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권 5화
제39장 북벌종횡(北伐縱橫) (5)
패원강은 납득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멍한 얼굴.
그답지 않게 당황한 모습으로 그는 황급히 상의를 챙겨 입었다.
“지금 나라에서 전쟁을 한다던데 혹시 거기에 참가하는 것이오?”
“어? 어떻게 알았어요? 저는 직접 호명까지 됐어요. 아예 칙서가 왔더라고요.”
“뭐요? 칙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패원강은 어이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나는 몰랐던 것이오?”
“무상전에 틀어박혀서 무공 수련만 하던 사람이 누군데? 뭐, 별일도 아닌데 굳이 부를 것 있나 싶었죠.”
“……황제 폐하께서 소형제에게 칙서를 내렸는데 그게 별일이 아닌 거요?”
“별일 아니죠. 황제가 뭐라고.”
“흐하핫! 그 말, 누가 듣기라도 하면 동창에서 소형제를 잡아갈 거요.”
패원강은 타박을 하면서도 재밌어했다.
“그래서? 황제가 뭐라고 했소? 소형제에게 도와달라고 한 거요?”
“네. 저뿐만은 아니고, 천무련 전체의 도움을 요청했지만요.”
소호는 귀찮은 예식이 너무 많았다고 하소연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귀찮을 정도로 지켜야 할 예식이 많았다.
“놀라울 따름이군.”
패원강은 신음하며 자신의 까끌까끌한 턱을 쓰다듬었다.
“황제가 직접 칙서를 보낼 정도로 유명해진 것을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귀찮아졌다고 해야 할지…….”
“우리끼리의 이야기지만, 솔직히 귀찮은 거죠.”
“역시 그렇군. 이것 참. 강호인에게 전쟁에 참가하라는 칙서라니…… 그러고 보니 예전에 영락제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듣기는 했었소.”
패원강이 언급한 일화는 소호도 잘 알고 있었다.
북로전쟁 당시에 소림사와 무당파에 무공을 익힌 고수들의 파견을 요청했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그 일이 있은 후, 소림사와 무당파는 황실의 지원을 받아 거파 중의 거파로 발돋움했다.
“맞아요. 그리고 지금은 우리 천무련이 그 입장이 된 것이고요.”
소림과 무당의 역할을 하는 천무련이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상황이다.
황실에서 정파의 맹아(萌芽)로 어디를 지목하고 있는지 너무나 명확했다.
“으음, 소형제, 그럼 천무련이라고 하면, 누구누구를 데려갈 것이오?”
“저만 가면 돼요.”
“……응? 그게 무슨 소리요?”
“무상, 우리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까요?”
소호는 태양처럼 환하게 웃었다.
패원강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멍하니 그 뒤를 따라나섰다.
안휘성 합비.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장룡가(藏龍街)에 위치한 객잔은 목조로 지은 허름한 건물이었다.
사람 몸통만 한 기둥은 가뭄을 맞은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졌고 목재 벽면은 오랫동안 단 한 번도 닦은 적이 없는지 광택은커녕 꺼칠꺼칠하게 표면이 다 일어나 있었다.
얼핏 봐도 최소한 오십 년은 넘었을 것처럼 낡디낡은 건물이었다.
패원강은 불안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객잔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이거 너무 낡은 것 같은데. 바람이라도 불면 쓰러지는 것 아니오?”
“저번에 안에서 봤는데 의외로 대들보는 튼튼하더라고요. 괜찮아요. 안 무너져요. 무너질 건물이면 몇십 년이나 버텼겠어요?”
휘이잉―.
소호가 손을 휘휘 내저었는데,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 객잔의 지붕이 휘청거렸다.
우수수 떨어진 볏짚 몇 개가 패원강의 머리에 붙었다.
“……무너지지 않는 것 맞소?”
“에이, 제가 저번에도 왔었어요.”
소호는 의외로 의심이 많은 패원강이 딴소리를 하기 전에 냉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낡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현판에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풍운객잔(風雲客棧).
소호는 복잡한 심경으로 잠시 그 현판을 응시하다가 안쪽이 소란스럽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부인! 이렇게 나오면 안 되는 거요. 어서 안에 들어가도록 하시오.”
“어머나, 아니에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오히려 안 좋다고 했어요.”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오. 지금은 깃털 하나라도 닿을까 조심해야 하오. 귀한 아이가 놀라기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아이 참. 그렇게 유난 떨면 될 일도 안 된다니까요.”
중년의 남성과 그리 젊지 않은 여인이었다.
남성은 키가 크고 덩치도 큰데, 눈가와 입가엔 주름이 많아 오십 대 중후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눈꼬리가 위로 치솟은 탓에 항상 화나 보이는 인상인 데다, 이마에 길게 찢어진 흉터가 있어서 누가 봐도 젊었을 적엔 한 가닥 한 것으로 보이는 사내다.
재밌는 건 그런 거구의 중년 사내가 쩔쩔매면서 애지중지하는 여인은 평생 화 한 번 안 내 봤을 것처럼 인자한 인상을 지닌 삼십 대의 여인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만삭이었는데, 자신의 앞에서 쩔쩔매는 사내를 보면서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올 정도로 즐겁게 웃고 있었다.
“보기 좋은 부부로군.”
패원강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호 역시도 묘한 감상에 젖은 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손님도 별로 없는 낡아빠진 객잔이었는데, 정작 저 두 사람이 저렇게나 행복해 보이니 객잔이 따스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때쯤 한창 조심하란 말을 듣던 여인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채근하며 사내의 소매를 탁탁 잡아당기자,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깜짝 놀라 두 사람에게로 달려왔다.
“손님이 오셨었군요. 제가 잠시 정신이 없었습니다. 안쪽으로 오시지요.”
사내는 외모와 달리 친절했고 사근사근하게 듣기 좋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소호와 패원강을 객잔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한 뒤, 누가 시키기도 전에 좋은 향이 나는 따뜻한 차를 내왔다.
“지난번에 오셨던 공자님이시지요? 워낙 잘생기고 멋진 분이셔서 기억을 합니다. 오늘도 전에 드셨던 걸 드릴까요?”
소호는 놀라서 되물었다.
“제가 그때 뭘 먹었는지 기억을 하세요?”
“그럼요. 가지를 듬뿍 넣은 지삼선(地三鲜)에 백주를 드셨지요?”
사내는 망설이지도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손님에 대한 대응이 물 흐르듯 능숙했다.
“와아. 대단하시네요. 작년에 왔던 것 같은데, 그걸 정확하게 기억하시네요.”
“말씀드렸듯이, 워낙 잘생기고 멋진 공자님이셨으니까 말입죠.”
친절하게 웃는 얼굴과 배려 깊은 태도는 사내의 험악한 생김새를 완전히 잊게 만들 정도였다.
사람의 외모보다 내면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크게 실감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소호가 감동하는 만큼, 옆에 있던 패원강도 다시 봤다는 듯이 사내를 응시했다.
“기억해 주시니 감사해요. 여기 장룡가 풍운객잔의 주인이시죠?”
“아이고,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인사드리는 게 늦었습니다. 공자님. 객주인 우몽이라고 합니다.”
우몽은 넙죽 허리를 숙이면서 공손히 인사했다.
이제 노년을 바라보는 머리가 희끄무레한 중년의 사내가 그렇게까지 예를 차리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소호도 서둘러 몸을 일으켜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저는 장소호라고 해요. 저를 그렇게나 기억해 주시니 감명이 깊습니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지삼선에 백주를 준비해 주시겠어요?”
“물론입지요. 곧바로 준비해서 드리겠습니다.”
우몽은 만삭의 아내를 조심스레 안으로 보내고 자신은 주방으로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어찌나 성실하면서도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지, 그 모든 광경을 잔잔하게 웃음 지으며 보게 된다.
패원강도 마찬가지였는지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소호와 눈이 마주치자 너털웃음을 지었다.
“첫인상만 봐선 흑도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핫,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내요. 늦게 혼인을 해서 자식을 얻은 듯한데, 보기만 해도 그 행복이 전해지는 것 같소.”
“그러게요. 참…… 좋네요.”
소호가 말끝을 흐리니 패원강이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소형제의 집안이……. 그, 풍운상회를 운영하지 않소? 그런데 이런 이름만 똑같은 풍운객잔이 따로 있어도 되는 것이오?”
소호의 어머니, 진휘연이 상주로 있는 풍운상회는 각 지역에 풍운객잔을 만들고 성공적으로 장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낡아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객잔이 똑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니. 패원강으로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맞아요. 그런데 제가 어릴 적부터 들었었는데 여기는 특별하대요.”
“이곳이 말이오?”
패원강은 낡디낡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이 객잔이 대체 뭐가 특이한 건지 눈에 힘을 주고 살폈다.
하지만 암만 봐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탁자도 그렇고 의자도 그렇고, 평범하게 낡고 오래된 객잔이었다. 다른 객잔과 비교해 뭔가 특이하냐고 묻는다면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제가 어릴 때 들었는데, 합비의 장룡가에 있는 풍운객잔은 어머니가 유일하게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모친께선 왜 그러셨소?”
“추억이 있대요. 상회를 세우기 전에. 항주에 있었던 최초의 풍운객잔이 무너지고 나서 한동안 대륙을 떠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나 게 바로 여기 하나뿐인 풍운객잔이었다나요? 그땐 객잔의 주인이 곤란에 빠져 있어서 도와주신 적이 있다는데 그게 아마 저분인 것 같아요. 느낌이 딱 그렇네요.”
“호오.”
패원강은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주방을 바라보았다.
“우 객주에게 아까 그 이야기를 해 주지 그랬소? 저분도 좋아할 것 같은데.”
“아뇨, 오늘은 그런 일을 하러 온 게 아니니까요. 그냥…… 전에도 한 번 왔었는데, 저는 여기서 평온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무상과 함께 온 거예요.”
소호는 주방일을 돕겠다면 들어갔던 여인이 우몽과 툭탁거리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말했다.
지글지글.
치이익―.
기름이 끓고 무언가를 굽고 지지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흘러나왔다.
“희한해요. 옛날에 화전촌에 있을 때는 시골 생활이 지겨워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난 시끌벅적하고 정신없이 살고 싶다고 마을을 뛰쳐 나왔는데……. 요즘은 다시 반대가 되어 버렸어요. 이렇게 조용한 객잔에서, 소소하게 행복하게 웃는 부부를 보니 기분이 참 좋네요.”
“소형제가 요즘 꽤 힘든가 보군.”
“하핫. 바쁘긴 했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말하지 않았소? 귀곡천계(貴鵠賤鷄)라고. 원래 사람은 잃어버린 것을 더 크게 느끼는 법이오. 일생의 정답이 바로 코앞에 떨어져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법이지.”
“그러려나요?”
소호는 손으로 턱을 괸 채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무심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상, 나는 학검대와 청죽대를 무상에게 부탁할까 해요.”
“흠?”
상당히 진지한 이야기였다.
학검대는 비학문 출신의 검사들을 한데 모아 비학검을 가르친 사람들이고, 청죽대는 천무련에 투신한 작은 문파 출신의 인재들 중에 재능 있는 자들을 골라 소호가 직접 가르치던 무인들이었다.
“그들을 나에게 맡긴단 말이오? 문상과는 이야기가 다 되었소?”
“주해랑은 이미 상의를 끝냈어요. 남은 건 무상의 결정이죠.”
패원강은 알기 어렵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난 그냥 연무장에서 무공이나 수련하는 사람이오. 그런 내가 무엇을 결정한단 말이오?”
“전쟁터에는 나 혼자 갈 거예요. 천무련 사람은 데려가지 않을 겁니다.”
“정말로 혼자서 간단 말이오?”
“네. 황제의 곁을 지키게 되었으니 그렇게 해야죠.”
“으음.”
“그러니 내가 황실을 돕는 동안 무상이 천무련을 이끌었으면 해요. 거기다가 앞으로는 소림이나 무당 같은 거파의 무인들이 천무련에 합류하기 시작할 거예요.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어요. 무상이 그들을 적절히 분류하여 훈련하고, 결집시켜 주세요.”
“모아서 훈련하고 결집시킨다…….”
“딱 무상만 할 수 있는 일이죠?”
“소형제, 그건 련주가 직접 해야 할 일 아니오?”
무인들을 모아 훈련시키다 보면 자연스레 우정이 싹트는 법이고, 그런 우정은 조직을 이끄는 데 큰 이득으로 작용한다.
소호가 천무련의 명망을 떨치기 위해선 직접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패원강에게 넘긴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아뇨, 무상이 해야 할 일이죠. 내가 무상한테 천무련으로 들어오라 하면서 했던 말 기억하죠?”
“물론…… 기억하오.”
“생각보다 끝이 빨리 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천무련을 키워 낸 뒤 패원강에게 넘겨주겠다는 그 약속을 말함이다.
패원강은 당혹스러워했다. 그가 항상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의문이 들불처럼 번졌다.
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소형제, 난 항상 묻고 싶었소. 소형제가 바라는 건 도대체 뭐요? 지금이야 복수를 바란다지만, 처음에 천무련을 만들 때는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았소? 황실과 영합하는 듯했다가, 어떨 때는 황실을 견제하는 듯했다가. 난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소.”
“저는요…….”
소호는 그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둔 답이 있었다.
물론 목표는 있다.
주해와 상의해서 이루고 싶은 것도 있다.
하지만 소호를 움직이는 근간은 단 하나다.
“옳은가 그른가는 중요치 않아요.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겁니다. 그게 나예요.”
태양처럼 환하게 웃는 소호의 모습에 패원강은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