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525화 (654/686)

21권 19화

제43장 심즉다의(深則多疑) (11)

‘이게 무슨!’

충격이다.

소호에게 이런 무공이 있었던가?

공기가 일렁거린다.

허공에 거대한 벽이 수백 개는 세워져서 그대로 밀려오는 듯했다.

찰나의 순간에 조서인은 결정해야만 했다.

막을 것인가? 피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공격할 것인가?

조서인이 순간적으로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가 떠올랐고, 본능적으로 그중의 하나를 골랐다.

“후우웁!”

호흡을 멈추고 복근을 단단하게 조였다.

은자창 한 자루에 온 힘을 다해 집중했다.

조가창법.

운해참파(雲海斬波).

촤아아악―!

공기가 갈라진다.

조서인이 휘두른 창격의 기파가 소호가 시전한 통배권과 맞부딪쳐 그 일부를 갈라 냈다.

후우우우웅―――.

기파와 기파가 부딪치자 강한 바람이 바깥쪽으로 불어 나갔다.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두 청년 고수의 내공이 격렬하게 부딪친 탓이다.

고오오오―――.

갈라 냈는가?

아니다.

운해참파로는 힘이 모자랐다.

내공을 격발시켜 만들어 낸 통배권의 파동이 노도처럼 뿜어져서 조서인의 온몸을 직격했다.

꽈아앙!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마차에 치이는 개구리의 심정이 이러할까.

조서인이 황급히 은자창에 온 내력을 집중해 몸앞을 가렸으나 충격은 이미 온몸을 후려치고 관통한 뒤였다.

“컥.”

숨이 멈췄다.

거대한 손이 폐부를 움켜쥐고 흔드는 듯했다.

‘이만한 내공을 일격에 뿜어낸다고? 소호의 내공이 그 정도로 막강한 거야?’

감히 추측컨대 조서인이 이 정도 위력을 지닌 기파를 공격으로 쓰려면 지닌 내공을 모조리 쓰고도 일부 선천진기까지 끌어모아야 가능할 것이다.

콰직!

꽝!

땅에 처박혔던 조서인이 바닥을 굴렀다.

그나마 낙법을 취하고 최대한 타격을 줄인 것이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누군가가 머리채를 휘어잡고 이리저리 휘두르다 바닥에 내리친 듯했다.

“흐읍, 쿠웨엑.”

벌떡 일어서려던 조서인이 다시 주저앉았다.

배 속이 울렁거린다.

바닥에 시커멓게 죽은 피뿐만이 아니라 새빨간 생혈(生血)까지 토해 냈다.

은자창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조서인은 이를 악물었다.

“고생했어. 이제 포기할래?”

소호가 웃는 얼굴로 다가온다.

치사하다.

조서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소호를 가까이에서 가장 오래 지켜본 사람이 조서인이듯, 조서인을 곁에서 가장 오래 지켜본 사람이 소호다.

소호는 알 거다.

조서인이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러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다.

“그럴 리가 없잖아.”

조서인은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일어나 창을 다시 앞으로 겨눴다.

건곤조화신공의 신묘함이 조서인을 지탱해 주었다.

하체가 안정되고 허리가 꼿꼿한 올바른 자세였다.

내상을 조금 입었을지언정 지닌 바 무공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그래. 포기하면 서인이가 아니지.”

소호는 그 모습에 더욱 흡족해했다.

“아직이야. 아직 멀었어.”

조서인은 입에서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아 내려다가 움찔했다.

소맷자락이 없다.

온몸의 옷자락이 난도질당한 것처럼 이리저리 헤어져서 너덜너덜한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몸에는 건곤조화신공의 내공이 융통무애하게 흘렀기에 이 정도다.

‘육신만큼은 지켜 냈다. 그러면 된 거야. 통배권 같은 걸 매번 쓸 수는 없겠지?’

그 정도로 내공 소모가 큰 무공을 매번 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소호는 그런 조서인의 생각을 다 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통배권을 쓰면 일시적으로 내공이 바닥나. 그런데 내게는 그걸 채워 주는……. 정(精)이 하나 있어.

소호는 전음으로 자기 무공의 약점을 말해 주었다.

조서인은 그 ‘정’이 뭔지를 짐작하고 표정이 무거워졌다.

‘집혼기.’

“지금부터는 더 사나워질 거야. 정말로 포기 안 할래?”

소호는 자신이 허리에 차고 있는 새하얀 칼집의 박도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위협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걱정을 해서 하는 말인가?

조서인은 더 이상 소호의 말을 구별할 수 없었다.

“소호야.”

“음?”

“난 진지해.”

“나도 진지한데?”

“그렇겠지. 난 그보다 더 진지하다는 말을 하는 거야.”

조서인은 양손으로 은자창을 잡고 소호의 미간을 겨누었다가 천천히 창끝을 내렸다.

코, 턱, 목젖, 가슴. 그리고 중단.

창끝이 소호의 중단까지 내려왔을 때.

사아아아악―.

조서인은 마치 신검합일을 이룬 검사처럼 날카로운 예기에 휩싸였다.

냉기가 흐른다.

싸움의 분위기가 변했다.

“소호 너니까. 자제하지 않을게.”

“당연한 소릴.”

소호는 지금 이 순간도 웃는 얼굴이 해맑다.

장난스러워 보인다.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강할 거라고 알고 있었잖아.’

소호랑 싸우면 진다?

당연한 소릴.

애초에 소호의 집혼기가 폭주했을 때를 제외하면 조서인은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친구가 잘못을 하면. 막는다.”

조서인은 중얼거리듯 자신에게 다짐했다.

번뜩이는 조서인의 두 눈이 신기(神氣)를 발했다.

장중하게 내딛는 진각.

양손으로 창을 뻗어 내자, 천수관음상처럼 은자창이 여러 개로 불어나 잔상이 생겨났다.

“일연적룡무 제이 식?”

태어났을 때부터 장기린의 무공과 함께 자란 거나 다름없는 사람이 소호다.

수십, 수백 명의 창수를 상대하는 듯한 환창(幻槍)은 소호를 놀라게 하지 못했다.

챙!

박도를 뽑아낸 소호가 소름이 돋을 만큼 깔끔한 자세로 도법을 전개했다.

도전적인 눈빛.

재미를 느낀 듯한 표정이다.

손놀림이 빨랐다.

일타, 일타를 반복하여 조서인의 일연적룡무 제이 식을 쳐 내는데 그 동작이 매우 빨랐다.

“호오?”

몇 번 손을 섞어본 소호가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뜬다.

조서인의 손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천수관음상 같은 모습.

본래 열 자루였던 창이 이제는 스무 자루는 되어 보인다.

창술을 전개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마침내 소호의 도법을 조금씩 밀어붙이며 압도했다.

채채채챙!

‘된다! 내가 조금 더 빨라!’

고오오!

인정해야 한다.

조서인은 생에 그 어느 때보다도 무공에 집중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싸움의 박자를 북으로 쳐서 표현한다면, 지금은 미친 듯이 북을 내려치고 있을 것이다.

환창의 극의를 선보이는 조서인과 그를 막아선 소호 사이에서 속도 싸움이 벌어지는 중이다.

‘좀 더. 좀 더. 좀 더!’

쒜에에엑――!

한 호흡에 수십 번씩 터져 나오는 창격과 그를 막는 도격이 맞물려 주변을 난장판으로 망가뜨렸다.

“피해!”

“그쪽으로 간다!”

우지끈!

쩌어엉!

콰직!

선연한 창기와 도기가 바닥을 가르고 벽에 구멍을 뚫었다.

어설프게 무기를 들고 창기의 파편이라도 막아 보려던 자들이 뒤로 튕겨져 내상을 입고 피를 흘렸다.

“낙일창. 강호의 명성이 헛되지 않았구나. 저 정도로 강했던가.”

“전대 고수도 아닌데. 련주님과 수백 초를 겨룬다고? 저자도 괴물인가?”

싸움을 지켜보던 천무련의 무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해 냈다.

모두가 경악하듯, 조서인 본인도 고무되어 신들린 듯이 창을 휘둘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찔렀다가, 그걸 피하는 소호의 다리에 창끝을 걸고 지렛대를 밀 듯 소호를 밀어낸다.

반격과 동시에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

추룡에게 배운 서역 검술의 일 초식이다.

파라라락―――.

소호는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돌 듯 가볍게 몸을 회전시키는 걸로 압력을 해소했다.

통하지 않는다.

조서인은 공중제비를 돈 소호의 오른쪽 소맷자락을 덥석 붙잡았다.

쒜에에에엑―!

왼손으로 소매를 붙잡고, 오른손으로 창을 내리치는 실전적인 초식.

이 또한 추룡의 가르침 과정에서 얻은 요령이다.

도박판의 경비병에게 배웠던 바로 그 일격이다.

그런데 소호는 웃는 얼굴로 공격을 막아 냈다.

창을 다 내리찍기 전에 손바닥과 장저로 창을 잡은 손목을 올려치는 매화산수로 막아 냈다.

‘역시.’

소호 역시도 천무련주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만전을 겪은 것이다.

밑바닥에서 통한다고 해도 고작해야 요령 따위.

이미 경지를 넘어선 소호에겐 통하지 않는다.

조서인은 같은 무공을 두 번 사용할 수 없다.

소호는 천무공자다.

의외의 일격?

아직 대비하지 못한 빈틈?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림 최강의 비술이라는 달마삼검을 상대로도 잠시만 생각하면 하류 무공을 조합해 찰나에 수십 가지 해법을 찾아내는 사람이 소호다.

이미 일연적룡무 제이 식을 사용한 이상 조서인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지금 이 흐름을 끊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예상보다 더 잘 해내는 것.

온전히 본인의 노력과 성취만으로 소호에게 자신의 무공을 증명해 내는 것!

쩌어어엉!

서걱!

소호의 소맷자락이 창기에 스쳐 잘려 나갔다.

소호의 표정이 변했다. 여전히 즐거워하지만 두 눈에선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역근경 진기.

전륜법광의 은은한 적금색 휘광이 소호의 온몸을 뒤덮는다.

‘집혼기의 힘! 이제 달라진다. 승부를 봐야 해.’

이곳이 승부처였다.

소호는 박도를 양손으로 가볍게 거머쥐고 상단세를 취하고 있었다.

소호의 무공에 대해 조서인도 아는 게 있다.

천랑도법.

북방 유목민들에게서 유래된 그 무공은 소호가 사용하면 하늘조차 양단하는 무시무시한 참격이 펼쳐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콰득!

조서인은 내력을 모조리 끌어 올려 발끝으로 단단하게 땅을 움켜쥐었다.

그의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단전에 단단히 뿌리내린 기초가 건곤조화신공이라면, 온몸으로 펼쳐내는 화려한 춤사위는 장기린에게 배운 일연적룡무다.

‘정면으로 맞선다!’

생각을 거듭해 결론을 내렸다.

쒜에에엑――!

번쩍!

하늘에서 일도양단의 기세로 떨어지는 칼날을 옆으로 비껴 내듯 쳐 냈다.

철새 떼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았다.

허공을 수놓던 수십 자루의 환창이 소호의 박도 옆면을 일제히 몰려들어 두드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장관이다.

쩌어엉!

하지만 소호의 칼끝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묵묵히.

장중하게.

중검(重劍)의 묘리를 담아 하늘도 부술 듯 떨어져 내린다.

키이이잉―.

은자창이 떨렸다.

오히려 소호의 힘에 휘말려 이쪽의 무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힘의 차이.

집혼기가 모아 놓은 막강한 힘을 버텨 내기엔 조서인의 내공은 아직 약하다.

우우웅――.

소호의 뒤와 주변을 한 번 힐끗 살핀 조서인은 결단했다.

으직!

어찌나 힘을 줬던지 허벅지와 종아리.

하체 근육 전체에 터질 듯한 부하가 걸렸다.

어깨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양손으로 은자창을 거머쥔다.

지금부터 쓰는 무공은 조서인이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무공이다.

내상이 들끓는 단전.

저릿저릿한 몸으로 사용하기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위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 승부가 조서인에겐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일연적룡무 제삼 식.

깨달음의 무공.

마음으로 창을 뻗어 내는 심창(心槍)의 경지.

물론 지금의 조서인에게 그 경지는 담벼락 밖에서 안뜰을 살짝 넘겨다봐서 아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그 위력만큼은 조서인이 지닌 무공 중에 단연 최고다.

고오오오오―――.

온몸에서 끌어 올린 내공이 조서인의 무형기와 합일된다.

신창일체.

그리고 심창일체.

키이이이잉―――.

천지를 양단하는 듯한 압도적인 참격을 조서인의 창이 정면에서 맞찔렀다.

심창의 경지가 담긴 창이 거대한 포(砲)와 같은 파괴력은 선보였다.

소호의 천랑도법이 천하를 가르는 참격이라면, 조서인의 일연적룡무는 천하를 꿰뚫는 은빛섬광이다.

번쩍!

소호의 참격이 부서졌다.

소호의 몸통이 일거에 꿰뚫린다.

창천랑의 천랑도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 생각한 소호가 황급히 칼을 비스듬히 돌려 창을 비껴 냈다.

까가가가가가강――.

상체도 비틀었고, 하체는 거의 한쪽 무릎을 꿇다시피하며 자세를 낮췄다.

태극의 묘리다.

후발제인.

사량의 힘만으로 천 근을 움직이는 사량발천근의 묘리까지 이용했다.

그랬음에도 소호의 박도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금이 쩍 가면서 칼날이 반쯤 부서졌다.

팅―.

부서진 칼날이 바닥에 떨어진다.

소호의 어깨를 노리던 일연적룡무 제삼 식이 살짝 밖으로 밀려났다.

“흡!”

조서인은 폭풍에 휘말린 돛단배처럼 창끝이 흔들림에도 끝까지 손잡이를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창끝을 조종하려 애썼다.

그 순간.

촤아아아악!

조서인의 가슴이 비스듬히 갈라졌다.

“큽.”

조서인의 시선이 흔들린다.

천랑도에 베인 가슴이 쩍 갈라졌다.

피는 아직 흐르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근육에 힘을 준 조서인 덕분이다.

“크흡.”

서서히 무너지는 조서인의 앞에서 소호가 의문을 표했다.

“왜 어깨를 노렸어? 몸을 노렸으면 피하기가 어려웠을거야.”

소호의 조언은 순수하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깝다.

조서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노리는 게, 네가 아니었으니까.”

“뭐?”

잠깐의 정적.

깜짝 놀란 소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소호로부터 비스듬히 떨어진 곳.

청죽조 무인들의 부축을 받고 있던 방익지가 한쪽 어깨와 팔이 완전히 날아간 채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끄아아악!”

두 사람의 싸움 끝에 터져 나온 비명은 조서인도 소호도 아닌 방익지의 것이었다.

소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서인은 웃었다.

그는 무공 대결에서 졌다.

하지만.

싸움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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