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 1화
제34장 낙일지협(落日之俠) (1)
육중하고 단단한 망치가 빨갛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때린다.
쇠를 다루는 과정은 보면 볼수록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광석이 두드리면 두드리는 대로, 접으면 접는 대로 모양을 바꾼다.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장인의 솜씨는 신묘했다.
접고, 늘이고, 둘둘 마는가 싶더니, 넓적하게 길었던 쇳덩이가 점점 봉의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와아.”
조서인은 감탄을 내뱉었다.
은자촌의 명장(名匠) 광 노인이 철을 만지기 시작한 게 벌써 두 시진이 넘었다.
그저 빨갛게 녹아내리던 철덩어리가 드디어 ‘창’에 가까워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롭지 않은가.
이제는 조금만 다듬은 뒤 거푸집에 넣어야 할 차례다.
조서인은 자신도 모르게 망치질을 하는 모루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런데 모루의 열기로 얼굴이 뜨끈뜨끈하게 데워질 때쯤, 모루 밑둥에서 뭔가가 튕겨져 나왔다.
깡!
“우왁?”
조서인은 깜짝 놀라 몸을 낮췄다.
섬뜩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광 노인이 망치를 내리치는 순간, 부르르 떨린 모루 옆에서 갑자기 거무튀튀한 파편들이 퍽― 하고 튀어나온 것이다.
다행히 피했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눈에 맞을 뻔한 상황이었다.
조서인은 놀란 토끼눈을 한 채 광 노인을 바라봤다.
놀란 건 조서인뿐이 아니었다.
광 노인도 깜짝 놀라 조서인에게 되물었다.
“이런, 괜찮으냐?”
강호 무림에 숨겨진 명장, 일흉대기 광사로는 망치를 내려놓았다.
“괜찮아요. 안 맞았습니다. 저 멀쩡해요, 어르신.”
“이런…….”
광사로는 모루의 밑둥을 살펴보더니 혀를 찼다.
“나도 이젠 못 쓰겠군. 어제 흘러내린 쇳물을 깜빡했을 줄이야…….”
“에이, 아니에요. 작업하다 보면 파편도 튀고 그러는 거죠. 뭐.”
“늙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군.”
광사로는 생각보다 크게 실망한 얼굴이었다.
조서인은 되려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미리 청소나 좀 도와드릴 걸 그랬어요. 괜히 구경만 하고 있었네요. 아이 참, 그걸 왜 못 봤을까.”
조서인은 구석에 놓인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모루에서 튀어나온 쇳덩이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잔해물들을 꼼꼼히 쓸어냈다.
“…….”
광사로는 조서인의 그런 모습을 묵묵히 보고 있었다.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그는 더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잔뜩 달아올라 있던 쇳덩이를 집게로 잡아 물에 담궈서 완전히 식혀 버렸다.
치이이익―.
뜨끈한 수증기가 공방 안을 뿌옇게 채웠다.
“어? 안 만드시는 거예요?”
“호흡을 잃었다. 마음이 흐트지면 쇠도 흐트러지는 법이지.”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구경을 와서. 일을 망쳤네요.”
“네 탓이 아니다. 사내놈이 함부로 고개 숙이지 마.”
광사로는 친절한 성격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삐뚤어지거나 괴팍한 사람도 아니었다.
“이런 걸로는 안 되겠어. 이딴 건 네게 못 준다. 내일 인시(寅時)에 다시 하지.”
묵묵히 등을 돌리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선 장인으로서의 고집이 느껴졌다.
‘도자기 장인들 중엔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만들자마자 깨 버리는 사람도 있다던데, 이것도 그런 걸까?’
장인의 고집스러운 속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조서인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빗자루를 들고 이번에는 더욱더 꼼꼼히 공방 안을 청소했다.
먼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도록, 바닥은 물론이고 공방 곳곳에 놓인 집기들도 닦기 시작했다.
“어르신이 작업하시다가 또 이런 일이 생겨서 다치시면 어떻게 해. 꼼꼼히 하자.”
조서인은 최선을 다해 공방 안을 쓸고 닦는 것에 집중했다.
***
풍운객잔 안은 언제나 그랬듯 차분했다.
몸을 기울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낡은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창밖에서 발랄하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비스듬히 흘러들어 온 햇볕이 바닥을 네모 모양으로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식탁 위에 놓인 소면에서 따끈따끈하게 연기가 올라오는 순간에는, 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을 정도다.
“오늘 창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조서인은 건너 쪽에서 들려오는 질문에 소면을 들어 올리던 젓가락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예, 그랬습니다. 사부님.”
식탁 너머에는 조서인에게 있어 신(神)이나 다름 없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수염이 없다면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깨끗한 이목구비에, 아무런 색도 없는 무명 옷을 소탈하게 입고 있는 중년의 사내다.
그는 언제나 서인에게 최선을 다했다.
신뢰를 배반하지 않고, 제자인 서인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닮고 싶은 사람.
하늘 같은 사부님.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이런 걸로는 안 되겠다면서 다시 만들겠다고 하셨어요.”
“좋은 걸 만들어 주시려나 보군.”
“너무 고생하시면 안 될 텐데……. 걱정입니다.”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저를요?”
조서인은 잠시 당황하면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 좋겠지만, 오늘도 괜히 구경하다가 어르신의 호흡을 방해해서……, 저를 싫어하실까 봐 걱정입니다.”
“그건 아닐 거다.”
장기린은 대답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분은 구경하는 사람 하나 있다고 호흡이 흔들릴 분이 아니야.”
“아……!”
조서인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그 연륜.
그 능력.
광 노인의 실력은 구경하는 사람 하나 있다고 흔들릴 정도로 깊이가 얕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 때문에 일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오만일지 몰랐다.
“그저 최고의 작품을 주고 싶으신 거겠지. 병기는 새로 만들지 않겠다고 하셨던 분인데 네게는 창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거라.”
“예, 사부님.”
조서인은 가슴이 벅차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 분께 새로운 창을 받다니.
생각만으로도 설레지 않은가.
“서인.”
장기린은 그런 서인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나직하게 웃었다.
“오늘은 식사 후에 무엇을 할 거지?”
“강 숙수님이랑 저녁 식재료를 다듬고, 산에 가서 대철이랑 나무하고, 그리고 저녁 수련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은자촌에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도와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장기린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운찬에게는 내가 말해 두마. 식사 후에 나와 어울려다오.”
“……예? 아, 예.”
소호는 조금 당황스런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무슨 일이시지? 심각한 일인가?’
평소에 잘 없는 일이기에 신경이 쓰였다.
벌써 이 년째 먹고 있는데도 여전히 맛있는 소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허둥지둥 식사를 마치자 장기린은 조서인을 데리고 은자촌의 뒤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영산으로 향했다.
백산과 흑산.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생명력이 넘치는 신비로운 산이다.
“검선께서 돌아오셨나요?”
“아니.”
영산의 정상에 있는 작은 암자에는 지금 주인이 없었다.
장기린은 아무도 없는 마당 안으로 들어가 탁자 위에 놓인 서찰을 조서인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사부님?”
“추 어르신께서 보낸 서찰이다.”
“어? 추 어르신이요?”
추묵환.
장강용왕이라는 거창한 별호와 달리, 더덕 농사를 참 좋아했던 인물이었다.
은자촌에서 가장 처음 무공의 ‘결(決)’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기에 조서인에게도 각별한 사람이다.
“백경채 위급……? 사태가 심각하다는……?”
“장강수로삼십육채라는 곳이 있다. 소호의 일로 가셨을 때는 그저 흑시군에 혼란을 주기 위해 얼굴만 비춘 것이었는데, 본파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금방 나오지 못하신 모양이야.”
“아……!”
조서인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도와드려야 겠습니다.”
“서찰은 다 읽었나?”
“아, 아직 남았습니다.”
“마저 읽어 봐라.”
조서인은 빠른 속도로 서찰의 남은 글자들을 읽어 내렸고, 마지막 문장에 가서는 표정이 오묘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어, 음. 백경채의 도움은 필요없지만, 한 사람은 구해 달라는……, 그런 내용이네요.”
“그래. 검선께 보낸 서찰이다.”
“그런데 검선께선 구양세가로 가셨잖습니까?”
조서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검선.
그리고 천하제일세가 구양세가.
단일 세력으로 유일하게 팔파일방을 넘어설 것이라는 무림의 거대 세가.
“그래. 검선께서도 잠깐 얼굴만 비추겠다고 가셨었다. 그런데 세가 회합이 길어져서 아직 못 오고 계시다더군.”
“불요신승 어르신도 잠깐 소림에 갔는데 돌아오지 못하시잖아요? 무림은 늪 같은 곳이네요. 영감님들께서 다들 잠깐만 나가신 건데 붙잡혀서 못 나오시니…….”
“한 번 인연이 얽히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무림이지.”
가만히 침묵하는 장기린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이 서찰을 구양세가에 전달해야 할까요?”
“아니. 추 어르신께서 이 서찰을 구양세가에 보내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다.”
“아……! 그것도 그렇네요.”
“내가 내용을 살펴보니 시간이 없다. 검선께서 오시길 기다리면 이 일은 늦어.”
“제가 갈까요?”
조서인은 비로소 장기린이 왜 그를 이곳까지 데려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거부감은 없었다.
이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
은자촌의 사람으로서, 같은 마을 어르신을 돕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더구나 친구인 소호의 할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조서인에게도 무공을 가르쳐 준 분을 돕는 것에 이견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일연적룡무를 다 가르쳤다. 검선께서도 건곤조화신공을 다 가르쳐 주셨다고 하더군.”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고작 십분지 일도 못 깨우친 것 같습니다.”
“너는 잘 따라와 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 이상이야.”
장기린은 돌려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묵묵히 그를 인정하는 모습에 조서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 저는 아직…….”
“일연적룡무 제일식은 다 깨우쳤군. 보면 알 수 있다. 밤마다 잠을 줄여 가며 연습한 게 효과가 있었나?”
“……알고 계셨습니까?”
“제이식은 어떤지 확인해 보자. 그리고 성취가 높다면, 네게 이 일을 부탁하마.”
장기린은 부탁조차 돌려말하지 않았다.
소탈한 농민처럼 허허로운 기운을 뿌리던 장기린이, 담벼락에 비스듬히 놓인 나무 봉을 붙잡는 순간 강맹한 분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공기가 무거워진다.
온화한 분위기 속에, 그저 무공의 실력을 보겠다고 말한 것뿐인데 주변을 짓누르는 무게감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서인은 장기린과 똑같이 양손으로 봉을 잡았고, 그와 대치하며 똑같은 기수식을 취했다.
쒜에에엑―!
동시에 뻗어 내는 일연적룡무 제일식.
두 사람의 목봉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
“건량, 챙겼고. 모포, 챙겼고. 철 요대…… 으음, 일단 갖고는 가고.”
조서인은 가져갈 짐이 점점 늘어나니 난처해졌다.
적당한 선에서 덜어내는 것도 능력이다.
최소한으로 짐을 싼다고 쌌는데, 들고 가야 하는 보따리는 늘어나고 방 안에 가득 차 있던 집기들은 어느새 휑― 하니 비어 있었다.
“이러면 안 되지. 어차피 다시 돌아올 곳인데. 짐은 가볍게. 두 손도 가볍게.”
필기구나 청명경 같은 책자를 빼놓고 나니 그제야 보따리가 가벼워졌다.
“서찰, 챙겼고.”
조서인은 추묵환이 보낸 서찰을 품 안에 넣고 툭툭 두드렸다.
“창, 으음, 다시 봐도 이쁘다. 챙겼고.”
해가 뜨자마자 공방으로 달려가서 받아 온 철창이다.
광사로의 말로는 정확히 인시에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며 모든 양기를 끌어모아 만든 물건이라고 평했다.
“한 글자를 새길까 한다. 무슨 글자를 새기고 싶나?”
“저는…….”
조서인은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며 피식피식 웃었다.
웃음이 절로 나올 만큼 철창은 아름다웠다.
적절한 탄성과 강도를 지닌 완벽한 균형을 지닌 창이다.
마름모꼴로 길쭉한 창날은 단순하지만, 창날에서 창대로 이어지는 이음새와, 손잡이 부근에 섬세하게 세공된 문양들은 보기만 해도 절로 감탄이 흘러나온다.
조서인은 그 아름다운 창의 이름을 ‘은자(隱者)’라고 붙였다.
수수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세상을 굽어보는 기상을 지닌 창이다.
마치 이곳 은자촌과 같지 않은가.
광사로는 이름을 듣자 크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조서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이름이었다.
“그럼…….”
은자촌에서 수련을 한 지 이 년째, 처음으로 떠나는 무림행이다.
이번 일만 마치고, 다시 돌아오면 이번엔 일연적룡무를 끝까지 파고들 것이다.
완벽하게 익힐 때까지.
스승님, 장기린에게 조금이나마 덤빌 수 있는 힘을 갖출 정도로 말이다.
“가 볼까.”
조서인은 순박하게 웃으면서 봇짐을 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