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권 21화
제36장 득이물유(得而勿有) (5)
올해 나이 사십팔 세.
지천명(知天命)이 되어 가는 금룡상회의 섬서 지부장.
진목룡은 무재(武才)라고는 모래 한 알만큼도 갖고 태어나지 못한 나약한 사내였다.
키가 작고 자세도 구부정하다. 십 대 시절부터 머리는 반쯤 벗겨졌고 이마도 툭 튀어나와 공자처럼 얼굴이 추레했다.
그런 그가 금룡상회 안에서도 제법 직급이 높은 지부장의 위치까지 오른 것은 순전히 장사 머리 덕분이었다.
바싹 말라서 사막 같던 황무지에서도 돈 벌 궁리를 찾아내는 게 바로 진목룡이다.
회주의 눈 밖에 나서 변방으로 쫓겨났을 때도 그랬고, 나중에 다시 불려와서 성도의 상계(商界)에서 치열하게 싸울 때도 그랬다.
언제나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던 본능적인 감각이 그에게 늘 눈에 띄는 성과를 주었다.
심지어 금룡상회의 상행은 꼭 다른 집단의 원한을 살 정도로 공격적이지 않던가.
상도의도 없이 돈으로 다 사 버리고, 끼어들고, 방해하고.
그렇게 원한을 사면 보복을 하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상행의 전선(戰線)에선 교묘한 언변으로 싸움을 하기 직전의 미묘한 줄타기를 잘하는 것 또한 지금까지 진목룡이 살아남은 비법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언제나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던 그의 코가 이번에는 썩은 시체가 눈앞에 있는 듯이 퀴퀴한 냄새만 맡고 있었다.
섬서 지부장 노릇을 한 지도 벌써 오 년째.
이런 적이 없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돈 냄새가 나질 않는다.
새벽부터 불려나와 송구한 얼굴로 허리를 굽실거리는 섬서성 지현을 보고 있자니 더더욱 그랬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진목룡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지현이라니.
부윤이나 지부대인보다는 낮은 직위라지만, 그래도 지현이면 자기가 맡은 지역에선 왕이나 다름 없건만.
비단 옷을 입은 미공자의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초라한 미관말직이다.
“아! 지부장이 왔네요.”
황족 도련님처럼 편안하게 앉아 있던 소호가 진목룡을 향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진목룡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지현께서도 안면은 있으시죠? 금룡상회의 섬서 지부 지부장이세요.”
“예, 몇 번 오다가다 본 적이 있습니다.”
섬서 지현의 이름은 신광.
신 지현이라고 하면 진목룡 입장에선 안면이 있는 정도가 아니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은 꼬박꼬박 만나면서, 술자리도 갖고 필요한 재물도 챙겨 주는 끈끈한 관계였다.
‘오다가다 본 적은 있다고? 안면까지 몰수하다니.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구나.’
어찌 됐든 장단을 맞춰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은 정보를 좀 더 알아야 할 상황이었다.
진목룡은 신 지현을 향해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공손한 예를 올렸다.
소호는 빙긋 웃는 얼굴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부터 불러내서 놀라셨죠?”
“아닙니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신지……?”
“지부장을 부른 것은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서예요.”
“예?”
진목룡은 천무공자가 자세를 바꿔 앉는 것만으로도 지현이 안절부절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지금 이 상황의 지배자는 누가 봐도 천무공자다.
그는 옆에 잔뜩 쌓여 있는 서찰과 서책들 중에 하나를 펴서 진목룡의 앞으로 밀었다.
“대동이랑 서산의 탄광들은 다 나라의 사업이지요? 인부들에 대한 임금도 나랏돈으로 주고 운영에 드는 돈도 나랏돈으로 쓰고, 심지어 가공도 나랏돈으로 하네요?”
“예, 탄광은 나라의 것이니까요.”
“금룡상회는 나라에서 특별히 ‘선정’된 덕분에 석탄을 운송해서 파는 부분을 맡아서 하는 거잖아요? 제 말이 맞죠?”
“예, 그렇습니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철, 석탄, 소금.
나라 운영에 중요한 품목들은 모두가 똑같다. 특별히 허가받은 상인들만 운송해서 팔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기에,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였다.
모든 일을 규정대로만 해서 돌아가는 사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막말로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업장이 몇이나 되겠느냔 말이다.
진목룡은 새벽녘 날씨가 서늘함에도 불구하고 뒷덜미가 흥건히 젖어 들었다.
“이번에는 지현께 물을게요. 그럼 실질적인 탄광 관리는 누가 하고 있는 거죠? 지현께서 하나요?”
“크흠! 그게 원래는 제가 직접 하는 것이 맞으나, 지현의 업무가 다망한지라 금룡상회를 통해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법규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지침은 그렇습니다만, 통상적인 관례로 대리인이 운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금룡상회는 전국에 이름을 떨친 큰 상회인 데다가 제가 책임지고 철저히 관리를 하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으음, 그래요?”
소호는 신음을 흘리며 서책 하나를 들어 몇 장을 넘겼다.
“제가 자료들을 쭉 살펴보니까 꽤 재미있었어요. 여기 보면 장부에 하나같이 인부들 월봉을 은자 다섯 냥씩 줬다고 쓰여 있어요. 은자 다섯 냥이라……. 적지 않은 금액이네요. 이 정도면 광부도 할 만해요. 그렇죠?”
보통 농민 가정의 한 달 생활비가 은자 한 냥이니, 은자 다섯 냥이면 상당히 고소득에 속한다.
땅굴을 파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고된 일이지만, 농민의 다섯 배를 번다면 할 만한 일이지 않겠는가.
“허헛, 그렇습니다. 사실 예전 같으면 노역을 할 인부들을 잡아 와서 시켰을 텐데, 이제는 법이 바뀌어서 임금을 주게 되었지요. 제가 워낙 인심 좋게 월봉을 주다 보니 제가 만나 본 인부들은 모두 살림살이가 넉넉하다고 자랑들을 하더군요. 먹고 사는 게 윤택해졌다고 제가 갈 때마다 늘 칭송을 해서 뿌듯합니다.”
신 지현이 슬쩍 자화자찬을 했으나, 소호가 탁! 소리가 나게 장부를 덮어 버리자 움찔하며 물러났다.
소호의 시선은 진목룡만을 바라본다.
사냥감을 노려보는 포식자처럼.
분명히 해사하게 웃는 얼굴인데,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의 기세처럼 섬뜩한 기세가 진목룡을 짓눌렀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제가 어제 인부들한테 조사해 보니 월봉으로 은자 두 냥씩 받고 있더라고요.”
진목룡의 목덜미를 적신 땀방울이 몸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현께서는 장부를 직접 안 보시나 봐요. 전혀 모르셨어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지현은 깜짝 놀란 얼굴로 장부를 받아 들고 정신없이 살폈다.
장부의 숫자들을 살필수록 신 지현의 안색이 점점 차갑게 굳어졌다.
“이, 이건,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있나!”
그는 화를 주체할 수 없는지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진목룡은 지현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체면 불구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모르긴 뭘 몰라! 자기 입으로 생색은 다 내놓고! 임금 지불에서 남는 건 다 자기가 주는 거라면서?’
임금을 부풀려서 지급하는 건 자기가 주는 돈이나 마찬가지이니 잘 알고 있으라고 몇 번이나 들었던가.
그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돈을 주기적으로 건네줬느냔 말이다.
‘그 많은 돈을 주고도 독박을 쓰라고? 그렇게는 안 되지.’
진목룡이 순하게 당하기만 했으면 지부 장자리까지 왔겠는가?
그는 헛기침을 하면서 소호에게 공손히 물었다.
“련주님. 왜 이러시는 겁니까? 관이 무림의 일에 상관하지 않듯, 무림인이 상관할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 상관이 없어요?”
소호는 품에서 은룡패를 꺼내 진목룡에게 보여 주었다.
관인이 아닌 진목룡은 그게 뭔지 알 수 없었으나, 독극물이라도 본 것처럼 지현이 싫어하는 모습을 보니 범상치 않은 신분 패라는 것은 알아챘다.
“저는 사례감 태감의 어사패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 나라의 사업들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어요.”
“……련주께서 어사의 신분이시라고요?”
“사례감 태감과의 약속이라고만 해 두죠.”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지현의 태도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 무슨. 황실, 그것도 왕진 태감과 연관이 있으면서 천무련을 만들겠다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지현이 쩔쩔매는 것도 당연하다. 황실의 실세와 직접 연이 닿아 있는 자에게 트집이 잡혔으니 살아도 살아 있는 기분이 아닐 것이다.
“공자!”
지현은 깊이 읍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이게 다 저의 불찰입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가 없도록 할 것입니다!”
“실수요? 글쎄요. 이미 나랏돈을 착복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죠. ”
“착복이라니. 무슨 말씀을! 아닐 것입니다. 이보게, 진 지부장. 장부에 안 맞는 돈은 다 잘 갖고 있지? 나중에 전달하기 위해 챙겨 둔 것이지?”
“예?”
“잘 챙겨 놨다가 어차피 인부들한테 줄 것 아닌가? 그런 거지?”
진목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자다가 날벼락도 유분수다.
자꾸 천무공자가 못 보는 각도에서 눈을 찡긋거리는 모습이 꼴사납기 그지없었다.
“모자란 금액들 말이야. 빼돌린 게 아니고, 나중에 일 끝나면 주려고 갖고 있었던 것 아니냐 이 말일세!”
“아아.”
진목룡은 그제야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아챘다.
“인부들에게 덜 지급된 돈은 어차피 인부들에게 다시 돌려줄 거라는 말씀이시지요?”
“그래! 바로 그 이야기일세! 이건 그저 실수지. 나쁜 뜻은 없었던 것 아닌가? 그렇지?”
“허헛.”
진목룡은 웃음을 터뜨린 뒤 소호를 향해 고개를 젓고 허리를 굽혔다.
“련주님. 저는 그 돈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뭣!”
“지현, 잠시만요. 그래요? 금룡상회가 그 돈을 갖고 있지 않아요?”
진목룡은 지현을 힐끗 쳐다본 뒤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 이미 그 돈은 모두 지현께 전달했습니다. 나랏돈이 남았으니 다시 나라의 관리에게 돌려주는 게 도리에 맞지 않겠습니까?”
신 지현이 눈을 부릅뜬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차피 뇌물로 상부상조하던 사이였을 뿐이었다.
진목룡이 모든 걸 뒤집어쓰고 조용히 사라져 줄 이유도, 의리도 없다.
“진목룡! 그게 무슨 소리야!”
“금룡상회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희는 이미 그 돈을 모두 신 지현에게 전달했으니, 저희의 의무는 다한 것이지요. 혹시 의심스러우시다면 상회에 따로 적고 있는 장부가 있으니 언제든 보여 드리겠습니다.”
“야! 네가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쳐!”
탕!
소호는 손바닥으로 다탁을 두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럭 소리치려던 신 지현이 다급하게 입을 다문다.
소호는 뒷짐을 진 채 천천히 진목룡에게 다가가 묵묵히 그를 응시했다.
꿀꺽.
진목룡은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상황은 알았다.
천무공자는 자신의 인맥과 지위를 사용해 금룡상회의 약점을 잡았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
오랜 세월 공들인 지현과의 관계를 끊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밀리면 이번 일은 모두 물거품이 될 터였다.
“어찌 됐건 인부들의 돈은 착복한 게 맞는군요. 실행은 금룡상회가 했고, 그 대가는 지현이 받았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이 말에는 두 사람 모두 반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게 말입니다…….”
서둘러 변명을 하려는 지현에게 손을 들어 올린 소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진목룡만을 바라봤다.
“돈은 채워 놓으세요. 내일까지 인부들에게 장부에 적힌 대로 그간 밀린 모든 월봉을 지급하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그게 불가능하다고 하면 사실대로 황실에 보고할 수밖에요.”
진목룡은 항의하려 했으나, 소호의 웃는 얼굴을 보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늪이다.
여기서 반항하거나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면 더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목에 박힐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지현.”
“예, 예.”
“문제가 일어난 상회랑 계속 일을 같이할 수는 없죠?”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챈 진목룡과 신광 지현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