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267화 (396/686)

11권 17화

제28장 은자불식(隱者不息) (1)

조서인은 스스로를 꽤나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조서인이라는 청년을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도리어 물어볼지도 모른다.

네가 뭐가 용감하냐고.

매번 고민하고 눈치 보며 행동하면서 그게 어떻게 용감한 거냐고 말이다.

그러나 조서인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무산학관의 둔재.

모두가 명문가 출신인 학생들 중에 몇 안 되는 가난한 집안 출신. 조서인이 용감하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오지 못했다.

물론 늘 소호와 함께 다니니 그에 비하면 용감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왕진 태감한테도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든가, 흑시군이든 백검회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싸움을 건다든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소호뿐이다.

그런 소호와 비교한다면 이 세상에서 누가 감히 용감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모험이 있는 법이야.’

조서인은 자신의 인생을 쭉 떠올려 보았다.

애초에 무산학관에 들어가게 된 것도 그가 용기를 내어 한 발을 내디딘 덕분이었다.

늘 무관 시험을 치르라고 닦달하던 아버지를 피해 무산학관 시험을 무작정 치르지 않았던가.

그게 쉬운 일이었을까?

당시 열세 살의 조서인은 모든 것을 걸고 용기를 내어 시험을 보러 왔었다.

그때의 결정이 조서인의 인생을 좌우했으니, 세상사는 참으로 재미있다.

조서인은 자신의 용감함이 자랑스러웠다.

어떠한 고난이든, 어려움이든 노력으로는 헤쳐 나갈 수 있다.

중요한 건 노력할 수 있는 ‘용기’뿐이었다.

“떨린다.”

조서인은 괜히 고삐를 강하게 쥐었다 풀기를 반복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이 바로 용기를 내야 할 때였다.

소박한 외양의 객잔이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풍운객잔은 단순히 친구의 집이 아니었다.

그동안 이야기로만 들어왔던 신비로운 곳.

소호라는 불세출의 인재를 키워 낸 무인들의 도원경(桃源境).

처음엔 장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는데, 객잔 옆에 만들어져 있는 마구간을 보고 손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푸르륵―.

“으왓?”

누가 봐도 탐낼 만한 은빛 갈기를 지닌 명마가 조서인을 향해 콧김을 거세게 내뿜었다.

얼굴이 뜨끈해지는 느낌이다.

명마는 귀족처럼 도도하게 서서 조서인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와아……. 미안. 잠시 지나갈게. 놀라지 말아 주라.”

조서인은 사과했다.

길을 지나가면 백이면 백 뒤돌아볼 법한 명마였다.

왠지 명마의 휴식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청 크네? 멋지다.”

조서인은 대체 저런 말은 가격이 얼마 정도나 할지 궁금해하면서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객잔 내부는 고요했다.

문이 너무 오래되어 보여서 낡은 목재 냄새가 코를 찌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고소하고 향긋한 음식 냄새가 객잔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소면? 소면 냄새일까?’

조서인은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기…….”

아무리 봐도 객잔에 일하는 사람은커녕, 손님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맛있는 냄새는 나는데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도 안 계세요?”

조서인이 안으로 들어가 볼까 고민하는 찰나,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잠깐만 기다리시오! 금방 나갈게!”

딱. 딱.

나무로 바닥을 두드리는 듯한 묘한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나이는 삼십 대 후반 정도가 되었을까? 얼굴은 평범한 편이었고 수염도 그리 많지 않았다. 주방에서 평생 불을 만지며 살아온 탓인지 피부가 갈색으로 그을렸다.

그는 양팔의 소매를 어깨까지 완전히 걷고 있었는데, 방금까지도 요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한쪽 팔에는 흰색의 가루를, 다른 한쪽 팔에는 불길에 그슬린 그을음이 묻어 있다.

‘무인?’

조서인은 그가 어느 정도의 ‘선’을 넘은 무인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쪽 다리가 없는 것 또한 특이하다. 딱딱거리는 소리는 그의 의족에서 난 게 분명했다.

의족을 차게 된 것은 불의의 사고 때문일까? 아니면 치열한 혈전을 거치며 살아온 무인의 흔적일까?

“손님. 풍운객잔에 온 걸 환영하네.”

의족으로 향하는 시선이 불편했을 수도 있건만.

순수한 조서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주방장으로 보이는 사내는 사람 좋게 씩 웃기만 했다.

나이다운 연륜과 여유가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뭘 드릴까? 배가 고프면 소면 한 그릇 드릴까?”

“안 그래도 소면이 되게 먹고 싶긴 한……. 아니, 그게 아니라.”

조서인은 식욕에 휩싸여서 얼떨결에 답하려다가 황급히 자제심을 되찾았다.

“어, 저기…….”

조서인은 이럴 때 자신이 언변이 뛰어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저는…… 아니, 그보다 먼저.”

조서인은 휘휘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린 뒤,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운찬 삼촌이시죠? 저는 조서인이라고 합니다. 소호의 친구인데,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외다리의 객잔 숙수.

강운찬은 새로운 손님이 소호의 친구라는 말을 듣자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소호의 친구!”

강운찬은 자신이 마음을 연 크기만큼이나 양손을 넓게 펼쳤다.

어깨를 팡팡 두드리는 모습에서 이미 타인에 대한 격의가 없다. 좀 전의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호의 친구라니! 그럼 내 조카이기도 하지! 그렇지, 그렇지. 암, 내 조카이고말고. 서인이, 반가워. 잘 왔어. 내가 널 보자마자 어쩐지 느낌이 오긴 했어.”

“예?”

“지금 같은 시국에 여기까지 아무 제지도 안 받고 왔으니 손님인 줄은 알았지. 그런데 생각보다 더 귀한 손님이었네!”

“예? 어어, 예?”

“자자, 들어와. 어서! 배고프지? 어떤 거 좋아해? 오향장육? 소룡포? 말만 해. 난 광동 요리든 사천 요리든 다 할 수 있으니까. 중추절은 지났지만 향우구육(香芋扣肉)을 해 줄까?”

“햐, 향우구육이요?”

“그래. 아는 구나? 먹어 본 적 있어?”

“아뇨, 먹어 본 적은 없는데…….”

“그럼 먹어 봐야지. 당장 해 줄게.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소호가 어땠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런 것 좀 이야기해 줘. 걔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여기 한 가득이야.”

조서인은 어안이 벙벙해서 그의 말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권하는 요리가 단순한 소면에서 귀한 향우구육까지 올라갔다.

토란과 돼지고기를 같이 조리하는 광동 지방 대표 요리인 향우구육.

조서인으로서는 말만 들어 봤지 아직 먹어 보지 못한 꿈의 음식이다.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며 정성까지 소면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것만으로도 대우가 얼마나 올라갔는지 단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쾌활한 분이시네.’

강운찬은 처음의 연륜 있는 무게감은 어디로 내던졌는지, 오랜만에 본 친척을 대하듯 허물없이 조서인을 대했다.

조서인은 당장이라도 음식을 하러 들어가려는 강운찬을 황급히 뜯어말렸다.

“저기. 죄송한데, 정말 감사하지만……. 지금은 밥을 먹을 때가 아니라서요. 사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밥을 먹을 때가 아니라고?”

강운찬은 정말로 충격을 받았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먼 길을 와서 밥보다 중요한 게 있어?”

“예? 아, 예. 저도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제가 가져온 수레에 지금 환자가 두 명이나 타고 있어서 저 혼자 밥 먹고 있기는 좀…….”

“환자?”

강운찬은 망설임 없이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는 수레를 덮은 거적때기를 걷어내자마자 깜짝 놀라면서 조용히 물었다.

“뭐야, 이거, 살아 있는 거 맞아?”

“예. 두 사람 모두 분명 살아 있어요.”

“얼굴 창백한 것 봐. 생기도 없고. 암만 봐도 시체인데?”

강운찬은 미간을 한껏 좁힌 채 은근히 되묻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맥박을 확인했다.

“정말로 살아 있네?”

“예. 의원들을 열 명이 넘게 만나 봤는데 이런 건 처음 본다고, 다들 방법이 없다고 해서……. 일단 식사는 입에 죽이랑 꿀물을 넣어 주는 걸로 대체하고 있어요.”

“그딴 걸로 식사가 될 리가 있나. 그저 죽지만 않게 연명한 거지. 지금껏 살아 있는 게 용하다.”

강운찬은 혀를 끌끌 차면서 안타까워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밥 먹고 있을 때는 아니네.”

“예…….”

“소호가 그랬어? 여기에 오면 얘들을 치료해 줄 의원이 있다고?”

조서인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호가 분명……. 으음……. 우 할아버지가 의술이 많이 뛰어나니 이곳에 와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운찬은 탁! 소리가 나게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 할아버지? 나 참, 누가 들어도 소호가 할 법한 말이네.”

그는 진중한 눈빛으로 수레에 있는 환자 두 명, 그리고 조서인을 바라보더니 그들을 객잔 뒤편의 별실로 안내했다.

“기다려. 내가 어르신을 모시고 올게.”

***

“이 산송장들은 무엇인고?”

별실에서 기다린 지 일각도 지나기 전에 한 사람의 노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건장한 체구에 허리까지 닿는 신선 수염을 지닌 노인이었다.

잔뜩 구겨진 허름한 흑의(黑衣)를 입었으나 조금도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불그스름하게 혈색이 도는 얼굴은 팽팽해서 주름 한 점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허어, 이런?”

노인은 별실 바닥에 눕혀 둔 두 사람을 보자마자 심각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짓을 하다니. 천도(天道)가 두렵지 않은가!”

노기가 충만한 목소리에 당황한 건 조서인뿐만이 아니었다.

너무 당황하고 황망하여 인사조차 못하고 있는 조서인을 대신하여, 노인의 뒤를 따라 들어온 강운찬이 먼저 의문을 표했다.

“어르신, 심각한 일입니까?”

“심각하지! 천하에 마땅히 정해진 법도가 있는 것이거늘. 그걸 제멋대로 비틀어 이용해 먹으려 하다니!”

“예?”

“이 땅에서 생을 다하면 영육을 돌려주고 큰 흐름 속에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거늘. 그걸 붙잡는 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고, 불쌍한 영을 끝까지 써 먹는 건 또 무슨 막돼먹은 패악질이냐? 이딴 것을 누가 만들었냐는 말이야!”

강운찬은 양손을 내저었다.

“저는 아닙니다, 어르신.”

“무슨 헛소리야! 지금 내가 농담하는 줄 알아?”

노인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더니, 이제는 아예 환자의 곁에 털썩 앉아 뚫어져라 그들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섬세한 손놀림은 손목의 맥을 잡고, 근처의 혈도들을 매만지면서 점점 상체로 향했다.

“여기군.”

신의(神醫)의 눈에는 대체 무엇이 보이는 것일까?

노인은 환자들이 허리에 차고 있던 철 요대를 빼서 몇 번 두드리더니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손바닥만 한 장신구를 발견했다.

“흥.”

노인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걸 방 안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지듯이 내버렸다.

밖에서 천금으로도 구할 수 없는 ‘집혼기’가 이곳에서는 돌멩이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기력이 너무 쇠했구나. 아이야, 그동안 묽은 죽이나 벌꿀 말고 또 먹인 것이 있느냐?”

처음으로 말을 거는 노인에게 조서인은 당황하면서도 공손히 대답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어르신.”

“그렇구나. 알았다.”

노인은 그 이상 묻지 않았고, 곧바로 품 안에서 꺼낸 침통에서 황금색 침들을 펼쳐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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