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263화 (392/686)

11권 13화

제27장 신수소호(神獸小虎) (13)

우우우웅―.

벌 떼가 날아드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도철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까앙!

소호가 찌른 도첨과 도철의 철조가 부딪치는 소리는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왔다.

도철이 허공에서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한 탓이다.

도철은 공중에서 뒤로 한 바퀴 몸을 돌려 바닥에 네 발로 착지했다.

그때 이미 소호는 도철의 앞에 다가가 있었다.

콰득!

소호가 내딛은 디딤발이 단단한 대리석 바닥을 파고들었다.

내리치는 박도에 천근 거력이 담긴다.

도철은 오른손 철조를 바깥쪽으로 휘둘러 소호의 도격을 옆으로 흘려냈다.

콰지직!

바닥에 커다란 상흔이 남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도철은 상처입지 않았다.

도철은 칼날을 비껴 낸 기세를 그대로 살려 소호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 모습은 한 마리의 뱀 같기도 하고, 몸놀림이 가벼운 원숭이 같기도 했다.

가볍게 차 내는 발동작이 심상치가 않다.

소호가 피하려는 순간, 갑자기 발에서 튀어나온 또 하나의 철조가 소호의 어깨를 할퀴었다.

서걱―.

입고 있던 비단 무복이 점점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간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발에서도 철조가 튀어나올 줄이야.

양손, 양발.

총 네 개의 철조를 착용한 도철은 완전히 한 마리의 야수가 되어 있었다.

쩌어엉!

다급하게 쳐 낸 도격이 철조에 비스듬히 흘려보내졌다.

끼기기기긱―.

칼날의 넓적한 면과 철조의 칼날이 긁히면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반만 남은 칼날에 금이 갔다.

한 번만 더 충돌하면 부서질 것 같았다.

기묘하게 척추를 구부리며 펄쩍 뛰어오르는 도철.

그가 발에 착용한 철조로 소호의 칼을 붙잡으며, 양손으로는 소호의 어깨를 찢으려 들었다.

후우웅―.

소호는 유연하게 허리를 뒤로 굽히면서 왼손으로 땅을 짚고 오른발로 도철의 다리를 걷어찼다.

간신히 피한 철조가 아슬아슬하게 소호의 턱 밑을 스쳐 지나갔다.

퍽!

다리를 격타당한 도철이 살짝 균형을 잃었다.

“카핫!”

도철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번뜩이는 눈빛.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도철의 몸놀림이 한 단계 더 빨라졌다.

고오오오―.

기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몸을 한껏 낮춘 도철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였다.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소호가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자 날카로운 철조가 오른쪽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슉―.

또 하나의 상처가 몸에 새겨진다.

한순간, 도철이 질풍처럼 달려와 양손을 휘둘렀다.

바람 같다는 말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자가 또 있을까?

동작이 중간중간 끊긴 것처럼 보일 정도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비교할 만한 상대가 없었다.

무산학관에서 본 그 어떤 신법의 고수들도 이만큼 빠르지는 못했다.

은빛이 번뜩이면 좌측.

또 한 번 번뜩이면 우측에서 칼날 같은 손톱이 날아왔다.

까아앙!

까가가가강!

순식간에 수십 번의 초식이 교환되었다.

소호의 어깻죽지, 소매, 바짓단, 목덜미의 깃까지 모조리 잘리고 썰리면서 터져 나갔다.

큰 상처가 없는 것이 기적이다.

소호는 절제절명의 위기 속에서 간신히 방어에만 집중해야 했다.

“크하하핫! 캬카캇!”

광기 어린 웃음은 분명 싸움을 즐기는 자의 것이다.

도철은 발을 구르는가 싶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노도인의 시신을 거칠게 발로 차서 소호에게 날려 보냈다.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짓.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와 있기에 쓸데없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허리가 꺾인 채, 죽어서도 고통 받는 노도인의 얼굴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이 자식.’

소호는 잠시 칼을 치우고, 왼손으로 태극권의 묘리를 살려 시신을 최대한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아무리 목숨을 건 싸움 중이라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도리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빈틈은 빈틈.

도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달라붙었다.

엄청난 속도.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은빛 철조의 잔상들이 소호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촤악―!

쩌저정! 깡!

‘지고 싶지 않아.’

소호의 눈에서 황금빛이 강해졌다.

속도?

알고 있는 무공의 수?

그 어느 것도 소호는 지지 않는다.

어깨와 복부에 처음으로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으음!”

소호가 신음을 흘려야 할 정도로 철조의 칼날이 피부를 깊숙이 갈라냈다.

피가 흐른다.

소호는 상처 주변의 근육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아지랑이 같은 몸놀림.

일야회 살수들의 전설 묵신 의 신법이 펼쳐졌다.

도철이 신출귀몰하듯, 소호의 움직임도 귀신같았다.

소호는 도철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진지한 눈빛으로, 도철의 모든 습관, 호흡, 움직임을 잡아먹을 듯이 지켜보며 모조리 흡수했다.

“캬카캇!”

반면에 도철은 싸움이 길어질수록 광기가 강해지는 듯했다.

이제는 거의 인간의 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

동작은 또 어떠한가.

야생 원숭이가 따로 없다.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각도로 날아가는 공격도 기이하게 뛰어올라 모조리 피해 버렸다.

도철은 소호의 칼을 콱! 붙잡더니 마치 야생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잡고 몸을 이동하듯, 가볍게 소호의 몸을 타고 넘었다.

도철의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팡, 팡, 팡.

세 번의 각법이 공기를 폭발시켰다.

두 발은 손바닥으로 쳐 냈고, 한 발은 박도의 칼날로 베려고 했으나 도철이 도로 발을 빼는 속도가 한발 빨랐다.

공격을 모두 막아 낸 소호가 박도를 내리치는 순간, 도철이 몸을 비스듬하게 비틀었다.

까앙!

“……!”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철조의 칼날 다섯 개가 훌쩍 튀어나와 소호의 가슴을 스쳤다.

촤아악!

옷깃이 갈라지고, 이번에도 상처가 하나 더 생겨난다.

찰나의 빈틈을 노린 기습이다. 공격해 온 시점이 기가 막혔다. 마치 예전부터 줄곧 사용해 온 듯, 기습을 하는 방식이 능수능란하기 이를 데 없다.

소호는 당황하지 않고 도철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눈으로 쫓아갔다.

땅에 한 발을 딛자마자 도철은 또다시 훌쩍 뛰어올랐다.

허리가 돌아가는 각도, 시선, 팔을 뻗는 철조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는 소호의 칼을 다시 잡아채려고 했다.

‘발이 떠 있다.’

단순히 잡아서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까처럼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잡듯 칼을 잡고 이동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파라락―.

소호의 움직임이 변화했다.

왼손으로 취하는 반장의 예는 소림의 것이다.

왼발을 뒤로 반보 빼는 것과 동시에 오른발이 우측으로 일보 이동한다.

연대구품(蓮臺九品).

각기 다른 아홉 개의 품밟기가 빠른 속도로 펼쳐지면서, 아홉 가지의 동작이 마치 잔상처럼 뒤에 남았다.

휘리릭!

도철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할퀸 거나 다름없었다.

너무나 절묘한 시점에 피해 내니, 마치 소호가 미리 함정을 깔아 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소호는 양손으로 박도를 붙잡았다.

반밖에 안 남아 있던 칼날 위로 황금색 강기를 견고하게 짜 올렸다.

도철이 황급히 몸을 돌리지만 이미 늦었다.

그동안 싸워 왔던 강자들.

무쌍귀, 매화신검.

모두가 일격, 일격이 막강한 강자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속도를 따라올 만한 상대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는 분명 방심했다.

도올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명왕호신공마저 파훼했던 소호의 무공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참(斬)!”

치솟는 기파.

소호의 가슴 속에 뭉쳐 있던 만 명의 혼백이 그에게 초인적인 내공을 부여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천지인(天地人)의 경지에 도달한 텐챠이의 천랑도가 도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수직으로 갈라 버린다.

절묘한 순간, 탁월한 공격이다.

대초원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의 매처럼, 황금빛 칼날이 도철을 일도양단했다.

까가가강!

푸확!

도올이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터.

그러나 도철은 분명 도올보다 무공의 대응이 재빨랐다.

철조로 막으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그 여파를 다 막지 못하고 좌측 허벅지를 비스듬히 베이고 말았다.

“크아아악!”

도철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몸을 튕겼다.

치명상은 아니지만, 작은 상처도 아니다.

흐르는 피가 심상치 않다.

순식간에 입고 있던 청색 비단 무복이 피에 물들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도철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허벅지를 가른 상처보다 더욱 뼈아픈 것이 있었으니.

도철의 드높은 자존심이다.

“이놈……!”

도철은 분노에 휩싸인 눈으로 소호를 노려보았다.

“몇 살이냐? 기껏해야 약관 정도 아닌가?”

스릉―.

소호는 말없이 칼만 겨누었다.

칼끝은 고요했다.

온몸에 새겨진 상처가 아픔을 호소했다. 호흡도 조금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소호의 명경지수 같은 마음은 깨어지지 않았다.

“날 잡아먹으시겠다? 흥, 어림없는 소리. 내가 그리 만만한 사냥감처럼 보이더냐?”

도철은 으르렁거렸다.

섬뜩한 살기를 품은 채, 음험해 보이는 얼굴로 광기를 다시 드러낸다.

“내가 잡아먹을 것이다. 나는 잡아먹히지 않는다. 내가 잡아먹고, 뜯어먹고, 빼앗을 것이다!”

짐승의 절규 같은 그 외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섬뜩함을 느꼈을까.

도철은 양손을 얼굴 앞으로 모았다.

손바닥 밑의 장저(掌低)를 붙이자,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기세가 달라졌다.

“용생(龍生).”

머리 위에서 모이는 양손.

꽃처럼 활짝 핀 열 개의 손가락이 커다란 한 마리 용의 날카로운 이빨이 된다.

“……!”

소호는 섬뜩함을 느꼈다.

도철을 만나 싸움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용이란 환상 속의 동물.

눈앞에 있는 도철은 양손을 모으는 순간 마치 실제로 용이 재림한 듯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소호는 다급하게 다시 한 번 칼을 내리쳤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

어서 공격해서 도철이 행하는 ‘무언가’를 방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고오오오―.

다시 한 번 내리치는 일격.

도올의 몸을 반으로 갈랐던 것과 같은, 지금의 소호가 쓸 수 있는 가장 강한 천랑도법이 펼쳐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소호의 명백한 실수였다.

까앙!

까가가가가강!

용생은 후공(後攻)의 묘리(妙理)를 지녔다.

도철이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기괴하게 비트는 순간, 소호의 계획은 모든 것이 뒤틀렸다.

쥐를 문 뱀이 몸을 뒤틀며 상대를 죽이듯이, 도철의 용아(龍牙)가 소호의 황금색 강기를 물어뜯었다.

깨물고, 비틀어 부숴 버린다.

도철의 용아가 적색의 강기를 뿜어냈다. 소호의 황금색 강기는 산산조각 나면서 박살 나 버렸다.

쩌엉!

울컥―.

강기가 박살 나면서 내상을 입은 소호가 피를 울컥 토해 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뱀처럼 몸을 비튼 도철이 소호를 향해 달려들어, 용의 이빨을 허리에 박아 넣었다.

콰직!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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