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435화 (564/686)

18권 7화

제37장 비무첩래(比武牒來) (7)

퍽!

“크흡!”

엄지발가락만으로 걷어찼는지 옆구리가 마치 목봉에 찔린 것처럼 찌르르 울렸다.

분명히 발로 맞았는데 점혈이라도 당한 느낌이다.

조서인은 아픔을 꾹 참으면서 바닥에 꽂힌 창대를 오른발로 걷어찼다.

터엉!

바닥의 흙을 폭발시키면서 솟구친 창이 허공에 반원을 그렸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바람이 갈라졌다.

어느새 광부는 옆으로 몸을 굴려 일어섰다.

거리도 가까워졌다.

불과 한 걸음 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번개처럼 다가와 도끼날을 내리꽂는다.

쩌엉!

조서인은 내리친 도끼를 창대로 막아 냈다.

까드득! 창대와 도끼날이 맞물리며 거친 소리가 났다.

창은 길고 도끼는 짧은 만큼 수급 속도에서는 비교가 안 된다.

광부는 손이 빠른 사내였다.

쩡! 쩌정! 쩡!

장작을 패듯 도끼를 마구 내리치는데, 그 기세가 사나워서 반격을 할 틈을 찾기가 어려웠다.

무공 초식 특유의 깊은 맛은 없으나, 지극히 실전적이라 방심하면 곧바로 저승행이다.

조서인은 뒤로 물러나며 창대로 칼날을 비스듬히 쳐 냈다.

창 한가운데를 양손으로 붙잡고 좌우 끝으로 도끼를 쳐 냈다.

쩡!

도끼 일격을 막자마자 몸을 돌렸다.

오른발을 옆으로 쭉 빼면서 오른손을 허리에 붙인다.

발끝에서 시작된 전사력이 창끝까지 전달되며 수평 일격을 날렸다.

후웅―!

사람의 목 높이.

군더더기 없는 수평 일격이 세상을 둘로 가르는 듯했다.

광부는 자신을 몰아붙이는 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가까운 범위로 펄쩍 뛰어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손도끼를 역수로 거꾸로 잡고 그걸로 창대를 막았다.

까앙!

‘어어?’

생소한 방식이다.

도끼를 역수로 잡으니 마치 갈고리처럼 창대를 갉으면서 쭉―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가까워진 순간 광부는 왼손을 꼿꼿이 세워 손날로 도끼질을 하듯 조서인의 어깨를 내려쳤다.

터엉!

창대가 떨린다.

맞았으면 오른쪽 쇄골 뼈가 부러질 뻔했다.

소호는 왼손을 떼면서 창대를 발로 걷어차 광부를 밀어냈다.

퍽! 소리와 함께 창대에 가슴을 얻어맞은 광부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거 생각보다 더.’

만만치 않다.

광부의 싸움 실력은 도박장 문지기라고 폄하하기엔 지나치게 집요하고 뛰어난 구석이 있다.

조서인은 자세를 바로 잡고 오른발을 뒤로 뺐다.

일연적룡무.

무공을 사용해야 할 때였다.

쿵!

왼발을 강하게 내딛자 찌릿찌릿한 반탄력이 온몸을 관통했다.

일연적룡무 제일식.

공간을 접어 버리는 듯한 찌르기가 광부의 어깨를 직격했다.

쒜에에엑―!

퉁!

‘퉁?’

광부가 몸을 비스듬히 뒤로 뺐지만, 그보다는 일연적룡무가 빨랐다.

어깨를 분명히 찔렀는데 단단한 무언가가 튕겨 낸 듯 창이 옆으로 휘청 흔들렸다.

‘갑옷!’

놀랍게도 광부는 어깨에 철판을 덧댄 둥그런 가죽 비구를 차고 있었다. 찢겨 나간 옷 사이로 갑주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싸움을 예상하고 있었구나! 갑옷을 입고 미리 준비했어!’

발로 걷어차인 것보다 더한 충격이다.

아까 전에 보인 긴장하고 흥분하던 표정들도 다 연기였단 말인가.

광부는 일연적룡무를 갑옷으로 받아 흘려낸 순간, 순식간에 가까이 파고들어 도끼를 날려왔다.

파라락―.

일연적룡무는 정중동의 무학이다.

중심을 지키면서 장중하게 창을 뻗으며, 후발제선의 묘리로 시작은 느리지만 오히려 빠른 것들을 제압하는 움직임을 중점으로 한다.

조서인은 이미 회수하기 늦은 창을 억지로 회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엇나간 방향으로 한 걸음을 크게 내디디며 거리를 벌리고, 좌측으로 돌아서며 왼발 진각.

왼쪽 팔꿈치를 수평으로 내뻗으며 외문정주를 뒤로 뻗어냈다.

빠악!

“큽.”

“윽.”

안으로 달려들던 속도까지 더해져서 가슴을 얻어맞은 광부는 잠시 동안 숨을 쉬지 못할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다만 서로 간의 충격이 큰 것은 똑같다.

광부가 내리찍은 도끼는 비록 도끼날은 빗나갔지만, 도끼 손잡이가 외문정주를 뻗었던 조서인의 팔목을 후려쳤다.

일순간 왼손에서 감각이 사라질 정도의 타격이다.

주춤 물러나 맞은 부위를 매만지는 사이, 광부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 숨을 헐떡였다.

“대단하네요.”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다.

변칙.

형식으로부터의 자유로움.

그러면서도 극히 실전적인, 시시각각 무공의 틈을 찔러 오는 위협적인 도끼날.

‘대단하긴 한데, 숙부는 이걸 배우라고 한 걸까?’

왠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목을, 후우, 노리지 않는군.”

“……당연하죠.”

“나를, 후우, 죽이지 않고, 후우, 이길 셈이오?”

광부는 모욕당한 듯한 기색이었다. 그는 아직 호흡이 정돈되지 않았음에도 달려들었다.

기책은 기책일 뿐.

실질적인 실력으로 싸우게 되니 그 후로는 일방적인 싸움이 전개되었다.

달려드는 광부와, 그보다 일 보 반 떨어진 곳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창대로 후려치는 조서인의 싸움이다.

퍼억!

광부의 몸이 점차 느려졌다.

퍽!

빠각!

광부가 어깨에 차고 있던 비구 하나가 반쯤 부서져서 옆으로 날아갔다.

“끄윽.”

계속해서 창대에 허벅지와 옆구리를 얻어맞은 광부가 마침내 다리를 후들후들 떨다가 한쪽 무릎을 꿇고 반쯤 주저앉았다.

조서인은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집요하다.

창끝으로 겨누며 다가가는데, 광부의 두 눈은 여전히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러다 아픈 것처럼 몸을 구부정하게 숙이더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촤르륵―.

“……!”

광부는 품속에서 꺼낸 한 팔 길이의 쇠사슬을 번개같이 조서인의 창대에 걸었다.

텅―.

피하려 했으나 늦었다.

쇠사슬이 칭칭 감겨 벗어날 수가 없었다.

후우웅―.

급격히 다가온 광부가 거세게 도끼를 휘두른다.

팟!

퍼억!

조서인은 광부의 손목을 장저로 올려치고, 왼발을 쭉 올려 차는 연환퇴(連環腿) 일타로 광부의 상박을 걷어찼다.

우두둑―.

“흐읍!”

고통스러울 것이다.

제대로 퇴법이 들어가서 광부의 오른팔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런데도 광부는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광전사처럼 도끼를 미친 듯이 내리찍었다.

‘뭐 이런 사람이?’

쩌엉! 쩌엉! 쩌정!

조서인은 창을 휘감은 쇠사슬을 풀어 보려 했으나 단단히 묶여서 풀리지 않았다.

창대로 도끼를 막으며 물러서다가, 틈을 봐서 연환퇴로 광부의 명치를 올려 찼다.

뻐억!

“크으아아아!”

광부는 명치가 걷어차였음에도 도끼를 놓지 않고 괴성을 질러 댔다. 들소처럼 밀어붙이는 기세가 사납다.

이미 쇠사슬로 창대가 연결된 상황.

조서인은 힘의 방향을 비틀기 위해 몸을 돌렸는데, 그 순간 광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몸을 낮춰 조서인의 발을 붙잡고 아래에서 위로 뒤집어 버렸다.

콰직!

졸지에 옆 객잔의 일 층 벽을 뚫고 들어간 두 사람이 한데 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객잔 일 층에서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서 흩어진다.

부서진 탁자.

박살 난 집기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바닥을 한 바퀴 굴러 일어난 조서인이 가장 먼저 본 것은 광부가 집어 던진 목제 의자였다.

곧바로 연환퇴로 걷어차니 천장에 부딪혀 머리 위에서 박살 난다.

후드득 떨어지는 파편 사이로 광부가 갑자기 도끼로 바닥을 내리찍는 모습이 보였다.

콰직!

왼발로 딛고 있던 목제 바닥이 균형을 잃고 움푹 꺼져 버렸다.

‘지형지물! 요령! 집요함!’

본능적으로 한 발을 떼고 금계독립의 자세를 취했다.

광부는 멀쩡한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아직 김이 펄펄 나는 찻주전자를 집어 던졌다.

“이런?”

이렇게까지 하다니.

오른손으로는 창을 잡고 있는 탓에 조서인은 왼손만으로 다급하게 찻주전자를 받아 냈다.

태극권의 묘리.

손바닥을 뒤집어 충격을 최대한 흡수해서 옆 탁자에 대충 던지듯 올려놓으니 그사이 가까이 다가온 광부가 도끼를 내리친다.

까앙!

재빨리 창을 비스듬히 눕혀 막아 냈다.

쇠사슬에 도끼가 걸리게 만든 뒤, 조서인은 양손을 회전시켜 도끼까지 쇠사슬에 감아 버렸다.

“챠핫!”

그 상태로 발로 광부를 걷어찬 뒤, 도끼째로 창을 바닥에 내리쳤다.

쩌엉!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쇠사슬에 금이 간다.

조서인은 창을 세 번이나 바닥에 내리쳤다.

도끼날에 얽힌 쇠사슬에서 틈이 생긴다. 재빨리 비스듬히 돌려서 쇠사슬에서 창을 빼냈다.

자유로워진 창.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은 객잔의 일 층 안, 실내에 들어와 있다.

공간이 좁아 함부로 창을 움직일 수 없는 사이, 광부가 자세를 낮추고 달려들어 바닥에 놓인 쇠사슬을 집어 들었다.

오른손엔 도끼를, 왼손엔 쇠사슬을 들고 옆에 있던 탁자를 걷어찼다.

드드드드―.

텅!

위협적으로 미끄러져 날아오는 탁자를 조서인이 발로 걷어차서 막는 순간, 광부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바닥을 박차고 탁자를 밟고 뛰어오르는 모습이 비조와 같다.

촤르륵―.

조서인이 몸을 피하려는 순간, 광부가 좌수에 들고 있던 쇠사슬이 이번엔 조서인의 왼팔을 휘감았다.

까드득―.

쇠사슬이 맞물린다.

급격히 가까워지는 거리.

조서인은 호흡을 멈추고 고개를 최대한 아래로 숙였다.

콰직―!

조서인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간 도끼가 애꿎은 탁자를 쪼갰다.

광부의 얼굴에 낭패가 떠오른다.

그에게도 필사의 한 수였던 모양.

조서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스듬히 창을 찔렀다.

쒜에에엑―!

노리는 곳은 광부의 오른쪽 옆구리.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팡― 하고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찌른다.

일순간 광부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왜 기회를 잡았음에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찔렀는가.

조서인은 그에 답하듯 왼발을 앞으로 쭉 뻗어 내디디며 중심을 이동시켰다.

앞으로 나아가는 몸.

무게를 가득 실어 들고 있던 창의 손잡이를 허공으로 밀어 올렸다.

“……!”

광부의 오른쪽 무릎 바깥쪽과 오른쪽 팔꿈치 안쪽에 걸린 창이 지렛대처럼 광부를 넘겨 버렸다.

휘리리릭―.

가볍지만 강렬한 한 수.

넘어지는 광부의 몸을 창대로 짓누르면서, 날카로운 창날을 광부의 오금에 갖다 댔다.

콰앙!

바닥에 처박힌 광부가 지금의 상황을 인지하기 힘들다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후우.”

조서인은 광부를 강하게 짓누르면서 말했다.

“창날로 그었으면 힘줄이 잘렸을 거예요.”

조서인은 자신이 배운 그대로.

광부에게 경고하며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승자는 조서인이다.

패자는 광부.

그 사실을 인지한 광부가 허탈한 얼굴로 마침내 몸에서 힘을 뺐다.

싸움은 끝났다.

“휴우.”

조서인은 창에서 힘을 빼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보니 상처투성이.

두 사람의 의복이 모두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광부는 바닥에 쓰러진 채 멍하니 천장을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실패했군.”

“대단했습니다. 존경을 표합니다.”

온갖 것들을 동원해서 싸우는 그 처절함.

치열한 의지.

모든 것이 배울 점이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당신은 지금부터 자유예요.”

“…….!”

광부가 깜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사실은 후 대인에게 이미 확답을 받았어요. 제가 내기를 해서 백 냥을 더 땄고, 그걸로 몸값을 냈거든요.”

한 판만 더 하자며 떠나려는 조서인의 바짓가랑이를 잡던 후금성의 대가였다.

게다가 조서인의 목표는 매우 높다.

만약 이번 싸움으로 얻은 경험이 앞으로 목숨을 한 번이라도 구해 준다면?

그 대가는 감히 값으로 환산할 수 없도록 귀중하다.

조서인은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사과했다.

“본의 아니게 사실을 숨겨서 죄송합니다.”

광부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굴렸다.

그는 한참을 더듬거리다 되물었다.

“내게, 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 분입니다. 감사의 값은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얻은 광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서인은 멍한 광부의 얼굴에서 온갖 회한을 느꼈다.

“참고로, 후 대인이 그랬어요. 만약 자유가 되고도 도박장에 남겠다면 지금부터는 정식으로 월봉도 꼬박꼬박 주겠다고 하네요.”

“…….!”

“그럼, 많이 배웠습니다.”

정중한 포권으로 마지막 예를 취한 뒤 위층으로 올라갔다.

얻어맞은 옆구리와 팔목이 이제야 아파 온다.

긴장이 풀리자 온갖 고통이 몰려왔다.

“잘 싸웠다.”

원래 앉았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던 추룡이 술잔을 든 채로 조서인을 반겼다.

조서인은 따라 주는 술잔을 마셨다.

알딸딸한 게 아니라 달콤하게 느껴진다.

“많이 배웠냐?”

“네.”

조서인은 얼얼한 팔을 털면서 자신 있게 웃었다.

추룡은 그 모습을 보며 씩 웃음 지었다.

“눈빛이 훨씬 나아졌네.”

“그렇습니까?”

“네 스승님. 내가 큰형님과 다닐 때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저 하늘 위의 무신이라도 전쟁터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기습을 받아서 몽고 놈들이랑 싸웠을 때, 네 스승님은 돼지 뒷다리 뼈로 적이랑 싸운 적도 있어.”

“예에?”

“그 치열함. 처절함을 잊지 마라. 체면 따윈 싸움에서 살아남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추룡의 말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다.

툭툭.

칠점법이 해혈되며 온몸에 진기가 돌아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앉아 운기조식을 하면 몸의 상처들은 빠르게 회복할 것이다.

“수고했다. 마지막에 쓴 기술도 좋았고. 서역 검술이 쓸 만하지?”

“예.”

“그런데 조카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겠어.”

추룡은 일부러 장난스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 층 부서진 거, 저거 물어주려면 다 얼마냐. 앞으로를 생각하면 네가 번 돈보다 더 많이 들겠어.”

“도박장 가서 더 벌어 올까요?”

“팔다리 부러져 볼래?”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객잔의 이 층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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