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444화 (573/686)

18권 16화

제37장 비무첩래(比武牒來) (16)

마가촌 출신의 변변찮은 사내, 마광의 용기가 큰 변화를 일으켰다.

평소엔 단주의 눈도 못 마주치던 놈이 갑자기 단주에게 제정신이냐고 따지는 상황이라니. 이 정도면 마광의 말을 믿어 볼 만하지 않겠는가.

철풍단 단원들은 삼삼오오 수군거리며 혼란스러워했다.

“뭐야? 진짜 같은데?”

“그래서 단주가 얻은 여인이 미인이야? 추녀야?”

“마광 말대로라면 단주가 눈이 너무 높은 걸 수도 있지.”

“누구 말이 맞는 거야?”

수군거림은 오래가지 못했다.

철풍쌍도 막지관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침내 자신의 쌍도를 뽑아 들자 모두가 언제 떠들었냐는 듯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드디어 반골들이 전부 속내를 드러내는구나. 오냐. 해보자. 어차피 오늘은 축제의 날이다. 내 오늘 비정하게 칼춤을 추고 철풍단의 기풍을 다시 세우리라.”

호피를 몸에 두르고 양손에 묵직한 쌍도를 든 막지관은 한 마리의 호랑이 같았다.

그가 손짓을 하자, 거대한 땔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가 곧바로 불씨를 던져 넣었다.

고오오―――.

불길과 함께 분위기도 끓어올랐다.

산처럼 쌓여 있던 땔감들은 기름이라도 뿌려 두었는지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집채만 한 불꽃이 하늘에 닿을 듯 강렬했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찌른다. 분지 전체가 불꽃의 뜨거움인지 전투를 앞둔 흥분인지 모를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둥― 두둥― 둥― 두둥―.

어디선가 흘러나온 북소리가 천둥처럼 모두의 몸을 때렸다.

가만히 듣고 있자면 호흡이 빨라지는 박자였다. 낮고 울림이 큰 소리가 물결치듯 와닿는다. 모두의 심장이 괜스레 쿵쾅거렸다. 철풍단원이 뜨거운 숨을 헐떡였다.

헉. 헉. 후우. 후우.

뜨거운 숨소리가 악곡처럼 한곳으로 모이는 곳에 막지관이 있다.

스릉―.

막지관은 그 모든 이들의 지휘자였다. 그가 마침내 칼끝으로 비령을 가리는 순간, 전쟁의 깃발이 올라간다.

“나담(наадам). 축제를 시작한다. 죽을 각오로 덤벼라!”

우오오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든 철풍단원이 거대한 함성을 터뜨렸다.

이 축제의 결과가 앞으로 일 년의 서열을 좌우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열광했고, 하나같이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시작은 막지관이었다.

“비령!”

그가 단주의 체면도 벗어던진 채 먼저 비령에게 달려들었다.

황급히 칼을 뽑아 든 비령이 막지관과 무기를 부딪치자 모두의 함성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놀랍다.”

그 몸서리치게 뜨거운 현장의 한가운데, 이들과 동떨어진 사람이 한 명 있으니, 바로 조서인이다.

조서인은 어찌 보면 광기마저 느껴지는 축제의 현장을 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막지관의 무력.

모두가 모두를 향해 투쟁하는 이 치열한 ‘축제.’

그 모든 것들이 놀랍지만, 사실 가장 놀라운 건 따로 있다.

‘유백담. 대단하구나. 당신이 노린 게 이런 거였어요?’

유백담이 뭐라고 했던가.

그는 자신은 그저 ‘살짝 등을 밀었을 뿐’이라고 말했었다.

지금 이 순간이 되자 그 말이 더욱 와닿는다.

서왕모의 복숭아를 얻은 늙고 오만한 여인이든, 초패왕의 호심경을 얻은 마가촌의 야심 가득한 사내든.

그들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 그저 그들의 자신감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이 사태를 일으켰다.

결과적으로는 유백담이 살짝 등을 민 사람들이 철풍단에 존재하고 있던 내부 균열을 크게 찢어 버린 셈이지 않은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예측한 거야?’

조서인도 무림 강호에 간계가 판을 치는 것은 잘 안다. 무산학관에서도 철저히 배웠었다. 함정을 파고, 반간계를 일으키고, 서로를 의심하게 하는 그런 계책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 무림 강호 아니던가.

그런데도 놀랍다.

유백담의 계책은 뭔가 특별하다.

사람의 악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얼핏 선의로 보이는 칭찬과 응원으로 사건을 일으킨다는 점이 그러하다.

‘혹시 유백담이 내게도 그 계책을 쓴 걸까? 오묘한 분위기로 도와줄 수밖에 없게 만들어서? 그걸 이용해 축제에 참가시키고?’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져 간다.

오롯이 혼자 무림 강호를 걷고 있다고 생각한 게 방금 전인데, 머릿속이 급격히 복잡해졌다.

채챙―.

칼 소리가 나고 함성과 기합 소리가 겹쳤다.

막지관과 비령의 싸움이 격화될수록 철풍단 단원들의 흥분도 높아져만 갔다.

싸움은 순식간에 절정으로 치달았다.

비령의 검술은 은밀하고 날카로웠지만,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패기가 넘치는 막지관의 쌍도는 그 모든 날카로움을 정면에서 박살 냈다.

내리치는 일격.

폭풍처럼 날아드는 도격에 비령은 뒤로 퍽퍽 밀려났다.

“크읍!”

비령은 격검을 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내상을 입어 안색이 창백해졌다. 쌍도의 움직임이 칼바람처럼 사납다. 그는 서둘러 뒤로 물러나며 손을 내저었다.

“단주, 더 강해졌구려.”

서열 이 위의 철풍비객 비령이 제대로 된 상처도 못 입히고 물러나다니.

철풍단에 오래 있던 고참 단원들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다.

“비령, 겨우 이 정도였더냐?”

“단주, 놀라 보게 강해졌소. 우리 몰래 영약이라도 먹은 것이오?”

“영약 같은 소리. 네놈 말대로 유목민 출신이라 여색을 밝힌 덕분인가 보군.”

막지관은 덩치답지 않은 뒤끝을 보이며 사납게 달려들었다.

비령이 비장의 한 수처럼 날카로운 찌르기를 선보였으나, 막지관이 쌍도를 교차하며 비스듬히 비틀자 비령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나갔다.

“흡?”

비령의 경악도 잠시.

그가 항복의 의사를 표하려는 찰나, 막지관은 발끝으로 비령의 명문혈을 올려 찼다.

“카학!”

비령의 몸이 직각으로 꺾였다. 그는 꺽꺽거리며 숨쉬기를 힘들어했다. 막지관은 강맹한 각법으로 그런 비령을 멀리 걷어차 버렸다.

퍽! 소리와 함께 뼈가 부러지는 듯한 파골음도 들렸다.

섬뜩한 광경이었지만 지켜보던 철풍단 단원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다음은 누구냐!”

서열이위인 비령이 처참하게 당했으니, 다음이라면 서열 삼 위인 비정혈검 맹자승뿐이다.

그런데 바로 전날 호기롭게 소리치던 것과는 달리 맹자승은 인상을 찌푸린 채 망설이고 있었다.

막지관의 무공이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비령을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고 무참히 쓰러뜨리다니.

적어도 지금의 맹자승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흐흐.”

야생동물은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상대가 겁을 먹었는지 귀신같이 알아채지 않던가.

막지관 또한 그랬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포효하듯 외쳤다.

“누구든 나서라! 철풍단주의 자리를 노릴 놈은 아무도 없느냐! 하나같이 배포도 없는 새가슴들만 있나 보구나!”

맹자승은 벌레 씹은 얼굴로 침묵했다.

나설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하는 그에게 뒤에 서 있던 철풍단 단원들이 실망을 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다.

저벅―.

침묵을 뚫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자가 있다.

막지관과 맹자승만을 바라보던 모두의 시선이 급격히 돌아갔다.

사람들이 숨도 크게 못 쉬는 이 결정적인 순간에 누가 감히 나서서 이목을 끄는가?

저 강인한 막지관을 향해 누가 덤비는가?

막지관의 뜨거운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은빛 창을 든 외부인.

조서인은 조금 긴장하여 설핏 굳은 얼굴로 막지관을 향해 다가갔다.

“외부인도 도전해도 됩니까?”

막지관은 돼지 오줌보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너무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숫제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비령을 그토록 무참히 쓰러뜨렸는데 너는 느낀 게 없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너는 뭐냐?”

조서인은 한 손에 창을 든 채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저는 조서인이라고 합니다. 창을 쓰는 무인으로서, 철풍단 단주에게 한 수 배우고자 합니다.”

조서인의 깍듯한 모습에선 누가 봐도 명가의 후예다운 기품이 흐르고 있었다.

화려한 복장으로 과시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드러나는 품격이었다.

들끓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묘하게 가라앉았다.

막지관은 가만히 조서인을 응시하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제정신이 아닌 놈이구나. 내 무공을 보기 위해 철풍단 축제에 참가했단 말이냐?”

“원래는 저 사람을 쓰러뜨리러 왔습니다만.”

조서인은 아직도 쓰러져 있는 비령을 가리켰다.

“어차피 축제에 참가한 이상 철풍단의 무공을 좀 견식해 보려 합니다.”

이제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것은 끝이다.

조서인은 머릿속에서 유백담을 지워 버렸다. 그의 처지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조서인의 결정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일평생 무공을 갈구하는 무도인으로서 철풍단의 무공을 배우고, 그다음엔 유백담의 무공도 견식할 것이다.

그게 조서인이 원하는 방식이니 말이다.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로군.”

막지관은 껄껄 웃었다.

“어린놈아. 철풍단의 규칙은 알고 있느냐? 무공을 견식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네놈은 축제가 끝나고 철풍단의 일원이 될 준비는 되어 있느냐?”

“아뇨.”

“……뭐?”

“저는 당신을 쓰러뜨리고 떠날 것입니다. 철풍단의 단원은 되지 않습니다.”

조서인은 내공을 끌어 올렸다.

건곤조화신공.

검선일맥의 유장한 내공이 단전에서부터 큰 흐름을 만들어 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도도한 진기가 융통무애하게 감싼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전능감은 초인의 그것이다.

화아아악―.

허물을 벗어 던지듯 강맹한 기파가 뿜어진다.

붉은색 흙먼지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바깥쪽으로 밀려난다.

흔들렸던 마음이 단단해진다.

자신감이 차오르며 크나큰 호연지기가 조서인을 채웠다.

“철풍단의 규칙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덤빈다면, 모두를 쓰러뜨리고 떠날 것입니다.”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하는 말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용의 자신감에 하북의 늙은 호랑이, 철풍쌍도 막지관은 그제야 조서인을 다시 보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놈, 보통 놈이 아니로구나.”

막지관은 비령을 대할 때보다 더 크게 경계하며 쌍도를 겨누었다.

조서인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차분하게 창끝을 막지관에게로 향했다.

은자창의 움직임이 호수처럼 고요했다. 하체를 낮추고 허리는 꼿꼿이 세운다.

좌수는 앞으로, 우수는 허리에 붙인다.

거창 자세.

전장에서 붉은 악귀라 불리던 장기린의 일연적룡무가 당장이라도 앞으로 뛰쳐나갈 듯 조용히 몸을 웅크렸다.

“갑니다.”

번쩍.

일연적룡무 제일식.

공간을 접어 버린 듯한 극쾌의 첨격이 막지관의 가슴으로 쏘아졌다.

쩌어엉!

막지관이 쌍도를 십자로 교차해 막는 순간, 두 개의 칼날이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드드드―.

막지관의 거구가 밀려나며 바닥에 길게 족적을 새겼다.

그는 경악할 틈도 없었다.

일격에 불과하지만, 거기엔 천하를 오시했던 무쌍귀의 패력과 검선의 심득이 합쳐져 있다.

감히 맞받은 게 기적일 따름이다.

그는 전신을 찌릿찌릿하게 만드는 충격을 온몸으로 느끼며 힘의 여력을 감당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쿵.

조서인은 그 순간 일 보를 더 내디뎠다.

창끝에서 생겨난 반탄력은 양손으로 창을 회전시키면서 해소한다.

크게 내딛듯이 우보.

몸을 좌로 회전하면서 다시 좌보.

쿠웅!

강하게 내딛은 진각에서 생겨난 발경이 우측 팔꿈치와 손목에 나선력을 만든다.

쒜에에엑――!

마치 투창과도 같은 첨격이 다시 한 번 공간을 접었다.

흐름을 잃지 않고 연속으로 전개하는 일연적룡무 제일식이다.

은자창 창끝이 막지관이 십자로 교차한 쌍도의 칼날을 때리고.

쩌어엉!

두 개의 칼날에 도자기처럼 금이 가며 구멍이 뻥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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