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권 6화
제44장 사천거화(四川巨花) (6)
큰 것은 강하다.
몸이 크면 힘이 세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수소끼리 싸움을 시키든, 자연에서 맹수들끼리 영역싸움을 하든,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놈이 이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의 확률로 그렇지 않은 개체가 태어난다.
작은 몸집으로 자기보다 훨씬 큰 존재들을 압도하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기묘한 쾌감마저 준다.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자연의 거대하고 절대적인 법칙을 위협하는 자들이었다.
크고 힘센 것들을 거꾸러뜨리고 잡아먹는 특출한 존재의 모습이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미미는 사람들 중의 그런 존재였다.
불가해(不可解).
골격만 좀 클 뿐 우락부락하지도 않은 여인이 대체 어떻게 저런 힘을 쓸 수 있는 건지, 세상의 이치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신비한 사람이다.
어찌보면 소호와 비슷하다.
하늘이 재능을 내려 줬다는 것만 알 뿐, 그를 따라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어린 소녀가 난다 긴다 하는 무가 출신의 소년들 사이에서 용시험 수석을 차지하고, 그 후에도 무산학관에서 막강한 신력을 조절할 만한 최고의 외공을 익히며 자신의 능력을 꽃피웠다.
조서인도 알고는 있었다.
학관에서 가장 유명했던 인물들 중 하나인 데다 같이 힘을 합쳐서 싸운 적도 있는데 어찌 대미미를 모를까.
그래도 그녀의 대단함이 실감이 났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분야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대미미의 성격상 조서인과는 대련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탓도 있다.
“잠깐…….”
그런데 오늘.
대미미가 커다란 바위를 한 손으로 들어올렸을 때 조서인은 자신이 지금 상대해야 하는 존재가 ‘특별한 존재’임을 새삼 깨달았다.
후우우우웅――――!
그는 전력을 다해 옆으로 몸을 날렸다.
치이익―.
땅바닥에 족적이 길게 남는다.
급하게 뛰쳐나갔다가 다시 멈춰서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다.
어깨가 얼얼했다.
옷자락이 불에 탄 것처럼 찢어져 있었다.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꽈아아앙―――!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폭음은 이미 발을 딛고 있는 땅이 웅웅 떨린 뒤에야 귀에 닿았다.
조서인은 뒤를 돌아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없다.
가도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던 삼나무들이 마치 거인이 바가지로 움푹 떠간 것처럼 둥그런 원형의 형태로 사라져 있었다.
“이 무슨?”
사람이 한 자루의 무기로 저만한 파괴력을 재현하려면 얼마나 높은 경지에 올라야 하겠는가?
적어도 초절정의 경지.
무림 강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내공과 무예가 준비되어야 비슷하게나마 따라 할 수 있을 위력이었다.
그런데 그걸 몸의 힘.
신력(身力)만으로 해낸다.
누가?
천하제일 거력지체.
대미미가.
콰득―.
대미미는 아까보다 조금 작은 바위―그렇다 해도 사람의 몸통보다 훨씬 큰―를 들어 올려서 다시 조서인을 겨누었다.
“그거 맞으면 죽어.”
“넌 버틸 수 있잖아?”
대미미는 번개처럼 바위를 내던졌고, 조서인은 가슴이 무릎에 닿을 것처럼 상체를 숙여서 간신히 피해 냈다.
맞고도 버틸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화경에 들어선 조서인은 이제 전신에 내공이 융통무애하게 끊임없이 흐르고 있으니까.
해 본 적은 없지만 호신강기도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미미가 그걸 어떻게 알아챘는지 굉장히 궁금한 일이었다.
‘소호가 말해 줬을까? 그때는 지금보다 약했었는데?’
반년간의 휴식과 용의 내단을 섭취한 일이 없었다면 조서인은 지금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만약 소호가 더 강해질 것을 예측했다면 놀라운 일이고 말이다.
하지만 설령 바위를 맞고도 버틸 수 있다고 한들 조서인은 대미미의 공격을 맞받아칠 생각이 없었다.
콰아아아앙!
이번에도 나무가 박살 나고 땅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났다.
이쯤되면 대미미는 인간 대포다.
돌멩이 하나를 던지듯 바위를 쏘아 내는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천무공자 소호가 이런 미미의 도움까지 받았으니. 천무련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지.’
하늘이 내린 재능 두 사람이 한데 모여 있는데 감히 누가 상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속도전이다.’
정신 없는 속도전은 조서인의 특기가 아니지만 그래도 대미미보다는 앞설 수 있을 것이다.
파바밧!
조서인은 대미미까지 남은 세 걸음을 순식간에 주파했다.
이제는 창이 닿는 거리.
조서인이 일연적룡무 제일식을 사용하려는 순간, 삼나무 숲에서 뛰쳐나온 십걸들이 조서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나같이 곰 같은 거구인 그들은 각자 손에 철편을 이어 만든 수투를 끼고 있었다.
“막을 건가?”
조서인은 담담하게 물었고, 전상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철공주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한다!”
“그리 말하니 내가 역적이 된 것 같잖아…….”
일연적룡무 제일식.
쒜에에엑―――!
섬전처럼 뻗어나간 창날이 전상의 복부로 빨려 들어갔다.
엄청난 속도.
찰나를 쪼개는 듯한 섬격이었는데 전상은 그걸 피했다.
태극권을 응용한 부드러운 회피동작이다.
왼발을 뒤로 빼며 몸을 반회전 시켜 피해 반경을 줄이는 모습에서 싸움에 능숙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외공과 박투술로 절정의 경지에 이른 전상.
무산학관에서 대미미만 없었다면 용 시험 수석이었을 인재다운 실력이다.
‘강해. 그래도 나보단 느려.’
조서인은 손목을 반바퀴 더 회전시켜서 창의 속도를 높였다.
촤아악―.
회전력이 강해지면서 창끝이 반 박자 더 빨리 뻗어 나갔다.
전상의 옷자락이 찢겼다.
피부에 분명히 창날이 닿은 듯했는데, 상처가 남지 않고 마치 도자기에 젓가락을 찌른 것처럼 미끄러졌다.
“음?”
조서인은 지그시 인상을 썼다.
전상도 놀란 눈치다.
완전히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공격을 받았으니 경계심만 더 강해졌다.
그 와중에도 전상은 용조수처럼 손끝을 모아 조서인의 창을 덥석 붙잡았다.
지이이잉―.
창을 사이에 두고 느껴지는 힘이 강력하다.
힘줄이 잔뜩 돋아난 전상의 전완근이 은자창을 단단하게 붙들고 있었다.
‘철포삼이 절정에 이르렀구나. 대단하네.’
복부에 상처가 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쇳가루가 섞인 모래에 평생 동안 손날을 찔러 넣는 철사장 단련처럼, 전상이 매일 해 온 외공 단련이 지금 이 순간 전상의 패배를 한 번 막아 준 셈이다.
파바바밧!
쩌어엉!
조서인의 창이 막힌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십걸들 중 다섯 명이 조서인의 주변을 포위했다.
권장과 각법이 날카롭게 날아든다.
땅을 내딛는 진각들이 땅을 울리고, 그들이 내지르는 포효 소리가 짐승의 그것처럼 산천초목을 쩌렁쩌렁하게 떨쳐울렸다.
“과연.”
대미미를 우습게 본 적은 없다.
조서인은 누군가를 쉽게 생각할만큼 오만하지 않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절정에 다다른 전상과 다른 십걸들의 합격진.
그 와중에 틈틈이 날아오는 대미미의 포탄 같은 투척술은 그야말로 강호 무림에서 막을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을 천하일절이다.
‘전력을 다한다.’
그가 마음을 먹는 순간 건곤조화신공의 내력이 단전에서부터 용솟음치듯 치솟았다.
화아아아악――.
잠자던 용이 깨어나듯, 무시무시한 기파를 뿜어낸 조서인이 손으로 창끝을 잡은 뒤 발로 창대를 걷어찼다.
터어어어엉!
“흐읍!”
전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창을 놓치고 말았다.
창대를 타고 치솟은 엄청난 내력 때문에 도저히 창을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터어엉!
조서인은 강하게 진각을 밟고.
후우우웅――.
조가창법의 묘리.
폭풍처럼 몰아치는 강격을 제자리에서 사방으로 휘둘렀다.
쩌저저저정!
콰직!
뻐어억!
부서진 수투에서 철편이 튀어올랐다. 허벅지나 옆구리, 둘 중 하나에 일격을 당한 십걸들이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조서인은 달려드는 십걸들을 파죽지세로 쳐 내며 대미미를 향해 나아갔다.
정면을 막고 있는 것은 전상.
그가 무산학관에서 배웠던 천근갑과 천근추를 활용해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후우웅―.
퍽!
“컥……!”
전상이 내지르는 정권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창대로 전상의 명문혈을 비스듬히 올려쳤다.
전상이 명치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후우우우웅――.
그 순간, 바위가 날아왔다.
쩌어어엉!
조서인은 창끝을 땅에 박고 양손으로 창을 넓게 잡았다.
터어어어어엉!
엄청난 충격이 해일처럼 전신을 후려친다.
은자창의 창대가 활처럼 둥그렇게 휘었다가 다시 제자리를 되찾았다.
은자창이라서 다행이었다.
평범한 철창이나 목창이었다면 대번에 부서지거나 휘어졌을 것이다.
다행히 바위는 뒤로 튕겨졌고, 삼나무 하나를 직격해 몸통을 반쯤 부러뜨린 채 처박혔다.
“하아압!”
조서인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전상을 옆으로 날려 버리고 대미미를 향해 나아간다.
더 이상 앞을 가로막는 십걸은 없다.
대미미는 바위를 하나 더 던진 뒤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양팔을 늘어뜨리고 자연체로 서 있는 대미미의 모습에 조서인이 경계심을 가지려는 찰나.
대미미는 조서인이 창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갑자기 자신의 발밑 땅에 양손을 푹 박아 넣었다.
‘설마?’
경악한 조서인이 몸을 피하기 전에 이미 대미미는 땅에 눕혀서 묻어 두었던 통나무를 단번에 뽑아 올렸다.
단단한 모래흙이 물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흘러내렸다.
대미미가 길이가 삼 장(丈)에 이르는 통나무를 뽑아 들자 전상을 비롯한 십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납작 엎드렸다.
‘막아야 해!’
조서인은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창을 뻗었다.
목표는 대미미의 어깨.
통나무를 들고 있을 수 없도록 만든다면 조서인의 승리가 될 것이다.
“이얍!”
대미미는 싸움이 벌어진 후 처음으로 기합을 내질렀다.
후와아아아앙――.
통나무가 다가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조서인의 창끝이 대미미의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 이미 거대한 통나무는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늦었……!’
전상처럼 엎드린다고 한들 대미미가 아래로 내리치면 그뿐이다.
그렇다고 위로 뛰어오를 수 없다.
대미미 정도의 힘이라면 몽둥이로 고양이를 때리듯 허공으로 뛰어오른 조서인도 가볍게 후려칠 터.
결국 조서인은 이를 악물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왼손을 들어 귀를 가렸다.
몸을 웅크리고 최대한 충격을 대비했다. 충격을 받기 직전, 창을 회수하며 날려갈 방향으로 발을 차서 먼저 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뻐어어어어억!
“……!”
신음도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는 듯한 충격이다.
육중한 무게를 지닌 통나무가 엄청난 힘을 담아 휘두르는 파괴력이란 말로 설명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이었다.
콰직!
어떻게든 창을 놓치지 않은 게 기적이다. 조서인은 하찮은 돌멩이처럼 옆으로 튕겨나가 바닥에 세 번이나 몸을 부딪친 뒤 십 장 너머의 거리까지 날려졌다.
낙법을 취했음에도 충격이 컸다.
조서인은 곧바로 일어서려다가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구역질이 나고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양손을 내려다보니 조서인의 손과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는데도 이 정도 충격이라고?’
장담컨대, 조서인이 화경에 이르지 않았다면 온몸의 뼈라는 뼈는 다 박살이 났을 거다.
“하오문의 후우, 거화신녀가…… 후우, 최강이라더니……. 후우.”
조서인은 숨을 몰아쉬면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전상을 포함한 십걸들이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조서인을 응시한다.
오로지 대미미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통나무를 비스듬히 눕혀서 다시 한 번 휘두를 준비를 했다.
“간다. 이번엔…… 막지 못할 거야.”
일연적룡무 제삼식.
조서인이 그간 익힌 무공의 모든 정수가 담긴 일격.
장기린의 후계자 조서인이, 사천의 큰꽃 대미미를 향해 전력을 다해 창을 휘두른다.
번뜩이는 섬광.
통나무가 박살 나는 굉음과 함께.
조서인의 창끝이 대미미의 목전에 닿았다.