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519화 (648/686)

21권 13화

제43장 심즉다의(深則多疑) (5)

“크흑.”

문주희는 호흡이 턱 막히는 충격을 입었다.

가슴이 베인 것.

치명상이다.

깊이 베이지는 않았으나, 잔화마도가 쓰는 병기가 칼날이 삐죽 삐쭉 솟아 있는 톱날이라는 점이 상처를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상처가 깨끗하지 않아. 살점이 우툴두툴해졌어.’

옷을 벗어 보면 분명히 살점이 너덜너덜할 것이다. 문주희는 이를 악물고 양팔을 크게 회전했다.

고통에 신음할 틈도 없다.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는 태극권의 묘리로 소맷자락을 붙잡은 잔화마도의 손을 튕겨 낸 뒤, 자세를 낮췄다가 튕기듯이 일어났다.

후우웅―!

왼손을 뻗어 태극권의 일격.

뻐억!

태극권의 동작은 부드럽지만 그 파괴력은 부드럽지 않다.

문주희의 좌장에 어깨를 얻어맞은 잔화마도가 휘청― 몸이 흔들렸다.

‘칫, 턱을 노렸는데.’

가슴의 상처 때문에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근육이 경직되고 상처가 부푸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깨를 때린 덕분에 잔화마도의 기형도가 우측으로 크게 비껴 나가 허점이 크게 드러났으니 다행인 일이다.

파라라락―.

문주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뛰어들었다.

‘지금!’

내뻗었던 태극권을 다시 끌어당기는 것과 동시에, 긴 다리를 위로 뻗어 등각을 차올렸다.

펑!

크게 원을 그리는 등각.

각법을 끊어 차는 지점에서 애꿎은 공기가 터져 나갔다.

잔화마도는 몸을 비스듬히 비틀어서 그녀의 각법을 피했다.

동시에 기형도의 톱날이 발목을 노려 온다.

파라라락―.

문주희는 허공에서 몸을 회전해 톱날을 피하면서 거리를 계속 좁혔다.

잔화마도가 원하는 거리감은 명확했다.

칼잡이답게 적절한 거리를 벌리면서 날카로운 칼끝으로 그녀의 동작을 제어하려 들었다.

그렇다면 순순히 그렇게 거리를 내줘서는 안 된다.

‘애매하게 거리를 벌리면 불리해져. 아예 물러날 거면 단검을 던질 수 있게 완전히 멀리 떨어져야 해.’

문주희는 양손을 교차해서 소맷자락 안에 숨긴 단검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소맷자락 안에 꼼꼼히 바느질로 박혀 있는 단도만 수십 자루다.

소매 안쪽을 긁으면 드르륵― 소리가 날 정도다.

문주희는 손톱 끝으로 실을 톡, 끊어서 끊고 칼집에서 발도를 하듯 단검을 곧바로 뽑아냈다.

주작비도(朱雀飛刀).

은련환(銀連環).

쒜에에엑――!

문주희의 손끝에서 쏘아져 나간 단검이 애꿎은 허공으로 치솟았다.

무언가를 던지는 과정은 어떠한 동작이든 다 비슷하다.

강인한 하체, 탄력 있는 허리의 힘, 구동 범위가 넓은 어깨와 팔꿈치의 회전력.

거기에 주작 비도술은 손끝의 탄성까지 이용해 단검에 내공을 담는 구결이 포함되어 있다.

손가락의 동작만 보면 이마에 딱밤을 먹이는 듯한 자세다.

중지와 약지, 손가락 두 개로 단검의 손잡이를 걸었다가, 돌멩이를 던지듯 힘껏 어깨를 휘돌리는 적절한 순간에 손가락을 튕긴다.

문주희는 단검 하나를 위로 던진 뒤, 나머지 하나는 잔화마도의 하체를 노렸다.

채앵!

튕겨 나는 단검.

기형도로 단검을 쳐 낸 잔화마도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는다.

“이상한 기술을 쓰는군.”

처음에 하늘 높이 던졌던 단검이 허공에서 커다란 원을 그리더니 다시 잔화마도의 등을 노려 떨어지고 있었다.

신묘한 비도술이긴 하지만 은밀하진 않다.

잔화마도는 정면으로 달려드는 문주희를 기형도로 겨누었다.

그는 선택해야만 한다.

몸을 돌려 등을 노리는 단검을 막을 것인가?

정면에서 덤벼드는 문주희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좀 힘들지만 둘 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주작비도는 단검의 속도를 조절해 계속해서 상대방에게 심리적 압박을 거는 무공이다.

잔화마도는 그런 문주희의 무공을 간파했고, 그 속내를 꿰뚫어 보고는 비웃음을 날렸다.

“가소롭군! 하하핫! 그 하얀 얼굴에 화조도(花鳥圖)를 그려 주마!”

잔화마도의 기형도에서 강렬한 도기(刀氣)가 뿜어졌다.

마치 불꽃 같은 기세.

불이 붙은 대나무처럼 도기를 뿜어 대는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마공이었다.

눈빛은 붉은빛으로 번뜩였고, 목덜미와 어깨에는 힘줄과 핏줄이 잔뜩 돋아났다.

콰아아아아―――!

깊이는 부족하나, 그 파괴력만큼은 천하를 떨쳐 울리는 것이 마공이다.

조화를 깨는 무공.

마치 거대한 싸리 빗자루를 휘두르듯, 도기를 거세게 뿜어내는 기형도를 비스듬히 내리치니, 등 뒤를 노리고 떨어지던 단검이 미처 제대로 공격도 해 보지 못한 채 힘을 잃고 옆으로 튕겼다.

터엉! 쩌어엉!

충돌은 찰나.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난 문주희의 손에서 단검 두 자루가 칼날이 박살 난 채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쿨럭.”

문주희의 입가에선 짙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초식의 위력이 막강했다. 제대로 막았음에도 내상이 선명하게 남았다.

잔화마도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들소처럼 달려들어 다시 한 번 기형도를 수직으로 내리찍고 있었다.

노리는 곳은 문주희의 어깨.

팔 하나쯤은 잘라내겠다는 듯한 기세다.

‘얼굴만 무사하면 된다 이거지?’

이미 인간의 도(道)를 벗어난 자.

잔화마도라는 별호를 지닌 기이하고 잔인한 괴물다운 사고방식이다.

“살수 새끼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던가?

어림도 없다.

문주희는 그리 호락호락한 여인이 아니다.

무산학관이 어떤 곳이던가? 무공에 재능 있는 아이중에서도 고르고 골라 뽑힌 아이.

그 넘치는 인재들 사이에서도 대차고 당당한 성품 덕분에 주작방의 방장 자리까지 오른 여인이 그녀 아니던가.

“챠핫!”

문주희는 그녀가 익힌 강맹한 초식을 준비했다.

주작비도(朱雀飛刀).

금룡탄(金龍彈).

처음에 십연격 이후에 사용했던 무공과 같은 일격필살.

발끝에서 손끝까지 전류가 흐르듯 한 줄기 진기가 관통한다.

강한 힘을 담은 비도가 잔화마도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갔다.

먼저 사용했던 금룡탄과는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비도에 담긴 도기(刀氣)!

샛노랗게 빛나는 도기가 단검 위에서 섬전처럼 번뜩인다.

쒜에에에에엑!

잔화마도는 대경하여 급히 칼질을 멈추고 몸을 비틀었다.

촤아악!

긴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고, 오른쪽 뺨에 긴 생채기를 남기면서 귓불까지 베였다.

“이년이?”

잔화마도는 자신의 오른쪽 뺨과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는 눈이 돌아버렸다.

문주희는 가슴의 상처에 혈도를 눌러 지혈하고, 그 후에는 자신의 뺨에 남아 있는 상처를 보란 듯이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드디어 하나 갚아 줬네?”

“이년! 팔다리를 다 잘라 버리겠다!”

“원래 그러려고 했잖아?”

문주희가 손을 까딱거린다.

극도로 분노한 잔화마도가 기형도를 휘두르며 난폭하게 달려들었다.

급격히 좁혀지는 거리.

사납고 잔인한 도법이 문주희의 요혈을 노려온다.

문주희는 손가락 사이사이에 하나씩.

총 여덟 자루의 단검을 소매 속에서 붙잡고 때를 기다렸다.

‘아직…… 아직.’

기형도가 목전에 닿기 직전.

문주희는 양손은 소매 속에 숨긴 채 화려한 각법으로 잔화마도의 다리를 걷어찼다.

타타탁!

잔화마도는 화화공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사내였으나 역시 살수로 길러진 사내다웠다.

정강이와 허벅지의 요혈들을 걷어차이고도 그는 고통을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눈을 빛내며 강맹한 도기에 휩싸인 기형도를 사납게 휘두른다.

촤아악―!

“큭.”

결국에 어깨를 스치며 피가 솟구쳤다.

심지어 옆구리도 길게 베여 진한 핏물을 쏟아냈다.

“큽!”

문주희이 움찔 허리를 떨고, 잔화마도는 기쁨에 차서 입꼬리를 씩 끌어 올린다.

‘지금!’

바로 그 순간.

문주희의 양손이 화려하게 움직여 그녀가 지닌 최고의 초식.

필살초를 단박에 뿌려 냈다.

파라라락―!

쒜에에에엑!

주작비도(朱雀飛刀).

일수팔비(一手八飛).

따다다당!

잔화마도가 대경하여 다급하게 칼을 휘저었다.

하나 일순간에 터져 나온 팔비를 어찌 다 막겠는가.

잔화마도의 속도로는 아무리 막으려 해도 다섯 개가 한계.

나머지 세 개의 단검이 잔화마도의 오른쪽 허벅지, 오른쪽 어깨, 왼쪽 팔목 전완근에 박혔다.

드르륵―.

문주희는 단검이 도달할 때쯤 바닥을 구르는 나려타곤의 수법을 사용했다.

무인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동작임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바닥을 나뒹구는 회전력을 살려 잔화마도의 발목을 잡아챘고, 그대로 몸을 튕겨 상대방의 몸을 뱀처럼 휘감았다.

“컥?”

그때쯤 단검에 관통당해 고통스러워하는 잔화마도의 반응이 문주희에게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녀는 신체가 유연해 모든 동작이 능수능란해 보였다.

천축유가의 무공이 이러하던가.

잔화마도를 등 뒤에서 휘감아 제압한 그녀가, 역수로 붙잡은 단검을 잔화마도의 오른쪽 눈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박아 넣었다.

“끄아아악!”

이번에는 아무리 살수라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비명을 지르는 잔화마도의 귓가에 문주희가 속삭였다.

“화조도? 웃기지 마. 오히려 그림은 너한테 그려 줄게.”

잔화마도가 뭐라고 답하려 했는지는 들을 수 없었다.

제압했던 자세를 풀고 펄쩍 뛰어오른 그녀가 원앙각을 펼쳤다.

퍽!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퍼져 나왔다.

문주희의 발은 잔화마도의 눈에 박아 넣은 단검을 걷어찬 뒤였다.

스윽―.

끈 떨어진 인형처럼 잔화마도가 비스듬히 넘어졌다. 울컥거리며 새어 나오는 피가 바닥을 적신다.

문주희는 거기까지 보고 자세가 무너져서 양손으로 무릎을 짚었다.

“하아. 하아. 살수 새끼가. 감히 누구한테.”

그녀는 찰나의 틈에 모든 것을 건 대가가 몸에 찾아오고 있음을 알아챘다.

폐부가 시리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는다. 눈으로 보이는 광경이 반짝반짝 점멸했고, 깊게 베인 옆구리의 상처는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질 않았다.

오직 극심한 탈력감만이 그녀를 잠식했다.

‘아직…… 살수가 서른 명이나 있어.’

백귀총에서 온 살수 서른 명이 그녀를 지켜보는 중이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살수들과 싸운 이후에는 폐광산의 빈민들도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

“후후, 그래, 후우, 아직 멀었네.”

문주희는 다시 철 요대를 열고 붕대를 꺼냈다.

상처는 익숙하다.

그녀는 능숙한 손길로 옆구리와 팔의 상처들을 단단히 동여맸다.

“안 덤벼? 그럼 그냥 갈까?”

백귀총의 살수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일제히 칼을 뽑았다.

대장격이던 잔화마도가 죽은 것은 그들에게도 놀라운 일일 테지만, 그와 맞상대한 문주희 또한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살수들이 피 냄새를 맡은 들개처럼 흥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주희는 사방에서 그녀를 향해 조여 오는 살수들의 포위망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응시했다.

‘그래. 끝까지 해보자.’

두 번째 싸움의 시작이었다.

“하아압!”

고고한 늑대처럼, 그녀는 백귀총의 들개들을 향해 단검 두 개를 거머쥔 채 달려들었다.

***

“이것 참, 뭐라고 해야 할지.”

폐광산에 도착한 방익지는 피바다가 되어 버린 공터에서, 수많은 살수의 시신들로 둘러싸여 있는 여인을 경이롭게 바라봤다.

“문 각주. 당신은 내 생각보다 대단한 여인이었구려.”

쎄엑― 쎄엑―.

문주희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처참한 모습.

그 이상으로 어찌 표현할 방법이 없는 몰골이다.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뜯기고 잘려 나가 산발이었고, 옷 또한 마찬가지로 넝마나 다름없었다.

옷이 걸레짝이 되었으니 그 사이로 드러날 피부는 환하게 빛나야겠으나, 워낙 상처를 많이 입은 탓에 시뻘건 피로 온몸을 칠한 것처럼밖에 보이질 않았다.

가장 심각한 건 문주희의 목을 비스듬히 찔러 놓은 자상이다.

다행히 동맥은 건드리지 않은 듯했으나, 문주희가 한 손으로 막고 있는 목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 몰골, 그 지경이 되면서까지 도대체 뭘 얻고 싶었소? 부귀영화를 얻고자 한 거요? 아니면 금룡각주로서 뭔가를 증명하고 싶었나? 도대체 왜! 이 먼 사천 땅까지 와서 괜한 평지풍파를 일으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냔 말이오. 왜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들어!”

방익지는 끝까지 그녀를 원망했다.

문주희는 손바닥으로 목을 막고, 쌕쌕거리며 바람이 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덤벼. 사파(邪派)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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