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23화
제28장 은자불식(隱者不息) (7)
철이를 따라서 간 외양간은 조서인의 상상보다 훨씬 더 컸다.
온통 푸른색의 풀로 뒤덮인 언덕 위에 외양간 한 채만 고고하게 서 있었다.
커다란 통나무를 통째로 써서 기둥을 세우고, 그 위를 짚으로 덮은 모양새인데, 백 보 밖에서 봐도 크다고 느낄 만큼 위용이 강렬하다.
음머어어―.
“……!”
조서인은 표정의 변화를 감추기 힘들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난 탓일까.
경계심을 드러내며 숨을 씨근거리는 소를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훅― 하고 온몸에 끼쳐 드는 열기가 섬뜩했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당장이라도 창을 꺼내 겨누고 싶은 심정이었다.
“적왕! 괜찮아! 밥이야, 밥!”
푸르륵―.
철이는 순박한 목소리로 적왕을 달래려 했지만 외양간을 울리는 뜨거운 숨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퉁방울처럼 튀어나온 눈은 호랑이처럼 사나운 빛을 띠고 있었고, 집채만 한 몸집은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붉은색의 단모(短毛)로 뒤덮여 있었다.
성인 남성의 상체를 한입에 넣을 수 있을 것처럼 커다란 머리.
땅을 딛고 있는 두꺼운 발굽과 거대한 몸을 지탱하는 앞다리와 탄탄한 가슴 근육은 무서울 만큼 부풀어 있다.
저 덩치, 저 힘으로 달려들면 어떻게 될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용이 대단하다고 느꼈던 외양간이 이제는 짚으로 엮어 만든 거적때기처럼 나약하게 느껴졌다.
“처, 철아.”
“네?”
“이리 와.”
‘저걸로는 안 돼. 한 방에 부서진다. 철이! 철이가 위험해.’
조서인은 재빨리 철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숨을 씨근거리는 소로부터 거리를 벌려 놓기 위해서다.
두렵고 긴장되지만, 천천히 숨을 가다듬으면서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비했다.
쿠웅!
“헙.”
소가 뒷발을 구르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조서인은 당황하여 움찔 뒤로 반보 물러섰다.
소가 달려들면 어찌해야 하는가.
막아야 하는가?
철이를 데리고 도망쳐야 하는가?
푸르르륵―.
“……!”
조서인은 그 순간 소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았다.
‘비웃어?’
푸르륵―.
착각일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입술을 한쪽만 뒤집어서 푸르륵― 소리를 내는 얼굴은 비웃음처럼 보였다.
놀림당한 듯한 기분이다.
어찌하여 미물이 사람을 비웃는단 말인가.
‘저 눈빛 좀 봐. 지성이 있어. 똑똑한 녀석이야.’
무어어어―.
울음소리도 달라졌다.
경계심 가득했던 위협에서, 이제는 깔보는 듯한 높은 울음소리를 낸다.
사람으로 따지면 낄낄거리는 느낌이다.
적왕이라는 놈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고개를 쳐들고 푸르륵거렸다.
위협하는 듯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어졌다.
이제는 그저 낄낄거리며 비웃을 뿐.
먹이를 기다리는 얌전한 소 한 마리가 그곳에 있었다.
“이런 은위군 같은 놈을 보았나……?”
조서인은 확신을 가지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적왕! 적와앙!”
그사이에 뒤에서 쪼르르 달려 나간 철이가 잠시 내려놓았던 볏단을 여물통에 펼쳐서 넣어 주었다.
여물통 하나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철이의 키와 비슷할 지경이다.
므어어어―.
“적왕이 좋아하는 양기를 가득 머금은 풀이야. 많이 먹어!”
므어어!
“좋아? 좋지?”
푸르륵―.
“에이, 그러지 말고. 맛있지? 그치?”
철이는 적왕과 마치 대화를 나누듯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있었다.
조서인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철이의 모습을 보니 본인이 지금 뭐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마을 사람들이 괜히 철이를 저 거대한 소와 함께 두었겠는가.
안전하다는 판단이 되어서 철이에게 일을 시킨 것 아니겠는가.
‘놀림을 당해서 판단이 느렸어. 반성해야 해.’
조서인은 철이처럼 볏단을 집어서 여물통에 올려놓았다.
“철아. 하나 더 줘야 하는 거지?”
“마, 맞아요. 하나 더 줘야 해요.”
철이가 하나 더 가져오겠다면서 쪼르르 달려 나가고, 조서인은 볏단을 묶어 두었던 새끼줄을 풀고 여물통에 쏟아 넣었다.
쿵!
그때 적왕이 뒷발로 땅을 걷어찼다. 땅이 울리면서 외양간이 흔들렸다.
“우왓!”
푸르륵―.
또다시 입술을 까뒤집으며 비웃는 소.
조서인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또 비웃어……!”
푸르륵― 푸르륵―.
“너 진짜, 혼난다?”
무워어어―.
커다란 콧구멍으로 콧김을 내뿜는다. 바싹 마른 풀을 질겅질겅 씹는 소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비웃음으로밖에 안 보였다.
“혀, 형.”
철이가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언덕 아래쪽을 가리켰다.
거대한 그림자가 언덕을 성큼성큼 오르고 있었다.
“어?”
“아, 아빠가 오셨어요.”
철이가 방긋 웃더니, 짧은 걸음걸이로 도도도 뛰어갔다.
조서인은 당황하면서 손에 묻은 풀을 털어냈다.
언덕 아래에서도 컸던 사람은 눈앞에 오니 더욱 컸다.
덩치만 큰가?
아니다.
평범한 회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마치 거대한 바위가 눈앞에 턱― 하니 놓여 있는 듯했다.
두꺼운 허벅지가 조서인의 몸통만 하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우와. 학관장님보다 더 큰 사람은 처음 봐.’
조서인은 경의를 감추지 못한 채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미미랑 소호의 친구, 조서인이라고 합니다.”
쿵.
대미미와 대철의 아버지.
장기린의 의형제이자 적룡기마대의 돌격대장이었던 대석이 조서인을 내려다보았다.
칠 척이 넘는 거인.
떡 벌어진 어깨와 두터운 팔뚝에 새겨진 흉터들이 그의 인생 경험들을 증명한다.
위압감 넘치는 외모와 다르게, 동그란 얼굴과 순박해 보이는 눈빛이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것이 특이했다.
“서, 서인이?”
대석은 달려드는 철이를 한 손으로 가볍게 안아 들고, 솥뚜껑만 한 손으로 포권을 취하는 조서인의 손을 붙잡았다.
가볍게 흔드는데 조서인의 팔이 출렁출렁 춤을 췄다.
“바, 반갑다. 미미랑 철이 아빠다.”
대석은 덥수룩한 수염으로도 안 가려질 만큼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조서인은 그 웃음이 너무나 순박해서 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아버님도 말을 조금 더듬으시는구나.’
사람을 대할 때 철이가 왜 말을 더듬는지 의문이 풀렸다.
“자.”
“어?”
대석은 한 손으로 볏단을 잡아 조서인에게 건네주었다.
“어어……?”
“두 개 줬지? 하나 더 줘라. 적왕한테.”
“아, 네.”
대석의 눈빛에서 시험하는 듯한 인상을 받은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조서인은 침을 꿀꺽 삼킨 다음에 볏단을 받아 들었다.
소호와 함께 다듬었던 조가창법의 토납법 대로 내공이 흘러나왔다.
불끈 들어가는 힘.
철이가 보여 준 대로 손목을 살짝 감으면서 요령 있게 볏단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퉁.
“흡!”
조서인은 볏단을 머리 위에 짊어진 채로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파르르 떨었다.
대석이 손바닥으로 등을 살짝 두드린 탓이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속삭이는 듯한 대석의 말이 더욱 강렬했다.
“내, 내공은 쓰지 마라.”
“……!”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 보았으나 대석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끄응.”
조서인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내공을 거뒀다.
혈도를 타고 흐르던 내공의 힘이 사라지는 순간, 조서인의 어깨, 대흉근, 그리고 허벅지의 대퇴근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흐읍.”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 철이의 앞이다.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는 일.
조서인은 쿵. 쿵. 소리를 내면서 한 걸음씩 나아갔다.
고작 다섯 보 앞에 있는 여물통이 왜 이리 멀어 보이는지 모를 일이다.
푸륵―.
어째설까.
적왕은 더 이상 조서인을 비웃지 않았다.
대석이 나타난 뒤로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끊임없이 풀을 씹을 뿐이다.
“으럇.”
쿠웅―.
조서인은 여물통에 볏단을 내려놓은 뒤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에 갑작스레 부하가 걸린 탓인지, 근육의 떨림이 멎지를 않는다.
“잘했다. 서, 서인.”
“감사합니다…….”
“이제 가자. 더덕도 캐야 하고, 땔감도 준비해야 한다. 깜돌이랑 씨름도 해야 해.”
“예? 깜돌이? 씨름?”
더덕이랑 땔감은 그렇다 쳐도, 깜돌이는 누구고, 또 씨름을 해야 한다는 건 대체 무슨 말인가?
“가자, 가. 시간이 없다.”
“아, 예. 예.”
어안이 벙벙해져서 따라가는 조서인의 등 뒤로 철이의 목소리만 남아서 울려 퍼졌다.
“적왕아! 안녕! 나중에 봐―!”
무워어어―!
화답하는 적왕의 목소리와 함께, 조서인의 은자촌 첫날이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
“더 빨리! 손을 좀 더 푹 집어넣어야 해!”
“아, 예!”
“이놈아! 흙이 묻어나잖아! 잔뿌리는 또 왜 이리 꺾어졌어!”
“그, 그게…….”
“뭐!”
“아닙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조서인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단단한 돌 벽 한쪽 면을 통째로 깎은 게 아닐까 싶은 평평한 땅 위에 더덕 향이 진동하고 있었다.
대석은 조서인을 더덕밭에 데려다 준 후에 미련 없이 돌아가 버렸다.
그곳에서 만난 게 이 건장한 노인이다.
백발, 백염에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은 건장한 체구를 지닌 노인.
어제 조서인이 해 주는 소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누구보다 격렬하게 반응했던 바로 그 노인이다.
본인을 추 씨 성의 노인이라 소개한 노인은 조서인이 도착하자 곧바로 더덕을 캐는 일에 투입시켰다.
그곳에서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조서인에게 보여 준 시연은 놀라웠다.
“잘 봐라. 이게 더덕 캐는 법이다.”
푹.
노인은 단단하게 다져진 흙속으로 팔꿈치까지 손쉽게 집어넣었다.
너무 쉽게 뚫리는 모습을 보니 흙이 두부가 된 듯했다.
츄와아악―.
“헛.”
더욱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노인이 팔꿈치까지 집어넣었던 손을 가볍게 빼내자 그 손안에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더덕이 흙을 헤치면서 자연스럽게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자, 이렇게 캐는 거다.”
“…….”
“어렵냐?”
“예…….”
“철아!”
추 노인이 부른 철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으로 달려들어 양손을 흙속으로 푹 집어넣었다.
“으음? 음? 으으음!”
아직 몸이 작아서 낑낑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철이는 결국 더덕을 캐냈다.
“캐냈다!”
“쯧쯧, 아직 멀었다. 잔뿌리가 많이 상했구나. 그래도 장하다.”
추 노인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철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철이가 내민 손바닥 위에는 잔뿌리가 꽤나 부러져 있긴 했지만 분명히 더덕이 있었다.
조서인은 철이가 무거운 볏단을 들어 올릴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게 뭐지? 무공인가? 금나수? 태극권? 뭐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무공으로 단단한 흙을 두부처럼 뚫어 버리고, 그 안에서 섬세하게 더덕을 캐내는 작업.
무산학관에서 수없이 많은 수공들을 익히고 보아 온 조서인이기에 알 수 있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건 무림 강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절공이었다.
‘무공이야. 확실해. 별거 아닌 듯하지만 굉장한 무리(武理)를 담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쉽게 흙을 뚫고 손을 넣지?’
조서인이 유일하게 신봉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게 바로 ‘노력’ 아니던가.
조서인의 눈이 빛났다.
모르겠는가?
그러면 알 때까지 해 보면 된다.
몸으로 덤비고 끊임없이 이해하려 머리를 굴린다.
그러면 어느 순간은 알 수 있게 되는 법이다.
“제가 해 보겠습니다!”
“그래그래. 해 봐라.”
조서인은 더덕 밭에 한쪽 무릎을 꿇고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흙으로 손날을 세운 채 푹― 하고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