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 6화
제32장 귀곡천계(貴鵠賤鷄) (6)
그 순간 소호의 경악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크게 뜬 눈.
흔들리는 눈빛에서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이잉-.
소호의 칼은 아직도 충격을 다 해소하지 못하고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통한다!’
조서인의 마음속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당연히 막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다만 얼마나 힘들게 막을지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의 소호는 다급하게 막아 냈다.
조서인은 거기서 희망을 보았다.
‘할 수 있어!’
무인은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이성적이지 못했다.
조서인도 천생이 무인이었다.
소호에게라면 뭐든 아낌없이 양보할 수 있었지만,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친구로서, 같은 무(武)의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로서 전력을 다해 이기고 싶었다.
치르릉-.
떨리는 창날.
쿵.
왼발을 강하게 앞으로 내딛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 한 팔로 창을 잡고 앞으로 내찔렀다.
검선일맥.
건곤조화신공(乾坤調和神功)의 진기가 온몸에 퍼졌다.
조서인은 손끝에 힘을 더했다.
일연적룡무 제일식.
공간을 통째로 접어 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창날이 다가간다.
따아앙!
소호는 이번에는 막고만 있지 않았다.
칼을 비스듬히 비틀면서 공격을 흘려냈다.
텅.
창이 옆으로 튕겨 나가려는 것을 조서인은 꽉 붙잡아 도로 회수했다.
아까와 똑같은 공격이기 때문일까.
소호의 방어 자세가 처음보다는 안정적이었다.
소호의 두 눈이 번뜩였다.
오른발을 옆으로 빼면서 상체를 비스듬히 돌린다.
넘어질 듯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옆으로 몸을 한 바퀴 돌리면서 가볍게 땅을 박찼다.
툭.
발끝이 흙을 파고드는 모습.
조서인은 그 동작 끝에 어떤 무공이 튀어나올지 잘 알고 있었다.
‘운룡대구식!’
조서인은 창대를 짧게 바꿔 잡았다.
파라라락-!
소호는 몸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훨훨 날아 조서인에게로 쏘아졌다.
타탁!
허공에서 자신의 발등을 밟고 몸을 튕기는 모습.
신화 속의 용이 허공을 유유히 날아가듯, 소호도 날개가 달린 것처럼 가뿐하게 날아왔다.
‘여기서 수직 참격.’
조서인은 다가올 공격을 미리 대비했다.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 있던 거리가 순식간에 팔만 뻗으면 닿는 거리로 가까워졌다.
“합!”
조서인은 낭랑하게 기합성을 내뱉었다.
공중에서 내리긋는 소호의 칼을, 조서인은 짧게 잡은 창대로 강하게 쳐 냈다.
까드드득-!
“……!”
칼날을 창대로 후려쳤으니 당연히 밀려나야 하건만.
소호는 공중에서 유연하게 몸을 비틀었다.
칼에 무게를 싣고, 칼끝을 섬세하게 움직였다.
휘리리릭-.
“흡.”
길고 질긴 넝쿨이 창을 휘감는 듯했다.
한 번 엉겨 붙으니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칼날이 창대의 표면을 깎아 내듯 나선형을 그리며 타고 내려왔다.
위협적인 모습.
그대로 둔다면 손목이 날아갈 상황이다.
‘역시, 사부님과 대결할 때와 대응책이 같아.’
조서인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뒤로 물러났다.
‘이미…….’
텅.
조서인은 왼발을 강하게 딛으면서 오른발로 창대 끝을 걷어찼다.
‘……예상했던 대응이야!’
터엉!
“……!”
창을 휘청거리게 만드는 강한 진동.
칼은 튕겨 나갔고, 조서인은 무사히 거리를 유지했다.
파라락-.
소호는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다시 땅에 내려섰다.
조서인은 차분하게 창끝으로 소호의 중단을 겨누며 거리를 벌렸다.
“흠!”
소호가 재미있다는 듯이 눈을 빛내는 모습이 보였다.
탁, 탁.
발끝을 세우고 땅을 두 번 두드린다.
조서인은 소호가 땅을 두 번 두드리는 순간 지체하지 않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공격을 퍼붓던 중인 데다가 승기도 잡고 있었음에도 과감하게 몸을 피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찰나의 순간.
파라락-!
아지랑이처럼 몸이 일렁인다 싶더니, 어느새 소호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참격이 놀랄 만큼 빠르다.
평범하지만 막강한 예기가 넘실거리며 칼끝에서 솟구쳐 올랐다.
촤아아악-.
비단 폭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기와 땅이 수직으로 잘려 나갔다.
파바밧!
땅이 갈라지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저 앞에 있었다면?
막기 힘들다.
설령 막는다 해도 내공이 진탕되어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런데 이미 조서인은 몸을 비스듬히 비틀면서 회피한 상태였다.
온몸의 탄력을 살려서.
마치 소호가 그러하듯, 한 걸음에 옆으로 펄쩍 물러나서 일 장 거리를 벌려 놓았다.
‘난 강해졌어.’
예전 같았으면 알고도 회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검선의 건곤조화신공.
장기린의 일연적룡무를 익히기 전이었다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서서 어떻게든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 애써야 했을 거다.
우우웅-.
조서인은 창끝에 기운을 모았다.
푸르게 빛나는 기파.
이어지는 추가타가 공간을 갈랐다.
일연적룡무 제일식.
쒜에에엑-!
순속의 첨격이 번개처럼 소호의 미간으로 쏘아졌다.
피이이잉-.
소호는 칼날로 얼굴 앞을 막았다.
한 손으로는 막기 힘들 것 같아 왼손을 칼등에 대고 충격에 대비했다.
따아아앙!
“윽.”
공격은 막았으나 시끄러운 굉음만큼은 막지 못한 소호다.
소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반 보 뒤로 물러섰다.
반 보.
그저 발끝을 뒤로 돌렸을 뿐인 작은 움직임.
조서인은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소호가 물러서는 모습.
지금까지 대련하면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너…… 서인이 맞아?”
소호가 얼얼한 귀를 매만지며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짜증스러운 눈빛.
초조한 얼굴이 그의 내심을 짐작케 한다.
‘평소의 소호답지 않네.’
조서인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맞아. 소호 덕분에 무공의 재미를 알게 된 조서인.”
“……거짓말.”
“거짓말 아냐. 네가 아니었다면 언젠가는 무공을 싫어하게 되었겠지?”
그렇기에 소호는 은인이다.
그렇기에, 조서인에게 있어 소호는 ‘대등하게’ 평생 곁에서 돕고 싶은 친구다.
소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뭔가를 결심한 듯 이를 악무는 모습이었다.
‘웃어. 소호야. 넌 강적을 만나면 웃잖아.’
조서인은 다시 한 번 전의를 끌어 올렸다.
자신이 열세인 건 당연했다.
싸움에 대한 감각.
무공에 대한 천부적인 응용력.
둘 다 소호를 이길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승부가 된다면 단 하나.
‘내가 소호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공의 완성도!’
조서인은 잡고 있던 창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우우웅-.
창대가 떨린다.
곧바로 지체하지 않고 소호의 가슴을 향해 내질렀다.
까아앙!
소호는 박도를 비스듬히 사선으로 휘둘러서 조서인의 창을 흘려냈다.
공격을 회피하는 것과 동시에 안으로 파고 드는 동작이 놀랍도록 매끄럽다.
조서인은 거기서 곧바로 승부를 걸었다.
창을 회수하기도 전에, 손목의 혈도를 폭발시켰다.
텅!
예전 같았다면 한 번 사용하면 반나절 이상은 팔을 못 쓰게 되는 폭혈공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건곤조화신공을 익힌 지금은 폭혈공도 세 번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우우웅-.
조서인이 잡고 있던 창이 두 개로 늘어났다.
일연적룡무 제이식.
아직 장기린처럼 수십 개로 분열시키지는 못하지만, 두 개까지는 안정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두 개로 변한 창이 각각 좌우에서 소호를 향해 찔러 갔다.
채채챙!
소호는 품 안으로 파고들던 동작을 중단하고 다급하게 몸을 띄웠다.
파라라라락-.
소맷자락이 바람에 떨린다.
소호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고 있었다.
하나는 칼로 막고, 하나는 발의 넓은 면으로 창대를 걷어차서 공격을 막아 내려는 심산이다.
까가강-.
터엉-.
소호가 발로 창대를 걷어차는 순간, 조서인은 낭랑하게 기합성을 토해 냈다.
“하압!”
조서인은 오른손 손목의 혈도를 다시 한 번 폭발시켰다.
찌이잉-.
손목의 저릿한 느낌과 함께 다시 한 번 창을 크게 휘둘렀다.
후우우우웅---.
오른손은 크게 뒤로 휘두르고, 왼손은 손바닥으로 창대를 받친 채로.
왼쪽 다리는 절도 있게 들어 올리는 금계독립의 자세로 창을 위로 솟구치게 만든다.
바람을 가르며 반 바퀴 회전한 창날이 소호의 허리를 가를 듯 위로 치솟아 올랐다.
일연적룡무가 아니다.
조가창법.
조씨 집안의 비전을 소호와 함께 다듬었던, 바로 그 무공이다.
“……!”
소호의 눈빛이 차가워진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팍 좁혔으나, 이내 딱딱하게 표정이 굳기까지 했다.
‘조가창법은 다 안다고 생각하겠지? 소호야.’
조서인은 묵묵히 조가창법을 전개했다.
그를 무산학관에서 낙일창(落日槍)이라고 불리게 만든, 폭풍 같은 기세의 창술이 호쾌하게 뻗어 나갔다.
무공은 호흡이 중요하다.
똑같이 무기를 휘두르더라도 날숨으로 휘두르는 것과 들숨으로 휘두르는 것, 그리고 똑같은 숨이라도 길게 쉴 때와 짧게 쉴 때의 위력과 효용은 천양지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호는 이 조가창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뜯어고쳤다.
조가창법이 하나의 집이라면, 소호는 대들보까지 다 무너뜨렸다가 비슷한 모양으로 새로 지은 거나 다름없다.
조가창법에서 언제 들숨과 날숨을 쉴지.
발은 어떻게 쓰며 손끝에 힘은 얼마나 줄지까지 소호는 다 기억하고 있다.
무공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다?
방대한 무공의 섬세한 운용까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말은 소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하늘이 내린 무(武).
천무공자(天武公子)라 불리는 것 아니겠는가.
‘왠지 모르게 초조한 너라면 피하고 바로 반격을 하겠지?’
조서인은 청명경의 구절대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소호는 자신의 발등을 밟고 몸을 튕기는 운룡대구식으로 솟구치는 창날을 피했다.
회피와 동시에 공격.
방어를 굳히는, 불과 한 호흡의 낭비조차 소호는 허용하지 않는다.
곧바로 내리치는 칼날이 태극 문양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옆에서 조서인의 목을 노려왔다.
절묘한 한 수였다.
위로 쳐올린 창은 다음 초식에 아래로 내리치게 되어있다.
조서인에게 낙일창이라는 별호를 만들어 준 초식.
내리치는 속도는 반 호흡.
창의 길이는 일 장.
소호는 아슬아슬하게 창의 공격 범위를 벗어난 채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여유 거리는 불과 세 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칼의 투로를 보면 감탄이 나온다.
조서인이 창을 내리치면서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 자연스럽게 칼의 공격 범위에 조서인의 목이 들어가는 지점이었다.
기가 막힌 거리 감각이다.
이다음에 조서인이 어떤 동작을 취할지 아는 소호만이 쓸 수 있는 한 수다.
본래라면 조서인은 여기서 공격을 포기하고 수비로 전환해야 했다.
한 발 물러나서 공세를 포기해야 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하지만 소호야…….’
조서인은 미끄러지듯 창의 손잡이를 길게 잡았다.
터엉.
세 번째 폭혈공이 펼쳐지며 창의 속도가 급격히 가속했다.
온몸에 퍼지는 건곤조화신공의 진기.
마음을 굳히고, 창과 마음을 합일(合一)한다.
수만 번의 담금질로 완벽에 가까워진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전력을 다한 집중력으로 창의 속도를 반의반 호흡만큼, 더 빠르게 만들어 낸다.
‘나도, 더 강해졌어.’
후우우우웅---.
바람이 갈라지는 파공음은 창이 움직인 뒤에 비로소 끌려오듯 뒤늦게 들려왔다.
“……!”
피하지 않는 조서인을 보며 경악하는 소호의 두 눈을 피하지 않았다.
시선을 서로 마주한 채, 전력을 다해 내리친 창대가 소호의 어깨를 가격했다.
뻐어어억!
쇄골을 박살 낸 것으로도 모자라, 소호의 상체는 머리부터 땅바닥에 처박혔다.
꾸우웅!
땅이 울릴 정도의 힘이다.
조서인은 꿈틀, 기침을 토해 내는 소호의 목에 창날을 겨누었다.
“천전(千戰) 구백구십구 패(敗).”
후우-.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몸.
덜덜 떨리는 입술로, 조서인은 승리를 선언했다.
“일 승(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