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7화
제27장 신수소호(神獸小虎) (7)
“도철이 온다[饕餮來來].”
최근 안휘성의 북부 지방에서 흔히 들리는 말이었다.
고작 글자 네 개에 불과한 말이었으나, 그 안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어린아이들은 시끄럽게 울다가도 울음을 그쳤고, 어른들은 사색이 되어 집 안에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몸을 숨겼다.
도철이라는 존재는 걸어다는 재해와 같았다.
눈에 띄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예사였고, 심기에 거슬리면 목숨을 뺏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무뢰한이 또 있을까.
안타까운 일은 그 어떤 자도 그를 단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흑시군이 무림 강호를 들쑤시고 다니던 시절의 선봉장이 바로 도철이었으며, 그렇기에 도철에게 함부로 검을 빼 드는 무인은 전무했다.
한 번 건드리게 되면 흑시군에게 공격받아 사문(師門)이 활활 타서 재만 남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누가 건드리겠는가.
무인만 건드릴 수 없다?
아니다.
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안휘성 관청의 관인들은 물론이고, 안휘성의 집권자인 성주(城主)조차 도철에게 쓴소리를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왕진 태감의 시대다.
그러니 누가 감히 왕진 태감이 키우는 사흉이란 짐승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참담한 일이 벌어져도 참고 모른 척하며, 최대한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
제한 없는 권력이 안휘성의 북부에서 폭주하고 있었다.
“이번엔 대붕상회의 곡식을 빼앗았다며?”
“흑시군을 위한 ‘지원’이라고 하지만……. 뻔한 일이지. 솔직히 우리에게 자진해서 재물을 주고 싶은 자가 어디 있겠나? 얼마 전에 시내로 나들이를 나갔다 온다더니 그래서 갔던 모양이야.”
“대단하구만, 대단해. 그러면서 우리한테는 한 푼도 안 쓰잖아? 세상에 그런 짠돌이가 없어.”
“우리야 그저 밥 안 굶는 걸로 만족해야지. 어쩌겠나. 게다가…… 크흠, 그분이 우리는 죽이려고 들지 않잖아?”
“흥, 그걸 고마워해야 하나? 게다가 꼭 그렇지만도 않아. 저번에 곽 조장이 얻어맞은 거 잊었어?”
“웬 꼬마를 죽이려는 걸 말리다가 맞았지. 아직도 침상 신세라며?”
“허리가 꺾인 뒤로 한 쪽 다리가 잘 안 움직인다더군. 이대로 군문(軍門)을 나갈지도 모르겠어.”
“쯧쯧, 말세군, 말세야.”
도철의 아래에 있는 흑시군들조차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명백했다.
어찌 좋아할 수 있겠는가.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해 성격이 포악하며, 남의 재물을 탐하는데 그걸 부하들에게는 나눠 주지도 않는다.
절대적인 힘을 숭상하는 무도(無道)한 자들만 도철을 진심으로 따를 뿐이다.
안휘 땅에서 도철에 대한 반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다만 힘이 없었기에.
도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야말로 신화시대 괴물 같은 무시무시한 힘 때문에 모두가 숨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
“누가 왔다고?”
머리 뒤에서 손깍지를 낀 채 한가하게 누워 있던 사내가 짜증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보고를 하러 온 ‘도철군’의 부장(副將) 담이경은 긴장한 탓에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게…….”
화려하게 치장된 황금색 의자에는 검은색 물방울 문양 같은 게 점점이 붙어 있었다.
그게 황금 의자 앞에서 얻어맞은 자들의 핏자국이라는 것을 지금 보고하고 있는 담이경 부장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는 도철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공손하면서 차분하게 말하기 위해 세 번 생각해 본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목인규가 죽었답니다. 그래서 그를 대신해서 대산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뭐?”
도철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목인규가 죽어? 누구한테 죽었는데?”
“지금 찾아 온 대산이라는 사람한테 죽었답니다.”
“뭐야?”
기녀가 건네는 포도를 나른하게 먹고 있던 도철이 처음으로 흥미를 나타냈다.
그는 의자 위에서 몸을 비스듬히 돌려 상체를 일으켰다.
“그 대산이라는 놈이 그래? 자기가 목인규를 죽였다고?”
“예.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하?”
도철은 잠시 포도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도철은 늑대의 인상을 지녔다.
비루하고 무정하며 강자에게 굴종할 줄 알지만, 한편으론 상대가 누구든 틈만 보이면 비수를 꽂을 것 같은 비정함이 감돈다.
청색의 비단 옷을 입고 있지만, 어두침침한 얼굴과 맞물리니 이보다 더 안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될 만큼 부조화스럽다.
빠드득, 빠드득.
장내에는 도철이 포도 씨를 씹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도철은 가루가 된 포도 씨를 바닥에 대충 퉤! 하고 뱉어 낸 뒤 다시 그의 입으로 포도를 가져다주려는 기녀의 손을 밀어냈다.
“재밌네. 그 대산이라는 놈 면상 한 번 보자.”
도철은 벌떡 일어나서 팔자걸음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잠시 당황하던 담이경도 도철의 뒤를 황급히 쫓았다.
“도 공(公)을 뵙습니다.”
도철은 산에서 막 내려온 곰 한 마리가 인사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산이라는 자는 덩치가 꽤나 컸다. 사방으로 뻗친 머리카락은 까만색이면서 뻣뻣했고, 거기에 모피를 기워서 만든 검은색 옷을 입고 있으니 더더욱 곰 같은 모습이다.
대산은 수염이 무성하게 난 중년의 사내였다.
허리를 굽히고 팔을 내미는 단순한 동작이지만, 도철의 눈에는 그 짧은 동작에서도 많은 것이 보인다.
중심을 잡는 자세의 습관, 평상시의 발 모양,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속도. 살짝 이쪽의 눈치를 살피면서 도철의 발과 자신의 거리를 재는 듯한 분위기까지.
‘싸움을 많이 해 봤네.’
도철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대산이라는 자.
만전을 경험하고 사지(死地)에서 살아나온 자가 분명했다.
물론 무력이라 봤자 도철이 보기엔 하찮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의 몸 정도는 간수할 줄 아는 수준이다.
“대산?”
“예, 도 공. 제가 대산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북경에서 작은 방파를 운영하고 있지요.”
포권을 풀었음에도 공손히 한 걸음 물러서면서 이야기하는 모습.
거기에 도철과 직접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산은 ‘높으신 분들’과 많이 상대해 본 사람으로 보였다.
“재밌네.”
도철은 방 안에 마련된 푹신한 의자로 가서 아무렇게나 털썩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방만한 자세로 대산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목인규를 죽였다면서?”
“예. 송구합니다.”
“왜 그랬어? 딱히 친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목인규는 나한테 중요한 일을 해 주던 사람이야. 돈도 많이 갖다 바쳤지. 이유 없이 죽였으면 나도 그쪽을 죽이고 본전을 찾아야겠는데?”
도철은 자신의 오른손을 들여다보면서 손톱 사이에 낀 먼지들을 털어냈다.
엄지, 검지, 중지.
차례차례 먼지를 빼내는 사이, 중지쯤 왔을 때 대산이 당차게 고개를 들었다.
“실례지만 거두절미하고 솔직하게 묻겠습니다, 도 공.”
“말해 봐.”
“목인규가 그동안 도 공을 위해 내놓던 돈이 얼마인지요?”
“흐음.”
도철은 오른쪽 손가락 사이의 먼지를 다 털어낸 것을 확인한 뒤, 이번엔 왼쪽 손가락을 들여다봤다.
“매달 은자 삼백 냥.”
뒤에서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장인 담이경의 숨소리다.
흑시군에서 도철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가 얼마나 되는 돈을 상납 받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곡식이 한 수레라거나 비단이 백 필이 왔다거나. 그런 식으로 재물이 쌓인다는 것만 알 뿐.
재물은 온전히 도철의 것이며, 거기서 강한 지배력이 나온다고 도철이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달에 이백 냥도 안 되지만. 정확히 얼마더라? 백팔십 냥 정도였나?’
도철은 뒷세계에서 사는 놈들이 얼마나 영악한 놈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우는 소리를 해도, 뒤에서는 그 열 배는 버는 놈들이다.
아랫것들을 쥐어짜든, 백성들을 노예처럼 굴리든 그건 도철이 알 바가 아니었다.
도철이 힘을 써서 그들이 장사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이상 그는 합당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가격을 높여서 불렀다.
삼백 냥이라는 돈은 도철이 받고 싶은 액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습니까. 상당히 많은 돈을 내고 있었군요.”
대산은 바위를 깎아 만든 것처럼 다부진 얼굴이라 표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그는 툭 튀어나온 눈으로 땅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큰 결심을 한 듯 포권을 강하게 쥐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도 공, 사죄의 뜻을 담아 저는 오백 냥을 드리겠습니다.”
도철은 눈을 가늘게 떴다.
뒤에 서 있던 담이경은 이젠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삼백 냥도 어마어마한데 오백 냥이라니? 평범한 사람은 평생 보지도 못한 큰 금액이었다.
‘이 녀석, 뭔가 있는데.’
도철은 대산에게서 숨겨진 무언가를 느꼈으나, 문제는 그게 목인규의 상권을 빼앗겠다는 야심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음습한 무언가를 꾸미고 있어서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팅―.
마침 왼손 손톱 사이에 낀 먼지도 다 빼낸 상태였다.
도철은 대산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서걱―.
“흡?”
대산은 눈을 부릅뜬 채 제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당연한 일이다.
대체 언제 움직인 것인지.
도철은 다섯 보(步)가 넘게 떨어져 있던 대산의 옆에서 허깨비처럼 나타나 날카로운 철조(鐵爪)로 대산의 목젖을 움켜쥐었다.
“대산.”
“예, 예…….”
“영리하네. 삼백 냥 밑으로 흥정하려 했으면 곧바로 죽이려고 했는데.”
“다, 당연한 일…….”
“돈이 많은가 보지?”
“북경에서…… 으음…….”
대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숨은 거칠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도철은 맹수의 발톱 같은 철조에서 힘을 조금 빼 주었다.
“후우, 후우.”
대산은 겨우 숨통이 트인 듯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조금 벌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모험을 해야지요. 저는 늘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대산은 당찬 기상을 숨기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눈빛.
당신이 어떠한 고난을 주더라도 언젠가는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질기고 뜨거운 기상이 절로 흘러나왔다.
“흐음.”
도철은 쓸데없이 열정만 있는 놈을 싫어한다.
그는 대산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저 정도 기상이 있으니 목인규의 목을 날려 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리라.
‘당장 돈줄이 없으면 군을 유지하기 힘들기도 하고.’
안휘성에서 흑시군 일천 명을 운용하는 것은 절대로 돈 없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먹는 밥값만 해도 얼마인가?
물론 흑시군의 주인인 왕진 태감이 매달 군을 유지할 만한 돈을 보내 주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밥만 먹여 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 외의 비용은 모두 현지에서 조달해야 했다.
그렇기에 염상 목인규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는 도철에게 매달 은자 이백 냥 가까이 되는 돈을 챙겨 준 데다가, 각종 물품과 쌀을 보내서 흑시군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창고에 쌓인 재보를 쓰면 꽤나 버틸 수야 있겠지만 그건 도철 자신만의 돈이었다.
절대로 군을 유지하는 데 사비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말은 쉽지. 하지만 말만으로는 믿기 힘든데.”
“도 공. 실례지만 잠시 제 일행을 불러도 되겠습니까?”
대산은 공손함을 유지하면서도 도철에게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불러 봐.”
“감사합니다.”
대산이 나가서 데리고 들어온 건장한 하인 한 사람이 낑낑거리면서 큼직한 나무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나무 상자는 단단한 자단목으로 만들어졌고, 성인 남성의 몸통 하나는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컸다.
쿵.
하인이 내려놓은 상자를 열자 휘황찬란한 은빛이 도철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도 공.”
대산은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으며 상자를 가리켰다.
“염상 목인규에 대한 사죄, 그리고 도 공과의 만남을 기념하여, 두 배로 챙겨 보았습니다.”
“두 배……?”
도철은 상자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예. 일천 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