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517화 (646/686)

21권 11화

제43장 심즉다의(深則多疑) (3)

“이놈들, 침입자다!”

잔뜩 몰려온 사내 중에 눈에 띄는 거한이 하나 있었다.

육중한 몸집에 두꺼운 외날 도끼를 들었다. 번들거리는 대머리에는 칼자국이 가득했고, 사나운 눈빛 아래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고집스러운 인상을 준다.

누가 봐도 한 가닥 하는 암흑가 파락호의 모습이다.

그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조서인을 노려보다가 추룡을 보고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남만에서 온 놈이냐! 거적때기 같은 걸 걸치고 돌아다니다니.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군!”

껄껄거리며 호탕하게 웃으니 주변의 험악한 사내들도 따라 웃는다.

‘미친 사람인가?’

제 딴에는 겁을 주려고 하는 말이겠지만 조서인이 보기엔 자살을 희망하는 발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추룡의 얼굴을 보라.

즐겁다는 듯이 웃는 얼굴 위로 눈빛이 섬뜩할 만큼 차갑지 않은가.

“이건 오히려 제가 당신들을 위해 하는 일이라는 걸 알아주길 바랍니다.”

“뭐라고? 애송이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눈은 또 왜 그러나? 숫총각이 홍등가에 갔다가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모양이지?”

낄낄거리는 웃음을 들으니 조서인은 더 말을 섞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수준이 낮아도 정도껏 낮아야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는 것이다.

쩌엉!

성큼 내디디며 내찌른 일섬에 호기를 부리던 거한의 손에서 도끼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헛?”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인물 대부분이 조서인의 손에서 창이 뻗어 나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번개가 치듯 은광이 번쩍거린다 싶더니, 곧바로 도끼가 튕겨 나가는 식이다.

“흐어억!”

창이 자신의 어깨 옆을 스치고 지나간 것을 본 파락호 두 명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고, 고수다!”

“대인께 알려라! 낭인들을 불러!”

허둥거리는 파락호들을 향해 조서인이 질풍처럼 내달렸다.

후우웅!

머리 위에서 창을 한 바퀴 휘돌리는 소리는 마치 풍차가 돌아가는 것처럼 거셌다.

발을 박차고, 좌우로 휘두른 창대가 파락호들의 무기를 박살 냈다.

양중호(羊中虎).

양 떼 속에 뛰어든 호랑이가 이런 모습일까.

사방을 휩쓸며 진격하는 조서인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다. 파락호들이 암흑가에서 통하던 변칙적인 무공을 사용하며 덤벼들었지만, 불과 일 초식을 받아 내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터어엉!

조서인은 멈추지 않았다.

창을 허리에 붙이는 거창 자세.

건곤조화신공의 유장한 내력이 창끝까지 균일하게 감쌌다.

일연적룡무 제이 식.

창이 십여 개로 늘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화려하게 터져 나가는 첨격들이 파도처럼 주변을 덮친다.

파락호들은 방어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무공의 차원이 달랐다.

무산학관에서 기초를 닦고, 검선과 장기린의 무맥을 이었으며, 천하에 내로라하는 검성 부운화에게 전투의 요결까지 지도받았다.

절정에 이른 창술을 감히 파락호들 따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꾸우웅!

터엉!

뻐버벅!

내딛는 진각은 거인처럼 무겁고, 채찍처럼 가볍게 휘두르는 창격에 건장한 사내들이 조약돌처럼 튕겨진다.

심지어 내리치는 창압만으로도 주저앉는 자까지 있었다.

특히나 가장 먼저 나서서 추룡을 비웃었던 자.

거한의 매끈한 민머리에는 조서인의 창대에 얻어맞은 흔적이 두꺼운 멍이 되어 단단히 새겨졌다.

“쿠억!”

하얗게 눈을 까뒤집은 사내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지이잉―.

급히 내력을 회수한 은빛 창날이 떨렸다.

조서인의 창격은 쇠로 만들어진 무기도 박살 낸다.

파락호들은 알고 있을까?

죽이는 게 더 쉬웠을 텐데, 피륙에 멍만 들게 살짝 창대로 때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내력의 수급이 자유자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휘두르던 내력을 완벽하게 갈무리할 만큼 조서인의 내력은 심유하고 깊었다.

파락호들이 기함하며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뭣들하고 있어! 쇠사슬을 가져왓!”

“진법을 갖춰라! 습격이다! 상회를 지켜라!”

이제야 공가상회에 고용된 낭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제대로 된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평생을 사선에서 살아오며 온갖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 자들.

거칠긴 하지만 무공만큼은 제대로 익힌 사람들이다.

조서인을 겨누는 자세에서 예기가 흐른다. 빈틈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곧바로 죽이기 위해 덤벼들 것 같은 살벌함이 있다.

‘대부분 일류, 저 사람은 절정.’

가장 앞서서 쇠사슬을 가져오라 일갈하던 중년의 사내만큼은 제법 강인하다.

그는 상황 파악이 빨랐고, 조서인이 맞상대하기 어려운 고수라는 것을 단박에 눈치챘다.

“뒤쪽으로 돌아가라! 나머지 일행도 붙잡아!”

조서인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건 좋지 않은 결정이네요.”

피이잉―.

막는다.

마음을 먹는 순간 몸이 움직이는 경지.

심즉검(心卽劍).

검즉심(劍卽心).

심검이야 아직 요원하지만, 그래도 그 언저리에 발을 들인 자는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마음이 가는 즉시 그 상상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야말로 고수의 조건이라는 것을 말이다.

조가창법.

운해참파(雲海斬波).

은색으로 빛나는 조서인의 은자창이 파도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공기가 갈라졌다.

세상 모든 것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팽자연과 추룡이 있는 쪽으로 쇠사슬을 던지려던 낭인들이 은색의 파도에 휩쓸렸다.

낭인 다섯 명이 어깨와 허벅지를 얻어맞고 멀리 튕겨져 나간다.

은색 창날이 섬뜩하게 번뜩인다.

쩌엉!

쇠사슬을 후려치자 중간의 고리 부분이 끊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람이 갈라지는 파공음이 조서인의 움직임보다 늦었다.

전진하면서 일섬.

허리를 회전하며 수평으로 휘두르는 창격에 거센 풍압이 수십 명을 휩쓴다.

후우우우웅!

퍼버벅!

가슴이 갈라진 낭인이 피를 뿜는다. 손목이 베인 낭인은 검을 놓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막강함으로 낭인들을 베고, 후려치며 전진한 조서인은 순식간에 낭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털북숭이 중년 사내의 앞까지 다가갔다.

“뭐, 이런……!”

중년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조서인을 보고 있었다.

“반로환동이라도 한 건가? 어떻게 그 얼굴로 이렇게 강할 수가……!”

스릉―.

조서인은 은자창 창날을 중년 사내의 목덜미에 붙였다.

“지금까진 살수를 자제했으나, 이 이상 덤빈다면 살계를 열겠습니다.”

“……그대는 누구요?”

“상산 출신, 조서인이라고 합니다. 공가상회 회주를 보러 왔습니다.”

“낙일창……!”

이제는 그의 명성이 장강을 넘어 사해로 퍼지고 있었다.

중년 사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안내하겠다고 답했다.

공가상회의 회주, 공만종은 조서인이 보기엔 살이 너무 심하게 찐 사람이었다.

운동 하나 안 하는 듯한 사람이, 평생 수련을 하며 살아온 조서인보다 덩치가 두 배나 크다.

펑퍼짐한 몸에 커다란 얼굴, 두툼한 턱살 때문에 몸이 굴러갈 것처럼 동그랗게 보였다.

“허허, 미래의 천하제일창이 될 거라고 명성이 높은 낙일창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사천 변두리에서 장사를 하는 공 모(某)라고 합니다.”

자신을 낮추며 말하지만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다.

허허 웃는 얼굴 위로 자그마한 눈이 끊임없이 조서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조서인입니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만 사안이 시급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금룡각주 문주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크흠, 그분에 대해서는 우선 조 소협과 어떤 사이인지를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

“친구입니다.”

단호하고 당당하다.

조서인은 자신의 인연을 숨기지 않았다.

닳고 닳은 공만종이 잠시 할 말을 잊을 만큼 조서인은 올곧은 사람이었다.

“조 소협, 들어오면서 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녀 때문에 제 과일 가게가 완전히 박살 나고 불타서 재가 되었습니다.”

“보았습니다.”

“그녀 때문에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친구라고 말하시는 겁니까?”

“친구니까요.”

공만종의 눈빛이 흔들렸다.

방익지.

문주희.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영리하고 강인했다. 공만종과 두뇌 싸움을 할 만큼 사회의 때가 듬뿍 묻어 있기도 했다. 만만히 볼 사람도 아니었고, 실제로 그럴 만한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내는 무엇인가?

조서인이라는 이름의 이 젊은 사내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어째서 이렇게 밝고 당당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 그렇군요. 그렇지만, 그 친구 때문에 아픈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녀가 친구인 건 사실이고, 눈앞의 불이익 때문에 그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허어.”

“그런데 책임질 부분이 있기는 한가요? 이야기 들은 것만 봐서는 공가상회가 배신을 한 것 같던데.”

조서인이 공가상회에 들어오면서 폭력을 자제하지 않았던 이유다.

공만종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답했다.

“조 소협은 무슨 말을 어떻게 듣고 오셨는지요?”

“문주희에게 장부를 주기로 했었지만 일이 틀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공가상회에서 다른 사람 편을 들기로 한 거죠?”

차분한 목소리가 묘한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선한 얼굴, 차분한 눈빛이 공만종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큰 오해가 있군요. 저는 다른 쪽 편을 들기로 한 게 아닙니다.”

“그래요? 그럼 장부를 줬어요?”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주려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조금 시간을 두자고. 저희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이니만큼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말했지요.”

공만종은 억울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희도 난감합니다. 당연히 금룡각주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실갱이가 좀 있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마지막엔 잘 마무리하고 보내던 중이었습니다. 저렇게 가게가 완파된 건 갑자기 살수들이 습격하는 바람에 그렇지요. 저희도 피해자입니다.”

“살수들? 살수들이 가게를 습격한 겁니까?”

“예. 격렬한 싸움이 순식간에 벌어졌고, 유등이 넘어지는 바람에 크게 불까지 나 버렸습니다. 가게를 새로 짓게 생겼어요.”

공만종은 생각만 해도 억장이 무너진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백귀총 살수들이 포기하지 않았구나.’

사천으로 오는 길에 마주쳤던 독마검의 동료들이 분명했다.

문주희는 여전히 살수들의 목표인 모양이다.

“문주희는 어디로 향했습니까?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저도 그것까진 잘……. 가게가 불타는 와중에 그분은 말을 타고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거기까지만 압니다.”

“그렇군요.”

여기서도 정보는 얻기 힘든 모양이었다.

이해하고 포기하려는 찰나.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추룡이 나섰다.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지. 조카야, 잘 생각해 봐라. 문 소저가 그날 왜 여기로 왔겠냐? 살수들에게 이미 쫓기고 있었는데도 굳이 사천으로 돌아온 거 아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 않겠어?”

조서인은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했다.

“예, 숙부님. 그러고 보니 분명 이상합니다.”

“그날 장부를 주기로 했겠지. 그러니까 문 소저가 위험을 무릅쓰고 온 거고. 그런데 그날 말 바꾼 건 심히 의심스러운데? 애초에 문 소저를 끝내려고 공가상회도 작당한 거 아냐?”

의심스러운 시선이 쏟아지자 공만종이 불쾌한 내심을 드러냈다.

“아닙니다. 조 소협의 숙부이신지 모르겠는데, 불쾌하군요. 우리 공가상회는 관망은 할지언정 직접 칼을 쓰진 않습니다.”

“그래. 관망. 아무 짓도 안 하는 거. 때론 그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칼을 안 쓰긴 뭘 안 써? 들어오면서 본 파락호랑 낭인 놈들만 수백이던데.”

“그건 그저 우리를 지키고자, 방어적인 목적으로…….”

슥―.

한 걸음에 공만종의 곁으로 다가간 추룡이 그의 턱살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잘 들어, 돼지. 난 서인이 저놈처럼 순진하지 않아. 그리고 너희 놈들이 방익지랑 이야기해서 문 소저를 죽이려고 작당했든 말든 그것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지금. 문 소저가 어디에 있냐는 거야. 모르는 척하지 마. 찾아낼 수 있잖아? 그렇지?”

파라락―.

쒜에엑!

천장 대들보에서 뛰어내린 살수 두 사람이 추룡에게 검을 겨누었다.

추룡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나른한 듯 섬뜩한 살기를 두른 눈빛.

살아오며 수천, 수만의 피를 본 그의 살기가 공만종의 미간에 꽂히듯이 파고들었다.

“어떻게 할래? 문 소저 찾아낼래? 아니면 여기서 죽을래?”

공만종의 넓적한 얼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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