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권 1화
제44장 사천거화(四川巨花) (1)
안휘성 천무련.
야심한 밤. 새로 결성된 추마대(追魔隊)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모습과 복색은 제각각이었다. 소림, 무당, 청성, 곤륜과 같은 흔히 팔파일방이라 불리는 대문파 출신의 인재들이 곡차를 앞에 두고 현 상황에 대해 성토했다.
“이건 아니지 않냔 말이오.”
개방 출신의 오골개가 목소리를 높였다.
“방 조장, 아니, 방익지는 부정을 저지른 게 분명하오. 천무련의 조장이라고 해도 받는 월봉이야 빤한데, 그렇게 매일같이 술과 고기를 먹으면서 흥청망청할 돈이 어디에서 나왔겠소? 뒷돈을 받았을 겁니다. 불 보듯 뻔한 이야기란 말이오.”
천무련의 무인이 되면서 새 옷을 지급받았음에도 항상 허리에 삼결제자를 뜻하는 매듭을 세 개씩 묶고 다니는 사람이 오골개였다.
모든 것을 버리는 무소유와 그와중에 협과 의를 숭상하는 개방의 정신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그이기에 방익지 사건에 더욱더 분개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추궁하러 온 낙일창을 힘으로 쓰러뜨리고 내쫓아? 나 오골개.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이번 일로 천무련에 크게 실망했소.”
점점 수위를 더해 가는 오골개의 발언에 장내는 열기를 뗬다.
“오 소협, 우리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발언이 좀 과격하군. 방 조장에 대해서는 조사한 결과 불의의 사고라고 하지 않은가?”
같은 의견인 사람들이 자신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렇지. 우리가 천무련의 조사결과를 믿지 않으면 어쩌겠나?”
“지금 천무련이 아미파와 사이가 안 좋은 상황에서 그 안에 파고들어 사이를 중재하려면 뭐, 이런저런 일이 있겠지.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어.”
“맞습니다. 그리고 아미파한테 뒷돈을 받았다는 건 솔직히……. 옳지는 않습니다만 그걸 뭐라고 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막말로 사파인 적양문 같은 곳에서 받은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한 식구인데. 그냥 대접 좀 받은 거랑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 거지.”
아미파는 적이 아니다.
오랜 세월 강호 무림에서 같은 정도의 거대 문파로 묶여서 다들 사형제처럼 지내 온 영향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반대로 아미파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천당가나 청성파 출신의 사람들은 불만스러워했다.
“답답한 소리들을 하고 있구만, 상대가 아미파든 소림이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뒷돈을 받았으면 그 돈만큼 뭔가를 해 준다는 소리인데 그게 문제인 거지. 왜 다들 맥락을 못 읽는 척을 하는 건가?”
“크흠! 소림은 뒷돈을 주거나 하지 않습니다.”
“미안하오, 스님. 가장 뒷돈을 안 줄 것 같은 곳을 예를 든 것 뿐이니 부디 크게 받아들이지 말아 주시오. 아무튼 죄는 죄고, 잘못은 잘못일세. 그리고 솔직히, 낙일창 소협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나도 동감이오.”
“나도.”
“나도 그렇소.”
대문파 출신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으나 그들 모두 낙일창이 보여 준 협의만큼은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그의 행보를 보시오. 그는 상대가 아무리 커도 주눅이 들지 않소. 해야 할 말은 하는 사람이지.”
“옳소. 백경채에서 벌어졌던 낙일창 사건을 다들 듣지 않았소?”
“혼자서 백검회 최고수를 상대로 해가 질 때까지 버티겠다던 일 말이지? 그러고 보니 여기에 그때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이 있군. 오 소협, 어떻게 생각하시오?”
오골개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서인을 칭찬했다.
“바로 그렇소. 내가 낙일창 사건이 있었을 때 백경채에 있었던 사람이오. 개방의 삼결제자로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보기 위해서였지.”
“어떻던가? 정말로 낙일창의 성정은 정의롭던가?”
“물론! 한창 해가 지기 전까지 싸우다가 낙일창 소협이 잠시 쉬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탈진 상태였으나 여전히 대나무처럼 꼿꼿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소. 그리고 그때 나는 그와 식사를 나눠 먹을 기회가 있었다오.”
주변의 추마대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설마하는 얼굴로 오골개가 혹시 허세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게 볼 정도였다.
“크흠! 짧은 시간이었지만 겸상을 하면서 낙일창 소협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지. 같이 식사도 한 사이로서 말하겠소. 그는 진짜배기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한 치의 사심도 없는 순수하고 올곧은 정파의 청년이오.”
“오오.”
“그러니 나는 그의 말을 믿는 것이오. 그가 방익지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믿소. 그리고 금룡상회의 딸, 금룡각주가 사망한 일에도 방익지의 입김이 들어갔다? 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보오. 만약 그녀가 사천 땅에서 비리를 저지르는 방익지를 목격했다면?”
어린 시절부터 개방에서 정보를 다루던 오골개는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었다.
그럴듯한 추론이 나오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면서 각자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둘 다 맞으면 어떡합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둘 다 맞다니.”
“낙일창은 낙일창대로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방 조장은 방 조장대로 억울할 만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둘 다 맞는 말이다? 둘 다 억울하고?”
“바로 그겁니다.”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청성파의 사람이 손을 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우리 솔직하게 말합시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도 있지요. 같은 천무련이라 하더라도 먼저 자리를 잡은 청죽조 사람들. 대문파 출신이 아닌 자들이 우리에게 트집을 잡으면서 시비를 건게 하루 이틀이오? 사사건건 이래서 신입은 안 된다는 식으로 우릴 얕잡아 보던 게 누구냔 말이오?”
청성파 사람의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다 같은 천무련의 동지들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천무련이 깃발을 올린 지 얼마 안 되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지 못했으며, 출신 성분 때문에 나뉘어져서 계속 갈등이 생겨나는 건 사실이었다.
“우린 이번 일로 깨달아야 하오. 저래서 뒷배가 없는 자는 안 되는구나. 워낙 없는 사람이니 돈 몇 푼에 휘둘리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된단 말이오.”
“없는 사람들이라니. 말이 심하군.”
“사실이지 않소? 이게 다 련주인 천무공자부터가 대문파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오. 그러니 자꾸만 청죽조 같은 낭인 출신의 인물들을 중용하는 것이지.”
지켜보던 오골개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한다.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결국 무상 패원강 사숙을 지지하라는 소리로군.”
오골개의 사나운 지적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소.”
“그 소리가 그 소리지. 난 근본 없는 거지 출신인지라 그런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소.”
“개방은 팔파일방에 속하는 대방파요.”
“무공이랑 정신만 그렇지. 난 그냥 평범한 굴다리 밑의 거지 새끼처럼 살았소이다.”
“으음, 오 소협을 불쾌하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소.”
“알고 있소. 뭐, 각자 생각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소. 하지만 내가 분명히 하고 싶은 건 부패를 저지른 방익지가 오히려 승진을 해서 큰 권한을 쥐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이는 반드시 항의해서 바꿔야 한다는 점이오. 이러면 어떻소? 그대들 뜻대로 무상 패원강 사숙에게 우리의 의견을 전달합시다. 그래서 천무련을 옳은 쪽으로 바꿔 보는 거요.”
“옳소!”
“그렇게 합시다!”
두 갈래로 갈라지던 모두의 의견이 하나로 합치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어느새 천무련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대문파 출신 무인들의 결정이었다.
그들의 의견은 종이 한 장에 모두 정리되어 패원강에게 전달되었고, 패원강은 이걸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며칠 후, 패원강은 모두의 의견이 종합된 서찰을 들고 장소호를 찾아갔다.
“천무련 무인들의 불만이 상당한 것 같소.”
패원강은 그간 한층 더 성숙하여 이제는 코와 턱에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는 진중한 모습으로 서찰을 내밀었다.
“련주, 방 조장을 꼭 품고 가야 할 이유가 있소?”
소호는 고개를 저으며 서찰을 받아 들었다.
“이유가 다 있어요. 불만이 나올 것은 예상했고요. 아! 이제는 각주라고 불러야 해요. 비각의 각주로 임명했거든요.”
“나도 알고 있소. 그럼에도 조장이라 부른 거요.”
천무련에서 은자촌 출신이 아닌데도 소호에게 대등하게 대꾸하는 사람은 패원강 한 사람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럴 만한 능력과 성정을 갖추고 있었다.
천하제일을 다투는 무재(武才).
구파일방 모두의 무공을 한 몸에 품은 정파 무림의 총아(寵兒)가 바로 그다.
“무상도 방 각주가 마음에 안 드는군요?”
“방금 군사부에 다녀오는 길이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나 궁금해서 알아봤는데……. 가관이더군.”
패원강은 불쾌감을 넘어 혐오와 경멸에 가까운 얼굴을 보여 주었다.
“뒷돈까지는 이해할 수 있소.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암흑가에 손을 대서 자기 세력을 불리는 데다, 그걸 감찰하러 간 금룡각주를 살수를 이용해서 죽여? 이게 무엇이오? 난 군사부에서 준 자료를 읽고 내 눈을 의심했소.”
방익지가 눈앞에 있었다면 당장 그 단단한 주먹으로 철권을 날렸을 것이다.
패원강은 눈빛을 활활 불태우며 표정으로 그리 말하고 있었다.
“이해합니다. 저도 화가 났으니까요.”
“화가 났다고? 이해가 안 되는 군. 나는 련주가 그를 승진시켰다기에 지금도 그를 비호할 줄 알았소.”
“나를요? 너무하시네. 아무리 제가 요즘 좀 이해득실을 따진다해도, 설마 그걸 비호할 줄 알았어요?”
“그럼 아니었소?”
“당연히 아니죠. 날 뭘로 본 거예요. 무상. 저 진짜 삐집니다? 삐져요?”
패원강은 팔짱을 낀 채 짙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고, 그게 문제라는 자각도 있는데 오히려 승진을 시키고 권한을 준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 듯했다.
화를 내려다가 화낼 이유가 사라져서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태산의 준봉처럼 높은 콧대 위로 우수에 찬 눈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건 무상에게만 말해 둘게요. 총군사인 주해 말고는 무상만 알고 있는 겁니다.”
“무슨 일이오?”
“비각의 각주인 방 각주는 사천에서 아미파와의 화해를 위해 다시 정식으로 파견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북경으로 적양문주와 회담을 가지러 갑니다.”
“적양문주와? 태양염왕과 직접 만난단 말이오?”
“네.”
강호 무림이 들썩일 소식이었다.
패원강은 사파 제일 고수의 이름에 잠시 흥분했다가 다시 냉정을 찾았다.
“흥미로운 소식이군. 그런데 그게 지금 일과 무슨 관계가 있소?”
“이건 추측인데요. 제가 북경에 가 있는 사이에 뭔가 사건이 터질 거예요. 그런데 저는 북경에 가는 중이고, 중요한 회담이 잡혀 있어서. 아마 하루나 이틀 정도 대응이 늦을 것 같아요.”
소호는 의뭉스럽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여전히 환한 미소.
치기 어린 소년 같은 웃음인데 눈빛이 깊어 속내를 알 수 없다.
패원강은 모략이나 전략에 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본 오성이 출중하기에 곧바로 소호의 말뜻을 이해했다.
“설마, 사건이 일어나는 게 사천이오?”
“글쎄요? 앞날은 모르지만요. 왠지 그럴 것 같아요.”
“그건……. 가혹하군.”
“자업자득이죠. 지은 죄가 있으니.”
“아니, 그에 대한 말이 아니오. 어쨌든 그걸 나에게 말해 주는 이유는 무엇이오?”
“무상이 결정했으면 해서요.”
소호는 자신의 집무실을 가리켰다.
천무련주의 집무실.
화려한 금색 의자와 그 앞에 서류들이 산처런 쌓여 있는 정갈한 방이다.
천무련의 큰일을 결정할 때는 이곳에 조장 이상의 간부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모아 결정한다.
중요한 장소이며, 한시도 비워둘 수 없는 자리였다.
“제가 없을 때 이곳의 책임자는 주해와 무상, 두 사람이잖아요?”
“그렇……소.”
“사건이 터졌을 때 곧바로 대응할지. 아니면 저처럼 하루나 이틀 늦을지. 그건 무상이 결정하면 될 것 같아요.”
“……!”
큰 고민에 빠진 패원강을 향해 소호가 한 마디를 더 첨언했다.
“이번 일은 제가 전에 말했던 ‘승계’와 관련된 일이 될 거예요. 잘 생각해 보세요.”
소호는 뒷짐을 진 채 휘파람을 불면서 멀어졌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과 혼란에 빠진 그는 한참 동안이나 천무련주의 집무실에 얼빠진 얼굴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