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479화 (608/686)

19권 25화

제39장 북벌종횡(北伐縱橫) (25)

푸화악―!

육모담이 입고 있던 갑주가 반으로 갈라지며 가슴부터 배로 이어지는 상처가 생겼다.

피부와 근육이 갈라지고 피가 뿜어진다.

“흡!”

육모담은 잠시 휘청였지만, 지독하리만큼 강한 눈빛으로 온몸의 근육을 조였다.

승모근이 치솟는다.

양손의 힘줄이 튀어나와 온몸의 근육이 물결쳤다.

칼에 베인 상처 주변의 근육이 잔뜩 오그라들어 돌처럼 단단하게 수축했다. 세차게 뿜어지던 피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은 덤이다.

쩌저정!

놀라운 일이지만 대결 중이던 두 사람은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손끝으로 강기를 쏘아 내고, 발가락으로 천 근 바위를 차올리는 고수라면 그쯤은 해 줘야 한다.

온몸의 모든 부위를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자만이 절정의 경지를 넘어서는 법이니 놀라울 게 뭐 있겠는가.

푸욱―!

육모담은 근력으로 상처를 지혈한 채 집요하게 검을 뻗었고, 소호의 오른쪽 허벅지에 끝끝내 피로 매화를 그렸다.

“큽.”

소호는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허벅지의 근맥이 검에 꿰뚫려 고통을 호소한다.

하체는 모든 무공의 기본이니 각법을 쓰기가 힘들어져 버렸다.

‘그래도 한다.’

소호는 오기가 났다.

육모담이 해낸 일을 소호가 못할쏘냐.

우두둑―.

허벅지의 근육을 단단하게 조인 소호가 왼발을 차올려 짧은 단파각을 날렸다.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육모담의 몸이 휘청 흔들렸다.

갈비뼈를 걷어차여서 몸의 중심이 꺾인 것이다.

집요함과 고집.

집념과 끈기가 맞붙었다.

육모담은 처절한 모습으로 검을 뻗었다.

치열한 싸움.

한 호흡에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펼쳐지고, 다른 한 호흡엔 소호의 천랑도법이 일도필살을 노렸다.

서로가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 소호의 좌수 태극권이 육모담의 가슴을 후려쳤다.

뻐억!

“쿠와악.”

승부가 기운다.

결정타였다.

육모담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비척비척 뒤로 물러났다.

소호는 환하게 웃었다.

즐겁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싸움이지만, 이렇게나 전력을 다해 싸우는 일은 매번 겪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패배를 직감한 육모담은 정반대의 감정을 느꼈다.

쿵.

육모담이 진각을 밟는다. 그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소리쳤다.

“나는. 붉은 늑대. 화산의 복수자.”

고오오오―――.

육모담은 결심한 듯 품 안에서 꺼낸 집혼기를 자신의 갈라진 가슴 상처 안에 박아 넣었다.

퍽―.

살이 찢어진다.

일시적으로 멈췄던 피가 다시 울컥울컥 솟아 나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꿈틀꿈틀 상처가 경련하며 급격히 기운이 강해졌다.

허물을 벗듯 강력한 기파.

협봉검에 유형화되어 있던 강기가 눈이 부실 정도로 짙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저게 원래는 이태산이나 태성천 선배에게 갈 뻔했던 그 집혼기구나.’

은자촌에서 전해진 두 개의 집혼기가 하나는 육모담에게 가고 다른 하나는 백검회의 청계에게 전해져서 무림을 뒤흔들었으니, 그야말로 가는 곳마다 편지 풍파를 일으키는 마물(魔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차 집혼기의 힘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육모담의 온몸에 혈관과 힘줄이 돋아났다.

우두둑―.

새살이 돋아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로 상처가 급격히 아물었다.

체형도 변했다.

집혼기를 받아들인 육신은 만 단위의 혼백의 힘을 몸으로 감당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급격히 강해진 힘을 받아들이기 위해 육체는 자신의 한계까지 몸을 부풀린다.

살짝 마른 듯했던 육모담의 근육이 마치 외공을 단련한 권사처럼 크게 부풀었다.

“이런.”

소호는 탄식했다.

그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

도철, 도올.

집혼기를 지니고 있었던 소호의 강적들은 늘 마지막에 집혼기에 갇힌 혼백의 힘을 집어삼켜서 폭주하지 않았던가.

드드드드―.

육모담의 검끝에서 붉은빛이 솟구쳤다.

단단하게 강기로 유형화되고도 힘이 남아서 사방으로 붉은색 기운을 넘실넘실 후광처럼 흩뿌리고 있었다.

“크하아압!”

쒜에에엑!

찔러 오는 검끝이 빛살과도 같다.

근육이 비대해지고 내공이 흘러넘치다 못해 폭주하고 있음에도 육모담이 뻗어 내는 매화검은 정교하기 짝이 없었다.

펑!

소호는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으나, 공격이 스친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산산이 조각나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과연.”

감탄이 나온다.

폭주한 내력,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 근력으로도 이렇게나 정교한 검격을 선보이다니.

소호는 상대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로 몸을 튕겼다.

강궁의 화살처럼 쏘아진 육모담의 붉은 강기가 거대한 매화꽃을 그렸다.

쩌엉!

소호는 전륜법광을 뿜어내며 매화검을 막아 냈다.

협봉검과 박도가 마주치는 순간, 붉은빛이 폭발했다.

‘아까와 다르다!’

콰콰쾅!

하나의 강기가 수십 개의 장침으로 쪼개져서 소호를 향해 쏘아졌다.

혈매화가 분열하던 아까와는 다르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수십 명이 사방에서 검으로 찌르는 것처럼 검끝의 강기가 소호를 쫓아왔다.

푸푸푹!

소호의 발밑을 관통한 검강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동그란 구멍들을 만들어 냈다.

검끝만이 아니다.

육모담이 검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소호의 박도를 붙잡았는데, 그 순간 손에서 뿜어진 유형화된 강기가 수십 개의 뾰족한 막대 모양으로 변하여 소호를 노렸다.

피슈슈슉―.

수십 개의 기관 장치가 한꺼번에 화살을 쏘는 것 같았다. 일제히 노려 오는 공격들을 소호는 어깨가 바닥에 닿을 만큼 뒤로 젖히는 철판교의 수법으로 피해 냈다.

‘그래. 알겠다. 나무구나.’

소호는 육모담이 오래되어 신령이 깃든 화산의 매화나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지를 뻗고 잎을 펼쳐, 화려하게 꽃송이를 만개하는 한 그루의 매화나무다.

고오오오오――.

막강한 힘이 뭉쳤다가 길게 뻗어 나와 한순간에 수백 송이의 매화를 피워 사방을 잠식한다.

쩌저저정!

소호는 태극권과 천랑도법을 적절히 섞어 가며, 정면으로 맞상대하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까가강!

검이 날아온다.

육모담의 손이 닿기엔 멀리 떨어졌는데, 마치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것처럼 검이 스스로 움직여 화려한 검초를 펼친다.

까앙!

박도로 강하게 후려치자 검은 휘리릭― 채찍이 감기듯 돌아가 육모담의 손에 다시 쥐어졌다.

위협적인 힘.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천 번 만 번 찢길 것 같은 위압감이 있다.

“후우우우―.”

소호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박도를 강하게 움켜쥐고 칼날의 날카로움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신.”

신(神)이란 무엇인가.

백설지를 잃고, 백설천과 싸운 이후 소호는 결국 만나게 되었다.

다른 누구도 모르지만 소호는 안다.

누구나 자신의 신이 있다.

평범하게 살다 보면 만날 계기가 없었을 뿐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내면에 품고 있는 법이다.

소호는 만났다.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으며, 기쁜 마음으로 서로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후우우우우.”

소호의 몸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던 전륜법광이 붉은색으로 물든다.

적금색 광채는 신묘했고 불길했으며, 사람의 힘을 초월한 듯한 마력을 품었다.

쿠우웅!

강한 진각과 함께 힘차게 돌아간 허리.

어깨, 팔꿈치, 손목으로 이어진 회전력을 가득 실어 박도를 내던졌다.

피유우우웅!

날카로운 륜(輪)처럼 허공에 동그란 호선을 그린 박도가 육모담의 수많은 강기 중 하나를 무참히 베어 냈다.

육모담은 곧바로 반응했고, 한 송이의 매화를 그려 박도를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스스로의 무기를 내던지는 행동에 당황하는 육모담.

그 순간, 소호에게 신이 강림했다.

콰아아앙!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소호가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맹렬하게 상대를 덮쳤다.

도철과 백설지의 ‘용생’이 용의 발톱이었다면, 소호는 한 마리의 호랑이였다.

온몸에 두른 적색 강기가 섬뜩한 광채를 발한다.

소림호권처럼 날렵한 몸놀림으로 다가가 양팔을 회전하며 내리찍는 장권에 육모담의 강기가 갈가리 뜯겨져 나간다.

하강하면서 회전.

단파각 일초식과 함께 손가락을 오므린 쌍장을 앞으로 내밀자 육모담이 그려 내는 혈매화가 무력하게 부서진다.

소호의 수강(手罡)은 단단했다.

폭주한 육모담의 힘은 폭포수처럼 강맹하게 뿜어나오고 있지만, 단단하게 뭉쳐 있지 못했다.

상성의 문제라고 해도 좋았다.

수십, 수백, 어쩌면 수천의 공격도 할 수 있을 육모담은 단 하나의 육신으로 집약된 소호의 강기를 뚫지 못했다.

소호는 육모담이 펼친 혈매화검법의 매화만리향 초식을 맨몸으로 들이받았다.

쩌저저저정!

정권, 장권, 수공.

온갖 수법으로 검초를 후려치고 잡아 꺾으며 황소처럼 밀어붙였다.

터엉!

마침내 삼 보 앞까지 다가간 순간 진각과 함께 돌진해 팔꿈치를 내밀어 이문정주로 명치를 후려친다.

검날을 세워 막으려는 육모담의 협봉검을 팔꿈치로 후려치면서, 또 한편으론 검날을 양손으로 비틀리게 붙잡았다.

그리고.

진각과 함께 잡아 뜯는다.

쩌어엉!

검날이 부러지는 소리는 고즈넉한 암자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맑았다.

소림호권.

호권의 쌍장이 육모담의 가슴을 후려치고, 동시에 비호처럼 뛰어오른 소호가 앞발을 높이 차올려 강룡각 일타를 번개처럼 내리찍었다.

콰직―!

가슴을 얻어맞은 육모담이 무릎이 꺾였다.

쿠우웅!

거대한 매화나무 한 그루가 기우뚱 넘어가듯.

육모담은 그렇게 피를 토하며 바닥에 처박혔다.

소호는 날카롭게 세운 손가락으로 육모담의 가슴을 잡아 뜯었다.

콰드득!

피로 번들거리는 집혼기의 호안석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호는 손을 오므려 집혼기를 그대로 부숴 버렸다.

고오오오――.

“크허억!”

소림호권과 강룡각에 얻어맞았을 때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던 육모담이 격렬하게 헐떡였다.

“크아아아악!”

오이라트의 붉은 늑대.

오로지 왕진을 죽이기 위해 일평생 달려오던 화산의 복수자가 힘을 잃고 침몰한다.

부풀었던 근육이 쪼그라들고,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던 막강한 기파가 서서히 끊기다가 마침내 아무런 기파도 뿜지 못하게 되었다.

“허억. 허억.”

가쁜 숨만 내뱉는 육모담의 가슴을 짓밟은 채, 소호는 박살 난 집혼기에서 흘러나오는 혼백의 힘을 자신의 집혼기에 모두 받아들였다.

드드드드―――.

허공으로 흩어지려던 붉은색 기운들이 소호에게로 빨려 들어간다.

소호는 허리에 차고 있는 집혼기로 마지막 혼백 하나까지 모조리 빨아들인 뒤, 적금색으로 빛나는 안광을 은은하게 뿜어냈다.

“싸움은 끝났어요.”

토목보의 곳곳이 불에 타 연기가 올라온다.

소호는 육모담의 가슴에서 발을 뗐다.

육모담은 눈코입귀.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소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산으로 돌아가세요. 복수는 이미 끝났으니까요.”

소호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그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었다.

육모담과의 싸움이 끝났으니, 이제 남은 할 일을 단 하나뿐이다.

소호는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나갔다.

“크륵.”

육모담은 천천히,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집혼기를 폭주시켰다가 잃어버린 탈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극심한 무기력함.

폐가 찢어지는 듯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과 집념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히히힝―.

어떻게 알고 다가왔는지 오이라트에서 얻은 그의 말이 가까이 다가와 몸을 낮춰 주었다.

간신히 안장에 올라타자 말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를 에센에게로 데려다주었다.

“붉은 늑대여!”

육모담의 말을 알아보고 반색하던 에센은 그가 위중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크게 놀란 얼굴이 되었다.

육모담은 흐릿한 시야로 에센에게 눈인사를 건넨 뒤 반쯤 쓰러지듯 말에서 내렸다.

시산혈해라고 불러야 마땅할 처참한 광경 한가운데, 에센의 앞에는 풀밭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황제가 보였다.

‘결국 그렇게 되었나.’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는 싸움이었다.

명의 황제가 친정을 나와 이민족에게 사로잡히다니.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엄청난 사태지만 지금의 육모담은 그에게는 한 줌의 관심도 없었다.

황제가 있는 곳엔 그자가 있다.

육모담이 두리번거리는 이유를 알고 있는지 에센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너의 원수를 찾는가? 저곳에 있다. 네게 선물하려 했건만, 안타깝게도 한발 빠른 자가 있더군.”

육모담은 주저앉았다.

그를 부축해 주려는 오이라트 전사의 손을 뿌리쳤다.

천천히, 비척비척 기어간 그는 비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는 유해 앞에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흐흐.”

웃음이 나온다.

항상 단정하게 넘기고 있던 머리가 산발이 되었고, 머리가 깨져서 일부가 뭉개졌지만, 그렇다 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분칠한 얼굴.

체형, 눈매, 검은색 섭선.

단 하나도 잊을 수 없다.

그놈이다.

환관 왕진.

흑시군을 이끌고 화산파를 유린한 숙적.

천하의 장기린도 죽이는 데 실패했던, 육모담 자신이 일생을 걸어 복수하고자 해도 죽일 수 있을까 의심스럽던 그자였다.

조금 젊은 것 같기도 하지만, 분명 지난번에 보았던 그 왕진이 분명했다.

“너의 원수를 죽인 자는 저놈인 듯했다. 호위대장으로 보이는데, 완강히 저항하더군. 저놈도 살려 두지 못하고 죽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 황제의 곁에는 수많은 금의위의 시신과 함께 거구의 사내 하나가 화살을 수십 발이나 몸에 꽂은 채, 철퇴 하나를 손에 들고 무릎을 꿇고 절명해 있었다.

“상심하지 마라, 붉은 늑대여. 내분으로 죽었다고 한들, 저자를 죽도록 몰아붙인 것은 우리 오이라트와 대초원의 형제들이다. 네가 원수를 갚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철혈이자 다혈질의 두목인 에센답지 않게 따뜻한 배려였다.

육모담은 허망하게 웃었다.

“흐흐흐.”

천무공자의 말이 맞았다.

복수는 이미 끝나 있었거늘.

무엇 때문에 그토록 집착했단 말인가.

장성을 넘어 그토록 달려온 건 대체 뭘 위해서였나.

“흐하하핫!”

가슴이 갈라지고, 온몸의 뼈가 부러진 상태로.

육모담은 크게 웃으며 앞으로 꼬꾸라져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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