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권 7화
제39장 북벌종횡(北伐縱橫) (7)
금룡상회라는 이름을 쌓아 올리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으나, 그 명성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북경에서부터 해남도까지 세상에 안 파는 물건이 하나도 없다던 금룡상회의 끝은 그렇게나 허무했다.
사나운 동창의 창위들이 본점에 들이닥친 지 고작 십 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시커먼 옷을 입은 관료들이 본점에 죽치고 앉아서 죄지은 게 있나 없나 뒤지기 시작하는데 장사가 될 리가 있겠는가?
털어서 먼지 나올 사람 없다는데, 심지어 금룡상회는 워낙 공격적으로 상행을 펼친 탓에 사방에 적이 많은 ‘먼지투성이’ 상회였다.
금룡상회를 성토하는 원수들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튀어나와 제각각 금룡상회에 불리한 증거들을 꺼내 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륙 상계(商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설마 하며 믿지 않았다.
금룡상회의 회주 문갑룡이 어떤 사람이던가?
농담 삼아 저승에 가서도 염라대왕을 상대로 장사를 할 거라 말하던 사람인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겠냐는 여론이 팽배했다.
그런데 설마 하던 사람들이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금룡상회의 회주 문갑룡이 결국 동창에 잡혀 갔다는 것이다.
심한 고문 끝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제 금룡상회는 끝이라고.
각 지역의 분타주들이 대붕상회나 칠성상회에 몸을 의탁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늘을 날던 금룡은 그렇게 땅에 떨어졌다. 금룡의 몸에서 흐른 피가 사방팔방에 낭자하니 가만히 있던 상인들은 기겁하며 몸을 사렸다.
이런 법은 없었다.
촌구석의 작은 상회도 아니고,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큰 상회가 이렇게나 철저하게, 일방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던가?
그간 금룡상회에서 관가에 뿌려 둔 돈이 얼마일 텐데, 이렇게 무너지는 동안 도대체 단 한 명도 나서서 막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금룡상회의 상황은 상인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악의 악몽과도 같았다.
명성이 자자하던 금룡상회가 저 정도니, 누구나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경악과 분노도 잠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인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금룡상회의 구호를 위해서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목숨은 소중했다.
자신들은 어떤지?
황실에 밉보인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미리 관계를 맺고 있던 관료들에게 인사를 하러 찾아다니기 바빴다.
웬만큼 권세가 있는 관료의 집 앞은 매일 그에게 잠깐이라도 인사를 하기 위해 돈을 싸매고 기다리는 상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뇌물과 청탁이 흠이 아닌 시대.
당연하다면 당연한 흐름이다.
유례없이 강력해진 동창이 힘을 휘두르는 사이, 나라에서 북쪽 유목민족과 전쟁을 하기 위해 병력과 물자를 모은다는 충격적인 소문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말과 병기가 모조리 징발되었다.
북쪽으로 진군하는 병사들의 숫자가 무려 오십만이라고 했다.
혼란과 격변의 시기, 그렇게 금룡상회의 비참한 몰락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두의 머릿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
“오늘도 아무도 없어요!”
조서인은 창을 살짝 열고 밖을 살피며 말했다.
은밀한 몸짓, 혹시 조금이라도 바깥에 모습이 보일까 봐 조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딘가에 잠입한 첩자를 연상시켰다.
“드디어 해방인가 봅니다, 숙부님. 절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절로 웃음이 나오는 조서인과 달리 추룡은 심드렁했다.
그는 푹신한 의자에 반쯤 드러누운 채 들고 있던 포도 한 알을 위로 던졌다가 다시 받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래? 밖에 아무도 없어?”
“네! 한 사람도 없습니다. 텅 비어 있어요!”
사실 문제가 된 것은 조서인 한 사람뿐.
추룡과 팽자연은 상인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그동안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렇군. 근데 조카야. 섭섭하진 않냐?”
“제가 왜 섭섭합니까?”
“너를 알아보고 환호하던 사람들이 사라졌는데 당연히 섭섭할 수 있지. 조용해지니까 어때? 막, 시원섭섭하면서 그 사람들이 그립진 않아?”
“아닙니다. 절대로요.”
조서인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서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저는 이번에 새삼 느꼈습니다. 저는 아무도 못 알아보고 조용히 지낼 때가 더 좋았어요.”
“그릇이 아주 간장 종지만 하구만?”
“간……. 간장 종지까진 아닙니다.”
“그깟 관심은 파하! 하고 웃어넘겨야지.”
“그래도 어딜 갈 때마다 쫓아다니니까 못 살겠어요. 엊그제는 과일 팔던 아주머니가 덤으로 사과를 주려고 했는데 그걸 경계하면서 화들짝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냐?”
“그 순간 그 아주머니의 놀라면서도 서운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으음, 저의 정신이 병들어 가는 것을 느낍니다. 어서 이런 생활을 탈출해야 해요.”
조서인은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거리 끝까지를 꼼꼼하게 살핀 뒤 다시 창문에서 멀어졌다.
“진짜로 없네요. 움직여도 될 것 같습니다.”
추룡은 싱글벙글하는 조서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유명세란 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와 같다. 누가 봐도 비싸 보이니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또 한편으론 그 재력을 탐내는 도적들과 적들에겐 손가락질할 대상이 되거든.”
“예?”
“언젠가는 감당해야 한다는 소리야.”
“아…….”
“네가 소호를 꺾고 영웅이 되기로 한 이상, 저놈들이 욕을 하든 몰려와서 한 번만 도와달라고 조르든, 전부 감당할 줄도 알아야 해. 피하기만 해선 안 된다?”
기지개를 켜며 가볍게 말하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다.
조서인은 그렇게 생각해 보진 못했기에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다. 난 왜 계속 피하기만 했지?’
거절하자니 나쁜 놈이 되는 것 같고, 그렇다고 다 들어줄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무작정 피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게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원인인 금룡상회의 회주에게 찾아가 봐야 하는 걸까?
“아서라.”
“예?”
“전에도 말했지만 금룡상회 회주는 어차피 못 만나. 그보다는 지금 원인 파악부터 해야 하지 않겠냐?”
추룡은 언제나 그랬듯이 조서인의 마음 따위는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 정곡을 찌르는 조언을 해 주었다.
문갑룡을 만나 볼까 고민하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그보다 원인 파악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추룡은 갑자기 시선을 돌려 의자 반대쪽 복도를 향해 물었다.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나, 팽 소저? 왜 갑자기 매일같이 모기처럼 달라붙던 상인들이 사라졌을까?”
복도 쪽에서 나타난 것은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 올린 채 옥비녀를 꽂은 팽자연이었다.
펑퍼짐한 무복을 입었음에도 몸의 윤곽이 선명했다.
막 목욕을 마쳤는지 몸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살짝 빨갛게 달아오른 귓불과 새하얀 목선에서 조서인은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다.
“숙부님의 말씀이 옳아요. 원인 파악부터 해야죠. 제 생각엔 금룡 상회의 회주께서 상인들을 모아 담판을 지어 줬거나, 아니면…….”
팽자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민하다 조서인과 눈을 마주치며 생긋 웃었다.
“상인들이 태세를 바꿀 만큼 큰 사건이 벌어진 거죠.”
‘큰 사건? 그렇구나. 단순히 귀찮게 하던 상인들로부터 해방되었다고 기뻐할 때가 아니었어.’
금룡상회 회주가 손을 써 줬으리라 생각하는 건 너무 순진한 처사였다.
문갑룡은 누가 봐도 보통이 아닌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굳이 소문이 나는 걸 방치해 조서인이 괴롭게 만들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의도라고 생각해도 좋을 터.
그렇다면 왜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을까.
왜 천무련과 다리를 놔달라며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상인들이 갑자기 발길을 뚝 끊었을까.
“부탁할 필요가 없어져서……?”
웅얼거리듯 내뱉은 말에 팽자연이 웃으면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게 아니면 상인들 모두가 부탁할 만한 상황이 아니게 된 거죠.”
“큰일이 터졌다는 겁니까?”
“네. 목욕물을 받아 주던 하녀가 말해 주더라고요. 세상이 난리래요. 북쪽에서 전쟁이 났다네요. 오십만 대군을 만든다고 전국에서 전쟁에 나갈 병사들을 뽑고, 말과 물자들을 있는 대로 다 사들이고 있대요.”
“말과 물자들…….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쟁은 상인들에겐 절호의 기회라던데요?”
“엄청난 기회죠. 병사들의 숫자만큼이나 엄청난 식량과 물자들이 전쟁터에서 한여름에 얼음이 녹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테니까요.”
투명하고 차가운 얼음이 한여름에 주르륵 녹아내리는 걸 떠올린 조서인은 참으로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 비싼 것을.
“팽 소저가 잘 알고 있네. 전쟁터엔 지독한 상인이 따라붙는 게 당연한 일이야. 그놈들은 귀족이랑 관료들 옆에 딱 붙어서 뭐든지 팔아먹고 뭐든지 사들이거든.”
추룡은 그놈들이 어제 입은 속옷까지 사 가고 내일 쓸 숟가락 하나까지 파는 놈들이라면서 질린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됐든 상황은 알아보는 게 좋겠다. 안 그래도 다음에 만날 사람이 중요한 분인데, 시국이 어수선해서야 될 일도 안 되거든.”
“다음에 만날 사람이요?”
조서인은 항상 괄괄하고 패기 넘치는 추룡이 ‘중요한 분’이라 표현할 만한 사람이 누군지 매우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가 뭐라 대답을 해 주기 전에 누군가가 방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어찌나 급하게 두드리는지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심장이 두근거릴 지경이다.
“누구십니까?”
조서인이 가까이 가서 문을 열자 죽립을 쓰고 거무튀튀한 피풍의를 뒤집어쓴 사람이 넘어지듯 안으로 급히 들어왔다.
“후우. 후우.”
상대의 숨결이 거칠다.
누가 봐도 흥분한 모습.
잔뜩 긴장하여 서둘러 문을 닫는 모습을 보면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보였다.
조서인은 처음엔 경계하였으나 죽립을 뒤로 넘긴 얼굴을 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희?”
귀밑에서 짧게 머리를 자르고 뽀얗고 갸름한 얼굴을 지닌 여인.
문주희는 창백한 안색으로 문밖을 경계하고 있었다. 문에 귀를 대고 기척을 살피던 그녀는 속으로 열을 셀 정도의 시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추룡과 팽자연도 침묵을 지켰다.
문주희의 분위기는 그 정도로 절박하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한참을 숨을 고른 뒤, 드디어 조서인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서인아, 나 좀 도와줘.”
지난 십 년간 보아 온 문주희의 모습 중에 가장 절박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그녀는 그렇게 조서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
“그러니까. 금룡상회주, 으음, 주희 아버님께서 동창에 잡혀가셨다는 거지?”
“맞아. 나는 아버지께서……. 창위들에게 잡혀가는 걸 보고 상회에서 빠져나왔어.”
문주희는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조서인은 안타까웠다.
학관에선 어떤 난감한 상황이 와도 웃으면서 넘기던 사람이 문주희였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는 건 처음 보았다.
“차분히 되짚어 보자. 일단 미행은? 추적자는 없어?”
“없어. 나도 무산학관 졸업자야. 관문을 통과하면서 추적을 피하는 법은 특히 만점을 받았었어.”
문주희는 마차가 방향을 꺾을 때 뛰어내려 목격자 없이 빠져나왔노라 이야기했다.
“마차? 마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어?”
“아버지께선 본인의 마지막을 직감하셨는지 나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 주셨어. 상회의 비밀 통로를 통해 나가니 운남으로 가는 마차가 준비되어 있더라. 아……! 고마워요, 팽 소저.”
팽자연이 가져다준 따뜻한 오룡차를 마시며 문주희는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팽자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조서인의 곁에 앉았다.
추룡도 아무런 말을 해 주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생각에 잠긴 채 문주희를 바라볼 뿐.
필연적으로 자신이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조서인이 부족한 어휘를 끌어모아 최대한 위로의 말을 꺼냈다.
“으음……. 주희야.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아버님께서 안배해 두신 대로 안가(安家)로 향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아버님께서 생각해 두신 게 있을 것 같은데?”
“안 돼.”
문주희는 단호했다.
그녀는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도 무언가 희망의 끈을 하나 붙들고 있는 사람처럼 끈질겼다.
“아버지는 이미 마음을 비우고 계셨어. 최후를 직감하신 거야. 순순히 목숨을 내놓고 금룡상회의 모든 부를 빼앗길 생각이셔.”
“그……래?”
“난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거야. 그게 자식으로서 당연한 거잖아?”
때론 자기 자신도 모르던 마음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털어놓을수록 정리되는 순간이 있다.
지금의 문주희가 그랬다.
그녀는 이야기할수록 확신과 자신감을 회복했다.
“아버지께선 잡혀가시기 직전에 섬서의 일을 후회한다고 하셨어. 그건 천무공자, 장소호와 대립한 걸 후회하셨단 소리야. 난 그것부터 파고들겠어. 분명히 아버지를 살릴 방도가 있을 거야.”
그녀의 확신에 찬 이야기에 조서인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소호라니.
금룡상회의 몰락에서 왜 소호의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