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권 17화
제37장 비무첩래(比武牒來) (17)
“큭!”
막지관은 몸을 떨었다. 보통 사람의 배는 두꺼운 전완근이 당장이라도 터져 버릴 것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반질거리던 대머리 위로 핏줄이 솟아올랐다.
쌍도의 칼날을 뚫어 버린 창끝이 그의 가슴 한 치 앞에서 파르르 떨며 더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힘이 세네. 그렇다면.’
쿵.
왼발로 내딛는 진각과 함께.
지이잉―!
조서인의 은자창이 출렁― 한 마리의 용처럼 꿈틀거렸다.
쩌어엉!
“큽!”
막지관의 신음이 깊어졌다.
그는 은자창의 창대가 물결치는 순간 그나마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던 쌍도를 당장이라도 놓칠 것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힘의 균형은 깨졌다.
조서인이 밀어붙이자 막지관의 등이 구부정하게 굽기 시작했다.
“이……놈……!”
막지관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눈을 빛냈다.
마치 넘어지는 것처럼 상체를 옆으로 비스듬히 홱 비튼다. 그 상태로 양손을 동시에 왼쪽으로 쭉 내미니 쌍도의 손잡이가 한쪽으로 쏠렸다.
까드드득―!
자세가 바뀌면 힘도 바뀌는 법.
팡!
갑자기 붙잡고 있던 힘이 쑥 사라지는 바람에 조서인의 창이 허공을 푹 찌른 뒤 다시 회수되었다.
막지관은 마적질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이다.
그는 상대가 무기를 회수하는 찰나를 노릴 줄 알았다.
그는 네발로 뛰는 짐승처럼,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 조서인에게 달려들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달려들어 구멍 난 쌍도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철풍쌍도술(鐵風雙刀術).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맹렬한 초식들이 연환을 거듭하며 조서인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피이잉―.
따다다당!
조서인은 굳건하게 버티면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공격들을 차분하고 명확하게 쳐 냈다.
뒤로 물러나서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막지관은 끈질겼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들소처럼 달려드는 모습에서, 장병기를 상대로 절대로 거리를 벌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계속 달라붙겠다?’
막지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창을 쓰는 조서인에게 이런 일은 늘 있는 일이었다.
해법 또한 정해져 있다.
조서인은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파지법을 바꿔 창을 길게 잡았다.
‘횡타!’
쿠궁!
쩌어엉!
진각을 밟으며 창봉을 크게 휘둘러 떨쳐낸다.
퍼억!
“흡!”
그런데 막지관은 창봉을 맨몸으로 받아 냈다.
‘뭐?’
조서인이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을 정도였다.
입고 있던 호피 가죽을 과신한 것일까?
막지관은 아이를 끌어안듯 양팔을 모아 자신의 가슴을 후려친 창봉을 양손으로 콱 붙들었다.
‘이걸 몸으로 받는다고?’
절정의 창사가 강맹하게 휘두른 창봉이다.
아프지 않을 리가 없건만, 막지관은 그저 분노한 얼굴로 눈썹만 꿈틀거렸다.
고오오오―.
조서인은 막지관의 대머리 위로 보이지 않는 무형기가 불꽃처럼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막지관은 그 상태로 조서인의 품속에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창대를 붙잡은 상태.
가까이 거리를 좁혀 칼로 베면 된다는 생각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그렇게 둘 수야 없는 일이다.
“핫!”
선명한 창룡음을 내지르며 조서인은 한 손으론 창대 끝을 잡고 발로는 창봉을 걷어찼다.
쩌엉!
물결치듯 출렁인 창대가 막지관의 오른쪽 입술을 터뜨렸다.
이빨이 몇 개 부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다.
“크흐.”
막지관은 도리어 웃었다.
아픔이 즐거운 사람처럼.
그는 창봉을 놓쳤지만, 이미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오는 데 성공했다.
조서인도 마음을 바꿔 창을 짧게 잡았다.
팡!
쩌저정!
땅바닥이 움푹 패고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졌다. 감히 그 누구도 가까이 올 수 없는 상승의 싸움이다.
어느 순간부터 막지관이 숨을 쉴 때마다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양강진기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이 아니다.
막지관이 내공을 끌어 올릴수록 양기가 강해져서 공기가 들끓었다.
고오오오―.
뜨거운 열기를 풀풀 피워 올리더니, 마침내 쌍도에서 뿜어지는 힘이 강맹한 강기로 뭉쳐 조서인을 압박했다.
꽈아앙!
쩌정! 쩡!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경쾌한 소리가 아니라, 공기가 터져 나가는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감히 흙먼지가 피어오를 겨를조차 없다.
두 사람의 몸에서 뿜어지는 강맹한 힘의 역장들이 서로 간에 필사의 일격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퍼엉!
쾅!
내딛는 진각에 발밑이 터져 나가고, 내지르는 공격에 공기가 폭발한다.
치이이…….
“흠!”
조서인은 막지관의 쌍도에 베인 소맷자락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경각심을 가졌다.
무공이란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싸울수록 상대방의 본모습, 내면이 보이는 법이다.
조서인도 조서인이지만, 막지관도 과연 하북 제일을 논할 만한 무공을 지녔다.
거구의 육신.
막강한 신력.
거기에 가열 차게 달아오르는 양강무학의 내공까지 지녔다.
일타일격에 범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막강한 공력이 깃든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천하가 요동친다. 감히 다가오지 못하는 무인들이 주춤주춤 물러나니 두 사람을 중심으로 십 장 너비의 공터가 생겨났다.
콰과광!
터지고, 부서지고, 박살 났다.
지켜보던 철풍단 단원들 모두가 경악하여 겁에 질린 채 물러난다.
흙먼지가 흩날릴 틈조차 없는 격렬한 싸움은 초절정의 영역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휘리리릭―!
조서인은 창을 크게 휘돌리며 양손을 높이 들어 상대방의 무기를 내리눌렀다.
쩡!
막지관은 순순히 눌려 주지 않고, 창을 비스듬히 흘려냈다. 비스듬히 낮추는 몸. 튕기듯이 날아와 아지랑이가 풀풀 피어오르는 화끈한 칼로 조서인의 목을 내리친다.
까앙!
조서인은 창대로 막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의 아무것도 없는 옆구리를 찔렀다.
팡!
허공을 찌르는 창.
그다음엔 하체를 지렛대 삼아 넘어뜨리는 추룡에게 배운 서역 검술을 쓸 차례였지만, 과연 막지관은 다른 무인들과는 달랐다.
“키야앗!”
허튼수작 따위는 안 통한다는 듯, 거구의 육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게 몸을 뒤로 젖히더니 그 반동으로 조서인을 향해 펄쩍 날아왔다.
까아앙!
두 개의 칼이 동시에 좌우 어깨를 내리치는 모습은 그 동작만으로도 위압감이 있다.
조서인은 처음으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황급히 창을 다시 회수하다 보니 충격을 다 흩어내지 못한 탓이다.
웅웅―.
창대가 뜨겁다.
지글지글 끓는 양강기가 풀무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창대를 두드리니 달궈지지 않고 배기겠는가.
이대로는 교착 상태라는 것을 깨달은 조서인이다.
뻐억!
서로의 발과 발이 부딪쳐 상대방을 밀어냈다.
거리가 벌어진 찰나의 순간.
양손으로 창을 잡고 호흡을 가라앉힌다.
명경지수(明鏡止水).
차분하게 진정된 내면으로 상대와 자신을 관조하며, 창과 나를 일체시킨다.
일연적룡무 제이식.
퉁.
조서인이 가볍게 발을 내뻗는 순간, 은자창의 매끈한 창날이 십수 개로 불어났다.
쒜에에엑―――.
환검(幻劍)의 극의.
가짜가 눈을 속이지만, 가짜가 곧 진짜인 공격들이 막지관을 휩쓸었다.
“카아아앗!”
막지관은 크게 당황하며 미친 듯이 쌍도를 휘둘렀다. 그의 도법은 빠르지만 열다섯 개의 창날이 단번에 전신으로 쏟아지니 그 모든 걸 방어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파라라락―!
우우웅!
막지관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전력을 다 쏟아내는 것.
그가 지닌 양강진기를 한계까지 뿜어냈다.
온몸에서 이글거리는 열기가 뿜어진다.
한계를 넘은 모습인 건 자명하다. 순수한 인간의 몸은 옷이 타 버릴 정도의 열을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철풍쌍도술.
강기를 넓게 휘두르며 도막을 펼치니 새빨간 기운이 전면을 덮는다.
쩌저저정!
막지관의 철풍쌍도술과 조서인의 일연적룡무가 부딪치며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막지관의 거구가 다섯 걸음이나 밀려나며 바닥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상대가 단순히 빠르기만 한 무공이라면 승부는 어찌 될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조서인.
검선일맥에 무쌍귀 장기린의 무공을 이은 자다.
도막을 꿰뚫은 창날이 막지관의 우측 옆구리를 관통하고 있었다.
막지관이 자신의 상처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려다본다.
“쿨럭.”
내장이 상하면 기혈이 망가지고, 내력의 흐름이 꼬이는 건 당연한 이치.
막지관은 이를 악물었지만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여기서 승부를 낸다.’
쿠우웅!
조서인은 다시 한 번 진각을 밟았다.
온몸을 휘도는 발경.
건곤조화신공의 유장한 내력이 전신을 휘감으며 오른쪽 손목.
회전하는 창끝에 모든 힘이 집중되었다.
일연적룡무 제일식.
섬전 같은 찌르기가 막지관의 칼을 두드렸다.
쩌엉!
박살 난 쌍도가 철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카악.”
무기를 잃고 맨손이 되어버린 막지관이 뒤로 날아가 모닥불에 처박혔다.
불꽃이 튀어 오른다.
양강진기를 뿜어대던 막지관은 결국 활활 타는 불꽃과 한 몸이 되고 말았다.
“크아아아악!”
쇳덩이도 녹일 것처럼 치솟던 불꽃이 사람이라고 안 태울 리가 있겠는가.
입고 있던 호피가 새카만 재가 되었다. 막지관은 고통에 절규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다행히 불은 꺼졌지만 후유증은 심각했다.
얼굴, 목, 상체.
새카맣게 타 버린 피부는 점점 진물이 나오고 심각한 상세로 변할 것이다.
막지관은 신음을 흘리며 꿈틀거렸다.
“이놈……! 운이 좋았구나……!”
그는 광기와 분노에 찬 모습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죽여라. 저놈을 죽여 버려!”
비무는 끝났다.
막지관은 철풍단에 싸움을 지시하고 있었다.
“우릴 우습게 본 놈이다…….! 다 쓰러뜨리고 떠나겠다는 말을 했던 놈이다. 죽여! 살려서 보내지 마!”
졸렬한 행동.
아무리 무력이 강하다 해도 마적단 두목밖에 안 되는 자다운 태도였다.
조서인은 주변을 가만히 돌아보았다.
비령은 여전히 쓰러진 채 상체만 간신히 올리고 있었고, 서열 삼 위 비정혈검 맹자승은 자신의 혈검만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선 난감할 것이다.
자신들을 위압하던 대장이 처참하게 쓰려졌는데, 이젠 다 같이 한 놈을 몰매를 놓자고 한다.
“후우.”
조서인은 창끝을 내리고 왼손으로 몸에 박힌 철편 세 개를 뽑아냈다.
양강기에 스친 부분에는 화상도 입었다. 조서인은 허리에 찬 철 요대를 눌렀다.
찰칵―.
비밀 공간에 숨겨 둔 금창약을 꺼내 상처에 바르고 깨끗한 천으로 압박하듯 세게 감았다.
조서인이 마치 눈앞에 적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하자, 정작 놀란 것은 주변의 철풍단 단원들이다.
“이, 이놈이……! 우릴 얼마나 우습게 보고……!”
부들부들 떠는 막지관은 이미 조서인의 안중에도 없다.
온몸에 난 상처들을 임시방편으로 처치한 뒤, 조서인은 다시 양손으로 창을 들었다.
목적을 이뤘으니 보내 달라고 설득을 해야 하는가?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저들은 그렇게 놔두지도 않을 것이다.
“축제는 이제 막 시작하지 않았나요? 다음은 누구입니까?”
당당한 시선이 철풍단을 위축시켰다.
안색을 굳힌 맹자승이 결심한 듯 앞으로 나섰다.
“조서인이라고 했나? 나이에 비해 뛰어난 그 무공이 놀랍긴 하지만 그대의 발언에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어떤 발언 말입니까?”
“모두가 덤빈다면 모두를 쓰러뜨리고 떠날 것이라는 발언. 우리 철풍단의 호걸들이 그런 말까지 듣고는 그냥 못 보내지.”
철풍단의 단원들이 그의 말에 호응하든 “옳소!”라며 소리쳤다.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진다.
전의가 다시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겠죠.”
조서인의 창끝은 여전히 고요했다.
시끌벅적했던 철풍단원들이 다시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조서인이 내뿜는 고요한 기백이 사위를 장악하고 무게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덤빌 겁니까, 말 겁니까?”
후웅―.
새빨갛게 달아오른 숯덩이 하나가 날아왔다.
조서인이 창끝으로 간결하게 쳐 내자, 허공에서 새빨간 불꽃이 펑! 하고 터졌다.
막지관이 던진 숯이었다.
그는 진물이 흐르기 시작한 얼굴로 바락바락 소리쳤다.
“건방진 놈! 다들 뭘 하나! 저놈을 죽여 버려!”
막지관의 절규는 마치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았다. 그는 말로 끝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칼을 하나 뺏어서 조서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득―.
맹자승은 이를 악물며 혈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부터는 싸움.
축제의 이 막이다.
조서인은 차분함을 유지하며 창을 내뻗었다.
***
“이럇!”
거칠게 말을 달리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인원은 오십 명인데,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거구의 호걸들이다.
하북팽가의 장자 팽자겸.
그리고 그를 따르는 맹호도대의 사내들이 팽자연과 함께 말을 달리고 있었다.
쾌속하게 진격하는 그들의 뒤로 뿌연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특히 선두에서 팽자겸과 함께 나란히 있던 팽자연의 마음이 급했다.
“빨리 가야 해요! 태양이 정오에 달하면 철풍비객이 쓰러졌을 거라고 했어요. 늦으면 조 공자가 위험할지도 몰라요!”
이미 유백담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일각가량 늦어진 상황이었다.
그들은 다급하게 박차를 가했고, 붉은색 흙먼지가 안개처럼 뿌옇게 일어나는 분지에 머지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축제로 시끌벅적해야 할 분지가 아직까지도 조용하지 않은가.
“왜 이렇게 조용하지……?”
팽자연의 목소리가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