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295화 (424/686)

12권 20화

제29장 황실대망(皇室大蟒) (20)

방풍의 화부는 청계의 왼쪽 손목을 반 가까이 잘라 내고, 왼쪽 견갑골과 쇄골을 부쉈으며 근육과 혈맥을 일격에 분쇄시켰다.

“키에아아악!”

청계의 비명 소리는 짐승의 괴성처럼 울림이 컸다.

청계는 화살 맞은 닭처럼 몸을 떨었다.

새하얀 가면 너머로, 광기와 고통에 휩싸인 두 눈이 흰자위만 남긴 채 정신없이 경련을 일으켰다.

으적―!

방풍의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것과 동시에 청계의 어깨에선 피가 한 뼘이 넘게 솟구쳤다.

출혈을 막고 있던 도끼가 단번에 빠져나오자, 그 압력에 분수처럼 솟구친 것이다.

“몸을 두 쪽 내려고 했는데…… 쿨럭!”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손을 들어 도끼를 막아 낸 반응 속도가 놀라울 지경이다.

사색이 된 채 피를 토해 내는 방풍은 여전히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제갈륜은 바로 그 순간 움직였다.

터엉!

파바바밧!

밧줄을 몸에 묶은 제갈륜이 배에서 비조처럼 뛰어올라 포구로 건너갔다.

그는 방풍의 몸을 껴안듯이 붙잡았다.

비록 무공은 방풍보다 약하지만, 그래도 신법만큼은 절정에 가까운 사람이 제갈륜이었다.

그는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청계를 발로 걷어차고, 방풍을 잡아당겼다.

가슴을 걷어차려고 차 낸 등각이다.

그런데 그 순간 청계가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칵, 안 된다!”

말투가 다시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바뀌었다.

청계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제갈륜이 걷어차려는 가슴을 보호하며 몸을 비틀었다.

퍽!

“……!”

제갈륜의 각법은 결국 청계의 가슴이 아니라, 도끼가 박혔던 어깨를 걷어찼다.

핏물이 무서울 정도로 튀었는데도 청계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새끼를 감추는 어미 새처럼 허둥지둥 가슴을 가리는 청계의 옷자락 사이로, 반짝이는 은판과 엄지손가락만 한 굵은 보석이 살짝 보였다가 다시 가려졌다.

‘목걸이?’

제갈륜은 의문을 느꼈으나 지금 그걸 풀 방법은 없었다.

청계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살기를 뿜어내며 검을 날려 온 탓이다.

“헙!”

깜짝 놀란 제갈륜은 방풍의 몸을 뒤에서 안은 채로, 자신의 허리에 감겨 있는 밧줄을 잡아 당겼다.

피슉―.

“큭!”

청계가 날린 검이 제갈륜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치명상은 아닌 듯했다.

터엉!

휘리릭―.

그는 또다시 새처럼 날아올랐다.

이미 포구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흘러가기 시작한 작은 배 위로 구르듯이 안착하고 나자, 포구 위에서 몸을 떨면서 발광하고 있는 청계의 모습이 보였다.

“캬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그들을 놓친 것이 분한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비척거리며 움직였다.

그래도 방풍의 일격이 강하긴 강했던 모양이었다.

결국 청계는 제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감싸 쥔 채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어 댔다.

“캬아아악―!”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이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핏줄이 잔뜩 돋아난 얼굴 위로 광기 어린 눈빛을 한 미청년이 포구 위에서 숨을 씨근거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리길 바랐건만,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는지 청계는 죽일 듯이 노려볼 뿐 쓰러지지 않았다.

“천운이구나! 손으로 막지 못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방풍의 말대로 몸이 두 쪽이 나서 죽었을 것을.

아쉽긴 하지만, 제갈륜은 지금이 도주해야 할 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소맷자락을 찢어 방풍의 상체를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꽉 동여맸다.

“쿨럭.”

방풍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도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나는 괜찮…….”

“괜찮지 않으니 입 열지 마십쇼! 일단 벗어나겠습니다!”

“저 잡놈을 죽여……!”

“아, 입 열지 말라니까요!”

방풍은 끝까지 도끼를 놓지 않았다.

더욱 크게 피를 토해 내는 방풍에게 주의를 준 제갈륜은 최선을 다해 노를 저어 강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청계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점점 멀어지는 거리에 비례하듯 제갈륜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렸다.

그는 등과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은 데다 왠지 몸이 으슬으슬하게 추워진다고 생각했다.

힐끗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니, 그가 등에 입은 상처에서 흐른 피가 옷을 다 적시고 있었다.

‘난 큰 상처가 아니었는데도 이 꼴인가……! 그에 비해 방 형은……!’

숨을 쌕쌕거리면서 고통을 참고 있던 방풍은 숨을 잘 쉬지 못해서 피가래를 그릉그릉 내뱉고 있었다.

그토록 건장했던 사람이 죽음을 엿볼 만큼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음이 더욱 조급해진 제갈륜은 노 젓는 동작에 힘을 더했다.

포구가 점점 멀어지다가, 마침내 교어채의 목책마저 통과했다.

장강의 도도한 흐름에 합류한 것이다.

‘이대로 지나가는 배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아니면 우선 뭍으로 나가서……!’

계획을 짜려던 제갈륜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목책을 막 통과해서 장강의 흐름을 탔는데, 꽤나 커다란 중형 목선 한 척이 정확히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천무……?”

제갈륜은 그 중형 목선의 돛에 쓰여 있는 두 글자를 읽고 그가 아는 모든 상단과 수채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들 중 어떠한 집단도 천무라는 글자를 쓰는 곳은 없었다.

선자불래 래자불선(善者不來 來者不善)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아군이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행운을 바라는 것 아니겠는가?

설마 적인가 싶어 제갈륜이 마음을 졸이던 그 순간.

가까워진 중형 목선의 선창에서 어린 소년처럼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다쳤어요? 도와줄까요?”

말투에서 느껴지는 걱정과 호기심에는 사람의 인정이 녹아 있었다.

대번에 안색이 밝아진 제갈륜이 크게 소리쳤다.

“고맙소! 제발 도와주시오!”

“그렇다면야.”

휙―.

목선에서 뛰어오른 한 인영이 그들 두 사람이 타고 있던 소선에 가뿐하게 올라탔다.

‘놀라운 경신술!’

제갈륜은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목선에서 소선까지의 거리는 삼 장이 넘고, 높이를 따져도 일 장 가까이 차이가 난다.

거리도 거리지만 몸놀림이 더욱 놀랍다.

청년은 못해도 육 척은 될 것 같은 장신이었다.

그런 자가 그 먼 거리를 뛰어넘어 자그마한 나룻배 하나에 올라탔는데, 물이 튀기는커녕 배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나무껍질처럼 고요한 수평을 계속해서 유지했다.

청년의 신법이 경지에 올랐다는 증거였다.

“많이 다치셨네요. 교어채에서 오셨어요?”

“저곳의 출신은 아니오. 나는 제갈륜이라는 사람이오. 공자께서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으니 도와주실 수 있겠소?”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무림 강호에서 사해는 동도라는 말도 하지 않던가.

제갈륜은 염치불구하고 비척거리면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그륵…….”

방풍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약해졌다.

제갈륜은 점점 더 초조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제 이름은 장소호입니다. 당연히 도와야죠. 일단 배 위로 올라가죠.”

“장소호……?”

제갈륜은 그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 봤음을 깨닫고,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음을 인정했다.

“천무공자!”

“하핫, 그렇게도 불리지요.”

소호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방풍을 부축했다.

방풍은 극도로 지쳐 보였지만 아직 이성이 있는 상태였다.

말은 못해도 눈빛으로 감사의 뜻을 보내왔다.

“제갈 대협, 잠시 허리에 손을 댈게요.”

“아니오. 나는 혼자 움직일 수……허업!”

제갈륜의 허리를 붙잡은 소호가 아지랑이처럼 몸이 흔들린다 싶은 순간, 이미 그는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흐업!”

제갈륜은 기이한 신음을 내지르고 말았다.

소호는 건장한 사내 두 명을 안고도 가뿐하게 배 위로 내려섰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경공이었다.

대체 어떻게 힘을 분산시키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방 조장. 이 두 분을 의원에게 데려다주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십 대 중반 정도 되는, 몸이 호리호리하고 눈이 작은 사내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한 뒤 몇 명을 불러 함께 방풍을 부축했다.

제갈륜은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고, 소호에게 물었다.

“천무공자. 아니, 장 대협,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부탁이요?”

“어째서 여기까지 오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길로 오셨다는 것은 교어채에 볼일이 있으셨다는 이야기겠지요?”

소호는 잠시 제갈륜을 지그시 응시했다.

제갈륜은 몸이 약해져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소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속일까? 아냐, 위험하다. 교어채와 사이가 나쁜 것이 아니라면, 녹림수로맹과 천무공자는 구원이 없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아. 천무공자는 소문에 인정이 많고 순수하다고 했다. 인정을 노려야 해.’

“예. 분명히 볼일이 있기는 했죠. 큰일이 벌어졌다고 들어서요.”

“외람된 질문이지만, 장 대협께선 교어채와 사이가 나쁘십니까?”

“아직 나쁘진 않아요. 만난 적도 없고.”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어채에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녹림수로삼십육채의 군사로서 말하자면, 교어채는 젖을 갓 뗀 어린아이까지 몰살당했습니다.”

“어린아이까지……?”

“예. 그리고 그 흉수가 지금 교어채에 있습니다. 저기 계신 방 형…… 녹림의 화부가 그에게 큰 상처를 입힌 상태이지요.”

“흉수는 누굽니까?”

“백검회의 괴수입니다. 자신을 청계라고 소개했는데 기묘한 무위를 지녔습니다. 강합니다.”

“청계…… 청성인가?”

소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그자를 잡아 달라는 겁니까?”

“예.”

제갈륜은 무릎을 꿇었다.

“천우신조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녹림수로맹이 정파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린아이까지 학살하는 마두를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흐음.”

“물에서 꺼내자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심보인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를 잡아 주신다면, 크게는 녹림수로맹의 모두가 공자께 감사할 것이고, 작게는 저의 모든 힘을 다해서 꼭 보답하겠습니다.”

제갈륜은 절절한 심정을 담아 간절하게 외쳤다.

여전히 등에 상처가 있는 상태.

그가 입고 있던 무복이 온통 피에 젖었음에도 간절하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으음.”

소호는 잠시 고민했으나,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대답했다.

“일단 한번 가 보겠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은 해 봐야겠네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장 대협, 그자는 부운약표와 신학검을 귀신같이 잘 씁니다!”

“신학검…….”

소호의 두 눈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는 제갈륜이 타고 온 소선으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방 조장! 잠시 다녀올게요!”

소호는 배에 내려서자마자 물에 장법을 날리면서 쏜살같이 교어채로 향했다.

제갈륜은 도움을 주겠다는 방 조장이라는 사내와 다른 이들의 손길을 정중히 거절한 뒤, 창백한 안색으로 갑판에서 천무공자를 기다렸다.

세 시진처럼 느껴지는 일각의 시간이 지나갔다.

제갈륜이 방풍을 끌어안고 탈출했던 물길을 타고, 작은 배에 올라탄 소호가 어두운 안색으로 되돌아 나왔다.

“어찌 되었습니까……?”

떨리는 제갈륜의 물음에 소호는 딱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찾지 못했습니다. 이미 숨은 듯하더군요. 부두에 남은 싸움의 흔적과 핏자국은 보았습니다. 그…… 작은 아이도요.”

“크흑.”

제갈륜은 힘이 빠져 휘청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