의 이름난 염상(鹽商)이며, 안휘성에서 도철과 작당하여 그의 돈줄이 되어 준 남자. 당신의 이름이 뭡니까?”

천무공자의 밝고 경쾌한 말투는 목인규를 더욱더 겁에 질리게 만든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볼 때 사람은 겁에 질린다.

장내에는 숨을 쉬기 힘들만큼 짙은 피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전 재산을 들여 고용한 최고의 무인들이 단 한 명의 청년에게 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믿기 힘든 일이건만.

거기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웃기까지 하는 청년의 모습에서 목인규는 강한 괴리감을 느꼈다.

심지어 청년의 눈빛에서는 포식자가 미물을 내려다보는 듯한 미묘한 위압감까지 있었다.

“모, 목인규……!”

“그래요. 목인규. 도철을 없애기 위해, 당신의 자금은 제가 사용하겠습니다.”

천천히 칼을 위로 쳐드는 천무공자는 지금 이 순간, 그야말로 사람의 생사를 관장하는 여래와 다름없었다.

“자, 잠깐! 잠깐만……!”

목인규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재산……! 재산이 필요하다고? 그럼 돈을 주겠다. 어차피 지금 날 죽여 봤자 은자로는 얼마 가지고 있지도 않아. 강서성. 그래, 강서성에 있는 내 상회가 몇 개인데. 그깟 재산 얼마든지 만들어 주겠다!”

목인규는 그의 잘못들을 낱낱이 고백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했다. 애초에 안휘성에 온 게 잘못이었어! 도철한테 남궁세가의 상회를 몰아내자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냥 강서성에서 조용히 소금 장사나 할 것을. 괜히 애꿎은 상인들만 죽이고, 살문을 고용하는 바람에 암살만 많이 하고……! 내 잘못이다. 내가 실수했어! 난 죽고 싶지 않아……!”

덜덜 떨면서 온갖 말들을 자제하지 않고 내뱉는 목인규를 바라보며, 천무공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가진 자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래, 이런 거였군요.”

스릉―.

천무공자의 박도가 시퍼런 예기를 뽐냈다.

“당신을 해방시켜 줄게요.”

“히익!”

“마음을 조금 얹을 뿐.”

촤아아악―!

칼을 내리치는 천무공자의 모습은 무공을 모르는 문외한을 상대로도 동작에 허점이 전혀 없었다.

피를 뿜으며 호흡이 멈추는 목인규.

바닥에 쓰러진 그를 한참 동안이나 지그시 바라는 천무공자는 지극히 담담해 보였다.

“끝까지 말이 많네요. 안에서도 시끄러운 것 같아요. 잘못한 걸까……. 오늘 갑자기 많이 들어와서 소란스럽네요.”

천무공자는 허공을 응시하면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죽은 자의 인생을 짊어진다고 했던가?

인생을 짊어진다는 것의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내젓는 그에게서는 그 나이 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광기와 천재성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만총은 그 점을 뼈저리게 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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